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6화: 보내 둔 사진
사진보다 먼저 열린 것은 번호였다.
체포 다음 날 오전 관할서 분석실에서 도윤은 화면 아래 열한 자리를 읽었다. 연락처 이름은 ‘성철 형’이었다. 지후가 사건 기록에 등록된 피해자 번호를 옆에 놓았다. 숫자가 끝까지 맞았다.
"이름만 보고 고른 건 아닙니다."
분석 담당자가 대화 목록의 범위를 짚었다. 김성철과 배진만 사이의 사건 무렵 연락이었다. 전날 확보한 휴대폰 전체가 아니라 영장 범위에 따라 선별하는 중인 자료였다.
배진만은 변호인과 상의한 뒤 잠금 해제에 협조했다. 사진을 보면 자기가 돈 받으러 갔다는 걸 알 거라고 했다. 참여 절차를 진행한 담당자가 봉인 해제와 추출 내역을 기록했고 원본 기기는 다시 보관했다. 도윤 앞의 화면은 분석용 사본이었다.
"잠금 푼다고 혐의를 인정한 건 아니라고 거듭 말했답니다."
지후가 낮게 전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인정했는지는 조사에서 따로 물어야 했다.
화면에는 사건 당일 오후 여섯 시 사십일 분에 받은 사진 한 장이 표시돼 있었다. 도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담당자가 먼저 앞선 문자 두 개를 열었다.
운송비 입금은 언제 하느냐는 배진만의 독촉이었다. 김성철은 장부부터 맞춰 보자고 답했다. 그 뒤에 사진이 붙어 있었다.
"첨부 사진까지 추출됐습니다. 삭제 자료를 복원한 건 아니고요."
"그다음 답도 있습니까?"
지후가 물었다. 담당자가 아래로 내렸다. 여섯 시 사십육 분. 배진만 쪽에서 보낸 문자였다.
도윤은 읽으려다 손을 멈췄다. 사진을 먼저 보겠다고 하면 앞뒤를 다시 놓칠 것 같았다. 담당자는 대화 순서를 유지한 채 첨부 파일을 열었다.
희끗한 작업대 위에 검은 조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손톱 두 개쯤 이어 놓은 모양이었다. 가장자리 한쪽은 곧았고 다른 쪽은 이가 빠지듯 꺾여 있었다. 표면에는 형광등으로 보이는 흰 선이 비쳤다.
도윤은 확대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검은 유리처럼 보이는 조각이었다.
"유리로 보입니까?"
해진이 물었다. 도윤은 대답하기 전에 사진 바깥의 회색 여백을 보았다.
"그렇게 보입니다. 실물을 확인해야 합니다."
검은 조각 아래에는 누런 포장지 모서리가 나와 있었다. 사진 오른편은 잘려 있어 그 옆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담당자가 원래 배율로 돌렸다. 크기를 비교할 자도 동전도 없었다.
그다음 문자가 화면에 올라왔다.
‘이거 네가 가져가라는 상자에서 나왔다. 같이 온 종이에 눈을 뜬 채 본다 써 있는데 무슨 뜻이냐.’
도윤은 물컵을 들다가 멈췄다.
눈을 뜬 채 본다.
흔한 낱말들이었다. 읽는 데 한 번의 숨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글자를 읽고 나서도 컵이 입가에 닿지 않았다. 물 표면이 작게 흔들렸다.
"강 분석관님."
해진의 목소리에 도윤이 컵을 내려놓았다.
"계속 볼 수 있습니다."
해진은 바로 화면으로 돌아서지 않았다. 도윤이 손을 탁자에 내려놓는 것을 확인한 뒤 담당자에게 다음 문자를 요청했다.
‘그냥 둬. 내가 갈 테니까. 돈 얘기도 그때 해.’
배진만의 답이었다.
지후가 의자를 당겼다.
"창고 앞에서 처음 들이민 사진처럼 말했는데 미리 받았네."
"처음 봤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조금 늦게 나왔다.
"현장에서 다시 보여 줬을 수도 있습니다. 받은 사진인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그는 종이 위에 사진 수신, 답신 작성이라고 썼다. 문장 옆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펜 끝을 누를수록 글씨가 짙어졌다.
해진이 화면 아래의 시간을 가리켰다.
"이건 사진 찍은 시간입니까?"
"수신 기록 시각입니다. 첨부 파일에는 촬영 시각과 위치를 확인할 정보가 없습니다."
도윤은 사진을 다시 보았다. 누가 셔터를 눌렀는지 아직 모른다. 저 물건을 김성철이 실제로 만졌는지도 이 파일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김성철의 번호에서 온 질문은 남아 있었다. 사진 속 검은 물건이 무엇인지 배진만에게 물었고 배진만은 가겠다고 답했다.
도윤은 그 둘 사이의 오 분에 밑줄을 긋지 않았다. 대신 답신 전체를 옮겨 적었다.
조사실에서 배진만은 사진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인이 곁에 앉아 있었다. 관할 형사가 권리를 고지하고 조사 참여자와 녹음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배진만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도윤과 해진은 관할팀 요청으로 배석했다.
"김성철 씨가 보낸 사진입니까?"
"예. 그 형이 보냈어요."
"답장도 직접 쓰셨습니까?"
"돈 준다는 줄 알고 간 거라니까요. 거기 돈 얘기 있잖아요."
지후는 답신에서 돈 앞에 있는 두 문장을 가리지 않았다.
"그냥 두라는 건 뭡니까?"
"상자요. 싣고 가면 된다고 했는데 굳이 뜯어 놓고 사진까지 보내잖아요."
"누가 싣고 가면 된다고 했습니까?"
배진만이 입술을 다물었다. 변호인 쪽을 보다가 사진 끝을 손톱으로 밀었다.
"그건 일 얘기고. 성철이 형한테 돈 받으러 간 건 맞아요."
관할 형사는 질문과 답을 따로 적었다. 도윤은 배진만의 굽은 손가락 대신 사진을 미는 방향을 보았다. 종이는 탁자 가운데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창고 앞에서 보여 줬다는 것도 이 사진입니까?"
"같은 거예요. 자기 휴대폰으로 또 보여 줬어요. 알아봤냐고."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모른다고 했죠. 돈이나 달랬더니 이걸 누구한테 갖다주냐고 자꾸……."
말이 끊겼다. 지후는 끼어들지 않았다. 배진만이 점퍼 주머니를 만지다가 빈손을 무릎으로 내렸다.
"짐만 싣고 가면 되는데 그 형이 문 앞을 막았어요. 자기가 뭘 안다고."
도윤은 닫히던 창고 문을 떠올렸다. 이제 색도 분명하지 않은 기억에 상자가 하나 생기려 했다. 그는 사진을 뒤집지 않고 탁자 위에 그대로 두었다. 기억 속에는 그 상자가 없었다.
"김성철 씨가 물건을 감췄다는 겁니까?"
지후가 물었다.
"안 내줬다니까요. 안에 두고 못 가져가게 했어요."
도윤이 펜을 내려놓았다.
"무엇을 확인하면 내주겠다고 했습니까?"
"누가 시켰는지 말하라고. 나야 차 가지고 가는 사람인데 그걸 왜……."
배진만은 말끝을 삼켰다. 도윤은 그가 성철의 요구를 답한 부분을 적었다. 누가 시켰는지.
배진만은 다시 밀린 운송비 액수를 말했다. 도윤은 이미 적어 둔 금액을 고치지 않았다. 지금 비어 있는 것은 그 옆의 이름이었다. 성철도 그 빈칸을 채우려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도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배진만이 변호인에게 몸을 돌렸다. 짧은 상의 끝에 그는 더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관할 형사는 의사를 확인하고 질문을 멈췄다.
도윤은 ‘누가’ 다음을 빈칸으로 남겼다.
회의실로 돌아오자 지후가 현장 촬영 자료를 펼쳤다.
공구 창고 작업대는 먼지를 닦은 자리가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흰 도료가 벗겨진 앞쪽 모서리와 두 개의 나사구멍을 사진 속 배경과 비교했다. 닮은 부분은 있었지만 검은 조각 바로 옆까지 찍힌 사진이 아니었다.
"여기서 찍었다고 붙일까요?"
지후가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도윤은 몸을 숙였다가 다시 폈다.
"작업대가 비슷합니다. 같은 곳인지는 현장에서 치수와 흠집 위치를 더 봐야 합니다."
"저 누런 종이는?"
현장 전체 사진에는 같은 포장물을 골라낼 수 없었다. 수거 목록에도 검은 유리로 기재된 물건은 없었다. 그렇다고 배진만이 가져갔다고 적을 수는 없었다.
해진은 관할 형사에게 두 사진과 질문 목록을 넘겼다. 피해자 쪽 휴대폰 확보 여부와 해당 메시지 대조, 반출 지시와 물건의 행방을 확인할 항목이었다. 기존 영장 범위를 넘는 자료가 필요하면 그에 맞춰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했다.
"돈 문제는 지웁니까?"
지후가 물었다.
"같이 둡니다. 둘 중 하나만 진짜일 이유는 없습니다."
도윤은 대답하며 운송비 옆에 반출 요구를 적었다. 그 아래에는 사진을 받은 시각과 공장 진입로에 차량이 찍힌 시각을 나란히 놓았다. 그 사이에 어떤 연락이 더 있었는지 아직 빈칸이었다.
해진이 분석 의견서 첫 장을 넘겼다.
"배진만이 인정한 부분까지만 적으세요. 사진 속 물건을 죽인 이유로 써 놓으면 안 됩니다."
"수신과 답신, 반출을 둘러싼 다툼 진술까지 적겠습니다."
도윤은 문장 밑에 남겨 둔 공간을 보았다. 종이의 원문은 사진에 없었다. 김성철이 문자로 옮긴 말만 있었다. 그 글자를 처음 쓴 사람도 성철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도윤은 마지막으로 출력물의 출처 번호를 확인했다. 별도로 적은 문구만 보내면 종이의 실물을 확보한 것처럼 읽힐 수 있었다. 그는 의견서에 김성철 번호에서 수신한 문자 내용이라고 덧붙이고 사진과 함께 묶었다.
저녁이 되어 관할 형사가 자료를 가져간 뒤에도 도윤은 잠시 자리에 남았다. 지후가 복도에서 전화받는 소리가 났다. 해진은 다음 보고를 받으러 나가면서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도윤은 수첩을 펼쳤다.
성철은 문자에 상자에서 나왔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가져가라는 말을 한 배진만에게 뜻을 물었다. 도윤은 물음표 없는 문장 끝을 오래 보았다. 유언이나 작별 인사는 없었다. 상대가 답해 주어야 끝나는 질문이었다.
도윤은 피해자의 질문을 한 줄도 줄이지 않고 적었다. 마지막 감각에서 보지 못한 성철의 손이 떠올랐다. 문을 막기 전에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쓰던 손이었다.
맨 아래 줄에 다시 그 문장을 썼다.
눈을 뜬 채 본다.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대신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문장을 오늘 처음 읽은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