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9화: 비가 그친 자리
도윤은 수아의 문자에 답을 쓰다가 전화기를 내렸다.
차량 옆에 숫자 표지가 놓이고 있었다. 감식 담당자가 열린 문과 남자의 자세를 먼저 찍었다. 조금 전까지 지후가 무릎을 댔던 자리도 따로 표시했다.
해진은 통제선 밖에서 통화를 마쳤다.
"발견 사실은 알렸습니다. 신원이 확인되면 다시 연락하기로 했어요."
"서랍부터 확인하면 안 됩니까?"
직원이 사무실을 가리켰다. 손에는 열쇠 꾸러미가 있었다.
"누가 쓰는 열쇠입니까?"
"공용이요. 문 기사 서랍 열쇠는 따로 있을 겁니다."
"그럼 열려고 하지 마세요. 서랍을 함께 쓰는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해진이 관할 형사를 불렀다. 서랍과 차량에서 확보할 자료의 범위를 정하는 동안 도윤은 직원 곁에 섰다. 그는 같은 차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퇴근할 때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뭡니까?"
"계산 맞추고 나갔죠.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차는 기억이……."
"차 말고 하신 일부터요. 사무실 문은 직접 잠그셨습니까?"
직원이 열쇠를 내려다봤다.
"다시 들어갔어요. 전화 받고. 문 기사가 잔돈 봉투 어디 뒀냐고 해서."
그가 휴대폰의 통화 목록을 열었다. 전날 밤 아홉 시가 조금 지난 곳에 문기석 이름이 있었다. 관할 형사가 화면과 진술을 함께 기록했다.
"전화로만 얘기하셨습니까?"
"봉투 가져다줬어요. 저 차 운전석에 앉아 있었어요. 창 내리고 받았고요. 비 오니까 빨리 가라고 했어요."
직원은 통화 시간을 보며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내일 손님 온다고 종이컵도 채워 놓으랬는데. 그걸 안 해 놨네요."
그는 사무실로 한 발 내디뎠다가 통제선을 보고 멈췄다. 열쇠들이 손안에서 부딪혔다. 도윤은 종이컵 이야기를 지우지 않았다. 전화 기록만으로 남자의 생존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봉투를 건넨 손과 대면한 얼굴을 다시 물었다.
직원은 얼굴을 봤으며 평소처럼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조수석에 누가 있었는지는 창 안쪽까지 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직원의 설명을 기록하고 검시를 기다리는 사이 관할 형사가 신분 자료와 지문 대조로 신원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문기석이었다. 해진은 수아에게 다시 전화했다.
도윤은 수첩의 두 시 약속 옆에 선을 그으려다가 펜을 뗐다.
그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검시 담당 의사는 남자의 목과 입안을 확인한 뒤 장갑을 바꿨다.
"목이 눌린 흔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방향이에요. 안쪽 손상은 부검으로 봐야 합니다."
사후 변화는 밤사이 사망했을 가능성과 맞지만 정확한 시각은 더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직원의 대면 진술도 함께 검토할 자료였다. 관할 형사는 부검 절차와 주변 영상 보존을 동시에 진행했다.
도윤은 차량을 옮기기 전에 문턱을 다시 봤다.
입술 안쪽 상처에서 이어진 흔적이 턱 아래와 옷깃에 남아 있었다. 감식 담당자는 운전석 옆 작은 얼룩을 검사하고 혈액 반응이 나온 부분을 촬영한 뒤 시료를 채취했다. 혈액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감정이 필요했다.
"밖에서 옮겨 앉혔을 가능성은요?"
지후가 물었다. 담당자는 좌석과 목, 옷깃 아래를 가리켰다. 굳은 자세와 눌린 자리, 피가 흐른 방향이 현재 앉아 있는 모습과 맞는다고 했다. 끌고 들어온 뚜렷한 자국은 찾지 못했다.
"여기서 공격받았을 가능성을 먼저 보겠습니다. 옮긴 흔적이 없다고 이동이 없었다고 정하는 건 아니고요."
도윤은 말없이 차의 바퀴를 봤다. 발견 뒤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신도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사라진 이수경의 차를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그 차에 관해 말하려던 사람이 자기 차 안에 남아 있었다.
감식 담당자가 차량 반대편 조수석 쪽으로 돌아갔다. 도윤은 열린 운전석 바깥에 쪼그려 앉았다. 손가락이 접힌 장갑을 벗었다. 손끝에 땀이 차 있었다.
첫 현장의 문이 떠올랐다. 목 안쪽을 누르던 힘도.
그때는 손이 닿은 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지금은 손을 거둘 수 있었다. 장갑을 다시 끼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검 결과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문기석의 신발 앞코가 보였다. 오른쪽 끈은 한 번 더 묶여 있었다. 내일 올 손님을 위해 종이컵을 채워 달라던 사람에게 도윤이 물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입술에서 옷깃을 지나 문턱으로 떨어진 듯한 작은 얼룩들이 보였다. 그중 촬영과 채취를 마친 지점 가장자리에 피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잔류물에 손끝을 댔다.
하나씩 숨을 셌다. 감식 표지의 검은 숫자를 보면서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열을 넘겼을 때 숫자가 흐려졌다.
지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 안이 사라졌다.
비가 지붕을 때렸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뜨려고 힘을 주었으나 검은 면은 갈라지지 않았다. 깜박인다는 감각조차 자기 뜻대로 따라오지 않았다.
빗방울이 굵어졌다가 가늘어졌다. 물이 차체를 타고 흘렀다. 바로 곁인데 멀리서 듣는 것처럼 먹먹했다.
오른쪽에서 냄새가 왔다.
처음에는 단내였다. 곧 코 안쪽을 서늘하게 만드는 향이 겹쳤다. 젖은 옷 냄새와는 달랐다. 향수 같은 냄새였다.
도윤은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돌아가지 않았다.
목 아래가 조였다. 공기를 들이마시려 할수록 턱이 더 무거워졌다. 혀끝에 피 맛이 남았다. 무엇을 밀어내려고 했는지 손끝에는 거친 천의 감촉만 걸렸다가 떨어졌다.
빗소리가 잠시 커졌다.
그 틈에서 향이 짙어졌다. 오른쪽 볼에 닿을 만큼 가까웠다. 누가 있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이 열렸는지 창이 내려갔는지 소리만으로 가를 수 없었다.
그는 한 번만 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숨이 끝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계속 내렸다. 그 소리에 맞춰 얼마든지 시간이 흐를 것 같았다. 누군가 사무실 문을 열고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것은 대답이 아니었다.
짙던 냄새가 멀어졌다. 혹은 냄새를 맡는 힘이 먼저 사라졌다.
도윤은 어느 쪽인지 붙잡지 못했다.
"강도윤!"
밝은 하늘이 돌아왔다.
무릎이 꺾였다. 지후가 겨드랑이를 받쳤다. 도윤은 차에 손을 짚으려다가 손바닥을 오므렸다. 손끝의 갈색 가루가 자기 것인지 문기석의 것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얼마나……."
"일 분쯤. 불러도 꿈쩍을 안 했어."
도윤은 다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후의 소매를 쥐는 대신 팔을 벌려 몸을 맡겼다. 신발 뒤축이 바닥을 짧게 끌었다.
통제선 밖 의자에 앉자 온몸이 늦게 무거워졌다. 한 번 숨 쉬는 데 어깨 전체를 써야 했다. 눈을 감으면 비가 다시 들릴 것 같아 맞은편 타이어만 보았다.
지후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 어디 댔어."
도윤이 열린 차 문 아래를 가리켰다.
"제가 장갑을 벗고 손을 댔습니다. 채취한 곳 가장자리입니다."
지후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곧바로 감식 담당자를 불렀다.
접촉한 위치를 표시하는 동안 도윤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해진은 왜 그랬느냐고 먼저 묻지 않았다. 손에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게 하고 접촉 시점과 장갑을 벗은 사실을 현장 기록에 남기도록 했다. 도윤은 손끝을 닦기 전에 담당자의 촬영에 응했다.
"먼저 채취한 시료와 닿은 자리는 구분하겠습니다. 이후 채취물에는 접촉 이력 붙이고요."
담당자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런 접촉을 허용한 적 없습니다. 경위는 따로 보고하세요. 오늘 현장 업무는 여기까지예요. 다시 진료받으세요. 이동 전에 상태부터 확인하고요."
해진의 목소리는 낮았다. 도윤은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손을 씻고 돌아와 물을 조금 마셨다. 목 안쪽의 감각은 물과 함께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개인 수첩을 폈다.
비. 시야 없음. 오른쪽의 단내와 서늘한 향. 목 압박. 얼굴과 말은 없음.
‘여자’라고 적으려던 펜을 세웠다. 향수 이름도 아는 것이 없었다. 같은 냄새를 맡으면 알아볼 수 있을지조차 지금은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남은 떨림 때문에 다음 줄을 조금 크게 썼다.
냄새의 주인은 보지 못함.
지후가 물병 뚜껑을 건넸다.
"뭐 떠올랐어?"
도윤은 수첩을 덮었다.
"조수석 쪽 냄새가 마음에 걸립니다. 향수 같은."
"지금 차에서 맡았어?"
대답이 늦었다. 지금 차에서 맡았다고 하면 지후는 현재 차량 냄새로 기록할 것이다. 도윤은 물병의 젖은 테두리를 문질렀다.
"확인된 현장 관찰로 쓸 수 없습니다."
지후는 잠시 그를 보았다.
"그럼 누가 탔다고 쓰지도 마. 방향제일 수도 있고 옷일 수도 있잖아."
"예."
"좌석 흔적은 감식에서 보고 있어. 그 결과 오면 같이 보자."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지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관할 형사에게 갔다. 조수석에는 누가 있었느냐는 질문 대신 양쪽 좌석에서 확보한 것을 구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차량 앞에서 운반 준비가 시작됐다. 도윤은 닫히기 전 조수석 문을 봤다. 밝은 오후에는 시트의 봉제선까지 보였다. 그 선명함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간이 더 무거웠다.
휴대폰이 울렸다. 수아였다.
도윤은 해진에게 발신자를 보여 준 뒤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한테 들었어요. 그분 돌아가셨다고."
수아가 숨을 삼켰다.
"제가 경찰에 사진 줬다고 해서 그런 걸까요?"
"그렇게 말씀드릴 근거는 없습니다. 사망 경위부터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럼 원장은요. 그것도 못 봤어요?"
"아직입니다. 문기석 씨에게 질문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입고표 뒤쪽도 확인하지 못했고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도윤은 직원에게 들은 내용까지 전하고 싶었지만 확인 중인 마지막 동선을 수아의 불안에 덧붙이지 않았다.
"사진을 보내신 경위와 만나기로 한 대화는 받아 두었습니다. 다시 같은 자료를 처음부터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답이 없어서 마음을 바꾸신 줄 알았어요. 제가 경찰까지 데려온다고 해서."
도윤은 사무실 창을 돌아봤다. 직원이 채워 두지 못했다던 종이컵이 생각났다.
"만나기 싫어진 줄 알고……. 아침에 좀 화가 났어요."
수아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도윤은 서둘러 위로를 보태지 않고 전화기를 붙들었다. 수아가 다시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 연락은 언제 받기 편한지 묻자 오늘은 계속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통화를 마친 도윤은 수첩 대신 사고 기록 사본을 펼쳤다. 정태건 이름이 보험금 수령자 칸에 있었다. 사고 전 차량을 누가 가져왔고 누가 찾아갔는지 적는 칸은 비어 있었다.
지후가 돌아오자 도윤은 그 빈칸을 짚었다.
"남편 면담 때 이것도 물어야 합니다. 사고 나던 시간에 어디 있었는지 말고 그 전에 차를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요."
지후가 관할 형사에게 면담 일정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도윤은 사본을 그에게 건넸다.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도윤은 자신만 젖은 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 따라갈 것은 그 냄새가 아니었다.
차 열쇠가 누구 손에서 누구 손으로 넘어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