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분실물 보관소의 주인들3화

분실물 보관소의 주인들

분실물 보관소의 주인들

AD
스폰서 광고

3화: 하루가 비어 있는 대장

보관고의 종이상자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한여름은 상자 번호와 봉인 상태를 기록한 뒤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접수표가 연도별로 묶여 있었고, 가장 위에 놓인 장부는 공사 전의 역무실 번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기록관리 담당자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여름은 손을 대지 않고 접수일과 인계 역을 확인했다. 사진봉투가 들어온 날의 바로 다음날부터 기록은 남아 있었다. 정작 접수일의 대장 한 장이 없었다.

“전산 이전 때 빠졌나요?” 태오가 물었다.

“그건 아직 몰라요. 여기 한 장이 없다는 것만 확인했어요.” 담당자가 답했다.

여름은 장부에 남은 번호 범위를 기록했다. 앞 페이지 끝에는 214번, 다음 페이지 처음에는 219번이 적혀 있었다. 215번부터 218번까지 네 건의 접수 기록이 빠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사진봉투일 가능성은 있었지만, 물품 내용은 장부에 적히지 않았다. 당시 절차는 발견 위치와 보관 장소만 기록했기 때문이다.

태오는 빠진 번호를 다른 역의 인계대장과 대조해 보자고 했다. 여름은 기록관리 담당자에게 범위를 추가해도 되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해당 기간에 청람역에서 다른 역으로 인계된 물품 목록을 별도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목록에는 직원 이름과 근무조가 포함돼 있었다. 여름은 직원 이름은 가리고, 이동한 접수번호와 시각만 확인할 수 있도록 요청서를 다시 썼다. 태오는 자신이 서두른 탓에 자료가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때 전날 사진봉투를 문의했던 남성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는 어머니가 직접 센터에 오겠다고 했다. 여름은 소유자가 확인되기 전에는 사진을 보여 줄 수 없으며, 본인이 방문하더라도 비공개 특징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남성은 어머니가 기억이 흐려질 때가 있어 동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름은 보호자 동행은 가능하지만, 어머니 본인의 확인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남성은 잠시 침묵한 뒤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하겠다고 했다.

“가족이라도 대신 대답할 수 없나요?” 태오가 물었다.

“본인이 물건을 맡긴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거니까요. 가족 관계와 소유권은 다른 확인이에요.”

태오는 지난달에 자신이 누군가의 우산을 돌려줄 때 보호자라는 말만 듣고 넘기려 했던 일을 떠올렸다. 이번엔 신청서에 대리 수령 권한이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항목을 추가하자고 말했다. 여름은 그 제안이 현실적인지 관리자에게 확인해 보기로 했다. 센터 기준을 바꾸는 일은 직원 둘이 즉석에서 결정할 수 없었다.

기록관리 담당자는 장부를 촬영해도 되는지 묻는 태오에게 원본의 빛바램을 고려해 스캐너 대신 페이지 받침대를 쓰라고 했다. 종이를 억지로 펴면 제본이 찢어질 수 있었다. 태오는 페이지 번호와 장부의 상태를 먼저 적고, 필요한 부분만 담당자가 촬영했다. 여름은 숫자 대조표에 원본 쪽수와 촬영본 번호를 나란히 기록했다. 서로 다른 매체가 생기면 어느 쪽이 원자료인지 헷갈릴 수 있었다.

스캔본에는 214번에서 219번으로 건너뛴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담당자는 누락된 쪽이 뒤에 잘려 나갔는지, 다른 상자에 들어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여름은 빈 페이지를 임의로 복원하지 않고, ‘기록 미확인’으로 남겼다. 태오는 처음엔 빠진 번호를 순서대로 채우고 싶어 했지만, 확인되지 않은 줄을 만들면 다음 담당자가 실제 접수 기록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여백도 기록의 일부네요.”

“모르는 부분은 모른다고 적어야 다음 사람이 이어서 확인할 수 있어요.”
점심 교대 시간, 경숙은 자료 열람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관고 앞에 왔다. 여름은 빠진 번호 네 개를 보여 주었다. 경숙은 한동안 숫자를 바라보다가 217번이 익숙하다고 말했다. 예전 임시 접수대에서는 물품을 발견한 역과 실제 인계된 역이 다르면 접수번호 뒤에 별표를 붙였다고 했다. 사진봉투가 발견된 동쪽 출구는 공사 전날 통행이 막혀, 당시 직원이 물건을 인접한 북문역 접수대로 가져갔을 수도 있었다.

“그날 경숙 씨가 인계했어요?”

“기억만으로는 모르겠어. 그때는 야간조가 세 번 바뀌었어. 내 이름이 장부에 나오더라도 내가 발견했다는 뜻은 아닐 수 있어.”

경숙은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과 추측을 분리해 메모했다. 여름은 이를 공식 기록과 섞지 않고 ‘현장 참고 메모’로 따로 보관했다. 경숙이 말한 북문역 인계대장은 다른 보관고에 있어 추가 승인이 필요했다. 기록관리 담당자는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 오후 사진봉투를 문의한 남성과 그의 어머니가 센터에 도착했다. 여성은 여름의 이름표를 보자 얼굴을 살폈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아들이 대신 설명하려 하자 여름은 먼저 어머니에게 물었다.

“사진을 잃어버리신 시기와 장소를 기억하시나요?”

여성은 십오 년쯤 전 청람역 동쪽 출구에서 아이 둘과 찍은 사진을 가방에 넣었다가 놓쳤다고 말했다. 사진 뒤에는 작은 아이의 이름을 적었지만, 그 아이는 ‘여름’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당시 둘째가 열 살이었고, 이름은 ‘여진’이었다고 했다. 남성이 며칠 전 전화에서 말한 이름은 누나 한여름이었다. 기록과 기억이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

남성은 급히 어머니의 말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는 여름이 가족사진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어머니가 이름을 잘못 기억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은 아들의 팔을 가볍게 눌러 말을 멈추게 했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진을 보게 해 달라는 뜻은 아니에요. 안에 뭐가 있는지 내가 먼저 말해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여름은 사진의 크기나 얼굴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 뒷면의 비공개 메모를 알고 있는지 확인했다. 여성은 글씨가 연필이었는지 잉크였는지, 뒷면의 어느 쪽에 적었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종이에 쓰인 이름은 말하지 못했다. 여름은 접수 기록의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사진을 보여 주기 전에 관리자에게 업무 분리를 요청했다. 자신이 사진과 연결된 사람일 가능성을 알게 된 이상, 반환 판단을 혼자 내려선 안 됐다.

담당 관리자는 여성과 별도로 면담하고, 사진의 뒷면과 접수 경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남성은 왜 여름이 물품을 직접 보여 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여름은 자신이 기록을 관리하는 직원이면서 동시에 사진 속 아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어, 독립된 직원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남성은 불편해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아요. 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어머니는 사진에 자기 가족이 나올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여름은 그 말에 당장 자신이 알고 있는 가족사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센터가 확인해야 할 문제와 자신이 어머니에게 묻고 싶은 문제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관리자에게 접수봉투를 넘기고, 인계 절차를 서명으로 남겼다.

한 시간 뒤 독립 확인 결과가 나왔다. 사진 뒷면에는 연필로 ‘여름, 열 살’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성은 글씨를 알아보았지만, 그 이름이 딸을 가리킨다고 단정하지 못했다. 사진 속 둘째 아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면 사진을 직접 봐야 했지만, 그 전에 접수 위치와 날짜가 과거 신고와 일치해야 했다. 센터에는 당시 분실 신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여성은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 확인만으로 반환할 수는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녀는 얼굴을 굳히지 않고 말했다.

“그럼 더 확인해 주세요. 오래 기다릴 수 있어요.”

여름은 반환을 보류하고, 사진봉투의 보관 상태와 문의자 연락처를 기록했다. 여성에게 다음 연락을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료 확인에 필요한 시간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연락 가능한 날짜와 별도 문의 창구를 안내했다. 여성이 나간 뒤 남성은 여름에게 가족사진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자신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했다. 여름은 센터의 조사와 사적인 연락을 분리해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퇴근 무렵 추가 승인 요청이 처리됐다. 북문역 인계대장에는 217번이 적혀 있었고, 발견 위치는 ‘동쪽 통로 임시 접수대’로 기록돼 있었다. 물품 종류는 ‘봉투 1’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인계받은 직원의 서명은 경숙의 것이 아니었다. 접수 날짜도 사진봉투의 날짜와 같았다. 사진이 그 봉투 안에 있었을 가능성은 커졌지만, 대장 한 줄만으로 주인을 확정할 수는 없었다.

여름은 새 기록을 사진봉투의 내부 조사표에 추가했다. 그녀는 사진이 가족사진일 가능성을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지만, 먼저 독립 확인 절차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태오는 자기가 어머니에게 확인 전화를 걸어 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대신 현재 맡은 분실물들의 반환 마감과 내일 열람 일정을 조정했다.

센터 문을 닫기 전, 여름은 어머니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에 청람역에서 잃어버린 사진 기억나?” 이번에는 사진을 찾았다고 쓰지 않았다. 답을 요구하는 대신 질문 하나만 남겼다. 메시지는 전송됐지만 읽음 표시는 뜨지 않았다.

사진봉투는 다시 잠금장에 들어갔다. 인계 경로는 한 줄 이어졌고, 소유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북문역의 임시 접수 기록과 여성의 기억을 따로 대조하는 일이었다. 여름은 그 두 자료를 자신이 아닌 다른 직원이 함께 확인해 달라는 요청서를 작성했다. 자신이 사진 속 아이와 닮았다는 느낌은 접수 기록에 쓰지 않았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