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구 배터리 교환소의 막내 기사

1화: 충전 표시가 꺼지지 않는 배터리
교환소 셔터가 올라가기도 전에 경보등이 세 번 깜박였다.
노재민은 작업대에 내려놓던 공구함을 다시 들었다. 셔터 안쪽의 초록등은 충전 완료를 뜻하는 색이었지만, 경보 패널의 황색 불은 반대로 충전대 하나가 열을 먹고 있다는 신호였다. 새벽 근무자가 퇴근하며 남긴 인수인계표에는 이상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재민은 그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고 패널의 온도 숫자를 다시 읽었다. 서른여덟 도. 충전대는 밤새 비어 있었다.
“막내, 문 열기 전에 겁부터 먹으면 오늘 하루 길다.”
뒤에서 유하진이 말했다. 선임 기사는 장갑을 끼며 경보를 해제하지 않았다. 재민이 “비어 있는데 왜 열이 오르죠?”라고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열화상 측정기를 건넸다. 충전대 세 번째 칸의 접점 주변에만 가느다란 주황색 선이 걸려 있었다. 하진은 격리 상자를 꺼내며 칸막이를 세웠다. 오늘 오전 신입 교육을 앞두고 있었지만, 먼저 원인을 확인해야 했다.
그때 셔터 밖에서 금속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이수아가 한 손으로 짧은 창을 들고 다른 손으로 배터리 케이스를 안고 있었다. 뺨에 마른 진흙이 붙어 있었고, 오른쪽 소매 끝은 검게 그을렸다. 그녀가 번호표를 집어 들기도 전에 재민은 케이스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공기를 느꼈다.
“충전은 끝났는데 표시가 안 꺼져요. 밤새 빼 두었는데도요.”
수아가 배터리를 작업대에 올리자 초록 표시등이 계속 켜져 있었다. 케이스 이음새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아래에 눌린 손톱 자국 같은 볼록함이 보였다. 재민은 습관대로 규격표를 찾다가 멈췄다. 표는 이 모델의 출력 범위만 알려 준다. 지금 필요한 건 손을 대도 되는지였다.
“고객님, 기기랑 분리한 뒤로 몇 분 정도 됐습니까?”
“한 시간쯤. 그런데 표시등은 계속 이래요. 창이 약해서 배터리부터 갈아야 한다고 길드 정비사가 그랬어요. 오늘 오후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교환할 수 있죠?”
“확인할 때까지는 충전도 방전도 하지 않겠습니다.”
수아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녀는 장비를 맡기고 돌아서려던 동작을 멈췄다. “그럼 임시 배터리를 빌릴 수 있나요? 보증금은 내도 돼요.” 재민은 지점 대여함을 바라봤다. 같은 접점의 예비품은 한 개뿐이었다. 하지만 수아의 창에 맞는지 확인하려면 케이스 뒷면의 각인과 기기 모델을 대조해야 했다. 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열이 잡히지 않은 배터리 옆에서 대여품을 맞추지 마. 먼저 분리 격리.”
재민은 밀려오는 조급함을 삼키고 상자를 열었다. 두꺼운 내열 트레이, 절연 장갑, 원격 온도계. 순서대로 작업대에 놓았다. 고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장갑을 끼자 손끝 감각이 둔해졌다. 그는 손대기 전에 수아의 기기를 물었다. 수아는 창을 손에 쥔 채, 손잡이 밑면의 잠금핀을 보여 줬다. 직접 교체한 흔적이 있었다.
“접점은 제가 바꿨어요. 원래 배터리가 흔들려서 길드에서 쓰다 남은 어댑터를 달았죠. 전기 접점이라기보다 마력 흐름만 맞추면 된다고 해서.”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죠?”
“길드 정비사요. 이름은 몰라요. 작업장은 출입증 없으면 못 들어가고, 급해서 부탁했어요.”
수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재민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손잡이의 잠금핀에 새 흠집이 있고, 어댑터 테두리에는 검은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는 그 가루를 면봉에 옮겨 봉투에 넣었다. 지문처럼 생긴 푸른 얼룩이 면봉 끝에서 번졌다.
배터리를 트레이 위에 놓는 일은 하진이 지시했다. 재민은 케이스의 두 측면 홈에 절연 집게를 걸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표시는 여전히 초록이었다. 열화상 측정기 숫자는 사십일 도에서 멈추지 않고 사십이 도를 향했다. 셀 안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왔고, 그 진동은 금속 트레이를 타고 그의 손목까지 전해졌다.
“차단 레버부터.” 하진이 말했다.
“충전대 연결은 해제돼 있습니다.”
“배터리 내부 방전이 이어질 수도 있어. 작업대 메인 차단. 그리고 고객에게 지금 상태를 설명해.”
재민은 벽의 레버로 가려다가 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작업장을 통째로 끄면 뒤쪽 대여함 잠금장치도 열린다. 기다리던 헌터 둘이 셔터 앞에서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민은 그들을 향해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외쳤다. 그러고 나서 벽의 차단 레버를 당겼다. 한순간 조명이 꺼지고 비상등만 남았다. 충전대의 표시등도 어둠 속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배터리가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안쪽에 저장된 마력이 남아 있을 수 있어요. 반환할 수 없고, 오늘은 장비도 빌려드리지 못합니다. 대신 점검이 끝날 때까지 대여 대기 순번을 앞당기겠습니다.”
수아의 입술이 굳었다. “내가 개조해서 그런 거라고 기록하실 건가요?”
“아직 원인을 모릅니다. 개조한 시점과 증상은 적지만, 책임이라고 적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에 수아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그래도 그녀는 창을 놓지 않았다. “길드에 전화해야겠네요. 제가 비용을 내야 하면 오늘 일당으로는 부족해요.”
재민은 기록지에 고객 동의 여부를 적으려다가 펜을 멈췄다. 먼저 배터리 온도를 확인해야 했다. 그는 원격 온도계의 화면을 수아에게도 보였다. 숫자는 사십이 도에서 사십삼 도로 올랐다. 하진이 작업장 문을 잠그고 위험 표지를 붙였다. 손이 빠르고 단호했지만, 재민은 그녀가 차단 전 배터리를 스치듯 확인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하진의 눈이 표면의 특정한 작은 점에서 멈췄다가 금방 떨어졌다.
“이 상태로 보관하면 괜찮습니까?” 수아가 물었다.
“내열 격리함으로 옮기고 온도 변화를 계속 보겠습니다.” 하진이 답했다. “하지만 오늘 안에 돌려드릴 약속은 못 합니다.”
수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길드에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네 번 울린 뒤 상대가 받았다. 그녀는 자기 배터리를 가져왔으며 교환소에서 격리했다고 말했다. 상대편의 목소리는 멀리서도 들릴 만큼 컸다. “그 모델은 정상이다. 장비 로그 초기화하고 그냥 가져와.” 수아의 손이 휴대전화 테두리를 하얗게 눌렀다.
“초기화하면 과열 기록이 사라져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네 개조 때문이라고 적힐 텐데. 선택해.”
통화가 끊겼다. 수아는 한참 화면을 보고 있다가 재민에게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까 말한 로그, 제가 보여드릴게요. 길드가 아니라 제 창에 저장돼 있어요.”
재민은 기기를 받지 않고 작업대 옆 받침대에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배터리 데이터에 손을 대지 않도록, 원본은 수아의 기기 안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화면에는 지난 열흘간의 충전 그래프가 떠 있었다. 충전이 끝난 뒤에도 출력이 짧게 되살아나는 구간이 매번 같은 간격으로 반복됐다. 과충전이라면 충전기와 분리된 뒤에 멈춰야 한다. 재민은 그래프를 확대했고, 짧은 봉우리의 간격이 창을 휘두른 직후의 시간과 맞물리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번에 창이 갑자기 멈춘 적 있습니까?”
수아는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손에 든 창을 내려다보며 손잡이의 가죽끈을 풀었다. 안쪽에 감긴 얇은 동선은 정비소에서 달아 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직접 감은 흔적이었다. 매듭은 손가락이 닿는 곳에서 두 번 꼬여 있었고, 끝은 칼로 잘려 있었다.
“지난주 폐역 게이트에서 한 번요. 찌르는 순간 창끝이 꺼졌어요. 저는 배터리가 헐거워서 그런 줄 알고 끈을 조였죠. 그 다음부터는 안 흔들렸어요.”
“그때 바로 충전했나요?”
“아니요. 귀환해서 씻고 난 다음에요. 창이 꺼진 게 무서워서 밤새 꽂아 뒀어요.”
수아는 길드가 마련해 준 정비소를 두 번 찾아갔지만, 한 번은 문이 닫혀 있었고 한 번은 대기 명단이 길었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작업대에서 쓰는 동선과 절연테이프를 사서 직접 고쳤다. 창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재민은 그 말에서 변명보다 혼자 버텨야 했던 며칠을 들었다. 수아가 잘못한 부분은 분명 있었지만,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저희 기록에는 사실대로 남길게요. 폐역에서 출력이 끊긴 시점, 자가 수리, 충전 시간. 셋을 분리해서요. 본인 동의 없이 길드에 넘기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이걸 고쳐 주실 수 있나요?”
“원인을 확인한 뒤에요. 지금은 고친다고 약속할 수 없습니다.”
수아는 한숨을 내쉬며 창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방금 전까지 끈을 놓지 않던 손이 조금 떨렸다. 재민은 그 떨림을 보았지만 위로하려고 성급하게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의자를 꺼내고 물컵을 밀어 두었다. 수아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자신이 가진 수리 영수증을 찾아 화면에 띄웠다. 영수증에는 절연테이프와 동선만 있었고 어댑터는 없었다. 어댑터를 준 사람이 길드 정비사라는 말은 그 영수증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무기에서 배터리로 역류가 생겼을 수도 있겠어요. 충격이나 어댑터 문제일 수도 있고요.”
“그러면 제 개조가 원인이에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본 건 창을 쓴 뒤 출력이 되살아났다는 점뿐이에요. 다음에는 무기 로그와 접점 표면을 함께 봐야 해요.”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단정하지 않은 건 맞아. 이제 안전 조치 기록에 온도 상승과 표시 지속을 따로 적어. 제조 로트 번호도.”
재민은 케이스 옆면의 작은 인쇄를 읽었다. M-17 / 08-3. 로트 스티커는 반쯤 긁혀 있었고 숫자 끝에는 은색 잉크가 덧칠돼 있었다. 그는 사진을 찍으려다 플래시가 터지기 전에 설정을 껐다. 격리함에 옮긴 뒤에도 온도계는 천천히 상승했다. 하진은 작업장을 다시 열지 않았다. 기다리던 헌터들은 불평하며 돌아갔고, 대여 대기표에는 재민이 지운 줄과 다시 적은 줄이 겹쳤다.
오후 교대 직전, 공급업체 기사 배기철이 도착했다. 그는 회수 상자를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이 로트는 반품이 없었는데.”
“로트 스티커를 누가 긁은 건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재민이 말했다.
기철은 장갑 낀 손으로 케이스를 가리켰다. “그 스티커는 원래 저렇게 붙지 않아. 매장 회수품이면 회색 봉인이 남아야 해.” 그는 격리함 안을 더 들여다보려다가 하진에게 제지당했다. 그때 재민의 기록 단말이 짧게 울렸다. 배터리에서 자동으로 보낸 열화 로그가 하나 더 도착했다. 제조 번호 끝자리와 로트 번호가 달랐다.
같은 케이스에 두 개의 번호가 붙어 있었다. 수아가 돌아서기 전 남긴 어댑터 봉투에서는 푸른 가루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재민은 기록지의 원인란을 비워 두었다. 대신 격리함 번호, 현재 온도, 두 개의 일련번호를 세 번 확인해 적었다. 그리고 작업장 문을 닫기 직전, 꺼졌어야 할 배터리의 표시등이 안쪽에서 다시 초록으로 켜지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