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30화: 먼저 불린 이름
"신청서에 동생 이름은 쓰지 않았습니다."
도윤은 빈 사연란을 해진에게 보였다. 간담회 참석을 협의하기로 한 다음 날이었다. 이름과 연락처 아래에 가족의 이야기를 미리 보내 달라는 항목이 있었다. 선택 사항이었다.
해진은 신청 버튼 대신 관할 담당자의 회신을 열었다. 재단 사무국은 이도겸에게 면담 요청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과거 연구소의 출입 관리에 관해 확인할 것이 있다는 용건과 담당 형사의 연락처를 받았고 날짜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행사장에서 조사부터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고 싶습니다."
도윤은 작은 문의 도면을 내려놓았다. 그걸 들고 가면 가족으로 왔다고 말해도 질문부터 하게 될 것 같았다.
"그 사람이 가족들한테 어떻게 말하는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듣기 싫은 말이라도요."
해진이 의자를 당겼다. 현장 제한을 풀어 달라는 요구인지부터 물었다. 도윤은 아니라고 답했다. 해진은 현장 제한을 유지한 채 이번 외부 일정의 동행 조건을 관할과 맞췄다. 가족으로 참석하되 지후가 함께 있고 이상이 생기면 바로 나오는 조건이었다. 관할 담당자도 면담 일정 조율을 위해 행사장에 오기로 했다.
"사건 자료는 가져가지 마세요. 혼자 만나거나 마이크를 잡고 수사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안 됩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말을 걸 기회까지 없앨 것 같아 마지막 조건에서 조금 늦게 움직였다.
지후가 그 모습을 보고 신청 화면을 돌려줬다.
"가족이라고 신청했다고 동생 이야기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야."
도윤은 선택란을 비운 채 신청했다. 연락 가능한 사람의 이름만 보냈다.
행사 당일 두 사람은 시작 직전에 도착했다. 접수대 직원이 강도윤이라고 적힌 명찰을 내밀었다. 가족 이름은 인쇄돼 있지 않았다. 도윤은 명찰을 외투에 달고 지후와 함께 출입문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책자 맨 앞에는 이도겸의 사진이 있었다.
잠시 뒤 사진 속 남자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도윤은 의자 팔걸이에 얹었던 손을 무릎으로 내렸다. 손바닥에 남은 플라스틱 모서리 자국이 하얬다.
이도겸은 마이크를 입에서 조금 떨어뜨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듣겠습니다."
스피커를 거친 목소리가 벽에서 돌아왔다. 도윤은 종이에 적었던 말끝을 떠올렸다. 그러나 마이크가 울릴 때마다 끝소리가 두 겹이 됐다. 오래된 녹음에서 들었던 목소리를 이 사람에게 붙이려 할수록 오히려 어느 쪽도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수첩을 펴지 않았다.
앞줄에 앉은 여자가 책자를 접었다. 진행 직원이 질문 순서를 안내하는 동안에도 무릎 위에서 같은 면을 접고 폈다.
"이것부터 고쳐 주시면 안 돼요?"
여자는 마이크를 받기 전에 말했다. 직원이 앞으로 다가갔다.
"제 아들이 귀가 중에 없어졌다고 돼 있어요. 집에 온다고 한 적 없어요. 저는 퇴근해서 전화한 거고요."
직원은 책자의 페이지를 찾았다. 이도겸은 단상에서 내려와 여자와 한 자리 떨어져 앉았다.
"마지막 행선지를 잘못 적었다는 말씀이군요."
"행선지를 모른다는 말이에요."
여자의 손가락이 접힌 모서리를 눌렀다.
"집으로 오는 길만 찾았어요. 이걸 보는 사람들도 또 그 길만 찾잖아요."
이도겸은 직원에게 해당 문장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배포한 파일도 고치고 수정본을 가족에게 먼저 보여 달라는 말이 이어졌다. 여자가 더 말하려 하자 직원이 거두던 마이크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는 기다렸다. 눈길도 피하지 않았다.
도윤은 그 모습을 보다가 자기 책자를 덮었다. 이도겸이 여자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었다. 그 행동에 맞지 않는 얼굴을 억지로 찾고 싶지도 않았다. 여자가 바로잡은 말이 귀에 남았다. 모른다는 말.
지후가 몸을 조금 기울였다.
"나갈까?"
"아직 괜찮습니다."
도윤은 실제로 숨을 고른 뒤 답했다. 지후에게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숨을 참지는 않았다.
휴식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접수대 옆 물병 앞으로 모였다. 관할 담당자가 두 사람을 찾아왔다. 사무국 직원과 인사를 마쳤으며 이도겸도 잠깐 인사를 나누겠다고 했다는 설명이었다.
도윤은 지후가 일어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문 이야기는 먼저 물어봐 주십시오."
지후가 도윤을 봤다.
"네가 하려고 적은 질문인데."
"지금은 그쪽이 낫겠습니다."
지후는 더 묻지 않고 통로로 나왔다. 도윤은 그 뒤를 따랐다. 무릎 위에 눌려 있던 책자에는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도겸은 상담실로 들어가는 문 옆에 서 있었다. 직원이 다른 가족을 안내하자 옆으로 물러나 길을 내줬다. 가까이서 본 얼굴은 공개 사진보다 조금 야위어 있었다.
관할 담당자가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지후를 소개했다. 도윤에게는 간담회 참석자라는 짧은 소개만 붙였다.
"연구소 일로 연락 주셨지요."
이도겸이 먼저 말했다. 담당자는 정식 면담 일정을 사무국과 잡겠다고 답했다. 지금은 작은 문의 관리에 관한 짧은 질문만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이도겸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후가 물었다.
"지금 한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정류장 뒤 작은 문을 누가 열고 닫았는지 기억하십니까?"
"담장을 따라 골목으로 이어지던 길 말씀이시죠? 그 길은 기억합니다."
도윤의 손이 책자 아래에서 멎었다. 이도겸은 도면을 보지 않은 채 길의 방향을 말했다.
"열쇠 맡은 분의 이름은 자료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전이라 잘못 말씀드릴 수 있으니까요."
"남은 자료가 있습니까?"
관할 담당자가 물었다.
"찾아보겠습니다. 있다고 약속드리는 건 아닙니다."
지후가 답을 짧게 되짚었다. 통로는 기억하지만 관리자의 이름과 남은 자료는 확인이 필요하다는 답이었다. 도윤은 연구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묻고 싶었다. 질문을 맡긴 사람 옆에서 다시 말을 빼앗지 않으려고 책자 끝을 놓았다.
이도겸의 시선이 도윤의 명찰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한서윤 씨 가족이시지요. 오래 마음 쓰셨겠습니다."
이름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다.
도윤은 대답할 뻔했다. 그렇다고 말하고 서윤이 아니라 서윤 씨라고 불러 준 데 고개를 숙일 뻔했다. 동생을 번호나 관계로 부르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아직도 잠깐 마음이 풀렸다.
지후가 옆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정적 속에서 도윤은 자신이 동생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서윤이를 아십니까."
이도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직원이 들고 지나가는 종이컵 쟁반이 두 사람 사이를 잠시 가렸다.
"찾는 전단을 봤습니다. 연구소에 있을 무렵이었어요. 이름이 남아 있었습니다."
"동생을 직접 보신 적이 있다는 뜻입니까?"
"전단을 봤다는 말씀입니다. 가족분이 들으시면 다를 수 있는데 제가 말을 조심했어야겠군요."
도윤은 혀끝을 윗니 뒤에 댔다. 방금 전까지 자기 질문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상대의 표정을 보고 있었다. 어느새 이도겸은 도윤이 오해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전단인지 기억하십니까?"
"그건 조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이도겸은 여전히 도윤을 보고 있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이 이 남자의 예의인지 상대에게 대답을 재촉하는 방식인지 알 수 없었다.
도윤의 휴대폰에는 서윤 사진이 있었다. 주머니 속 기기 가장자리가 손에 닿았다. 사진을 보여 주면 기억이 더 나느냐고 물을 수 있었다. 간담회장에는 아직 물병을 들고 서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누군가 다가오면 동생의 얼굴도 이 인사의 일부가 될 것 같았다.
그는 빈손을 꺼냈다.
"기억하시는 장소와 시점을 담당 형사님께 말씀해 주십시오."
이도겸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원하시면 강 선생님께도 직접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답은 제게도 전달됩니다."
담당자가 연락 경로를 확인했다. 사무국을 통해 일정을 정하고 그때 남은 기록 여부도 묻기로 했다. 이도겸은 명함을 담당자에게 건넸다. 도윤에게 따로 한 장을 내밀지는 않았다.
다시 시작한다는 안내가 흘렀다. 이도겸은 가족들이 앉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서윤 씨 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윤은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가 단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서 있다가 지후를 향해 말했다.
"나가겠습니다."
바깥 바람을 맞자 명찰이 뒤집혔다.
지후는 차 문부터 열지 않고 건물 옆 벤치를 가리켰다. 도윤은 앉아서 물을 마셨다.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병을 쥔 손은 떨리지 않았다.
"어지러운 건?"
"없습니다. 이름을 듣고 질문을 놓쳤습니다."
"오늘 다 물을 자리는 아니었어."
도윤은 수첩을 꺼냈다. 지후도 자기 메모를 폈다. 서로 쓴 문장을 먼저 보여 주지 않고 들은 순서를 각자 적었다. 전단을 어디서 봤느냐는 질문 다음에 도윤의 펜이 오래 머물렀다.
두 사람이 기억한 말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도겸이 서윤을 직접 봤다고 하지는 않았다. 길을 기억한다는 답도 열쇠를 자신이 관리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전단을 봤으면 이름은 알 수 있겠죠."
도윤이 말했다.
지후는 메모를 읽고 기다렸다.
"그런데 그걸 본 사람이 저를 알아보는 건 다른 일입니다."
도윤은 명찰을 바로 돌렸다. 강도윤. 동생과 성도 다른 이름 아래에는 가족이라는 글자조차 없었다.
"내가 네 관계를 말하진 않았어."
지후가 답했다.
도윤은 관할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담당자는 사무국과 연락할 때 도윤의 가족 관계나 서윤 이름을 전하지 않았고 오늘 소개 때도 말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행사 신청서의 사연란은 비워 둔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도겸이 알 수 없는 정보는 아니었다. 오래전 전단에 연락처가 있었을 수도 있었고 누군가 가족을 소개했을 수도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예전에 어디까지 이야기를 공개했는지 지금 전부 떠올릴 수 없었다.
"사무국에서 참석자 소개로 어떤 내용을 전했는지부터 확인해 주십시오."
통화를 마친 뒤 해진에게도 대면 경과와 일찍 나온 사실을 알렸다. 해진은 상태를 확인하고 두 사람의 메모를 각각 남겨 달라고 했다. 통로 답변과 가족 관계 언급은 별도 항목으로 관할과 확인하겠다고 답했다.
도윤은 동생 이름 앞에 붙었던 호칭을 다시 읽었다. 아직 만나지도 못한 어른 서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 때문에 자기가 물어야 할 것을 잊었다는 사실이 쓰렸다.
지후가 차 열쇠를 꺼냈다.
"돌아가서 쓰자. 이제는 물어볼 수 있잖아."
도윤은 수첩을 바로 덮지 않았다. 작은 문에 관한 질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도겸이 전단을 봤다고 답할 때까지는 자신도 놓치고 있던 질문이었다.
제가 서윤의 오빠라는 건 어디서 아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