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의 목격자는 매일 바뀐다

1화: 빈 좌석 6C
오지완 형사는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전화를 받았다.
“막차에서 살인을 봤다는 신고가 또 들어왔습니다.”
지하철 수사대의 조현수 경위가 말했다. 또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다. 지완이 사건 파일을 처음 본 건 사흘 전이었다. 신고자는 승객이었고, 피해자는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같은 열차에서 신고한 승객은 피해자를 붉은 목도리를 한 여자라고 진술했다. 어제는 기관사가 신고했다. 그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빈 좌석에서 피 냄새만 났다고 했다.
“이번 신고자는요?”
“대학생입니다. 역에 내려서 바로 신고했어요. 피해자는 남자, 칼에 찔렸다고 합니다.”
“시신은요?”
“없습니다. 출혈도 없고요.”
지완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 사건이 아니라 장난일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렇다고 세 명이 다른 날 같은 열차에서 같은 시각에 신고한 일을 장난으로 묶을 수도 없었다.
차고지에 도착했을 때 열차는 정비선에 세워져 있었다. 승객은 모두 내린 뒤였다. 형광등 아래 바닥은 말끔했다. 청소 담당자가 손걸레를 빨고 있었다. 열차 내부에는 살인 사건에서 흔히 보이는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현수는 신고자 인적 사항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최민아, 스물한 살, 대학생. 그녀는 인근 역무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완은 우선 열차를 훑었다. 마지막 칸부터 좌석을 확인했다. 좌석 번호는 창문 위에 작게 붙어 있었다. 이 열차는 도심과 외곽 차고지를 잇는 예약제 심야급행이라 모든 좌석이 지정석이었다. 6A부터 6C까지 붙은 표기도 승객이 예약한 자리를 확인하는 고정 번호였다.
6A, 6B, 6C.
6C의 창문만 김이 서려 있었다. 다른 유리는 실내 온도와 비슷해 맑았다. 지완은 장갑을 끼고 손등으로 유리를 만졌다. 차가웠다. 손자국은 없었다.
“이 칸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정비기사 박도윤이 멀리서 말했다. 그는 선로 공구함을 닫고 있었다. 지완은 신분을 밝히고 어젯밤 열차 점검을 물었다.
“보통과 같았습니다. 운행 뒤에 문, 손잡이, 비상 장치 확인했어요.”
“이 좌석은요?”
도윤은 6C를 보고 잠깐 멈췄다. “특이사항 없었습니다.”
“그럼 왜 여기만 김이 맺혔죠?”
“열차가 정차해 있어서 온도 차가 생긴 걸 수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점검표를 확인하겠습니다.”
지완은 메모지에 좌석 번호를 적었다. 그가 고개를 숙인 사이 객차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철로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 같기도 했다.
“들으셨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공구함을 들고 다음 칸으로 옮겼다.
민아는 역무실에서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고 있었다. 경찰을 보자 컵이 손에서 흔들렸다. 지완은 녹음기를 켜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열차 안에 있던 다른 승객은 못 봤다고 말했다.
“못 봤는데 살인을 봤다고 신고했습니까?”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얼굴이 생각 안 나요.”
“피해자 얼굴은요?”
“회색 코트였어요. 가슴 쪽에 피가 번졌고요.”
“가해자는요?”
“모자를 쓴 사람. 문이 닫히기 전에 내렸어요.”
“어느 역에서요?”
민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성수역 같아요. 아니, 그 전 역이었을 수도 있어요.”
열차 운행 기록은 그 구간에서 문이 열린 적이 없다고 했다. 지완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신고 직전 승차한 역과 하차한 역을 확인했다. 민아의 교통카드는 종점 직전 역에서 찍혔다. 하차 기록은 남지 않았다.
“카드를 찍고 나가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정신이 없었어요. 내리자마자 전화했어요.”
“역 안에 계속 계셨군요.”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역무실 문이 열렸다. 윤보리가 파일 상자를 안고 들어왔다. 기록 관리 부서에서 교통카드 자료를 가져왔다는 설명이었다.
“오늘 신고자 카드 외에 누락된 승차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누락된 거라면 삭제됐다는 뜻입니까?”
“아직은 시스템 중복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카드가 종점 전 역과 차고지에서 동시에 인식됐어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기록이네요.”
“그래서 원본 로그를 가져왔습니다.”
보리는 자료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카드 번호는 일부가 가려져 있었지만, 탑승 시각은 0시 41분이었다. 신고가 반복되는 열차가 출발한 시각과 같았다. 그 카드의 이름은 공란이었다.
“이 기록은 언제부터 있었죠?” 지완이 물었다.
“기록이 존재한 건 작년부터예요. 다만 이름이 빈 상태라 자동으로 오류 분류됐습니다.”
“승객 수에는 포함됩니까?”
“운임 정산엔 포함되지 않았어요.”
지완은 열차 CCTV를 요청했다. 운전실 화면과 객차 카메라를 함께 열어야 했다. 첫 신고가 있었던 밤의 녹화는 정상으로 보였다. 승객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졸고 있었다. 6C는 비어 있었다. 열차가 역에 들어설 때 화면이 한 프레임 끊겼다.
두 번째 밤에도 같은 자리에서 한 프레임이 비었다. 세 번째 밤에는 두 프레임이 끊겼다.
“영상 오류입니까?”
“일반적인 손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리가 말했다. “세 번 모두 같은 구간, 같은 좌석 방향에서 끊겼어요.”
“영상이 끊기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확정은 못 합니다.”
지완은 재생 속도를 낮췄다. 6C의 창에는 좌석에 앉은 사람의 반사가 아주 잠깐 나타났다. 화면 속 객차는 비어 있었다. 반사된 사람은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확대할 수 있습니까?”
보리가 모니터 앞에 섰다. 화질은 낮았지만, 반사된 사람의 왼손에 작은 별 모양 문신이 보였다. 지완의 목이 굳었다. 여동생 지수의 왼손에도 그런 문신이 있었다. 지수는 12년 전 폐쇄된 13호선 사고 이후 연락이 끊겼다.
그는 화면을 한 번 더 돌려봤다. 이번에는 사람이 없었다. 파일의 타임코드는 정상적으로 이어졌다.
“영상 원본을 복사해 주세요. 해시값도 같이 남기고요.”
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작업복 소매에는 선로 기름이 묻어 있었다.
“그 자리는 비워 둬야 합니다.”
“왜죠?”
“정비 기록에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누가 적었습니까?”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완은 그를 가로막지 않았다. 대신 점검표 사본을 요구했다. 도윤이 서류를 꺼내는 동안 지완은 빈 승차 기록의 카드 번호 끝자리를 확인했다.
그 숫자는 지수의 옛 학생증 번호와 같았다.
열차 내부에서 다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모두가 들었다. 6C 창문에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맺혔다. 안쪽에서 찍힌 자국이었다.
보리는 자료 상자를 꼭 끌어안았다. 도윤은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지완은 유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지완은 먼저 현장을 보존하라고 지시했다. 손바닥 자국의 크기와 방향을 촬영하고, 유리 표면은 닦지 않도록 역무원에게 알렸다. 그는 자국 가까이에 자를 댄 뒤 전체 사진과 부분 사진을 나누어 찍었다. 자국은 손가락 다섯 개가 모두 찍힌 형태가 아니었다. 네 개의 흔적만 남았고, 엄지손가락 자리는 비어 있었다.
“유리 안쪽과 바깥쪽을 따로 확인하겠습니다.”
도윤은 열차 문을 열지 않은 채 바깥쪽을 비췄다. 먼지와 얼룩은 바깥에 없었다. 자국의 윤곽은 유리 표면보다 안쪽에 가까워 보였지만, 손으로 만지지 않고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완은 장비를 요청하고, 해당 칸에 출입한 사람을 전부 기록했다. 자신과 보리, 도윤, 청소 담당자의 이름을 빠뜨리지 않았다.
청소 담당자는 새벽 전에 바닥을 닦았지만 창문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세 번의 신고가 이어진 뒤로 마지막 칸 청소를 혼자 맡기 싫어졌다고 했다. 지완은 불편한 마음을 진술서에 넣지 않았다. 현장에서 본 것과 느낀 것을 구분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는 자국이 생기는 걸 못 봤습니다. 다만 어제 밤에도 이 자리 근처에서 차가운 바람이 나왔어요.”
“그 바람을 다른 사람도 느꼈습니까?”
“아니요. 동료에게 말했는데 못 느꼈다고 했습니다.”
보리는 온도 센서 로그를 찾았다. 마지막 칸의 센서는 정상 범위였지만, 6C 주변만 2분 동안 6도 낮게 기록됐다. 센서는 열차 중앙 시스템과 독립되어 있었고 최근 점검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 지완은 수치가 맞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 센서의 일련번호를 적었다.
“기계 오류일 가능성은 남겨 둡시다.”
“그럼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봤다는 사람도 오류일까요?” 민아가 물었다.
“사람을 기계처럼 취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건 판단에는 확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 말에 민아는 더 묻지 않았다. 지완은 자신이 피해자의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기록했다. 시신이 없고, 사라진 사람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살인이라고 확정할 수 없었다. 신고 내용을 사건명에 그대로 붙이는 대신 ‘막차 목격 신고’라고 적었다.
보리는 자료 상자를 꼭 끌어안았다. 도윤은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지완은 유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지완은 열차 무전을 통제실에 연결하고, 운행 보류 요청의 접수 시각을 확인했다. 담당자는 안전 문제로 분류하려면 구체적인 고장 항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완은 영상 누락과 좌석 주변의 온도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살인이 있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사건을 사실처럼 말하면 열차를 멈출 근거도 흔들릴 수 있었다.
“좌석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동안만 정차해 주세요.”
통제실은 10분을 승인했다. 지완은 승인 번호를 메모하고, 요청 내용과 응답자의 이름을 녹음 파일에 남겼다. 이상 현상을 과장하지 않아도 절차는 움직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누가 언제 무엇을 확인했는지 남기는 일이었다.
그는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오늘 막차 운행을 보류하세요. 6C 좌석에 누가 타고 있는지 확인할 때까지 이 열차는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유리의 김 위에 손가락 하나가 움직였다. 자국이 천천히 글자를 그렸다.
‘내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