마도구 배터리 교환소의 막내 기사

3화: 막내 기사의 차단 레버
“재민 씨, 충전대 전원을 끊어요!”
하진의 목소리가 작업장 뒤편에서 날아왔다. 재민은 충전대 앞에서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손을 거둔 건 발밑에서 난 둔탁한 소리였다. 3번 칸의 격리용 배터리가 바닥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내열 트레이가 한쪽으로 기울며 고정쇠가 빠졌다. 배터리 케이스가 금속 프레임에 부딪혔고, 초록 표시등이 한 번 번쩍였다.
작업장 문밖에 줄을 서 있던 고객들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재민은 불이 난 것도 아닌 배터리에 시선을 붙들렸다. 그게 더 위험했다. 표면에 금이 가고, 내부 셀에 저장된 마력이 빠져나오면 빛이 아니라 압력으로 사람을 다칠 수 있었다.
하진은 비상 차단 덮개를 열었다. “먼저 작업대 메인. 그리고 환기 셔터.”
재민은 메인 레버 쪽으로 뛰지 않았다. 셔터가 반쯤 열린 채 멈춰 있었고, 밖의 고객들이 통로를 막고 있었다. 그 사이를 가로질러 가면 충전대 앞을 지나야 했다. 그는 벽의 보조 차단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버튼은 케이스 뒤쪽에 있어 손을 넣어야 했다. 배터리에서 낮은 떨림이 더 빨라졌다.
“수동 셔터 손잡이!” 하진이 외쳤다.
재민은 작업대 아래 비상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쇠사슬이 팽팽해지며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깥에 있던 한 헌터가 안에 두고 온 가방을 가지러 돌아섰다. 수아였다. 그녀는 아침에 맡긴 창을 찾으러 다시 왔다가 경보를 듣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오지 마세요!” 재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수아는 한 발을 멈췄다. 그러나 가방은 셔터 안쪽, 충전대와 가까운 의자 아래에 있었다. 그녀는 재민을 보며 손을 들었다. “안에 기록이 있어요. 제가 어제 보여 준 로그 복사본.”
“가방은 나중에 가져가세요!”
하진이 수아의 어깨를 잡아 통로 밖으로 당겼다. “사람부터 비워요. 기록은 없어져도 다시 받을 수 있어.”
수아는 셔터 밖으로 밀려나면서도 안쪽을 돌아봤다. 가방이 놓인 의자 아래에는 그녀가 밤새 모은 정비 영수증과 창의 수리 부품이 들어 있었다. “그 안에 제 전부가 있어요.”
“다시 만들 수 있는 건 다시 만들면 돼.” 하진이 말했다.
“그 말 쉽게 하지 마세요. 길드에서 누가 제 말을 믿어 주는지 아세요? 영수증도 없으면 제가 임의로 고친 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요.”
재민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기록이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기록을 잃으면 수아가 감당할 몫이 커진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그는 셔터가 바닥에 닿는 소리를 듣고, 가방 안의 영수증을 보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문 밖에서 휴대전화로 수아에게 무게와 색, 위치를 물었다. 하진이 안전창으로 안을 확인하고, 위험 구역에 들어가지 않고도 가방을 밀 수 있는지 살폈다.
재민은 원격 집게를 가장 낮은 틈으로 넣어 가방 끈을 걸었다. 첫 시도에서 집게가 끈을 놓쳤다. 두 번째에는 의자 다리에 걸려 가방이 돌아갔다. 셔터의 틈을 더 벌리면 위험 구역이 열릴 수 있었다. 하진이 중단 신호를 보냈다.
“그만. 물건보다 사람이야.”
수아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쥐었다. “괜찮아요. 저도 기다릴게요.”
그 말은 체념처럼 들렸지만, 재민은 그녀가 뒤로 물러선 뒤에야 다시 숨을 쉬었다. 그는 가방을 포기하는 대신 입구 통로를 비우고 안전 절차를 시작했다.
셔터가 바닥에 닿자 작업장 안은 비상등뿐이었다. 재민은 비상 차단 레버의 위치를 확인했다. 메인 차단은 셔터 내부에 있어, 레버를 당기려면 경보 배터리와 충전대 사이를 지나야 했다. 그는 격리함에 있던 원격 차단 스틱을 꺼냈다. 손잡이는 길었지만 끝의 갈고리는 케이스의 작은 고리를 걸기엔 비스듬했다.
“재민, 잠깐.” 하진이 팔을 붙잡았다. “혼자 들어가지 마. 내가 셔터를 올려 둘 테니 네가 밖에서 원격 차단해.”
“차단 스틱으로는 레버에 닿지 않습니다. 트레이를 밀면 거리가 나와요.”
“트레이가 넘어지면 케이스에 충격이 가.”
“그럼 셀의 방향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하진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재민은 측정기 화면을 그녀에게 보였다. 표면 온도는 삼십구 도. 상승은 잠시 멈췄지만 표시등이 일정하지 않았다. 재민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려는지, 잘못되면 누구에게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 소리 내어 말했다. 하진은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마지막에 “혼자 밀지 않겠습니다. 기울어진 트레이를 받쳐 주세요”라고 덧붙이자 그제야 그녀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내 신호가 있을 때만.”
재민은 방화막 밖으로 돌아가 긴 집게 두 개를 가져왔다. 하진은 셔터 사이의 작은 안전창으로 트레이를 확인했다. 배터리의 긴 면이 바닥에 닿아 있어, 옆으로 밀면 모서리가 셀을 찌를 수 있었다. 그는 손잡이에 절연 패드를 감고, 트레이 끝의 돌출부에 집게를 걸었다. 하진이 반대편에서 같은 힘으로 받쳤다. 셔터 아래 공간으로 들어온 재민의 팔에 비상등의 붉은 빛이 흔들렸다.
“셋에 밀어. 하나, 둘—”
트레이가 손바닥 한 뼘만큼 움직였다. 금속 바닥과 마찰하며 긁는 소리가 났다. 배터리 표시등이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재민은 집게를 더 밀지 않았다. 하진이 수치 변화를 확인할 동안, 그는 케이스의 부풀음이 처음보다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살폈다. 접점 쪽이 아니라 바닥 중앙이었다.
“셀 하나가 아니라 압력판이 들린 거야.” 하진이 말했다. “밀지 말고 차단부터 해야 해.”
그녀는 손바닥만 한 차단 레버를 원격 스틱에 걸었다. 한 번 당겼지만 걸쇠가 빠졌다. 두 번째 시도에서 레버가 절반쯤 내려가며 멈췄다. 작업대에서 금속음이 났다. 배터리는 소리 없이 팽창했다. 재민은 곧장 당기려다, 하진의 손이 스틱 위에 올라가는 걸 보고 멈췄다.
“내가 받칠게. 네가 당겨.”
이번에는 하진이 레버를 받치고 재민이 스틱을 당겼다. 걸쇠가 끝까지 내려가며 충전대의 남은 출력이 분리됐다. 비상등의 깜박임이 멎었다. 둘은 바로 다가가지 않고 온도계와 압력 표시를 지켜봤다. 셀 안의 잔류 열은 천천히 떨어졌다. 아무도 환호하지 않았다. 긴장으로 굳은 턱만 조금씩 풀렸다.
셔터를 열기 전에 하진은 외부 대기자들에게 물러나 있으라고 알렸다. 재민은 안전 고정대를 걸고, 배터리를 내열함에 옮겼다. 이번에는 케이스를 들지 않고 트레이째 옮겼다. 팔 근육이 당겼지만 손을 바꾸지 않았다. 작업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봉인 스티커를 붙이고 시간과 온도를 적었다.
성민은 사고 연락을 받고 교환소로 돌아왔다. 그는 셔터 앞에서 분노한 얼굴로 상황을 물었다. “이제 배터리 돌려줄 수 있습니까?”
“아니요.” 재민은 숨을 가다듬고 답했다. “충전대에서 압력판이 움직였습니다. 셀 내부 확인 전까지 계속 격리합니다.”
“이런 식이면 우리 장비 전부를 멈춰야 할 수도 있잖아요.”
“같은 접점과 로트인지 확인하면 범위를 좁힐 수 있습니다. 지금 확인된 건 이 배터리 하나입니다.”
성민은 재민을 한참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손해는 누가 책임집니까?”
재민은 대답하기 전에 기록지를 다시 읽었다. 결함을 특정할 자료는 아직 부족했다. “손해를 누가 부담할지 제가 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상태를 정상이라고 쓰지는 않겠습니다.”
성민의 얼굴에서 화가 잠깐 사라졌다. 그는 사고 직전 수아가 들어오려 했다는 사실을 듣고 그녀를 찾았다. 수아는 복도 끝에서 창을 안고 있었다. 성민은 가방 얘기를 꺼내려다 말았다. 대신 그녀의 창을 살피며 “손잡이 수리는 다시 하자”고 했다.
“길드가 해준다고요?”
“내가 맡길게. 접점 방식은 네가 결정하고.”
수아는 그를 바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창을 건네지는 않고, 접점이 보이도록 손잡이를 돌려 보여 주었다. “먼저 어댑터 제작자부터 찾아요. 그다음에요.”
성민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사과도 약속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제처럼 배터리를 그냥 가져가려 하지는 않았다.
하진은 사건 기록을 쓰는 동안 재민의 차단 판단을 두 번 확인했다. “왜 레버를 바로 당기지 않았지?”
“트레이가 기울어서 배터리에 충격이 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지지점을 만들고 이동량을 줄이려 했어요.”
“그 판단이 틀렸다면?”
“그때는 밖으로 물러나 셔터를 더 내렸어야 합니다. 오늘은 온도가 내려가고 있었고, 스틱으로 레버에 닿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시도했다면 위험했어요.”
하진은 그의 기록에서 “안전하게 조치함”이라는 문장을 지웠다. 대신 시도한 동작과 중단한 이유를 그대로 남기라고 했다. 재민은 그 문장을 고치며 작업대 아래 굴러간 자신의 장갑을 봤다.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엄지 끝에는 집게 손잡이에 눌린 자국이 남았다.
“아까 수아 씨가 들어오려 했을 때, 내가 먼저 막았어야 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잡아당겼잖아.” 하진이 답했다. “혼자 해결하는 게 기술자의 자격은 아니야. 다음에는 문 앞에 안내선을 먼저 치자.”
수아는 돌아가기 전에 격리함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어제 로그를 다시 보내 드릴게요. 이번엔 길드 자료도 같이 받아 보겠습니다.”
재민은 동의서가 아니라 연락처만 적었다. 그녀는 자기 창을 안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이 셔터 유리에 비쳐 사라진 뒤, 하진은 서부지점 기록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때도 비슷한 배터리가 있었어. 차단 레버를 당긴 건 나였고, 기록은 내가 남겼지.”
그녀는 서랍에서 오래된 금속 번호표를 꺼냈다. 뒷면에는 재민이 오늘 격리함에 적은 것과 같은 로트 끝자리, 08-8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