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창객잔의 주인 대리

1화: 이름 새긴 화살
연화창객잔의 안쪽 기둥에 화살이 박힌 건 손님이 들어오기 전이었다. 진연화는 장작을 들고 지나가다 창대에 금속이 긁히는 소리를 들었다. 화살은 연꽃 문양 한가운데 꽂혀 있었다. 그 아래로 새긴 글자가 보였다.
공서진.
무림맹 임시 서기는 아직 객잔에 도착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먼저 박힌 셈이었다.
“뽑을까요?” 식객을 가장한 호위가 물었다.
“기둥을 부수지 않는다면요.”
연화는 화살을 만지지 않았다. 깃털은 젖어 있었지만 날에는 피가 묻지 않았다. 누군가 이곳에 경고만 남기고 간 것인지, 이름을 새기기 위해 일부러 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연화는 창을 기둥 옆에 세워 두고 홀을 둘러봤다. 객잔 안에는 상단 사람 넷, 문파 무인 셋, 약초상 서화진이 있었다. 모두 화살을 봤지만, 누구도 서진의 이름을 읽지 않은 척했다.
“오늘 회의는 정상적으로 열립니다.” 연화가 말했다. “객잔 안에서는 칼을 식탁에 올리지 않기로 약조하셨죠.”
“회의를 취소하면 기둥의 이름은 지워지겠소?” 한 무인이 물었다.
“그건 모릅니다. 하지만 식사값은 취소하지 않습니다.”
화진이 콧소리를 냈다. “그게 주인 대리의 제일 중요한 약조인가 보네.”
“밥을 먹고 나면 싸우더라도 배는 채우고 싸우셔야죠.”
문밖에서 말발굽이 멈췄다. 서진은 작은 가방을 안고 들어왔다. 그의 어깨에는 비에 젖은 문서가 붙어 있었고, 오른손 엄지에 먹물이 묻어 있었다.
연화는 화살을 가리켰다. “당신 이름이에요.”
서진은 기둥을 바라보며 한 발 물러났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누군가 먼저 왔겠죠.”
“이름을 아세요?”
“제 이름이니까요.”
“그런데 놀라지 않네요.”
“놀랐습니다. 다만 여기서 놀라는 표정을 보이면, 누가 제가 겁먹었다고 기록할 겁니다.”
연화는 그가 문서 가방을 몸에 바짝 붙이는 걸 봤다. “장부가 그 안에 있나요?”
“회의 장부는 회의실에 보관할 겁니다.”
“아직 회의실에 안 들어갔어요.”
서진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객잔 안쪽의 작은 방을 살폈다. 연화는 그의 시선이 기둥 바닥과 오래된 서랍을 오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쓰던 방은 손님에게 내줬어요.” 그녀가 말했다.
“주인 진백로는 어디 있습니까?”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장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그랬죠?”
“회의를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준비했는데요?”
“제가 문서를 들고 온 이유가 그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장부보다 이 화살이 먼저 문제군요.”
연화는 화살을 살펴보기 위해 창을 들었다. 창대 끝으로 화살대의 금속 고리를 건드렸다. 고리는 기둥을 파고들지 않았다. 반대로 살짝 걸려 있었다. 그녀는 창을 천천히 돌려 화살대를 비틀었다. 활촉이 나무에서 빠지며 얇은 종이 조각이 함께 나왔다.
“이름만 새긴 게 아니었어요.”
서진이 다가오려 하자 연화는 창대를 가로막았다. “손대지 마세요.”
종이 조각에는 통행패의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산길 두 갈래와 수로 하나, 세 방향에 각기 다른 문파 표식이 찍혀 있었다. 맨 아래에는 서진의 이름이 거꾸로 적혀 있었다.
“이건 회의 안건이 아닙니다.” 서진이 말했다.
“그럼 뭔가요?”
“모릅니다.”
“그 말은 신뢰를 얻지 못해요.”
“저도 신뢰를 얻으러 온 게 아닙니다.”
화진이 손을 들었다. “회의에선 산길 통행패를 폐지한다더니, 여기 그 도안이 있네. 누가 이걸 결정했어?”
서진은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상단이 우리 길에 통행세를 받으려 하지?”
상단 대표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약초상은 안건을 잘못 들었소. 통행패를 정리해 운송을 안전하게 하자는 거요.”
“안전하게 누구 배를 채우려고?”
연화는 식탁 사이에 창대를 가로놓았다. “오늘은 세 그릇 약조로 말하세요. 손님, 산촌 주민, 회의 서기 순으로 각자 한 번씩 발언합니다. 서로 끼어들면 회의는 중단하고 밥을 다시 내겠습니다.”
“객잔 주인이 회의를 멈춘다고?”
“주인 대리예요. 객잔을 운영할 권한은 있어요.”
서진은 가방을 열어 회의 장부를 꺼냈다. “세 그릇 약조를 수락하겠습니다. 하지만 장부는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연화가 그의 손을 보았다. “아직 회의실에 보관한다고 했잖아요.”
“이게 장부입니다.”
“그럼 왜 아까 있다고 말하지 않았죠?”
서진은 장부를 탁자 위에 놓았다. 첫 페이지에는 회의 참석자의 이름과 서명이 적혀 있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중간에 있어야 할 산길 통행 약조가 찢겨 나간 흔적이 드러났다.
문밖에서 어린 소녀가 약초 꾸러미를 안고 들어왔다. 비에 젖은 옷에서 흙탕물이 떨어졌다. “할머니가 오늘 길을 못 넘으면 약을 못 팔아요. 통행패가 없어지면 다음 겨울엔 산 아래로 못 내려온대요.”
상단 대표가 소녀를 막았다. “회의 중이니 밖에서 기다려라.”
연화는 창대를 들었다. “아이를 손님으로 받았어요. 문밖으로 밀어내지 마세요.”
“무림맹 회의에 아이가 무슨 발언권이 있소?”
“세 그릇 약조는 주민의 사정을 듣기로 한 규칙입니다. 나이 제한은 없어요.”
소녀는 약초 꾸러미를 탁자에 놓았다. 한 뿌리가 부러져 즙이 흘렀다. “이걸 옮기려면 산길을 세 번 건너야 해요. 지금 통행패를 사면 한 단씩 값을 내야 하고요. 할머니는 두 단을 팔아 약값을 마련하려고 했어요.”
문파 무인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사소한 장사 얘기로 회의를 흐리지 마시오.”
연화가 창을 그의 앞에 가로놓았다. “탁자에 검을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건 창이지 않소?”
“주방 도구입니다. 오늘은 고기 굽는 꼬챙이도 할 수 있어요.”
소녀는 웃지 않았다. “웃기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연화는 창을 바닥에 눕혔다. “맞아요. 미안해요. 네가 한 말을 회의록에 적을게.”
서진이 펜을 들었지만, 손이 잠깐 멈췄다. “이름을 적어도 되겠니?”
“장미분이에요. 할머니는 서화진 어르신이고요. 제 이름도 적어 주세요.”
화진은 소녀의 꾸러미를 들었다. “네가 직접 말한 게 잘했어. 이제 어른들끼리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는 동안 약초가 상해요. 저는 돌아갈게요. 다만 오늘 회의에서 무슨 길을 닫았는지 나중에 알려 주세요.”
연화가 문을 열어 주었다. 소녀는 작은 꾸러미를 다시 안고 골목을 내려갔다. 객잔 안에 남은 어른들은 이전처럼 서둘러 말을 잇지 못했다. 연화는 상단 대표의 찻잔을 채웠다. “지금 들은 건 안건의 일부예요. 답은 아직 못 들었죠.”
화진이 자리를 밀었다. “내가 들은 건 거짓말이 아니었네.”
서진은 문서 모서리를 손으로 덮었다. “이 장부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제 책임입니다.”
“그럼 사라진 페이지는요?”
“찾아야 합니다.”
“그 페이지가 없으면 회의도 안 열려요.” 연화가 말했다. “지금부터 장부를 객잔 방에 두고, 문은 제가 지킵니다.”
“주인 대리가 무림맹의 장부를 맡을 이유가 있습니까?”
“화살이 제 기둥에 박혔고, 여기서 장부가 사라졌어요. 이유는 충분해요.”
상단 대표가 웃었다. “객잔 주인이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중립은 모두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게 아니에요. 기둥을 쏜 사람에게 문을 닫을 수도 있죠.”
그녀는 창을 들어 출입문과 계단 사이의 거리를 쟀다. 만약 누군가 객잔을 떠나려 하면 두 걸음 안에 길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이미 안쪽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려는 화진을 연화가 막았다.
“그 사람을 감시하는 건 제 일이야.”
“그 장부에 우리 길이 걸렸어.”
“그래서 먼저 말해 줬잖아요.”
연화가 방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장부는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 서진은 없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종이 조각이 놓여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연화는 창대 끝으로 장부를 끌어당겼다. 표지 밑에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회의가 끝나기 전에 기둥을 열지 마라.’
그 순간 바깥에서 창문이 깨졌다.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와 장부 바로 옆에 꽂혔다. 이번에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연꽃 문양 가운데 숫자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세.
연화는 창문 밖을 보았다. 언덕 위에 서 있던 사내가 활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무림맹 문양이 아니라 산촌 통행패의 붉은 끈이 매여 있었다.
연화는 창을 들고 창문까지 달려가려다 멈췄다. 객잔 안에는 아직 칼을 든 손님이 셋이었다. 누군가가 뒤쫓으면 나머지 손님들이 서로를 의심할 터였다. 그녀는 창대를 창틀에 걸어 깨진 유리 조각이 떨어지지 않게 받쳤다.
“서진 씨, 장부를 잠가요. 화진 어르신은 손님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부탁해요.”
“당신은요?”
“제가 쫓으면 이 객잔을 비우게 돼요. 여기서 지키겠습니다.”
화진이 화살깃에 묻은 붉은 실을 집었다. “이 매듭은 산촌 통행패를 묶는 방식이야. 무림맹이 아니라, 길을 쓰는 사람들이 쓰지.”
“그럼 누가 쐈는지 알 수 있나요?”
“이 끈만으로는 몰라. 다만 그 사람이 산길을 잘 안다는 건 알겠네.”
연화는 화살대에 새겨진 숫자 3을 다시 보았다. 세 번째 표식이 아니라, 셋 중 세 번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기둥의 이름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