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31화: 도움을 주는 사람
"확인된 범죄경력은 없습니다."
관할 담당자의 말이 스피커에서 나왔다. 도윤은 어제 쓴 질문 위에 펜을 세웠다. 종이에 눌린 점만 짙어졌다.
간담회 다음 날 오전이었다. 관할은 재수사와의 관련성을 검토해 필요한 조회를 했다고 설명했다. 해진은 확인 범위와 일시를 받아 적었다. 화재 때 관계인으로 조사받았다는 기록은 범죄경력이 아니었다.
"그럼 연구소 쪽 질문은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해진이 말했다. 도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전과 하나쯤 나와 주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들킨 기분이었다.
사무국의 회신도 도착해 있었다. 담당 직원은 이도겸에게 전달한 참석자 목록에 이름과 연락처만 있었다고 답했다. 가족 사연은 신청자가 적은 경우에만 별도로 전달했으며 강도윤의 사연란은 비어 있었다. 회신에는 그에게 보냈다는 목록에서 도윤 항목만 뽑은 사본이 붙어 있었다.
지후가 두 사람의 행사 메모 옆에 사본을 놓았다.
"여기서 알려 줬다는 답은 아니네. 다른 직원한테 들었는지도 물어봤대."
"아직 답이 없습니까?"
"담당자는 모른대. 이 사람한테 전부 보증하라고 할 수는 없고."
도윤은 회신 옆에 담당 직원이 확인한 범위라고 적었다. 다른 사람이 건넨 말까지 없었다는 답은 아니었다.
그는 명찰을 가방에서 꺼냈다. 얇은 비닐 안에 자기 이름만 있었다. 어제는 그 빈자리가 증거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이 이름을 적어 낸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났다.
관할 담당자는 이도겸이 오후에 전화로 먼저 답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식 면담 일정을 잡는 통화에서 가족 관계를 알아본 경로도 묻기로 했다.
"제가 배석해도 되겠습니까?"
도윤이 해진에게 물었다.
"여기서 같이 듣죠. 질문은 담당 형사님이 먼저 합니다."
도윤은 동의했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지후가 종이 끝의 검은 점을 봤다.
"지금도 그 사람이 의심돼?"
"네.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더 수상하다고 적을 수는 없죠."
도윤은 눌린 자국 옆에 질문을 다시 썼다. 전단에서 이름을 본 일과 자신을 알아본 일을 두 문장으로 나눴다.
오후 통화는 관할 담당자가 연결했다. 그는 해진과 지후의 이름을 밝히고 도윤도 자료실에서 함께 듣는다고 알렸다. 이도겸은 괜찮다고 답했다.
"어제 강 선생님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았습니다."
도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담당자가 먼저 물었다.
"강도윤 씨가 한서윤 씨의 가족이라는 것은 어떤 경로로 아셨습니까?"
"행사 준비를 하면서 참석하시는 분들의 공개된 이야기를 찾아봤습니다. 예전 실종 기사에 두 분 이름이 있었습니다."
"전단에서 확인한 정보와는 별개입니까?"
"네. 서윤 씨 이름은 전단으로 기억했고 강 선생님과의 관계는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지금 하시는 일은 소개 글이 있더군요."
지후가 도윤 쪽으로 빈 종이를 밀었다. 도윤은 기사 주소와 열람 시점을 적었다. 담당자가 같은 항목을 물었다.
"주소는 사무국을 통해 보내겠습니다. 참석자 명단을 받고 본 것이니 행사 전입니다. 날짜는 확인해 봐야겠군요."
"전단을 보신 장소도 생각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연구소에 다니던 때라는 것 외에는 선명하지 않습니다."
통화가 잠시 멎었다. 도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담당자가 확인했다.
"저를 직접 만난 기억으로 알아보신 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 처음 뵀습니다. 명찰을 보고 알았습니다."
답은 빠르고 짧았다. 도윤은 명찰을 뒤집어 놓았다. 상대가 자기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동생을 찾으러 돌아다니던 자신을 본 사람이라면 그때의 길도 하나쯤 알 것 같았다.
사무국이 보내온 주소는 통화가 끝나기 전에 담당자를 거쳐 전달됐다. 도윤은 옛 지역신문 기사를 열었다. 흐릿한 전단 사진 아래에 한서윤의 오빠 강도윤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아래는 자신의 말이었다.
귀찮으셔도 다시 전화해 주십시오. 같은 이야기여도 듣겠습니다.
도윤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었다. 그 말을 했던 것은 기억났다. 기자가 돌아간 뒤에도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지 못했다. 전선을 찾는 사이 전화가 올까 봐 배터리가 꺼질 때까지 들고 있었다.
"기사 확인하셨습니까?"
이도겸이 물었다.
"주소를 받았습니다."
도윤은 그 정도만 답했다. 수첩에는 이도겸이 말했다는 표시가 남아 있었다. 기사 주소를 그 밑에 따로 적었다. 해진이 앞으로 당겨 앉았다.
"원문은 저희가 확인하겠습니다. 연구소 자료를 찾으신 결과도 담당자에게 보내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팀장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도 있었는데요."
이도겸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미제팀에 후원을 하고 싶습니다. 오래된 기록을 살리는 일을 저희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도윤은 아직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안서는 두 장이었다.
통화에서 해진이 내용을 문서로 보내 달라고 하자 한 시간 뒤 재단 사무국 이름으로 도착했다. 기록 전산화 비용 지원. 외부 업체의 방문 스캔. 장기 실종자 가족의 상담과 이동 비용 지원.
지후는 종이를 들고 자료실 벽 쪽을 봤다. 오래된 제본기는 옆면을 테이프로 고정해 놓았다. 서류 상자 하나는 바닥에 닿지 않도록 빈 상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우리가 뭘 불편해하는지는 아네."
도윤은 제안서의 다음 장을 폈다. 지원 대상 추천란이 있었다. 가족 이름과 연락처를 적는 칸 아래에 필요한 도움을 쓰게 돼 있었다.
"추천은 우리가 하고 연락은 재단에서 하는군요."
"그렇게 적혀 있네요."
해진이 종이를 받아 읽었다.
도윤은 서랍에 있는 새봄 자료를 떠올렸다. 물건 보관을 도왔다는 기록에도 지원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지금의 제안까지 범죄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두 장에 가족의 이름을 적어 보낼 수는 없었다.
지후가 물었다.
"도움을 받겠다는 가족이 있으면?"
도윤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신문 기사 속 자신은 연락만 해 준다면 누구든 만날 사람이었다. 교통비가 모자라 한 곳을 덜 찾은 날도 있었다. 그때 누군가 비용을 대겠다고 했다면 먼저 의심했을까.
"그분이 직접 고를 수는 있어도 저희가 연락처를 대신 넘기면 안 되겠습니다."
해진은 문서 수신 번호를 확인했다.
"팀 후원은 받지 않습니다. 제안과 답변을 남기고 담당 부서에도 알리죠. 이 문서는 수사 자료를 보낼 통로가 될 수 없어요."
그날 오후 도윤은 거절 답변 초안을 읽었다. 재단을 범죄 집단으로 적은 문장은 없었다. 자료를 제공하지 않으며 팀의 이름을 협력기관으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다음 날 오전 관할 담당자가 이도겸과의 후속 통화를 연결했다. 해진은 배석자를 다시 알리고 답변을 전했다.
"사건 내용을 보겠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업체도 원하시는 곳으로 정하시면 됩니다."
이도겸이 말했다.
"취지는 들었습니다. 수락하지 않겠습니다."
"기다리는 가족분들께 도움이 된다면 방법을 달리할 수도 있겠지요."
도윤은 접어 둔 제안서를 다시 폈다. 종이 위 가족 이름 칸이 길었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자 지후가 고개를 들었다.
"정류장 뒤 작은 문의 열쇠를 누가 보관했는지요. 찾으신 자료가 없다면 어디까지 찾아보셨는지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상대편에서 짧게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아직 확답드릴 자료를 못 찾았습니다. 그 말씀은 만나서 드리는 편이 좋겠군요."
"찾아보신 곳과 확인한 자료 목록도 그날 여쭙겠습니다."
관할 담당자가 답을 기다렸다. 이도겸이 알겠다고 한 뒤에야 준비한 일정을 제시했다. 이도겸은 이틀 뒤 오후 관할서로 오겠다고 답했다. 해진은 후원 답변과 면담 약속을 별도로 확인했다.
전화를 끊자 도윤은 제안서를 내려놓았다.
"받을 뻔한 건 아닙니다."
말을 하고 보니 변명 같았다. 지후는 기다렸다.
"그런데 서윤이를 찾던 때였다면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때 도움이 필요했던 건 잘못이 아니잖아."
도윤은 접힌 면을 손으로 폈다. 손바닥을 떼어도 추천란 한가운데 접힌 자국이 남았다.
저녁 무렵 지후가 신문 보관본을 화면에 띄웠다.
재단에서 보낸 주소만 다시 연 것이 아니었다. 신문사의 지난 지면 목록에서 발행일과 면수를 찾아 같은 기사를 확인했다. 잘린 화면 밖의 날짜와 사진 설명도 맞았다. 다른 주소로 찾은 현재의 공개 소개에는 도윤의 얼굴과 이름, 미제팀 프로파일러라는 직무가 있었다.
"둘 다 밖에서 볼 수 있어. 가족 관계까지 숨겨져 있던 건 아니야."
도윤은 검토표에서 취득 경로 불명이라는 문장을 읽었다. 그 아래에 공개 자료를 통한 인지 가능성을 적고 두 주소를 붙였다.
"실제로 그걸 보고 알았는지는 아직 모르죠."
"그래. 하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고 쓰지는 말자."
지후는 기사를 닫기 전에 도윤을 봤다. 도윤은 잠깐만 두라고 했다.
신문에 실린 서윤의 사진은 웃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그 사진을 알아보는 사람을 기다렸다. 누가 알아보면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어제는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대답을 믿고 싶었다가 그 이유만으로 의심했다.
도윤은 사진 아래의 자기 이름을 끝까지 읽고 창을 닫았다.
해진이 통화를 마치고 들어왔다. 후원 거절 답변이 전달됐으며 면담 일정도 관할에서 확인했다는 말 뒤에 다른 보고가 이어졌다.
"북쪽 배수로 물속에서 성인 남성이 발견됐습니다. 구조를 시도했지만 사망 확인됐고 신분증은 아직 못 찾았답니다. 실종 접수와 대조 지원 요청이 왔어요."
지후가 외투를 들었다.
"물에 빠진 건 언제랍니까?"
"그건 모릅니다. 발견 상황부터 받아야 해요. 사인도 아직이고요."
도윤은 의자를 뒤로 밀었다가 멈췄다. 해진이 그의 책상에 요청서를 놓았다.
"강 경위는 여기서 자료를 봅니다. 현장 제한은 그대로예요."
"발견 지점과 인상착의가 오면 먼저 대조하겠습니다."
지후가 문 앞에서 돌아봤다.
"확인한 것부터 보낼게. 나올 때 연락하고."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문의 질문지는 이틀 뒤 면담 자료에 넣었다. 그 앞에 새 요청서를 펼쳤다.
성명 칸에 신원 미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는 이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도윤은 발견 시각부터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