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공작의 변호인

2화: 말의 무게를 묻다
윤서는 리안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 법원에 증인 보호를 신청했다. 아이가 직접 이름과 진술 범위를 정하도록 하고, 보호관이 따로 의사를 확인하는 조건을 달았다. 검사는 보호 조치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판사는 공개 심리 전에 비공개 면담을 열기로 했다.
마리온 검사는 면담실에서 윤서와 마주 앉았다. 그녀는 붉은 머리를 단정히 묶고, 재판 기록을 탁자에 놓았다. 첫 장에는 실종 아동의 진술이 있었고, 둘째 장에는 부모의 동의서가 있었다. 서명은 모두 같은 필체였다.
“이 아이들은 부모 동의서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윤서가 말했다.
“그 말을 들었습니까?”
“리안이 직접 말했습니다. 그 내용은 공개를 허락했어요.”
“그 아이의 위치는요?”
“알지 못합니다.”
마리온은 윤서의 표정을 살폈다. “당신은 에녹의 변호인입니다. 그가 아이들을 데려간 사실을 알고도 숨길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사실을 확인할 독립 상담관을 요청한 겁니다. 아이가 안전한지, 돌아가고 싶은지, 누군가 강요하고 있는지 따로 물을 수 있습니다.”
마리온은 신청서를 읽었다. “요정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인간 법정의 상담관이 만날 수 있습니까?”
“그건 법원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위치를 공개하지 않아도, 아이의 의사를 전달할 방법을 만들 수 있어요.”
“법원은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서명이 진짜인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마리온은 서명 대조 기록을 내놓았다. 부모 진술서는 왕실 서기관이 대신 작성했고, 부모들은 읽지 않은 채 도장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기관은 이미 사망해 질문할 수 없었다. 윤서는 동의서가 작성된 날짜와 부모의 이동 기록을 비교했다. 서명은 모두 같은 날 찍혔고, 부모들은 그날 다른 도시의 구호소에 있었다.
“이건 강요된 서명일 수 있습니다.” 윤서가 말했다.
“아직은 추정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당사자를 불러 확인해야 합니다.”
마리온은 원본 계약서를 기록고에서 가져오기로 했다. 윤서는 그 약속을 문서로 남겨 달라고 했다. 검사도 서명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마리온은 승소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증거가 왜곡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받아들였다.
그날 오후 법정은 아이들 진술서의 번역 과정을 심리했다. 통역관은 고대 은문을 왕실 지침에 따라 옮겼다고 했다. 윤서는 지침을 제출하게 했다. 지침의 첫 장에는 ‘요정 영역으로 안내’가 ‘납치’로 번역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지침이 만들어진 뒤, 동일한 단어가 경계 계약에 수십 번 쓰였다.
“이 번역 지침은 언제 승인됐습니까?”
“왕실 경계관리청이 제정했습니다.”
“법원이나 양측 계약 당사자가 동의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이 지침은 법률이 아니라 내부 행정 규칙이군요.”
검사는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는 번역 지침의 적용 범위를 제한했다. 원문과 통역 절차를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 ‘납치’라는 표현은 확정 사실이 아니라 혐의로 기록하기로 했다.
에녹은 피고석에서 윤서를 바라봤다. 그는 고맙다는 손짓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계약서의 조항을 가리키며 ‘보호 기간’이라고 말했다. 윤서는 그가 재판에서 어떤 문구를 공개하지 않으려는지 물었다.
“계약은 아이들을 보호한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으로부터 보호받는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왜요?”
“기록이 공개되면, 그들을 찾는 자가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럼 비공개 심리로 아이들의 의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에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정보가 어디까지 공개되어도 되는지 범위를 정했다. 아이들의 위치와 이름은 공개하지 않되, 그들의 자발성에 관한 판단을 독립 상담관에게 맡기는 데 동의했다. 윤서는 그 동의를 재판 기록에 남겼다.
마리온은 상담관 후보를 세 명 제시했다. 모두 왕실이 임명한 사람이었다. 윤서는 한 명은 과거 경계관리청에서 일했고, 다른 한 명은 부모 진술서를 작성한 서기관의 동료라고 지적했다. 남은 후보는 휴직 중인 법원 상담관이었다. 판사는 그를 복귀시켜 비공개 면담을 맡겼다.
면담은 다음 날 진행됐다. 아이들의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상담관은 요정 영역의 연락 중계자를 통해 질문을 보내고, 아이들이 각자 답변을 봉인하도록 했다. 답변은 익명 번호로 법정에 도착했다.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당분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두 명은 가족을 만나고 싶지만, 왕실 경계관리청 직원과 단둘이 만나는 것은 거부했다.
검사는 답변이 에녹의 통제 아래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상담관은 각 아이에게 서로 다른 질문을 보냈고, 답변에 강압을 나타내는 표현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의사를 완전히 확인했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추가 면담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윤서는 그 보고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법정에는 요약만 제출하고, 아이들의 구체적인 답은 봉인 상태로 남겼다. 마리온은 이에 동의했다. 그녀는 아이들이 법정의 증거가 되기 전에 자신의 뜻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당신은 왕실을 위해 일하는 검사인데, 이 선택으로 불리해질 수 있어요.” 윤서가 물었다.
“불리하다는 것과 틀렸다는 건 다릅니다.”
그 답은 윤서에게 낯설지 않았다. 법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틀렸을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달랐다.
에녹은 윤서에게 새 계약 조항을 보여 줬다. ‘보호 대상자의 의사는 보호자의 판단보다 우선한다.’ 그 문장은 인간 번역본에서 삭제돼 있었다. 윤서는 왜 그가 첫 면담에서 이 부분을 공개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계약의 원본이 누구 손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당신은 저를 시험한 건가요?”
“그랬다.”
“그건 변호인과 의뢰인의 신뢰를 해치는 행동입니다.”
에녹은 고개를 숙였다. “네가 떠나도 계약상 막지 않겠다.”
윤서는 그 말이 사과를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숨기는 것이 있는지 전부 확인할 기회는 주겠다고 했다. 법정에서 변론을 이어가려면 원본 계약서와 아이들의 의견을 함께 공개해야 했다.
마리온은 왕실 기록고에서 원본 계약서를 가져왔다. 봉인은 훼손되지 않았지만, 계약서의 가장자리에 종이가 한 겹 더 붙어 있었다. 추가 조항이 끼워진 흔적이었다. 윤서는 원본을 받기 전에 봉인 상태를 사진으로 남기고, 참석자들에게 각자의 이름을 기록하게 했다.
원본의 은문에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문구가 명확히 있었다. 하지만 인간어 번역에는 ‘보관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 다음 문장은 더 중요했다. ‘보호 대상자는 이유를 알 때까지 계약 당사자에게서도 자유롭게 머물 장소를 선택한다.’ 이 조항은 복사본에서 통째로 사라졌다.
마리온은 원본의 봉인에 찍힌 왕실 인장을 확인했다. “이 계약을 번역한 사람은 누구죠?”
기록고 장부에는 번역 담당자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대신 ‘윤서의 동생’과 같은 날 실종 처리된 어린 기록 조수 한 명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윤서는 그 이름을 보자 손이 멎었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동생의 이름이었다.
판사는 다음 공판을 열어 기록고 담당자를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윤서는 원본 계약을 변론 자료에 포함하고, 동생의 실종 기록은 별도 조사로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에녹은 그 요청에 동의했다.
법정 복도에서 마리온이 다가왔다. “이 사건을 맡은 이유가 동생 때문입니까?”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요?”
“그 기록이 재판의 증거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마리온은 자신도 폐기 기록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윤서에게 왕실 기록고의 출입 허가서를 건넸다. 허가된 시간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윤서는 동생의 이름이 적힌 기록을 잠시 바라봤다. 원본 계약서를 만든 사람이 동생이었다면, 아이들을 데려간 이유를 알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실종 문서에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더 깊은 질문을 불렀다.
에녹은 법정 계단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네 동생이 요정 영역에 있을 수 있다.”
“그걸 언제 알았죠?”
“처음 면담 때.”
윤서는 그를 노려봤다. 그는 다시 숨겼다. 에녹은 동생이 살아 있다고 확신할 수 없고, 기록고 원본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일 같이 갑시다. 하지만 제가 묻기 전에는 동생 이야기를 하지 마세요.”
“알겠다.”
그날 밤 윤서는 법원에서 가져온 자료를 전부 정리했다. 원본 계약서와 번역 지침, 아이들의 익명 답변, 동생의 기록 번호. 문서의 날짜가 모두 같은 날에 집중돼 있었다. 왕실은 그날 경계 숲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한 번에 기록에서 지웠다.
새벽 기록고 문 앞에서 마리온은 열쇠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안쪽 서가에서 누군가 뛰쳐나왔다. 그의 손에는 불붙은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윤서는 불길보다 먼저 종이에 적힌 익숙한 이름을 보았다. 동생의 이름 아래, ‘요정 공작의 변호인 윤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심리가 끝난 뒤 윤서는 상담관의 면담 방식에 대해 추가 조건을 신청했다. 아이들은 질문을 거부할 수 있고, 자신의 답을 철회할 수도 있어야 했다.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마리온은 절차 변경이 재판을 늦출 것이라며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법원 서기관에게 모든 답변의 봉인 시간을 기록하라고 요청했다.
“오늘은 당신 말이 맞았어요.” 마리온이 말했다.
“오늘만요?”
“증거가 달라지면 판단도 달라져야 하니까요.”
윤서는 동생의 기록을 보며 그 말을 떠올렸다. 사실은 한 번 정해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바꾸거나 문장을 잘라 내면 같은 사건도 다른 뜻이 됐다. 그래서 원본의 위치와 번역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했다.
에녹은 아이들의 답변을 읽고도 누구를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각 아이에게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와 기간을 적어 보냈다. 아이들은 그중 하나를 고르거나 다른 곳을 요구할 수 있었다. 한 아이는 부모와 만나고 싶다고 답했고, 다른 아이는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서로 다른 선택이 계약에 함께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