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공작의 변호인

3화: 동생의 이름
윤서는 불붙은 서류를 든 사람을 쫓지 않았다. 먼저 물통을 가져와 기록고 문 앞에 있던 마리온에게 건넸다. 불은 종이 한쪽을 태우고 있었다. 마리온은 젖은 천으로 불길을 눌렀고, 에녹은 타지 않은 서류를 문밖으로 옮겼다.
“기록을 훼손하려 한 겁니까?” 윤서가 물었다.
남자는 기록고 보조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서류를 태우려 한 게 아니라, 이미 불이 붙은 종이를 옮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서는 그가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보았다. 손가락 끝에 검은 재가 묻었지만, 손바닥에는 그을음이 없었다. 문서에 불을 붙인 사람이 그를 지나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누가 불을 냈는지 봤습니까?”
“못 봤습니다.”
“그럼 추측으로 다른 사람을 지목하지 마세요.”
마리온은 기록고를 폐쇄하고 출입자를 확인했다. 보조관은 윤서가 동생의 기록을 노리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윤서는 허가서와 공판 자료를 제출했다. 마리온은 출입 기록에 윤서의 이름과 시간을 적었다.
화재가 번진 서가에는 실종 아동 기록이 보관돼 있었다. 윤서는 탄 문서에서 동생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 옆에는 접수 번호와 계약 문서의 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기록은 아이를 실종자로 등록한 날, 요정 공작과의 계약을 폐기한 것처럼 꾸몄다.
“계약을 폐기한 기록은 원본과 일치하지 않아요.” 윤서가 말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폐기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마리온이 답했다.
에녹은 문서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그 아이를 데려간 것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경계를 넘었다.”
윤서는 그 말을 바로 믿지 않았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계약에 서명한 보호자가 아이를 넘겼다. 아이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 선택을 기록했다.”
“그 기록은요?”
“원본은 숲에 있다.”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죠?”
“네가 동생을 찾기 위해 변호를 맡는다면, 계약이 무너질 수 있다. 나는 아이의 위치를 법정에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윤서는 그 이유를 이해했지만, 숨김을 용서하지는 않았다. “재판에서 필요한 범위는 공개해야 합니다. 동생의 의사와 안전을 확인할 방법도 마련해야 해요.”
“그렇다.”
마리온은 원본 계약의 폐기 기록을 대조했다. 왕실 장부에는 계약 번호가 두 번 사용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실종 아동을 위한 보호 계약, 두 번째는 경계 통행 허가였다. 이름과 서명은 같은 사람이 썼지만, 날짜가 달랐다. 누군가 계약의 번호를 재사용해 기록을 덮었다.
기록고 보조관은 불을 낸 사람이 기록관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관장은 10년 전 은퇴했다. 마리온은 당시 기록을 담당한 직원 명단을 찾았다. 명단의 마지막 이름은 윤서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이 기록을 보았을까요?” 윤서가 물었다.
“이 장부를 직접 다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마리온이 답했다. “하지만 기록에서 이름이 지워진 이유를 조사할 수는 있습니다.”
“그때도 조사를 했나요?”
마리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수사 기록을 본 적 있지만, 실종 사건이 종료된 줄 알았다고 했다. 윤서는 그 기록이 무엇에 근거해 종료됐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록고를 안전하게 만든 뒤, 윤서는 법원으로 돌아가 긴급 심리를 신청했다. 원본 계약이 존재하고, 아이의 의사를 확인할 독립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검사는 아이들의 실종을 해결하려면 위치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서는 위치 공개 없이도 상담관이 증언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판사는 요정 영역에 법원 지정 상담관이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을 확인했다. 대신 중립 통역관을 지정해 질문과 답변을 봉인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답변을 공개할 범위와 시점을 직접 선택하게 된다. 에녹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윤서는 면담에서 사용할 질문을 준비했다. ‘누가 데려갔는가’ 대신 ‘어디에 있고 싶은가’, ‘누구와 만나고 싶은가’, ‘현재 안전한가’를 물었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과거 사건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도 넣었다. 마리온은 그 질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법정은 실종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을 열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중립 통역관을 통해 질문이 전달됐다. 아이들의 답변은 하나씩 돌아왔다. 다섯 명은 당분간 요정 영역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한 명은 부모를 만나고 싶지만 혼자 만나기는 싫다고 했다. 마지막 한 명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 답했다.
윤서는 그 답을 재판 기록에 넣되, 상세한 문장은 봉인했다. 법원은 아이들을 강제로 데려올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에녹의 책임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보호 계약의 원본과 부모의 동의 여부를 더 확인해야 했다.
에녹은 윤서에게 원본 계약서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는 인간 법정이 원본을 요구하면 요정 공국의 기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보호 대상자의 과거와 현재 위치가 드러날 위험이 있었다.
“당신이 공개를 결정해도 아이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윤서가 말했다.
“알고 있다.”
“그럼 당신 혼자 결정하지 마세요.”
“하지 않겠다.”
그들은 계약을 수정했다. 원본 문서는 재판부가 지정한 중립 기록관이 확인하고, 보호 대상자의 이름과 위치는 가리기로 했다. 에녹은 그 조항에 서명했다. 윤서는 계약서에 변호인으로서 확인 도장을 찍었다.
마리온은 윤서에게 동생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윤서는 기록에 적힌 이름과 어릴 때 불렸던 이름이 같지 않다고 했다. 왕실 기록에는 ‘윤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가족은 그를 ‘하람’이라고 불렀다. 동생이 어느 이름을 원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직접 물어보면 됩니다.” 마리온이 말했다.
“그게 가능할까요?”
“법원의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청원하겠습니다.”
윤서는 마리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여전히 법정에서 다투는 상대였지만, 기록을 확인하는 일에서는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요정 공국에서 봉인된 답변이 도착했다. 중립 통역관이 전한 문서에는 아이의 이름이 ‘하람’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장 하나가 더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누나가 나를 찾는다면 만나겠다.’
윤서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동생은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고 싶어 하는지는 별개의 질문이었다. 그녀는 만나고 싶다는 뜻과 돌아오고 싶다는 뜻을 혼동하지 않으려 했다.
에녹은 숲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윤서는 법원의 허가를 받은 뒤 가겠다고 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결정해.”
다음 공판에서 윤서는 요정 공작을 변호하면서도 보호 계약의 허점을 공개하기로 했다. 계약은 아이들의 의사를 적었지만, 부모에게 알릴 절차가 없었다. 그 빈칸이 보호였는지, 숨김이었는지 판결로 확인해야 했다.
법정 앞에서 마리온은 폐기 장부의 일부를 가져왔다. 그녀는 윤서의 어머니가 실종 기록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필적 감정 결과를 보여 줬다. 대신 누군가 다른 사람의 서명을 본떠 기록을 종결한 흔적이 있었다.
“동생을 지운 사람은 아직 왕실 기록고 안에 있습니다.” 마리온이 말했다.
윤서는 문서를 받아 들었다. 자신의 동생은 사건의 피해자이자 증인이었다. 에녹은 피고이면서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했다. 마리온은 검사였지만 기록 조작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재판은 납치의 진위를 넘어, 누가 이름을 지우고 누구를 보호했다고 주장했는지 묻는 자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윤서는 동생이 남긴 계약 기록을 읽을 수 있도록 중립 통역관을 요청했다. 서류에는 하람의 손글씨가 있었다. “저는 제가 원해서 숲으로 갔습니다. 돌아갈 때까지 이름을 바꾸지 말아 주세요.” 문장은 짧았지만, 왕실 번역본과 달랐다. 번역본은 ‘보호자가 아동의 이름을 변경한다’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 주어를 바꾼 것이다.
윤서는 기록의 원본과 번역본을 동시에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에녹은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동생이 허락한 이름이니, 공개할 범위도 하람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들은 통역관을 통해 다시 동의를 구했다.
하람은 자기 이름은 법정에서 밝혀도 좋다고 했다. 다만 현재 위치와 함께 있는 사람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를 원했다. 윤서는 그 선택을 문서에 정확히 남겼다. 누나로서 듣고 싶은 말과 변호인으로 지켜야 할 경계가 달랐다. 그녀는 그 차이를 감당하기로 했다.
마리온은 폐기 장부를 조사하다 원본 계약을 번역한 기록관의 서명을 찾았다. 그 기록관은 윤서의 어머니였다. 이름 옆에는 ‘해석 거부’라는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번역을 거부한 이유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 다음 장에는 다른 사람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왕실 경계관리청장의 서명과 함께, 번역문을 그대로 공식 기록으로 인정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어머니가 틀린 번역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증거예요.” 마리온이 말했다.
“그 뒤에 누가 기록을 바꿨는지 밝혀야 합니다.”
그들은 당시 기록관장을 소환하기로 했다. 그는 은퇴했지만, 아직 왕실 도서관의 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윤서는 증인 질문을 준비하며 어머니가 왜 말을 남기지 않았는지 생각했다. 어머니는 딸에게 비밀을 숨기려 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알 수 없는 위험에서 지키려 했을까.
에녹은 함께 기록관을 만나겠다고 했지만, 윤서는 먼저 본인이 단독 면담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윤서는 그에게 동생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덧붙였다.
하람의 답은 다음 날 도착했다. 그는 누나를 만나고 싶지만, 에녹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서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에녹은 숲의 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답했다.
윤서는 법원 허가서를 받고 경계 숲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하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예전보다 키가 자랐고, 손에는 같은 조개 모양 장식이 들려 있었다. 윤서는 동생을 끌어안기 전에 물었다.
“안아도 괜찮을까?”
하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는 그를 안았다. 그가 돌아가겠다고 말할지, 남겠다고 말할지는 아직 묻지 않았다. 오늘은 그가 자기 이름을 선택해 말할 수 있다는 것만 확인했다.
숲 밖에서 기록관의 사자가 도착했다. 그는 윤서의 어머니가 번역을 거부한 이유를 기록한 별도 문서가 왕실 금고에 있다고 알렸다. 그 문서의 열람은 다음 공판에서 허가될 예정이었다. 봉인에는 섭정대공의 개인 인장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