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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펜싱부의 마지막 대진표3화

왼손잡이 펜싱부의 마지막 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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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마지막 대진표

준결승 당일, 태오는 코트 밖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발목 보호대를 풀지는 않았지만 경기복은 입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는 건 검 대신 태블릿이었다.

“상대 팀은 오른손잡이 세 명이야.” 수아가 경기표를 가리켰다. “첫 선수는 빠르게 들어오고, 둘째는 수비 위주, 마지막은 점수 차가 클 때 공격적으로 바꿔.”

서윤은 등록 명단을 확인했다. 주장은 첫 구간, 가은은 두 번째와 세 번째 구간에 연속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태오가 빠진 자리를 메우려면 가은이 9점씩 세 번을 뛰어야 했다. 대신 그녀의 왼손 공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내가 첫 구간을 5점 차 안에 묶을게.” 서윤이 말했다. “가은이는 두 번째에 들어가서 상대 수비 리듬을 읽어. 세 번째 구간은 점수에 따라 바꾸자.”

“제가 두 번 연속 뛰는 건 맞죠?”

“그렇지만 네가 모든 점수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내가 마지막 구간도 들어갈 수 있어.”

가은은 태블릿을 태오에게 건넸다. “선배가 가능한 동작을 표시해 준 영상 봤어요. 그럼 제가 공격할 때 발목이 아니라 어깨를 읽을게요.”

태오는 영상 위에 선을 그었다. “내가 회복해서 뛴다면 이 타이밍으로 상대를 멈출 수 있어. 하지만 오늘은 네가 그걸 흉내 내지 마. 네 왼손으로 상대의 검을 바깥으로 밀어.”

“그럼 빈 곳이 안쪽으로 생겨요.”

“맞아. 그 틈을 서윤이 이용할 수 있게 점수 차를 관리하는 게 네 역할이야.”

서윤은 태오를 바라봤다. “네가 코트에 못 들어와도 팀에 있어.”

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없다는 걸 모르는 척하지 마. 전략은 내 몫으로 도울게.”

대진표에 선수 교체가 표시되자 상대 팀 코치가 이의를 제기했다. 가은은 정식 등록된 선수였지만, 한 선수가 여러 구간에 출전하는 조합은 상대가 예상하지 못했다. 심판은 규정집을 확인한 뒤 허용했다. 다만 중간 휴식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했다.

“경기 중에 코치 지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서윤이 말했다. “우리가 코트에서 직접 신호를 맞춰야 해.”

가은은 글러브를 당겨 끼웠다. 왼손의 손목 보호대가 너무 꽉 조여 손가락이 저렸다. 그녀는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태오가 그 손을 보았다.

“검을 놓칠 정도로 풀면 안 돼.”

“알아요.”

“긴장하면 손에 힘을 줘. 오늘은 첫 점수 전에 숨을 한 번 쉬어.”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이 코트로 들어갔다. 첫 상대는 한 발 간격으로 거리를 재다가 갑자기 빠르게 찔렀다. 서윤은 첫 공격을 막았지만, 연속 공격에 한 점을 내줬다. 태블릿을 든 태오는 화면에 상대의 어깨 움직임을 표시했다.

“오른쪽 어깨가 먼저 내려가.” 그가 말했다. “두 번째 진입 신호야.”

서윤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상대가 어깨를 낮췄을 때 그녀는 뒤로 물러나 우선권을 놓지 않았다. 공격이 길어지자 서윤이 반격했다. 불이 들어왔다.

첫 구간은 5 대 4로 끝났다. 서윤은 마스크를 벗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상대가 네 왼손을 모르는 건 아니야. 지난 경기 영상을 봤을 거야.”

가은은 코트에 들어갔다. “그럼 예상한 공격을 하지 않을게요.”

상대는 가은의 왼손을 경계해 검끝을 바깥으로 세웠다. 가은은 첫 두 차례 공격을 멈추고 거리를 유지했다. 점수는 5 대 6으로 밀렸다. 관중석에서 한숨이 났다. 그녀는 오른쪽 손목에 힘을 줘 칼날을 크게 돌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상대가 예측한 각도로 들어가게 된다.

태오가 외쳤다. “손 말고 발을 봐!”

가은은 상대의 앞발을 살폈다. 발꿈치가 들리는 순간, 상대는 앞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은은 한 걸음 물러나 공격을 유도했다. 상대의 칼이 몸통으로 향하자, 그녀는 왼손으로 바깥쪽을 쳐내고 그 반동으로 안쪽을 찔렀다.

불이 켜졌다. 동시 공격이었지만 우선권은 가은에게 있었다.

“좋아!” 서윤이 외쳤다.

가은은 한 점씩 따라잡았다. 그러나 상대는 공격을 멈추고 수비로 바뀌었다. 시간은 줄어드는데 점수는 8 대 8에 묶였다. 가은은 무리해서 앞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칼을 비켜 세우고 그녀의 팔을 쳤다. 점수가 다시 갈렸다.

두 번째 구간 종료, 8 대 9.

휴식은 1분이었다. 서윤은 물병을 건넸고, 태오는 태블릿을 보여 줬다. “상대가 네 왼손을 막으려고 손목을 높였어. 다음에는 네가 바깥으로 밀 때 한 박자 기다려.”

“그럼 제가 공격을 시작하는 게 늦어져요.”

“그래서 내가 앞에서 상대를 한 번 멈출게. 네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 거야.”

“선배는 못 뛰잖아요.”

“내가 코트 밖에서 신호를 줄 수는 있어. 서윤이 그걸 이어받을 거야.”

서윤은 검 손잡이를 두드렸다. “내가 첫 공격을 유도하고, 가은이 네가 마지막에 들어가. 신호는 검끝을 아래로 두 번.”

“그건 후퇴 신호라고 했잖아요.” 가은이 말했다.

“오늘은 후퇴가 아니라 기다림으로 쓰자. 상대가 신호를 알아도 박자를 다르게 가져가면 돼.”

가은은 숨을 고르고 코트로 돌아갔다. 서윤의 첫 공격은 상대의 수비를 끌어냈다. 검끝이 아래로 두 번 움직였다. 가은은 즉시 들어가지 않았다. 상대가 신호를 보고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 순간 서윤이 반대편을 찔러 한 점을 얻었다.

8 대 10.

가은은 이번에도 급히 따라잡지 않았다. 상대는 서윤의 공격을 의식해 방어를 안쪽으로 옮겼다. 가은은 칼끝을 바깥으로 흘려 상대의 손을 움직이게 하고, 발을 반 칸만 밀었다. 검이 몸통에 닿았다. 점수는 9 대 10.

상대가 거리를 좁혔다. 가은은 처음으로 자기 리듬을 포기했다. 태오가 알려 준 신호도 서윤의 움직임도 그대로 복사하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의 박자 사이에 숨 한 번을 넣었다. 상대가 그 공백을 공격으로 채우자, 가은은 칼날을 쳐내고 빈 곳을 찔렀다.

10 대 10.

그녀는 점수를 연속으로 얻으려다 다음 공격을 놓쳤다. 상대가 곧장 몸통을 찔렀고 불이 켜졌다. 10 대 11. 가은의 어깨가 들렸다. 시간은 20초 남았다.

“숨 쉬어!” 태오가 외쳤다.

가은은 마스크 안에서 한 번 숨을 내쉬었다. 다음 공격이 시작되자 그녀는 먼저 들어가지 않았다. 상대의 앞발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순간에 칼을 밀었다. 서로의 불이 켜졌다. 심판은 가은의 우선권을 인정했다.

11 대 11.

경기가 끝나기 직전, 상대는 공격을 가장하고 방어로 돌아섰다. 가은은 쫓지 않았다. 서윤이 코트 바깥에서 손을 들어 멈춤을 알렸다. 점수 동점으로 다음 구간에 넘어갔다.

세 번째 구간에서 서윤이 마지막 점수를 얻어 팀은 한 점 차로 앞서 나갔다. 경기 종료 신호가 울렸을 때 가은의 팔은 떨리고 있었지만 검은 손에서 놓치지 않았다.

태오가 다가와 말했다. “너는 내가 만든 틈에 들어온 게 아니야. 네가 기다려서 틈을 만든 거야.”

“그럼 다음엔 제가 먼저 틈을 만들게요.”

서윤은 심판에게 인사하고 팀원들을 모았다. “대진표는 그대로 가자. 태오는 선수 등록 대신 분석을 맡고, 가은이가 빈 구간에 들어간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리를 빼앗긴 게 아니라, 역할이 달라진 거라고 생각할게.”

가은은 대진표의 이름을 확인했다. 자기 이름은 한 번 적혀 있었고, 세 번째 구간에는 화살표가 이어져 있었다. 대회 다음 날, 학교 체육부 게시판에 펜싱부 지원 심사 날짜가 새로 붙었다. 결승에 올라가도 해체 심사는 피할 수 없었다.

경기장을 나서자 가은의 다리가 한 번 휘청했다. 서윤이 팔을 받치려 했지만, 가은은 먼저 벽을 짚었다. “괜찮아요. 발목 말고 허벅지가 떨려요.”

“그래도 지금은 앉아.” 태오가 벤치를 끌어왔다. “세 구간을 뛸 수 있다는 말과, 회복 없이 세 구간을 뛰어도 된다는 말은 달라.”

가은은 물을 받아 마셨다. 혀끝에 금속 맛이 남았다. 경기 중 마스크 안에서 숨을 참았던 탓이었다. 수아가 영상의 마지막 구간을 되감았다.

“가은이 마지막 공격 때, 상대가 네 왼손을 기다리고 있었어.”

“알았어요. 그래서 먼저 들어가지 않았죠.”

“그런데 서윤 주장이 손을 들기 전에 멈췄어. 네가 혼자 판단한 거야.”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에는 신호를 못 봤어요. 점수와 시간을 같이 봐야 했어요.”

“다음엔 내가 신호를 늦게 줄 수도 있어.” 서윤이 말했다. “네가 언제 멈추고 언제 계속할지 생각해 둬.”

태오는 영상에 작은 표시를 남겼다. “그리고 오늘은 네가 내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어. 그게 좋았어. 네 왼손은 나보다 넓은 각을 만들 수 있어.”

“선배가 돌아오면 전술이 바뀌겠네요.”

“돌아와도 네가 그 각도를 쓸 수 있어. 팀이 한 사람의 부상에 전부 걸리지 않게.”

서윤은 대진표 사본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이번 승리는 결승 진출권만 준 거야. 심사위원에게 보여 줄 훈련 기록과 신입 선수 계획이 필요해. 내일부터 연습을 다시 짜자.”

수아가 태블릿을 들었다. “제가 선수 움직임과 회복 시간을 같이 기록할게요. 점수만 말고요.”

가은은 체육관 출입문에 붙은 펜싱부 모집 공고를 보았다. 한 명이 더 들어오면 후보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들어오라고 할 수는 없었다. 훈련을 견디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팀은 승리를 기념하지 않고, 내일 연습할 사람과 시간을 정했다. 가은은 대진표 사본을 펼쳐 마지막 빈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팀원이 늘어날지, 남은 선수들이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은은 게시판 아래 빈칸에 팀 이름을 적었다. 다음 경기에서 어떤 순서로 설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채울 대진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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