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4화: 말이 멎는 자리
수화기 너머에서 해진이 대답을 기다렸다.
배진만의 화물차가 천천히 후진했다. 지후가 차체 옆에서 물러나자 빈자리에 흰 배기가스가 찼다. 도윤은 운전석을 향해 손을 들려다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그 소리가 현장에 있었다고 증명할 자료는 없습니다."
"녹음도 목격자도 없습니까?"
"예."
"그럼 그 항목은 빼세요. 나머지를 확인하겠습니다."
도윤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배진만이 지금 출발합니다."
"출발을 막을 근거가 생긴 건 아닙니다. 차량 번호와 목적지는 받았죠?"
도윤은 지후가 든 수첩을 보며 그렇다고 답했다. 화물차가 도로로 나갔다. 뒷바퀴가 주차장 턱을 넘을 때 차체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도윤은 그 진동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관할팀에 영상 보존을 요청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버스로 돌아와요."
"작업복은요?"
"제출 의사를 확인할 겁니다. 강학수 씨 동선과 최태섭 씨 알리바이도 함께요."
통화가 끝났을 때 화물차는 이미 교차로를 돌고 있었다.
"뭐래?"
"소리는 빼라고 하십니다."
지후는 수첩을 덮지 않았다. 현장에서 급하게 받아 적었던 줄을 찾아 펜 끝을 댔다.
"그때는 범인의 습관이라고 했잖아."
"제가 너무 앞서 말했습니다."
"내가 학수 씨 열쇠 소리까지 거기다 맞춰 봤어."
도윤이 지후를 돌아봤다. 화를 낼 줄 알았던 얼굴에는 피로가 먼저 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말 못 하는 건 알겠는데 확인된 것처럼 주면 안 돼. 나도 그걸 들고 사람 앞에 앉으니까."
지후는 해당 줄 옆에 작게 표시했다. 출처 미확인.
도윤은 그 네 글자를 지켜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김성철의 마지막 소리를 지우겠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여기서 자신뿐이었다.
임시 지휘 버스의 탁자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해진은 배진만 사진 아래에 붙은 메모를 떼었다. 왼손, 오른손 부상, 라이터. 그녀는 메모를 버리지 않고 빈 종이 옆으로 옮겼다.
"배진만 씨를 확인해야 할 이유는 남아 있습니다. 이걸로 다른 두 사람을 지우지는 말자는 겁니다."
지후가 강학수의 제출물 접수 내역을 펼쳤다. 관할 형사가 식당에 남아 열쇠와 장갑, 보온통을 각각 넘겨받은 기록이었다. 봉투째 한꺼번에 넣지 않고 나누어 포장한 사진도 있었다.
"열쇠는 내일 현장 자물쇠하고 대조합니다. 귀가 동선은 따로 확인 중이고요. 최태섭 쪽도 야적장 사람들한테 연락 넣었습니다."
해진은 접수 시각을 확인한 뒤 도윤에게 빈 종이를 밀었다.
"박자를 빼고 써 보세요."
도윤은 펜을 쥐었다. 식당 주인은 배진만의 방문을 보았다. 계속 머물렀는지는 못 보았다. 강학수는 파란 짐칸을 보았지만 번호는 못 보았다.
세 줄을 쓰고 나니 종이 절반도 차지 않았다.
"주유 장소부터 받아야 합니다. 전날 저녁 공장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대조할 수 있습니다."
"작업복은 왜 필요하죠?"
"현장에서 수거한 섬유와 비교할 대상입니다. 다만 문틈의 두 올이 장갑에서 나온 건지 옷에서 나온 건지는 감정이 필요합니다."
해진이 감식 의뢰 목록을 펴 주었다. 수거 위치와 번호가 따로 적혀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떠올린 두꺼운 가죽 장갑 대신 그 번호를 종이에 옮겼다.
사진 속 섬유는 확대해 놓아도 그저 짧게 휜 선이었다. 범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보았던 것이 이제는 비교할 물건을 기다리는 작은 흔적으로 보였다.
관할 형사가 버스 문을 열었다.
"진입로 쪽 카메라 하나 살아 있습니다. 우림자원 계근대에서 밖으로 향하는 겁니다. 업주 동의받고 전날 저녁 영상 복사 중입니다."
지후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공장 정문이 나옵니까?"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으로 보낸 현장 사진에는 갈림길과 전봇대만 보였다. 공장 담장은 화면 밖이었다.
"이 길로 가면 공장 뒤편입니다. 중간에 자재 적치장도 하나 있고요."
"그럼 차가 찍혀도 공장에 들어갔다고는 못 하겠네요."
해진의 말에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영상 파일을 받으면 번호부터 대조하겠다며 내려갔다.
도윤은 지도에 그어진 두 갈래 길을 보았다. 배진만의 화물차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자신이 본 기억에는 없었다. 마지막 일 분 바깥에 훨씬 긴 밤이 있었다.
"박 형사님. 확인 요청에……."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펜 끝이 종이를 눌렀다. 도윤은 마침표를 찍으려던 게 아니었다. 숨을 들이켜 문장을 마저 밀어내려 했지만 턱 아래가 단단하게 굳었다.
"도윤아."
지후가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혀끝은 움직였는데 목에서 마른 숨만 새었다. 머릿속에는 방금 하려던 말이 그대로 있었다. 영상 시각을 확인해 달라. 기계의 시간이 맞는지도 봐 달라.
그 짧은 부탁을 꺼내지 못했다.
손끝 저림이 팔목까지 올라왔다. 그는 목도리를 잡아당겼다. 조이는 것이 천인지 기억 속 손인지 분간하려는 순간 숨이 더 짧아졌다.
지후가 그의 손에서 펜을 빼고 의자를 받쳤다.
"일단 앉아."
도윤은 버티던 무릎을 접었다. 의자 등받이가 등에 닿았다. 눈앞에는 녹슨 철문이 아니라 해진이 펼친 흰 종이가 있었다. 그는 그 모서리를 바라보며 입술 사이로 숨을 내보냈다.
해진이 옆에 앉았다.
"제 말 들립니까?"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러워요?"
그는 다시 끄덕였다. 해진이 시간을 확인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도윤은 그 손을 붙들려다 내려놓았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하는 몸으로 괜찮다고 우길 수는 없었다.
"숨이……."
목에서 막혔던 소리가 겨우 새어 나왔다.
"잘 안 골라집니다."
목소리가 들리자 지후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해진은 휴대폰을 손에 둔 채 그가 다음 숨을 쉬는 것까지 지켜봤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조금 나아졌습니다."
도윤은 짧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문장이 끊기지 않았다. 지후가 버스 문을 열어 답답한 공기를 빼냈다. 도윤은 문 가까운 좌석으로 옮기면서도 탁자 위 수첩을 돌아봤다.
피에 다시 닿은 적은 없었다. 새로운 장면도 오지 않았다. 남아 있던 목의 압박과 두통을 밀어 두고 밤까지 버텼을 뿐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 그는 알지 못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세요. 상태 계속 보고 진료받으러 갑니다."
해진이 말했다.
"영상만 확인하면……."
"영상은 박 형사가 볼 수 있습니다."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빠지면 다시 틀린 사람을 붙잡을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전 지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준 확신을 들고 다른 사람 앞에 앉았다는 말.
확신을 더 크게 말한다고 방금 끊긴 호흡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도윤은 무릎 위 수첩을 펼쳤다. 감각을 적은 면을 넘기고 빈 곳에 카메라 시각 확인이라고 썼다. 그 아래에 전날과 그저께 구분이라고 한 줄을 더 적었다.
"이것도 부탁드립니다."
지후가 수첩을 받았다.
"알았어. 다녀와서 보여줄게."
"저도 봐야……."
"자네 이름으로 확인했다고 안 쓸 테니까 앉아 있어."
지후는 수첩을 들고 탁자로 돌아갔다. 도윤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멈춘 손으로 식어 가는 물컵을 감쌌다.
영상이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도윤을 부르지 않았다.
지후는 관할 형사 옆에 앉아 재생 막대를 움직였다. 한 대를 멈췄다가 다시 흘려보냈다. 번호 끝 두 자리만 같은 다른 트럭이었다. 도윤은 발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구두 밑창을 바닥판에 붙였다.
"이겁니다."
지후가 화면을 멈췄다.
전날 날짜 아래 20시 24분이 찍혀 있었다. 파란 짐칸의 화물차가 계근대 불빛을 지나 갈림길로 꺾였다. 방향을 바꾸는 순간 뒷번호판이 잠깐 정면을 향했다.
지후는 앞뒤 몇 초를 반복해 본 뒤 주차장에서 적은 번호와 대조했다. 관할 형사도 자신의 기록을 펼쳤다.
"배진만 차량 맞습니다."
도윤이 일어나려 하자 지후가 모니터를 돌려 주었다.
"녹화기 현재 시각하고 휴대폰 시각 같이 찍어 받았어. 지금은 차이 삼십 초 안쪽이야. 중간에 시간을 바꾼 적 있는지도 확인 요청했고."
지후는 영상 시각 옆에 물음표를 붙였다. 시각 변경 여부에 답이 오기 전까지는 잠정값이었다.
번호판은 읽혔지만 운전석은 검었다. 차가 사라진 화면 오른편에는 공장과 적치장으로 갈라지는 길이 남아 있었다. 도윤은 그것을 오래 보았다.
해진이 관할 형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술 다시 받아 보죠. 옷 제출 의사도 확인해 주세요."
형사가 배진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전 중이라는 답에 다음 휴게소에 정차한 뒤 통화해 달라고 했다. 십여 분 후 돌아온 전화는 스피커로 연결됐다.
"아까 다 얘기했는데 또 뭡니까?"
지후가 종이 위에 펜을 댔다.
"어제 주유하신 곳 이름부터 알려 주십시오."
배진만이 주유소 이름을 댔다. 지후는 받아 적은 뒤 주유 뒤 어느 길로 식당에 왔는지 물었다.
"밥 먹으러 가려면 그 앞 큰길은 지나죠."
"큰길에서 공장 쪽 갈림길로 들어간 적은요?"
대답이 늦어졌다. 수화기 너머로 방향지시등 소리가 몇 번 울리다 멎었다.
"아, 맞다. 길 잘못 들어서 돌렸어요. 그게 뭐 어쨌다고요."
"어디서 돌렸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지후는 그가 말하는 곳을 지도에 표시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도윤은 배진만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상상하려다 그만뒀다. 지금 들리는 말과 눈앞의 길만으로 확인할 일이 충분했다.
관할 형사가 작업복을 넘겨줄 수 있는지 물었다. 배진만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가져가요. 기름때밖에 없지만."
"집에 보관하고 계시다고 했죠. 직접 제출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하겠습니다."
"집까지 갈 건 없어요. 차에 있으니까."
지후의 펜이 멈췄다.
"어느 차 말씀이십니까?"
"지금 모는 차요. 좌석 뒤에. 아까는 집에 두고 온 줄 알았어요."
해진이 관할 형사에게 휴게소 위치를 받으라는 메모를 밀었다. 그는 제출 방법을 설명하고 받을 형사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도윤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목소리는 돌아와 있었지만 끼어들지 않았다. 지후가 다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배진만 씨. 지금 넘겨주겠다는 옷이 어제 낮까지 입었다던 바로 그 작업복입니까?"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