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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밤, 기사님이 내 판결문을 훔쳤다3화

월식 밤, 기사님이 내 판결문을 훔쳤다

월식 밤, 기사님이 내 판결문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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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월식의 증언

예배당의 문이 잠겼다. 월식이 시작되자 달빛이 창문에서 지워지고, 제단의 오래된 판결문이 검은 그림자에 잠겼다. 죄수의 손목에 채워진 족쇄가 다시 조여 들었다.

“판결의 효력이 돌아왔습니다.” 왕녀 나린이 말했다. “집행관이 여기로 올 거예요.”

솔레아는 원본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전하의 인장을 보여 주세요.”

“잃어버렸어.”

“언제요?”

“오늘 오후. 서기관장 오든이 명령서를 가져왔을 때.”

“그가 전하를 격리했습니까?”

“회의를 빙자해 탑으로 데려갔지. 이반이 문을 열어 줘서 빠져나왔어.”

이반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더 일찍 왕녀님을 찾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판결문은 이미 태워졌겠지.” 나린은 죄수를 봤다. “그는 창고를 털었지만 반역을 모의하지 않았어. 내 명령으로 식량 배급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했지.”

“왜 판결문에 반역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솔레아가 물었다.

“내가 공개 석상에서 왕실 창고를 비판할 수 없게 만들려고.”

“그렇다면 전하의 서명은 조작됐나요?”

나린은 잠시 망설였다. “서명은 내가 했어. 오든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혐의를 잠정 추가한다고 설명했지. 나는 그 문장이 집행까지 이어질 줄 몰랐어.”

죄수가 웃었다. “왕녀도 몰랐다고요?”

“몰랐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솔레아는 왕녀의 고백을 원본 옆에 적었다. “이 증언은 공개 기록에 들어갑니다.”

“알고 있어.”

“왕실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나린은 맨손을 내려다봤다. “죄수가 살아서 자기 죄를 인정할 기회. 판결이 증거를 넘어 명령에 복종하는 도구가 되면, 다음엔 누구도 살아서 말하지 못해.”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집행관이 도착한 것이다. 이반은 방패를 들었지만, 솔레아는 그 앞을 막았다.

“이반, 문을 지키되 공격하지 마세요.”

“그들이 강제로 들어오면요?”

“기록을 보여 주고, 증언을 받게 해야 해요.”

“그들은 듣지 않을 겁니다.”

“그럼 모두가 듣도록 해야죠.”

솔레아는 제단의 은잔에 달빛 잉크를 떨어뜨렸다. 잉크는 종이 아래의 압흔을 비추고, 문장들이 예배당 벽에 그림자처럼 떠올랐다. 거기에 오든 서기관장의 수정 지시, 왕녀가 읽지 못한 부칙, 그리고 죄수의 원래 형량이 드러났다. 사형이 아니라 겨울 창고 절도에 대한 노동형이었다.

잉크가 번지면서 솔레아의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흐려졌다. 그녀는 그 소리를 붙들려 했지만, 기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이반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만 쓰세요. 당신 기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벽에 비춰야 증언이 보여요.”

“제가 읽겠습니다. 당신은 멈춰요.”

그는 문서의 그림자를 읽어 밖의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지 않았다. 솔레아는 잉크 병을 닫고, 남아 있는 기억을 지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반의 손이 그녀 손을 놓지 않았다.

“네가 알고 있는 문장을 그대로 읽어.” 나린이 죄수에게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왕실 창고에서 밀가루와 말린 콩을 가져갔습니다. 배급이 끊긴 노동자들에게 나눴습니다. 그 행동은 제 책임입니다. 왕녀님을 폐위시키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문이 열렸다. 집행관과 병사들이 들어왔지만, 그들 뒤로 왕실 서기관들과 기록관들이 따라왔다. 벽에 떠오른 문장을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오든 서기관장은 마지막에 나타났다. 그의 장갑에는 새 잉크가 번져 있었다.

“이건 월식 중에 효력이 없는 기록입니다.” 그가 말했다.

솔레아는 제단의 종을 울렸다. “월식 중에는 기존 판결이 효력을 멈추고 왕실이 재심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왕녀가 여기 있습니다. 증언도 있고, 원본도 있습니다.”

“전하의 인장이 없지 않습니까?”

“내 증언이 있어.” 나린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내 서명을 빌려 이 부칙을 숨긴 사실을 인정한다. 그 책임은 내게 있다.”

오든은 손목을 뒤로 감췄다. “원본은 위조일 수 있습니다.”

이반은 방패를 내리고 원본을 솔레아에게 건넸다. “이 문서는 훔친 게 아니라, 보존하기 위해 제가 가져왔습니다. 재판을 받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았다. 집행관은 그를 체포하려 했지만, 기록관들이 길을 막았다. 그들은 이중 봉인을 요구했다. 원본은 왕녀와 기록관이, 사본은 죄수와 서기관이 각각 보관하기로 했다.

“이 절차는 관례에 없습니다.” 오든이 말했다.

“관례는 월식 판결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솔레아가 답했다. “그렇다면 검증 절차도 바뀔 수 있죠.”

나린은 왕녀의 인장을 빼앗긴 손을 들어 보였다. “오늘 밤 재심을 명한다. 절도죄는 별도 심리하고, 반역 혐의는 증거가 없는 한 집행하지 않는다.”

집행관은 잠시 머뭇거리다 죄수의 족쇄를 풀었다. 자유를 얻은 남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감옥으로 돌아가 공개 재판을 받겠다고 했다. 동생을 만나고 싶지만, 이번엔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겠다고.

예배당 문이 열리자 젊은 여자가 군중을 헤치고 달려왔다. 그녀는 죄수 앞에서 멈춰 섰다. “오빠, 정말 레안이야?”

“내 이름은 레안이야.”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훔친 건 사실이야. 너를 굶기지 않으려 했다고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여자는 그의 손목에 남은 족쇄 자국을 만졌다가 손을 거뒀다. “그럼 나는 네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증언할게. 네가 창고를 털던 밤, 우리 집에 밀가루를 놓고 갔어. 그런데 네가 반역을 모의했다고 쓰여 있었지.”

레안은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지 않았다. “네가 원하면.”

“지금은 그냥 여기 있어 줘.”

그는 한 걸음 옆에 섰다. 그 거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솔레아는 그 모습을 기록하되, 왕실 기록부에는 넣지 않았다. 그건 법정의 증거가 아니라 남매가 서로에게 건넨 선택이었다.

나린은 여동생에게도 공개 증언을 요청하지 않았다. “원한다면 내일 재판에 나올 수 있어. 네가 거절해도 누구도 너를 비난하지 않을 거야.”

“저는 말할게요. 오빠가 훔친 건 식량이고, 반역을 위해 훔친 게 아니라는 걸 직접 말하고 싶어요.”

이반은 그 말을 듣고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레안에게 다가갔지만, 이번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네가 원하면 호송하겠다.”

“같이 가 줘. 하지만 형으로서가 아니라 증인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반의 얼굴에 오래 묵은 긴장이 풀렸다. 그는 전우의 동생을 대신해 결정하지 않았다. 그게 지난번 실패와 다른 선택이었다. 솔레아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도 증언해야 합니다. 원본을 훔친 이유, 왕녀가 격리된 사실, 죄수의 혐의를 들은 경위까지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믿으려면 돌아와야 해요.”

“돌아오겠습니다.”

이반은 그를 호송하기 위해 나섰다. 솔레아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판결문을 훔친 일은 용서하지 않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키려던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직은요. 돌아와서 조사에 답하세요.”

그는 웃음기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겠습니다.”

월식이 끝나고 달이 다시 나타났다. 솔레아는 잉크 병을 닫았다.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녀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의 문장을 기억했다. ‘기록은 사람을 대신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말한 것을 남겨 둔다.’

나린은 이중 봉인의 첫 서명자로 이름을 적었다. 이반은 왕녀의 호위로 돌아가지 않고, 공개 재판의 증인석에 설 준비를 했다. 죄수는 감옥으로 향하며 솔레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 이름은 레안입니다. 제 죄도 이름도 기록해 주세요.”

“그대로 쓰겠습니다.”

사람들이 흩어진 뒤 솔레아는 원본을 보관함에 넣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낡은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자기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그 압흔을 더듬었다. 그 옆에는 아직 읽히지 않는 한 줄이 이어졌다.

‘첫 이중 봉인의 제안자, 솔레아의 어머니.’

그녀는 그 페이지를 넘기려 했지만, 종이 뒷면에 얇은 봉투가 붙어 있었다. 봉투는 비어 있어야 했다. 안에는 작은 황동 열쇠와 어머니의 짧은 쪽지가 남아 있었다. ‘원본은 달이 보이지 않는 보관실에 있다. 누구도 혼자 열지 말 것.’

솔레아는 열쇠를 움켜쥐었다. 어머니는 기록을 지키려다 궁정을 떠났지만, 기록을 숨겨 두진 않았다. 그녀는 이반이 돌아오면 열쇠의 위치를 보여 주기로 했다. 단, 이번엔 그에게 맡기지 않고 둘이 함께 확인할 것이다.

나린은 그녀가 봉투를 감추는 걸 보고 물었다. “이반을 믿나?”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같이 열겠다고?”

“그를 믿는 일과 증거를 공유하는 일은 같지 않아요. 혼자 갖고 있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왕녀는 그 대답을 듣고 열쇠의 절반을 보관함에 넣었다. “좋아. 다음엔 내 서명도 빌리지 말고 직접 요구해.”

솔레아는 열쇠를 목에 걸었다. “그러면 전하도 다음 증언에서 직접 서명해 주세요.”

“그럴게.”

이반이 복도 끝에서 돌아봤다. 그는 손목에 새로 난 쇠사슬 자국을 감추지 않았다. 솔레아는 그에게도 증언서를 내밀었다. 그의 이름은 이번에는 누구도 바꿔 쓰지 않았다.

예배당 바깥에서 아침 종이 울렸다. 월식의 밤은 끝났지만, 새 판결은 공개 재판이 열릴 때까지 보류됐다. 솔레아는 원본과 열쇠를 각각 다른 봉투에 넣고, 왕녀와 기록관, 레안의 여동생에게 봉인 하나씩 건넸다. 누구 하나가 사라져도 모든 증거가 함께 사라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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