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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1로 지구를 구하는 법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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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불은 꺼지고

붉은갈기 화염 마수의 목덜미에서 마지막 불씨가 꺼졌다.

동굴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조금 전까지 돌을 녹이던 열기가 빠져나가고 검은 연기와 타 버린 가죽 냄새만 천장에 얇게 걸렸다. 녹아내린 바닥에서는 아직 붉은 김이 올랐지만 숨을 들이마실 수는 있었다.

강현은 마수의 앞다리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손바닥 아래에서 거대한 근육이 움찔거렸다. 화염 마수는 불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듯 목을 젖혔다. 붉은 갈기 사이로 작은 불꽃 하나가 겨우 피어났다.

치익.

불꽃은 손톱만큼 자라기도 전에 꺼졌다.

강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또 해 봐."

마수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기분 나쁜 기세는 느낀 듯 앞발을 거칠게 털었다.

강현의 손이 털 아래에서 미끄러졌다. 그가 반 걸음 물러난 순간 마수의 갈기 깊은 곳에서 붉은 빛이 다시 번졌다. 뜨거운 공기가 놈의 아가리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현은 곧장 앞으로 붙었다.

[대상 현재 마력: 1/1]

붉은 빛이 꺼졌다.

화염 마수의 목에서 당황한 울음이 새어 나왔다.

"거리 문제인가."

손을 댈 때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곁에 붙어 있자 불을 피우려는 시도 자체가 꺾였다.

정확히 어디까지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한 걸음만 물러나도 불길이 살아날지 두 걸음까지 괜찮을지 지금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싸울 방법 하나가 더 생겼다.

그때 뒤편에서 돌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붉은턱 오우거가 낮게 몸을 숙였다. 놈은 마력을 잃은 뒤에도 강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체력은 아흔하나. 불은 못 써도 저 거대한 팔과 이빨은 그대로였다.

"짐꾼! 한 마리 붙들어!"

박도윤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강현은 고개만 돌렸다.

도윤은 무너진 출구 앞에 서 있었다. 검을 든 헌터 둘은 돌무더기 틈을 넓히느라 손을 놀리고 있었다. 민재는 화상 입은 팔을 감싼 채 벽에 기대 있었다.

도윤의 발치에는 작은 가죽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아까 포션을 챙겨 넣던 주머니였다.

"제가 붙들면요?"

"우리가 길 뚫고 나갈 테니까 시간만 벌어!"

"그다음은요?"

도윤의 입술이 굳었다.

강현은 더 묻지 않았다. 대답이 없다는 건 이미 들은 것과 같았다.

오우거가 달려들었다.

강현은 화염 마수의 앞다리에서 손을 떼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둔탁한 주먹이 바닥을 찍었다. 파편이 등과 뺨을 후려쳤다.

[피해량: 1]

[현재 체력: 3/10]

바닥을 짚은 손이 저렸다.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피해가 하나로 줄어도 충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몸은 평범한 사람보다도 느리고 약했다. 숫자 하나가 깎일 때마다 다음 움직임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화염 마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벌렸다.

목덜미의 갈기에서 붉은 불티가 튀었다. 놈은 강현이 오우거를 피하느라 떨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 진짜 성격도 급하네."

강현은 욕을 삼키며 마수에게 달려갔다.

민첩 1짜리 다리는 머릿속 계산보다 늦었다. 화염 마수의 발톱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해량: 1]

[현재 체력: 2/10]

강현은 비틀거리면서도 팔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마수의 턱 아래 털을 움켜쥐었다.

화염 마수의 입안에 모이던 불빛이 푹 꺼졌다.

"크르륵?"

마수가 허둥대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 꺼진 불이 아니었다. 놈은 분명히 다시 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강현이 곁으로 들어오자 그것이 또 사라졌다.

강현은 숨을 고르며 단검을 꺼냈다.

"그래. 너도 답답하지?"

그는 마수의 앞다리 안쪽을 찔렀다.

[피해량: 1]

두꺼운 근육이 움찔했다. 그런데 상태창은 화염 마수의 체력 수치를 보여 주지 않았다.

강현은 짧게 혀를 찼다.

오우거에게는 숫자가 보였다. 이놈에게는 피해량만 뜬다. 모든 걸 친절하게 알려 주는 능력은 아닌 모양이었다.

"민재 씨!"

벽에 기댄 민재가 움찔했다.

"네!"

"오우거는 계속 세고 이놈은 움직이는 쪽만 봐요. 불 붙으면 바로 말해요."

"마력이 없는데요?"

"없어도 다시 하려고 하잖아요."

민재는 화염 마수의 갈기와 강현의 손을 번갈아 봤다. 얼굴에는 여전히 공포가 남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우거 아흔하나. 화염 마수는 불꽃 없습니다."

"좋아요. 계속 그렇게요."

박도윤이 이를 갈았다.

"지금 지시할 처지야? 출구나 보라고!"

강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출구를 보는 사람은 이미 세 명이나 있었다. 그 셋이 본 것은 길이 아니라 자기들만 빠져나갈 구멍이었다.

강현이 손을 놓는 순간 화염 마수의 갈기에 붉은 불티가 다시 피었다. 그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틈에 도윤이 발치의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퍽!

돌이 화염 마수의 옆구리에 부딪혔다.

마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붉은 눈이 가장 가까운 강현에게 다시 박혔다.

"미친..."

도윤은 돌을 하나 더 들었다.

강현은 그 손을 보고 알아차렸다. 마수를 자기 쪽으로 더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화염 마수가 강현에게 매달려 있는 동안 도윤은 오우거와 출구 사이를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팀장님."

"뭐!"

"그거 한 번만 더 던지면 제가 안 붙잡습니다."

"네가 안 붙잡으면 다 죽어!"

"그럼 팀장님도 안 던지면 됩니다."

도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짐꾼 주제에 명령을 해?"

"맞습니다. 짐꾼이라 무거운 건 두고 갑니다."

강현은 턱으로 오우거를 가리켰다.

"저 큰 짐도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우거가 다시 몸을 낮췄다. 이번에는 강현이 아니라 도윤과 출구 쪽을 향하고 있었다. 부서진 통로를 파내는 쇳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이 놈의 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도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저놈 막아!"

"왜요? 팀장님도 무기 있잖아요."

도윤은 검을 쥔 손을 움찔했다. C급 보스에게 검을 들이댈 용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강현을 밀어 넣지 않았을 것이다.

강현은 시선을 다시 화염 마수에게 돌렸다.

도윤을 살리려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우거가 출구 쪽으로 가면 민재도 그곳에서 깔린다. 그리고 둘 중 하나가 통로를 빠져나가면 이 던전 밖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두 마리를 자기 눈앞에 묶어 둬야 했다.

그는 화염 마수의 턱을 잡은 채 몸을 비틀었다.

끌었다고 해도 거대한 괴물이 순순히 움직일 리 없었다. 강현은 발톱을 피해 바짝 붙고 놈의 고개가 향하는 쪽만 조금씩 바꿨다.

화염 마수는 빼앗긴 불을 되찾으려 강현의 손을 물어뜯으려 했다. 강현은 턱 아래를 놓는 대신 목덜미 갈기를 움켜쥐었다.

마수의 이빨이 그의 소매 끝을 찢었다. 가까스로 손목을 빼냈다.

오우거가 돌진했다.

강현은 마지막까지 두 몬스터 사이에 서 있었다.

민재가 비명을 질렀다.

"강현 씨!"

오우거의 어깨가 화염 마수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쾅!

두 거구가 뒤엉켜 벽으로 날아갔다. 충격에 동굴 천장에서 돌덩이가 쏟아졌다.

강현은 떨어지는 돌을 보고 몸을 던졌다. 구르면서도 화염 마수의 갈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목이 빠질 듯 당겨졌지만 불꽃이 다시 붙는 것보다는 나았다.

커다란 암석 하나가 그의 발끝을 스치며 바닥에 박혔다.

간발의 차이였다.

먼지구름이 걷히자 두 보스는 벽 아래에 함께 처박혀 있었다.

오우거는 한쪽 어깨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화염 마수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오우거의 다리에 깔린 뒷발을 빼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둘 다 마력을 잃었다.

둘 다 아직 살아 있었다.

강현은 손에서 단검이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다. 칼날에는 이미 가느다란 금이 가 있었다.

단검이 부러지면 맨손으로 때려야 한다. 맨손이어도 피해는 하나씩 들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체력 아흔짜리 오우거를 주먹으로 상대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손목이 먼저 아팠다.

"포션은요?"

민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민재의 눈이 커졌다.

"그럼 어떻게..."

강현은 단검을 다시 쥐었다.

"안 맞으면 됩니다."

그 말은 허세였다.

민첩 1짜리 몸으로 두 마리의 보스를 상대로 한 번도 맞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래도 다른 대답은 없었다.

박도윤이 출구 틈으로 슬쩍 몸을 돌렸다.

강현이 그를 불렀다.

"팀장님."

도윤이 멈칫했다.

"이제 뭐야?"

"거기 막으세요."

"뭘 막아?"

"출구요."

강현은 두 보스를 향해 턱을 들었다.

"저것들한테는 저쪽이 도망길입니다. 저쪽으로 가면 막으세요. 던지지 말고."

도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박하려던 입이 열렸지만 화염 마수가 고개를 들자 그의 몸이 먼저 뒤로 물러났다.

강현은 더 보지 않았다.

"민재 씨."

"네."

"오우거."

민재는 침을 삼켰다.

"아흔하나입니다."

"아니."

강현은 오우거의 무릎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셀 거예요."

오우거가 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강현은 놈이 완전히 일어서기 전에 꺾인 무릎 뒤로 파고들었다.

단검이 내려갔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90/100]

"아흔!"

민재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강현은 칼을 빼며 곧장 옆으로 움직였다. 오우거의 손바닥이 바닥을 후려쳤다. 그는 돌가루를 뒤집어쓴 채 다시 허벅지 안쪽을 찔렀다.

[피해량: 1]

[붉은턱 오우거의 체력: 89/100]

"여든아홉!"

화염 마수가 오우거의 다리 밑에서 뒷발을 빼냈다. 갈기에는 불이 없었다. 그러나 이빨과 발톱은 멀쩡했다.

강현은 오우거의 피가 묻은 단검을 고쳐 쥐었다.

아흔아홉 번이 아니라 여든아홉 번.

숫자는 조금 줄었다.

그만큼 죽음도 멀어진 건 아니었다.

화염 마수가 쓰러진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강현의 손목을 덥석 물었다.

동시에 오우거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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