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펜싱부의 마지막 대진표

2화: 비어 버린 엔트리
태오의 발목은 훈련 첫 시간에 다시 부었다.
그는 코트 한쪽에서 보호대를 풀다가, 양말 위로 드러난 붉은 자국을 감추려 발을 뒤로 뺐다. 수아가 먼저 봤다. 그녀는 말없이 얼음주머니를 건넸다.
“괜찮아. 그냥 조금 뻐근해.”
“어제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태오는 얼음주머니를 받아 들지 않았다. “대회 명단이 오늘 마감이야. 내가 빠지면 엔트리가 안 나와.”
서윤은 코치가 보낸 대회 신청서를 들고 있었다. “등록만 해 두고, 출전 여부는 테스트 뒤에 결정할 수 있어.”
“대진표에는 세 명이 들어가야 해.” 태오가 말했다. “가은이를 넣으면 내 자리 하나가 사라져.”
가은은 마스크를 벗은 채 코트 옆에 서 있었다. “제가 들어가도 선배가 회복하면 순서를 바꿀 수 있어요.”
“단체전에서 순서를 경기 직전에 바꾸면 전술이 무너져.”
“그럼 오늘 순서를 시험해 봐요.”
서윤은 신청서 모서리를 접었다. “둘 다 상대를 이기려는 얘기만 하고 있어. 우리가 채워야 하는 건 개인전 자리가 아니라 릴레이 전체야.”
수아가 태블릿을 열었다. “남은 부원은 넷입니다. 서윤 주장, 태오 선배, 가은, 그리고 저. 저는 공식 선수 등록이 없어서 대회에 못 나가요.”
“그럼 가은이가 들어가는 순간 후보가 없는 거네.” 태오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경기 중 다치면 더 위험해져요.”
가은은 수아의 말을 들으며 손에 쥔 검을 내려다봤다. 단체전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팀을 위해 들어가 달라는 말과,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위험을 떠안으라는 말은 같지 않았다.
“코치는 뭐래요?”
서윤이 답했다. “지원금 심사 전까지 최소 세 명을 등록해야 하고, 지역대회에 출전해야 해. 못 하면 다음 학기 훈련장을 다른 종목에 내줘야 할 수도 있어.”
“그러면 제 이름을 넣으세요.”
태오가 몸을 세웠다. 얼굴이 굳었다. “내가 뛸 수 있는데?”
“선배는 오늘 한 번도 발을 제대로 디디지 못했어요.”
“발목이 부었다고 못 싸우는 건 아니야.”
“한 경기씩은 버틸 수 있어도, 단체전은 아홉 번 교대합니다.”
“내 몸은 내가 알아.”
서윤은 신청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우리 모두 네가 뛸 수 있길 바라. 하지만 네가 괜찮다고 말하는 걸 검사 결과 대신 쓸 순 없어.”
태오는 얼음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내가 빠지고, 신입이 팀을 구하는 그림이네.”
가은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팀을 구하겠다고 한 적 없어요. 다만 제가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는지 시험해 달라고 했어요.”
“네가 한 번 실수하면?”
“다음 사람이 그 점수를 안고 들어가죠. 그래서 실수를 감추지 않을 거예요.”
수아가 코트에 출전 순서를 적었다. 첫 경기 서윤, 두 번째 태오, 세 번째 가은. 그다음부터 다시 반복하는 릴레이. 부상 선수가 빠지면 가은이 두 구간을 연속으로 뛸 수 있어야 했다.
“그건 무리야.” 서윤이 말했다. “연속으로 들어가면 상대가 네 왼손을 읽어.”
“그럼 순서를 바꾸면 돼요.” 가은이 말했다. “제가 먼저 들어가고, 태오 선배가 두 번째. 서윤 주장이 마지막에 점수 차를 정리하는 식으로요.”
태오는 코트 쪽을 보았다. “상대는 네 공격 패턴을 첫 경기에서 읽을 거야. 두 번째로 나와도 왼손이 낯설지 않겠지.”
“그럼 첫 경기에서 제가 일부러 점수를 덜 내고, 공격을 숨기면?”
“점수 따야 이기는 경기에서 공격을 숨기겠다고?”
“상대가 제 왼손을 먼저 읽게 두고, 그 다음에 태오 선배의 오른손 공격이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태오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말로는 그럴듯해. 실제로는 네가 점수를 못 내면 팀이 뒤처져.”
서윤은 코트 라인을 따라 걸었다. “그럼 오늘은 전술보다 출전 가능성을 보자. 태오는 발목에 부담 없는 움직임만 하고, 가은은 세 구간을 연속으로 뛰어. 수아가 점수와 발 움직임을 기록해.”
태오는 반대하려 입을 열었지만, 얼음주머니를 다시 들었다. “연속 구간은 3점씩으로.”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먼저 할게요.”
첫 상대는 서윤이었다. 가은은 첫 점수를 내주었다. 서윤은 오른손 검을 곧게 뻗으며 가은의 왼쪽 어깨를 겨눴다. 가은은 공격을 받지 않고 물러나며 거리창을 읽었다. 두 번째 교대에서 가은은 서윤의 손목을 막아 점수를 얻었다.
“이제 네가 공격해 봐.” 서윤이 말했다.
가은은 공격을 시작하는 척했다가 발을 멈췄다. 서윤이 방어 자세를 올리자, 가은은 손잡이를 틀어 반대편을 찔렀다. 불이 들어왔다.
“한 번은 통했어.” 서윤이 말했다. “두 번은 안 통할 거야.”
“맞아요.”
태오와 교대한 뒤 가은은 연속으로 세 번째 구간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왼쪽 발목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태오의 공격은 빠르지만, 오른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짧아졌다. 가은은 그가 상처를 감추고 있다는 확신을 굳혔다.
“태오 선배, 발이 늦어요.”
“너부터 네 거리 봐.”
태오가 찌르기를 시작했다. 가은은 우선권을 빼앗기고 한 점을 내줬다. 점수판은 1 대 2. 그녀는 호흡을 낮추고 태오의 발끝 대신 어깨를 봤다. 그의 검이 움직이기 전에 어깨가 먼저 굳었다. 왼발을 반 칸 옮기자 공격선이 비었다. 가은은 그 틈을 찔러 동시 불을 만들었다. 심판은 태오의 우선권을 인정했다.
“왜 또 점수를 잃었어요?” 가은이 말했다.
“내 공격이 먼저였으니까.”
“그럼 선배 발이 멈춘 순간에 공격을 시작했어야 해요. 계속 앞으로 들어가면 발목이 버티지 못해요.”
태오는 검끝을 내렸다. “나를 전술로 쓰지 마.”
“제가 아니라 팀이 선배를 믿게 해 주세요.”
그 말에 태오가 한 걸음 물러났다. 발목에 체중이 실리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윤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손을 쳐냈다.
“대련 끝. 병원 가자.”
“팀 등록 마감이—”
“네 발목이 등록보다 먼저야.” 서윤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태오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가방을 들었다. “검사는 받겠어. 그래도 결과가 괜찮으면 주전으로 나갈 거야.”
“그건 결과를 보고 정하자.”
수아는 영상 기록을 저장했다. 그녀는 태오의 발이 멈춘 순간과 가은이 그 틈을 읽은 순간을 표시했다. “가은이 말이 맞아요. 태오 선배가 공격을 멈추는 순간을 가은이가 읽으면, 둘이 같은 공격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건 내가 알려 줬던 신호와 달라.” 태오가 말했다.
“선배 신호는 검끝이었어요. 가은은 발과 어깨를 읽었고요.”
태오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병원으로 향했고 서윤과 수아가 함께 갔다. 가은은 체육관에 남아 신청서의 출전 순서란을 바라봤다. 아직 이름은 쓰이지 않았다.
그날 밤 서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은은 체육관 바닥에 앉아 있었다. 태블릿 화면에는 태오의 발이 멈춘 장면이 느리게 반복됐다.
“검사 결과 나왔어요?”
“인대가 늘어났대. 큰 파열은 아니지만, 최소 열흘은 실전 훈련을 쉬어야 해.”
“대회는 일주일 뒤잖아요.”
“출전은 어렵다고 봐야지.”
전화 너머로 병원 대기실 소음이 들렸다. 수아가 무언가 말하고, 서윤이 낮게 답했다. 태오가 옆에 있는 듯했다. 가은은 질문을 삼켰다.
“가은아, 네가 들어가야 할 수도 있어.”
“연속 세 구간 훈련은 아직 부족해요.”
“알아. 그래서 내가 첫 구간을 맡고, 네가 두 번째와 마지막을 나눠 뛸 수 있는지 봐야 해.”
“그럼 서윤 주장이 두 경기를 연속으로 하게 되잖아요.”
“그게 내가 정할 일이지. 너 혼자 팀을 떠안는 일은 아니야.”
가은은 화면 속 태오의 발을 멈췄다. “선배가 어떤지 물어봐도 돼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빠진다고 팀에서 빠지는 건 아니야. 분석은 계속할 거야.”
“대회 출전 못 해서 화난 줄 알았어요.”
“화났어. 내가 숨긴 탓에 더 다쳤을 수도 있고.” 태오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네가 내 발을 보고 전술을 짜는 건 괜찮아. 그 발목을 흉내 내려고 하진 마.”
“그러지 않을게요. 제가 제 거리로 들어갈게요.”
“그럼 네 거리를 수아한테 영상으로 보내. 내가 가능한 동작과 불가능한 동작을 표시해 줄게.”
가은은 검을 내려놓았다. “선배가 빠진 자리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선배가 가진 정보를 이어받는 거네요.”
“그래. 빈자리에도 사람은 남아 있어.”
전화가 끊긴 뒤, 가은은 태블릿을 다시 켰다. 방금 전까지 반복 재생하던 발목 움직임 대신 서윤이 첫 공격에 들어가는 거리와 자신의 왼손이 합류하는 타이밍을 표시했다. 훈련장은 텅 비었지만, 대진표의 빈칸은 혼자 채울 일이 아니었다.
태오는 정확한 복귀 날짜를 약속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훈련과 대회 출전은 금지였다.
가은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팀의 대진표에는 이제 실제 빈칸이 생겼다. 그는 검을 꺼내 들었지만 혼자 휘두르지 않았다. 수아의 영상에서 태오의 멈춘 발을 다시 보고, 그 틈에 들어갈 수 있는 거리부터 표시했다.
그녀는 코트의 흰 선 위에 테이프를 붙였다. 다음 연습은 점수가 아니라 그 선을 넘는 타이밍부터 시작할 참이었다. 그 거리는 자기만의 것이었다. 발끝을 그 선 앞에 맞춰 보았다. 테이프가 바닥에 단단히 붙었다. 그녀는 한 번 더 거리를 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