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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가는 영지의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4화

망해가는 영지의 도서관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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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굶주린 창고의 손

아침의 남쪽 보리밭에는 어제 열린 수로가 검은 선처럼 남아 있었다.

한스는 수로 곁에 쪼그려 앉아 책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손끝의 녹색 빛은 사라졌지만 그는 얼음을 걷어 낸 흙을 한 줌씩 만졌다.

“어제보다 물이 덜 고입니다.”

그가 흙을 놓으며 말했다.

“여기 흙은 아직 차갑지만 이쪽은 손바닥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아래로 빠지고 있는 겁니다.”

에블린은 대출증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반납까지 이틀. 책의 모서리가 젖지 않았는지와 손자국이 번지지 않았는지도 차례로 살폈다.

“좋아요. 오늘은 수로 세 곳과 보리뿌리 상태를 적어 두세요. 새로 파는 일은 한스 씨가 책에서 이유를 찾은 뒤에 합니다.”

한스가 수로 끝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더 파면 물이 더 잘 빠질 겁니다. 오늘 안에 밭 전체를 손보면 안 됩니까?”

“밭을 아는 건 한스 씨지만 한스 씨 몸은 하나예요. 어제도 밤까지 물길을 보셨잖아요.”

에블린은 작은 장부를 내밀었다.

“책에서 읽은 문장과 밭에서 본 일을 따로 적으세요. 둘이 다르면 멈추고 다시 확인하고요. 급하다고 절차를 건너뛰면 밭보다 사람이 먼저 망가집니다.”

한스는 낯선 장부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제가 글씨를 못 쓰는데요.”

“한스 씨가 말하면 마르타 아주머니가 적어 주실 거예요. 대신 무엇을 적을지는 한스 씨가 정하세요.”

마르타가 곁에서 장부를 받아 들었다.

“밭일을 배운 건 아니지만 받아 적는 건 자신 있어요.”

한스의 굳은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럼 첫 줄은 이겁니다. 물은 어제보다 낮아졌고 보리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밭길에서 루카스가 빠르게 걸어왔다. 외투 자락에는 마른 짚이 붙어 있었고 밤을 새운 사람처럼 눈가가 붉었다.

“에블린. 창고에 와야 한다.”

저택 뒤 창고의 문이 열리자 눅눅한 냄새가 밀려왔다.

보리 자루 몇 개의 아랫부분이 검게 젖어 있었다. 벽 가까이 쌓인 자루에는 회색 얼룩까지 번져 있었다. 마르타가 코와 입을 천으로 가렸다.

“새벽에 오스카가 발견했어요.”

루카스가 낮게 말했다.

“밤새 자루를 뒤집어 봤지만 곰팡이가 생각보다 깊다.”

에블린은 젖은 자루 곁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판 틈으로 찬 습기가 올라왔다. 밭이 숨을 쉬기 시작해도 오늘의 죽그릇은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닷새 치라고 셌던 보리 중에 먹지 못할 것이 나왔어.”

창고 한쪽에서 백발의 오스카가 젖은 자루를 붙들고 있었다. 그는 하르트 저택의 창고를 삼십 년 넘게 지킨 사람이었다.

“제가 잘못 쌓았습니다. 가을비 뒤에 바닥을 더 살폈어야 했는데요.”

“그걸 지금 따질 때가 아닙니다.”

에블린이 일어났다.

“어젯밤 가장 먼저 냄새를 맡고 자루를 뒤집은 분이 누구예요?”

“저였습니다.”

“그러면 지금 가장 먼저 들어야 할 말도 오스카 씨의 말이에요.”

그녀는 루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창고 문을 잠가 주세요. 누구도 자루를 옮기지 말고요.”

“곰팡이가 더 번질 텐데.”

“그래서 책을 찾아야 해요. 손부터 움직이면 안 됩니다.”

구도서관은 낮에도 서늘했다. 에블린이 목록대에 손을 얹자 은빛 글자가 잔물결처럼 번졌다.

[다음 적합한 손을 찾으십시오.]

그 아래 빈칸이 천천히 채워졌다.

[습기를 먼저 알아차린 손. 버릴 곡식과 지킬 곡식을 구별할 손.]

에블린은 손가락을 떼었다.

“오스카 씨예요.”

오스카는 책장 앞에서 망설였다.

“저는 이미 창고를 망친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에게 맡기시는 게 낫습니다.”

“젊은 손이 필요하면 목록대가 그렇게 말했겠죠.”

에블린은 어두운 서가 사이에 떠오른 옅은 빛을 따라갔다. 손바닥만 한 얇은 책 한 권이 먼지 속에서 드러났다.

《기근기 식량 보존과 공동 배급의 기초》.

“이 책은 보리를 늘려 주지 않아요.”

에블린이 오스카에게 책을 건넸다.

“지금 있는 것을 잃지 않게 하는 책입니다.”

창고를 따라온 영지민들이 숨을 죽였다. 곡식이 불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래서 더 정직했다.

에블린은 대출증을 꺼냈다.

“대출자는 오스카. 반납 기한은 이틀 뒤 해 질 무렵. 목적은 보리 재고 선별과 보관 손상 방지입니다.”

오스카가 글자를 읽으려 애쓰자 대출증 위의 문장이 그에게 익숙한 글씨로 바뀌었다.

“이틀이면 됩니까?”

“이틀 안에 할 수 있는 범위만 하세요. 책을 밤새 붙들고 쓰러지는 건 규정 위반입니다.”

“규정에 그런 것도 있습니까?”

“제가 방금 추가했습니다.”

마르타가 작게 웃었다. 긴장한 사람들 사이로 아주 잠깐 웃음이 번졌다.

오스카는 책의 첫 장을 펼쳤다.

곰팡이는 보리에 붙는 것이 아니라 습기가 머무는 곳을 따라 번진다.

그의 시선이 즉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래 자루부터 꺼내야 합니다.”

창고로 돌아온 뒤에도 오스카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책을 읽고 벽과 바닥을 번갈아 살폈다. 그러다 뒤쪽 벽의 틈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비가 많이 오면 여기로 물이 스몄습니다. 작년부터 짚을 덧대 놓았는데 그 아래로 들어갔나 봅니다.”

젊은 농부 하나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위 자루부터 비워야죠. 멀쩡한 것을 먼저 꺼내야 하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오스카의 대답이 예상보다 단단했다.

그는 책장을 한 줄 더 읽었다.

젖은 것을 눌러 덮으면 마른 것까지 병든다.

“위를 먼저 건드리면 아래 자루가 더 눌립니다. 젖은 보리가 안쪽으로 밀리고요. 바닥의 물길부터 끊어야 합니다.”

“한 알이라도 더 살려야지 왜 망한 것부터 보자는 겁니까?”

“바로 그 한 알을 살리려고 그러는 거다.”

오스카가 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내가 어제 이 냄새를 못 맡았으면 오늘은 더 많은 자루를 버렸을 거야. 지금은 아직 고를 수 있다.”

루카스가 소매를 걷었다.

“오스카의 지시대로 한다.”

그는 창고 안을 둘러봤다.

“누구도 곡식 하나를 몰래 가져가지 마라. 손실도 남은 양도 장부에 적는다. 오늘부터 배급은 그 장부대로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한 숨소리가 났다. 숫자를 공개하면 줄어든 양까지 모두가 알게 된다.

에블린은 루카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숨긴 장부는 사람을 더 무섭게 해요. 대신 오스카 씨가 선별한 양과 배급 기준을 같이 적어야 합니다.”

루카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작업은 가장 아래의 자루를 꺼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에블린은 책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빈 나무 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오스카가 문장을 충분히 읽기 전에는 누구도 다음 자루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바닥판을 들어 올리자 검은 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 얼었던 물이 벽 틈으로 스며들어 짚과 보릿겨를 적신 모양이었다.

“이 물부터 퍼내. 벽 아래 짚은 전부 빼고 새것으로 바꾼다.”

루카스와 농부들이 양동이를 들었다. 하녀들은 젖은 자루와 마른 자루 사이에 빈 판자를 세웠다. 마르타는 옮긴 자루의 수를 적었다.

한스도 밭의 기록을 마치고 창고에 왔다. 그는 곰팡이 핀 보리를 보자 얼굴을 굳혔다.

“이걸 버리면 오늘 배급이 줄어드는 겁니까?”

오스카가 상한 보리 한 줌을 손바닥에 올렸다.

“이건 죽에 넣으면 사람을 아프게 한다. 살리려면 버려야 해.”

한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상한 보리를 담을 통을 들어 올렸다.

“그럼 제가 옮기겠습니다. 밭도 죽은 줄 알았던 뿌리가 살았어요. 이건 살릴 수 없는 걸 먼저 골라야 하는 거겠죠.”

선별은 해가 기울 때까지 이어졌다. 먹을 수 없는 보리는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남은 보리는 바람이 통하는 천 위에 얇게 펼쳤다. 화로의 불을 너무 가까이 두지 말라는 문장도 오스카가 읽었다.

“문을 반 뼘만 열어 둬. 바람이 세면 가루가 날린다.”

오스카의 지시에 마르타가 문을 조절했다. 루카스는 폐기한 양과 남은 양을 한 줄도 빼지 않고 적었다.

저녁 무렵 오스카가 대출증을 만지려다 젖은 손을 옷자락에 닦았다.

“사흘은 버틸 수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죽을 조금 묽게 쑤면 넷째 날 아침까지요. 오늘 버린 만큼은 아프지 않고 버틸 시간을 산 겁니다. 내일 새벽까지 선별을 끝내고 바닥을 다시 막겠습니다.”

루카스가 장부를 덮었다.

“내일부터 배급 전에 이 수치를 읽겠다. 더 줄어들면 내가 먼저 말할 거다.”

밤이 된 뒤 에블린은 구도서관의 작은 탁자에 장부를 폈다.

한스. 《기근 영지 생존을 위한 토양 정화 입문》. 남쪽 보리밭. 물길 관찰과 토양 회복. 반납까지 이틀.

오스카. 《기근기 식량 보존과 공동 배급의 기초》. 저택 창고. 보리 선별과 습기 차단. 반납까지 이틀.

그녀는 두 이름 옆에 기록 담당 칸을 만들었다.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일은 대출증 하나를 내미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목록대가 희미하게 빛났다.

[이용 기록: 임시 대출 2건 진행 중]

[장부를 읽는 눈을 찾으십시오.]

그때 문밖에서 마르타가 급히 불렀다.

“아가씨. 헬레나 자작부인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붉은 인장이 찍힌 봉투는 전보다 두꺼웠다. 에블린은 장부 위에 그것을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봉인을 풀었다.

종이에는 정갈한 글씨로 단 두 줄만 적혀 있었다.

‘압류 확인은 내일 정오에 집행한다.’

‘하르트 가문의 재산 목록과 보관 장부를 준비하라.’

에블린은 편지와 창고 장부를 나란히 바라보았다.

이제 곡식과 책은 숫자까지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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