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라디오에서 자장가가 온다

2화: 목소리가 없는 사연
송신실 문을 연 뒤에도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에는 방음재가 뜯겨 있었고, 바닥에는 녹슨 마이크 스탠드가 누워 있었다. 기준은 전원 케이블을 확인했다. 전원은 끊겨 있었지만, 벽 속의 낡은 회선 하나가 현재 방송국의 전화선에 연결돼 있었다. 선은 어느 번호에도 등록되지 않았다.
해리는 녹음 파일의 음성을 따로 분리했다. 아이는 “이번엔 제가 신청한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지만, 발신 번호는 매주 같은 공중전화였다. 수아는 실종 가족에게 직접 연락해 각자 신청곡을 보낸 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한 가족은 연락을 원치 않았고, 수아는 그 의사를 존중해 더 묻지 않았다. 다른 집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연만으로 한 사람을 찾을 순 없어요.” 수아가 말했다.
“찾겠다고 방송하지 않을게요. 일단 안전한 연락처를 확인하죠.”
기준은 공중전화가 있던 주소를 지도에서 찾았다. 그곳에는 오래된 어린이 보호시설이 있었고, 지금은 철거된 상태였다. 시설은 15년 전 폐쇄됐지만, 라디오 송신실이 문을 닫은 시기와 겹쳤다. 해리는 자기 어린 시절 기록이 그 시설 근처에서 끊겼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수아에게 가족 기록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아는 개인 기록에 접근하려면 해리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리는 동의서에 서명하고, 자기 이름으로 조회를 요청했다. 기록실에서 받은 서류에는 보호자 이름만 남아 있었고, 주소와 학교 기록은 빠져 있었다. 누군가 해리를 시설에서 데려왔지만, 이동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때 공중전화의 위치에서 또 전화가 걸려 왔다. 기준은 발신자를 추적하려 했지만, 선은 송신실의 낡은 회선으로 돌아왔다. 해리는 전화기를 들지 않았다. 수아가 대신 녹음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노래가 흘렀고, 끝에 세 번 노크가 들렸다. 이번에는 한 번의 노크가 더해졌다.
기준은 녹음의 배경 잡음에서 기차 안내 방송을 찾아냈다. 공중전화가 있던 자리는 예전 어린이 보호시설이 아니라, 그 시설 앞의 버스 정류장이었다. 안내 방송은 폐선된 노선 번호를 말하고 있었다. 현재 정류장과는 2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오래된 전화선을 통해 송신하고 있을 수 있었다.
수아는 경찰에 위치를 전달했지만, 즉시 출동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실종 아동이 실제로 그곳에 있다는 확인이 없었다. 해리는 밤 방송에서 자장가를 내보내 아이에게 신호를 보내자는 제안을 했다. 수아는 아이가 듣고 있다면 다시 위험해질 수 있다고 반대했다. 기준도 송신실 회선이 조작되면 방송국 전체의 주파수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해리는 생방송에서 노래를 틀지 않는 대신, 가사를 읽지 않고 박자만 손가락으로 두드리기로 했다. 개인 정보와 멜로디를 내보내지 않으면서 신청자가 듣고 있다면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수아는 경찰과 보호자에게 계획을 알리고 안전 확인을 요청했다. 해리는 스튜디오 마이크를 열었다.
그녀가 책상 위를 세 번 두드리자, 송신실 쪽에서 같은 리듬이 돌아왔다. 방송 파형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기준의 헤드폰에서는 진동으로 느껴졌다. 송신실로 달려가 문을 열자 마이크 스탠드가 바닥에서 세 번 움직였다. 그 아래에는 작은 카세트테이프가 놓여 있었다.
테이프의 라벨에는 ‘민지, 집에 가는 노래’라고 적혀 있었다. 해리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이는 노래를 부른 뒤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불을 세 번 켜면, 창문을 열지 말고 현관으로 와요”라고 했다.
수아는 경찰에 그 말을 전달했다. 보호자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해리는 민지가 실종 신고 명단에 있는 아이인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수아가 조회를 마치기 전에 새 신청곡이 들어왔다. 이름란에는 ‘윤해리’라고 적혀 있었다.
신청곡은 자장가가 아니었다. 해리의 어린 시절 웃음소리였다.
수아는 민지의 사연을 확인하기 위해 보호자 연락처를 찾았다. 전화번호는 해지됐고, 주소는 이미 철거된 시설로 등록돼 있었다. 신고 기록에는 아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수아는 아이가 안전한지 확인하기 전에는 어떤 정보도 방송하지 않겠다고 했다. 해리는 그 원칙을 지지했다.
기준은 공중전화 발신 기록을 통신사에 요청했다. 공식 수사 협조가 없으면 받을 수 없는 자료였다. 경찰은 실종 사건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요청을 보류했다. 수아는 보호자 동의와 사건 번호를 다시 제출했다. 기다리는 동안 해리는 낡은 테이프를 들으며 자장가의 박자 사이에 숨소리가 몇 번 들어가는지 세었다. 한 번, 세 번, 두 번. 그 리듬은 어린이 놀이에서 길을 찾을 때 쓰던 암호였다.
해리는 그 암호를 어머니에게 전화로 물었다. 어머니는 바로 답하지 않고, 해리에게 왜 그 노래를 찾는지 물었다. 해리는 한 아이가 같은 멜로디를 신청한다고만 말했다. 어머니는 그때 자신이 보호시설에 아이들을 데려다 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해리가 그곳에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녀는 해리를 데리고 나온 날만 기억했다.
“그 아이가 민지라면, 내가 직접 만나도 될까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건 민지가 원해야 해요.”
해리는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는 끊겼다. 기준은 통화가 끝난 뒤 해리에게 오늘 밤 방송은 조용히 마치자고 했다. 해리는 신청곡을 틀지 않고, 청취자에게 익명 사연의 안전 확인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그 순간 송신실의 낡은 회선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엔 아이 목소리가 아니라 어른의 목소리였다. “해리 씨, 그 노래는 당신이 부르면 안 돼요.”
해리는 발신자를 묻지 않았다. 수아는 통화를 녹음하고, 기준은 회선을 차단했다. 음성은 수십 년 전 방송국 직원의 기록과 비슷했지만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송신실 문을 열고 지하 배선으로 내려갔다. 케이블은 오래된 보호시설 방향으로 이어졌고, 벽에는 아이 키 높이로 작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해리는 벽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손자국을 촬영하고 위치를 기록했다. 그때 배선 틈에서 작은 테이프가 떨어졌다. 라벨에는 ‘민지의 귀가’라고 적혀 있었다.
수아는 경찰과 협의해 철거된 시설의 지하 통로를 조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해리와 기준은 동행자로 들어가되, 아이의 위치를 독립적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 통로는 낡은 보일러실에서 시작해 옛 보호시설의 대피구로 이어졌다. 벽에는 아이들이 키를 재던 연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기준은 케이블의 낡은 절연체를 잘라내며 바닥의 먼지를 털었다. 통로 안쪽에서 전기가 흐르는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 테이프의 소리는 내부에서 재생된 것처럼 벽에 반사됐다. 그들은 스피커가 아니라 소형 휴대용 녹음기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을 찾았다.
수아는 아이 보호 시설의 이전 기록을 확인했다. 민지라는 이름은 여러 명이 사용했으므로, 이름만으로 위치를 확정하지 않았다. 생일, 보호자 동의, 최근 학교 기록을 대조해야 했다. 해리는 그 절차가 길어지는 것을 답답해했지만, 아이가 잘못된 보호자에게 돌아가는 위험을 생각하고 기다렸다.
방송국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해리의 어린 시절 웃음과 같은 목소리가 “너도 그때 여기 있었어”라고 말했다. 해리는 전화에 대답하지 않았다. 기준은 통화를 녹음하고, 수아는 발신 주소를 경찰에 전달했다.
주소는 철거된 시설의 우편함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지금도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수아는 우편물을 열지 않고, 경찰이 확인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안에서 어린아이의 그림 한 장이 발견됐다. 그림에는 라디오와 세 개의 점, 그리고 ‘집에 가도 돼?’라는 글이 있었다.
해리는 그림을 사진으로만 남겼다. 원본은 아이의 기록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민지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녀는 이름을 방송하지 말아 달라고 했고, 자장가를 누가 불렀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해리는 위치를 묻지 않고, 아이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상담사를 통해 대화를 이어 가기로 했다.
수아는 민지의 말만으로 신원을 확정하지 않았다. 등록된 연락처와 보호자 확인을 별도로 진행했다. 민지는 현재 안전한 곳에 있었지만, 집으로 바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그녀가 원하는 사람과 먼저 통화할 수 있도록 연결했다.
기준은 송신실 회선의 원래 주소를 확인했다. 시설 우편함으로 이어진 선은 보호시설이 폐쇄된 뒤에도 해지되지 않았다. 누군가 비용을 내고 회선을 유지한 것이다. 납부자 이름은 오래된 시설 직원의 이름이었다.
수아는 민지의 보호자에게서 대면 상담 동의를 받았다. 아이가 원할 때만 만날 수 있고, 방송국 직원은 상담에 참석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해리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아이를 만나는 일이 자신의 기억을 확인하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됐다.
기준은 오래된 송신실의 접속 기록을 다시 복사했다. 기록에는 시설 직원 한 명이 폐쇄 후에도 장비를 유지한 흔적이 있었다.
아이에게는 상담 연락처만 남겼다. 민지가 원하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수아는 상담 일정을 민지와 보호자에게 각각 확인했다.
해리는 면담을 녹음하지 않고 기록은 수아에게 맡겼다.
그들은 동의한 날짜만 기록했다.
수아는 이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