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공작의 변호인

1화: 피고석의 공작
윤서는 법정 문 앞에서 사건 기록을 다시 펼쳤다. 피고는 요정 공작 에녹 아르벨. 혐의는 미성년자 납치와 불법 경계 통행. 피해자 명단에는 아이 일곱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고자는 왕실 경계관리청, 증거는 찢긴 계약서 한 장과 숲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신발이었다.
공판은 한 시간 뒤 시작이었다. 윤서는 국선 변호인으로 임명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 에녹은 면담을 두 번 거절했고, 세 번째에야 변호인 접견을 받아들였다. 그가 처음 한 말은 “나는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다”였다.
“그럼 어디로 갔습니까?” 윤서가 물었다.
“숲 안에 있습니다.”
“안전한가요?”
“내가 지키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나요?”
에녹은 답하지 않았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윤서는 기록을 넘겼다. 아이들의 부모는 실종 신고를 했지만, 진술서마다 ‘납치’라는 표현이 반복됐다. 각기 다른 사람의 말이라기에는 문장 순서와 오탈자까지 같았다.
“이 진술서를 누가 작성했죠?”
“왕실 기록관.”
“부모가 말한 걸 옮겼습니까, 왕실이 정한 문구에 부모가 서명했습니까?”
에녹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의 답은 불완전했다. 윤서는 모르는 사실을 억지로 채우지 않기로 했다. “재판에서 거짓말하지 마세요.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세요. 보호 중인 아이의 위치는 공개할 수 없더라도, 위험 여부와 당사자의 동의는 알려야 합니다.”
에녹은 그녀를 살폈다. “인간 법정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저도 아직 당신을 믿지 않아요. 증거를 보겠습니다.”
그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옷 안에서 금속판을 꺼냈다. 판에는 요정 문자와 인간의 도장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경계 계약 17호.’ 윤서는 번역본에 적힌 조항과 원문을 비교했다. 번역본에는 ‘아이들을 데려간다’고 적혀 있었지만, 은문 글자는 ‘아이들을 경계 너머로 안내한다’에 가까웠다.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왕실에 있다.”
“이 금속판은?”
“사본이다.”
“원본과 다를 수 있겠네요.”
“내가 맺은 약속은 다르지 않다.”
“당신의 기억은 증거가 아닙니다.”
에녹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럼 네가 증거를 찾아라.”
윤서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의뢰인은 변호인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금속판을 돌려주고 법정으로 향했다. 피고석에 앉은 에녹의 손목에는 은색 구속 고리가 채워져 있었다. 요정의 마력을 억제하는 장치였다. 고리 표면에는 인간의 법률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피고는 인간 법정의 관할을 인정합니까?” 판사가 물었다.
에녹은 윤서가 가르쳐 준 손짓으로 답했다. “재판을 받겠습니다.”
그 대답은 통역관을 거쳐 법정 기록에 올라갔다. 검사는 실종 아동의 진술을 제출했다. 아이들은 경계 숲에서 자신을 데려간 사람이 은빛 머리의 남자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술서에는 부모의 서명이 없었다. 아이들의 나이는 열 살에서 열세 살 사이였다.
윤서는 선서한 통역관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의 원문 진술을 들었습니까?”
“예.”
“그들은 ‘데려갔다’고 했나요, ‘안내받았다’고 했나요?”
“같은 의미로 번역했습니다.”
“같은 의미라고 누가 결정했습니까?”
통역관은 검사를 바라봤다. 검사는 이의를 제기했다. 판사는 질문에 답하라고 했다.
“왕실 경계관리청의 번역 지침입니다.”
윤서는 지침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사는 자료 제출을 미뤘다. 재판의 첫 시간이 지나갔다. 판사는 원본 계약서를 다음 공판까지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휴정 중 윤서는 에녹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경계를 넘었습니까?”
“그렇다.”
“왜요?”
“부모가 아이들을 넘겼다.”
“그럼 부모 동의서가 있나요?”
“없다.”
“당신은 아이들의 선택을 확인했습니까?”
에녹은 대답을 늦췄다. “그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요?”
“묻지 않았다.”
윤서는 기록장에 그 답을 적었다. “그럼 재판에서 보호라고만 주장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왜 돌아가기 싫었는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밝혀야 해요.”
“그들의 위치를 공개할 수 없다.”
“위치는 감출 수 있어도, 독립된 상담관에게 의사를 전할 수는 있어요.”
에녹은 침묵했다. 윤서는 그가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의 안전을 걸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증언을 막는 정당한 이유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법정이 다시 열리자 검사는 계약서 번역본을 제출했다. 번역본에는 ‘제공자는 일곱 명의 아이를 요정 영역으로 넘기며, 공작은 그들을 보관한다’고 적혀 있었다. 윤서는 문장을 읽다가 단어 하나를 짚었다. ‘보관한다’는 번역은 은문에서 ‘안전하게 머무르게 한다’와 같은 어근을 사용했지만, 목적어를 소유물로 만들 수 있는 해석이었다.
“이 문서의 번역자는 누구입니까?”
“왕실 번역관 세 명입니다.”
“원본 문서도 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중 한 사람의 서명이 빠져 있습니다.”
검사는 자료가 완전하다고 주장했다. 윤서는 문서 하단의 도장 압력이 다른 것을 지적했다. 번역본은 세 번 접혔지만, 은문 원본의 자국은 없었다. 원본을 옮겨 적은 뒤 나중에 도장을 찍은 흔적이었다.
판사는 원본 제출을 재차 명령했다. 검사는 원본이 왕실 기록고의 봉인 안에 있다고 답했다. 제출까지 며칠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윤서는 에녹에게 원본의 위치를 아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진 것은 사본뿐이다. 원본은 계약을 보관한 자가 가지고 있다.”
“누가 보관했습니까?”
“경계관리청.”
“그럼 그쪽이 원본을 숨기고 있군요.”
“그럴 수도 있다.”
그가 말한 ‘그럴 수도 있다’는 처음으로 확신 없는 답이었다. 윤서는 원본이 없으면 번역 오류를 재판에서 다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왕실 기록고 열람을 청구했다. 검사는 왕실 기밀이라고 반대했다. 판사는 열람 여부를 심리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재판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 한 소녀가 윤서의 소매를 잡았다.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아이는 피해자 명단에 있던 이름 중 하나, 리안이었다. 법정에는 부모가 오지 않았고, 소녀는 방청석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공작님이 우리를 데려간 게 아니에요.” 아이가 말했다.
윤서는 아이의 손을 떼어 놓지 않았다. “네가 직접 말하고 싶니?”
“네. 그런데 말하면 엄마가 다시 데려갈 거예요.”
“어디로?”
“경계관리청 숙소요. 거기서 내 이름을 바꾸려고 했어요.”
윤서는 그 말을 기록하기 전에 아이에게 물었다. “네 이름과 말한 내용을 재판에 써도 괜찮아?”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지금 어디 있는지는 말하지 마세요.”
“그건 약속할게.”
리안은 소매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거기에는 어른들의 서명이 적힌 문서가 있었다. 윤서는 문서를 받기 전에 아이에게 출처를 물었다. 리안은 경계관리청 직원이 숲에서 떨어뜨렸고, 자신이 주워 왔다고 했다. 문서에는 ‘보호 대상자 명단을 정리하고 부모의 서명을 받는다’고 쓰여 있었다.
윤서는 아이의 증언을 법정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리안은 공개 범위를 확인한 뒤 동의했다. 그러나 문서 원본은 없어졌고, 아이가 가진 것은 작은 사본이었다. 윤서는 종이에 지문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문서에는 검은 잉크와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때 검사가 복도로 나왔다. 그는 리안을 알아보고 보호를 이유로 데려가려 했다. 윤서는 아이가 증언을 허락했고, 변호인과 면담 중이라고 말했다. 검사는 미성년자를 변호인이 붙잡을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에녹이 피고석에서 나왔다. 구속 고리가 빛나며 그를 멈춰 세웠다. 그는 리안을 보지 않고 윤서를 향해 손짓했다. ‘선택은 아이에게.’
윤서는 그 뜻을 검사에게 전달했다. 검사는 아이의 보호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리안은 부모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검사는 법원의 별도 상담관을 부르기로 했다.
소녀는 윤서에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알려 줬다. “리안입니다. 바뀌기 전 이름이에요.”
윤서는 이름을 기록장에 적었다. “이 이름을 그대로 보관할게.”
그날 밤 윤서는 계약서 사본을 다시 살폈다. 조항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보호 기간은 증언자가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번역본에서는 이 문장이 빠져 있었다.
에녹은 면담실에서 그 문장을 확인하고도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윤서는 그가 일부러 감춘 이유를 물었다.
“네가 원본을 찾으면 알게 될 것이다.”
“제가 그때까지 당신을 변호하길 원한다는 뜻인가요?”
“네가 계속 선택한다면.”
윤서는 변호인 계약을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판은 그의 무죄뿐 아니라 아이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다루게 될 것이다. 그녀는 리안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증언할 수 있는 절차를 신청했다.
법정을 나서려는 순간, 검사 마리온이 그녀를 붙잡았다. “당신의 동생 이름이 기억납니까?”
윤서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릴 때 경계 숲에서 사라진 동생의 이름은 오래전 기록에서 지워졌다. 마리온은 왕실 기록고에서 발견한 폐기 목록을 펼쳤다. 그 안에는 윤서의 동생이 실종된 날과 같은 날짜의 ‘요정 계약 관련 아동 기록 삭제’라는 문구가 있었다.
윤서는 법정 기록의 사본을 개인 장부에 옮겼다. 원본을 빌릴 수 없는 기간에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문서 번호와 페이지마다 표식을 적었다. 에녹은 서재에서 기다렸고, 자신의 손을 문서에 대지 않았다. 그는 변호인의 기록 방식을 존중하기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제가 동생을 만나면, 당신은 함께 오지 않아도 됩니다.” 윤서가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밖에서 기다리겠다.”
“그가 당신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 선택도 받아들이겠다.”
그 대답은 에녹이 처음 면담에서 보여 준 태도와 달랐다. 그는 보호를 이유로 아이들의 선택을 대신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 선택이 자신의 통치와 무관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윤서는 계약서에 그 변화를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공판에서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