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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영지의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5화

망해가는 영지의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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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장부를 읽는 눈

새벽 종이 세 번 울리기 전에 에블린은 집무실 책상 위에 장부를 전부 펼쳤다.

창고 장부와 저택 재산 목록 그리고 구도서관 운영 장부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같은 집의 기록인데도 글씨와 날짜와 자루 번호가 하나씩 어긋났다.

루카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인장이 찍힌 서신을 내려다보았다.

“정오까지 전부 맞춰야 한다는 거지?”

“맞추는 게 아니라 확인해야 해요.”

에블린은 낡은 재산 목록을 책상 가운데로 끌어왔다.

“누가 언제 무엇을 기록했는지 남겨야 합니다. 확인할 수 없는 숫자를 억지로 맞추면 나중에 더 불리해져요.”

“불리한 숫자라면?”

“창고에서 버린 보리와 현재 남은 보리도 그대로 적습니다.”

루카스의 턱이 굳었다. 창고에서 폐기한 보리의 양을 적으면 헬레나의 대리인이 식량을 숨겼다고 주장할 게 뻔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흠이야. 흠 하나만 잡으면 저택 안의 것들을 전부 가져갈 거다.”

“그럼 흠이 아닌 사실이라는 걸 보여 줘야죠.”

에블린은 창고 장부를 펼쳐 오스카가 적어 둔 폐기량 옆에 손가락을 놓았다.

“젖은 자루 열두 개. 그중 먹을 수 없는 보리 여섯 자루. 남은 자루는 마흔두 개. 어제 저녁에 오스카 씨와 오라버니가 확인했어요.”

“확인한 사람의 이름까지 적었군.”

“기록은 숫자만 남기는 게 아니니까요.”

마르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스카가 보리 자루를 다시 세고 있습니다. 한스도 밭에서 돌아왔어요.”

한스는 문밖에서 모자를 벗었다. 신발에는 남쪽 밭의 검은 흙이 묻어 있었다.

“물이 더 빠졌습니다. 그런데 돌담 아래쪽 보리 세 줄은 잎이 누렇게 변했습니다.”

에블린은 밭 기록을 펼쳤다. 마르타가 받아 적은 문장 아래에 새로운 줄을 붙였다.

‘새로 고인 물 없음. 보리 세 줄의 잎 끝이 변색됨. 뿌리는 아직 단단함.’

루카스가 기록을 내려다보았다.

“이것까지 재산 목록에 넣어야 하나?”

“토지는 땅만이 아니에요. 지금 그 땅이 어떤 상태인지도 재산의 일부입니다.”

에블린은 낡은 목록의 토지 항목을 찾았다. 남쪽 보리밭은 면적만 적혀 있었다. 작물의 상태나 물길에 관한 기록은 한 줄도 없었다.

“여기에는 밭이 비어 있다고 되어 있어요.”

“작년 가을 수확이 망해서 그렇게 적은 모양이다.”

한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적었을 뿐이지요. 적은 보리는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마르타가 그 말을 장부에 옮겼다. 한스의 이름과 밭의 위치도 빠뜨리지 않았다.

에블린의 시선이 구도서관 운영 장부로 향했다.

한스의 토양 정화서. 대출자 한스. 목적 남쪽 보리밭 회복. 반납까지 이틀.

오스카의 식량 보존서. 대출자 오스카. 목적 창고 보리 선별. 반납까지 이틀.

책 두 권은 저택의 서가에 없었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와 누가 책임지는지는 장부에 남아 있었다.

“도서관 책은 사라진 게 아니에요. 대출 중인 겁니다.”

루카스가 낡은 재산 목록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여기에는 구도서관 장서가 ‘폐기 서고. 가치 없음’으로 되어 있다.”

“그 기록은 오래됐어요. 지금은 운영 중이고 대출도 진행 중입니다.”

“그걸 저들이 받아들일까?”

대답 대신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정오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압류 마차는 이미 저택 앞에 멈춰 있었다. 회색 외투를 입은 남자 둘과 문서를 든 여자가 마차에서 내렸다.

“기록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거예요.”

에블린은 대출증과 장부를 한데 묶었다.

“그래도 들어오게 하세요. 숨길 게 없다는 걸 먼저 보여 줘야 하니까요.”

현관문이 열리자 가장 앞의 남자가 붉은 인장이 찍힌 문서를 들어 보였다.

“헬레나 자작부인의 위임을 받은 압류 확인관이다. 하르트 남작가의 재산 목록과 보관 장부를 대조하겠다.”

“확인 시각은 정오로 통보받았습니다.”

루카스가 막아섰다.

“압류 대상의 은닉을 막기 위해 확인관은 필요하면 앞당길 수 있다.”

남자는 말을 끊고 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블린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문서를 먼저 장부에 등록해 주세요.”

“무슨 권리로 시간을 끄는 거지?”

“확인 절차를 요청하는 겁니다. 발행일과 대상 범위 그리고 확인자의 이름을 적겠습니다.”

남자의 입가가 비틀렸다.

“꼬마 아가씨가 장부를 다룬다고 절차가 바뀌진 않는다.”

“절차가 바뀌지 않으니 더더욱 기록해야 합니다.”

마르타가 에블린의 옆에 조용히 섰다. 그녀는 빈 종이를 펼치고 문서에 찍힌 날짜를 적었다.

“이 문서는 사흘 전 발행됐습니다. 그런데 대상 목록은 이틀 전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게 무슨 문제인가?”

마르타는 문서 한 줄을 짚었다.

“보리 자루 번호 칠십삼 번. 우리 창고에는 칠십삼 번이 없습니다.”

오스카가 창고 쪽에서 걸어왔다.

“번호를 다시 붙인 적은 없습니다. 젖은 자루도 열두 개까지예요.”

“자루 번호가 없는 건 숨긴 겁니다.”

확인관이 말했다.

“아니요.”

마르타는 창고 장부를 펼쳤다.

“목록에 적힌 칠십삼 번은 작년 장부의 칠십삼 번과 같습니다. 그 자루는 작년 겨울에 배급으로 나갔어요. 날짜와 배급받은 집 이름도 남아 있습니다.”

오스카가 낡은 줄을 들여다보았다.

“맞습니다. 대장장이 집과 강가의 세 집에 나갔어요.”

루카스의 얼굴이 굳었다.

“과거에 사라진 자루를 현재 재산으로 다시 적었다는 건가?”

“문서를 만든 사람이 잘못 적었을 수도 있지.”

확인관은 태연하게 대꾸했지만 동행한 여자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그녀는 다른 장을 빠르게 넘겼다.

마르타의 시선이 그 손을 따라갔다.

“여기에도 같은 번호가 있습니다.”

“어디 말이지?”

“구도서관 보관 목록의 백열두 번. 같은 번호가 창고 항목과 두 번 적혀 있어요.”

에블린이 문서를 받아 확인했다. 구도서관 장서 일괄 아래에 별도의 보관품 번호가 붙어 있었다. 백열두 번이라는 숫자가 오래된 재산 목록과 새 압류 목록에 모두 등장했다.

“이건 책 번호가 아니에요. 보관품이라고 따로 적혀 있습니다.”

확인관이 손을 뻗어 문서를 낚아채려 했다. 루카스가 먼저 문서를 거두었다.

“내 가문의 재산 목록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건 내 권리다.”

“이미 확인 대상입니다. 구도서관부터 봉인하겠다.”

확인관이 문밖의 사내에게 손짓했다. 사내가 붉은 밀랍과 철제 표식을 꺼냈다.

에블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도서관을 힘으로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장부와 대출증으로 책의 행방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오라버니. 문을 열어 주세요.”

“도서관을 보여 주겠다고?”

“네. 대신 장부를 들고 들어갑니다.”

구도서관의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복도까지 밀려 나왔다. 확인관은 낡은 서가를 훑으며 비웃었다.

“이게 담보로 잡힌 장서인가? 먼지만 가득하군.”

에블린은 대답하지 않고 목록대 앞에 섰다. 책 두 권이 대출 중이라는 기록과 마르타가 적은 확인 종이를 펼쳤다.

“이 도서관의 장서는 관장이 분류하고 대출합니다. 대출자와 목적과 반납 기한이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마법 놀이를 장부라고 부르는 건가?”

“그 문서가 거짓이라면 직접 확인하세요.”

에블린은 한스의 대출증과 오스카의 대출증을 나란히 놓았다. 은빛 문장이 흐릿하게 빛났다.

대출자 한스. 남쪽 보리밭 토양 회복.

대출자 오스카. 창고 보리 선별.

확인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때 목록대 표면에 새 글자가 떠올랐다.

[기록의 순서를 확인하십시오.]

마르타가 숨을 삼켰다.

“아주머니. 이쪽으로 와 주세요.”

마르타는 떨리는 손으로 목록대에 손을 올렸다. 은빛 물결이 그녀의 손목까지 번졌다.

[장부를 읽는 눈을 확인합니다.]

서가 안쪽에서 얇은 책 한 권이 빠져나오려다 멈췄다. 표지에는 제목의 앞부분만 떠 있었다.

《기록 보존과 채무 장부 검증…》

마르타는 책을 보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저는 글을 잘 읽는 사람도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빠진 줄을 보고 누구의 말인지 기억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확인관이 비웃었다.

“저런 하녀의 손 하나로 압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마르타는 문서를 다시 펼쳤다. 손끝이 떨렸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압류 목록의 백열두 번은 두 번 적혔습니다. 창고 자루 칠십삼 번은 이미 배급됐습니다. 그리고 구도서관 보관품은 이 목록에만 있고 우리 장부에는 없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없는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하시면 그 사실부터 기록하겠습니다.”

정적이 도서관을 눌렀다.

루카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중복 번호와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먼저 대조해야 합니다. 이의가 있다면 헬레나 자작부인이 원본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봉인하면 하르트가 기록 조작을 주장할 수 있었다. 물러나면 헬레나에게 설명해야 했다.

“내일 같은 시각에 다시 오겠다.”

그는 결국 철제 표식을 거두었다.

“그때까지 이 도서관과 창고의 물건을 하나라도 옮기면 은닉으로 처리하겠다.”

“대출 중인 책은 이미 이동 중입니다.”

에블린이 말했다.

“그 이동은 장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확인관은 그녀를 노려본 뒤 돌아섰다. 마차가 멀어지고 나서야 마르타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제가 잘못 읽었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그럼 다시 확인했겠죠. 하지만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두 번 적힌 숫자를 지나쳤을 거예요.”

마르타는 목록대에서 손을 떼었다. 책의 제목은 다시 흐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 책은 제가 빌릴 수 있습니까?”

“아직은 안 돼요. 대출자는 책을 읽기 전에 무엇을 확인할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기록 담당으로서 오늘 본 문서를 먼저 정리해 주세요.”

마르타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본 것부터 적겠습니다. 확인관이 가져온 목록에는 없는 물건이 있고 있는 물건이 두 번 적혀 있었다고요.”

“좋아요. 누가 말했는지도 적으세요.”

저녁 무렵 에블린은 목록대 아래에서 작은 빈 칸을 발견했다.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문장이 그 위에 떠올랐다.

[지하 보관품의 기록을 찾으십시오.]

에블린은 오래된 재산 목록을 다시 펼쳤다. 마지막 장 구석에 누군가 지워 버린 흔적이 있었다. 잉크 아래에서 희미하게 남은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지하.

도서관 바닥 아래에서 낮은 금속음이 울렸다.

마르타가 정리하던 붓을 멈췄다.

“아가씨. 방금 아래에서 소리가 났어요.”

에블린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

“내일은 압류 대리인보다 먼저 찾아야겠네요.”

목록대의 빈 칸이 한 번 더 빛났다.

[기록되지 않은 것을 찾으면 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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