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29화: 종결란 아래의 이름
화재 기록 첫 장에는 사고 종결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도윤은 다음 장을 넘기지 못했다. 지후가 책상에 내려놓은 종이는 아직 복사기의 온기가 남은 듯 말려 있었다. 보존 위치를 묻고 사흘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사본이었다.
"주소하고 사건번호는 맞췄어. 건물 사용중지 기록에 적힌 그 화재야."
지후가 교부 목록을 펼쳤다. 관할에서 옛 경찰 사건철을 찾아 소방 조사 자료가 붙은 부분까지 요청한 것이었다. 해진은 목록의 장수와 화면으로 받은 파일을 대조했다.
"뒤까지 보죠."
도윤은 손가락을 뗐다. 종이 아래에 찍힌 결재란이 드러났다.
조사 자료는 연구소 안쪽 설비실을 발화 지점으로 추정했다. 전원 배선의 손상과 주변 연소 상태를 근거로 전기적 요인 가능성을 적었다. 첨부 사진에는 까맣게 탄 벽과 뼈대만 남은 선반이 있었다. 당시 경찰은 방화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해 사고로 종결했다.
"사람이 낸 불은 아니었다는 겁니까."
묻고 나서 도윤은 사진을 내려다봤다. 지후가 본문 한 줄을 손톱으로 짚었다.
"당시 조사에서 못 찾았다는 거야. 지금 여기 앉아서 반대로 정할 수도 없고."
화재 날짜는 서윤이 사라진 뒤였다. 그 간격을 알고도 도윤은 사고라는 두 글자를 동생의 일에 붙여 읽고 있었다. 한 번 닫힌 파일은 다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진이 실종 사건의 요청서를 종이 옆에 놓았다.
"우리가 묻던 건 이 부지의 출입과 관리였습니다. 화재 원인만 보고 끝낼 일은 아니에요."
도윤은 질문지를 당겼다. 작은 문의 관리 주체 옆에는 여전히 이름이 없었다. 불탄 사진보다 그 칸을 오래 봤다.
"관계인 조사는 어디 있습니까."
지후가 뒤쪽 첨부를 꺼냈다. 건물 소유자와 연구소 관계자의 진술이 따로 묶여 있었다. 소유자는 공간을 임대했으며 연구시설의 일상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음 진술의 인적 사항 아래에 직책이 적혀 있었다.
세포라 랩 책임연구원.
도윤은 그 옆의 이름을 소리 없이 읽었다.
이도겸.
"당일 연구동 출입문은 퇴근하면서 잠갔습니다."
도윤이 문장을 읽자 지후가 보행 통로 상세도를 폈다. 난간을 따라 돌아 나가는 길과 건물로 들어가는 문이 책상 가운데 놓였다.
"어느 문인지 그림으로 표시했나?"
도윤은 첨부 끝까지 넘겼다. 화재 조사 사진에 문은 있었지만 이 답변과 이어지는 위치 표시가 없었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화재 당일 마지막 퇴실 시각을 묻고 있었다.
그는 별도 종이에 날짜 두 개를 적었다. 여학생 목격 제보에 나온 날과 불이 난 날이었다.
"작은 문을 잠갔다는 답도 아닙니다."
지후는 상세도에서 손을 치웠다.
"그럼 열쇠 가진 사람부터 물어야겠네."
진술 뒤에는 시설 측이 제출한 근무자 명부 사본이 붙어 있었다. 이도겸의 재직 시작일은 서윤 실종보다 앞이었다. 책임연구원이라는 직책도 같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닫는 당번이나 열쇠 인계란은 없었다.
도윤은 이름 옆에 관리 책임자라고 쓰려다가 책임연구원으로 고쳤다. 연구를 맡았다는 말과 모든 출입을 통제했다는 말 사이에 아직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해진이 관할 담당자를 스피커로 연결했다.
"이 관계인에게 당시 실종 사건을 물었던 기록도 찾으셨습니까?"
"현재 확인한 화재 사건철에는 없습니다. 실종 쪽 추가 확인 자료는 계속 찾고 있습니다."
도윤은 입술 안쪽을 눌렀다. 없다는 말을 먼저 받아 적으면 쉬웠다. 그다음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대신 확인 중이라는 답을 남겼다.
"이름 옆 인적 사항으로 현재 소재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작은 문의 관리자를 알고 있는지도 물어야 합니다."
"당시 직책부터 대조해서 연락 경로 확인하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도윤은 진술서의 서명을 봤다. 선명하지 않은 복사본에서도 마지막 획이 오른쪽으로 길었다. 그 획에 성격을 붙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누군가는 불이 난 뒤 자기 이름으로 이 건물을 설명했다.
도윤에게는 설명할 사람이 없는 건물이었다. 동생을 찾으며 길을 물었던 상점들도 닫힌 뒤였다. 이제 처음으로 그 담장 안에서 일했다는 사람의 이름이 남았다.
"바로 전화하고 싶지?"
지후가 물었다.
"네."
"번호 오면 나한테 줘. 네가 첫 질문 하다가 나머지 다 놓칠 것 같으면 내가 물을게."
도윤은 휴대폰 대신 질문지를 들었다.
"작은 문을 누가 열었는지부터요."
지후가 그 말을 맨 위에 적었다.
진술서에서 찾은 이름을 검색한 것은 오후였다.
지후가 모니터를 돌리기 전부터 도윤은 화면 위쪽의 글자를 읽었다. 백야재단. 새봄의 보관 지원 항목에서 봤던 명칭이었다.
"이도겸 이사. 소개가 있어."
도윤은 의자를 당겼다. 재단 소개 페이지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모자도 마스크도 없었다. 사진 속 눈을 오래 보자 어떤 얼굴이든 그 아래 겹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글로 시선을 옮겼다.
약력 아래쪽에 세포라 랩 책임연구원 경력이 적혀 있었다.
"감춘 경력은 아니네요."
해진이 화면 가까이 왔다.
"페이지 저장하고 확인한 시각 남겨 주세요. 이름하고 경력은 맞지만 인적 사항 대조까지 받아야 합니다."
지후는 주소와 열람 시각을 붙여 화면을 보존했다. 도윤은 재단 이름 아래에서 손을 멈췄다. 새봄 명단의 빠진 줄과 화재 기록의 서명이 한 사람을 향해 접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서명훈의 제출 명단을 꺼내려다 서랍을 닫았다.
"그때 보관 지원을 담당한 사람도 이도겸일 수 있겠습니다."
"가능성은 적어. 담당자 이름은 아직 없잖아."
지후가 말했다. 도윤은 현재 이사라는 글자 옆에 새봄 폐원 당시 직책 확인을 적었다. 지금의 명함을 과거의 모든 일에 갖다 댈 수는 없었다.
해진은 관할에 공개 약력의 저장본을 전달하며 재단 임원 자료와 옛 관계인 인적 사항의 대조를 요청했다. 도윤은 화면을 닫지 못한 채 잠시 앉아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자신을 찾기 어렵게 만들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도윤을 망설이게 했다. 수상한 이름이면 덜 불안했을까. 누구나 볼 수 있는 경력이라서 잘못 의심하고 있는 것인지, 보이는 것만 보고 또 지나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후가 책상 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오늘 확인할 데까지 했어. 내일 회신 오면 계속하자."
도윤은 미완성 질문지를 저장하고 일어났다. 그날도 지후와 함께 나갔다. 주차장에 세운 차 문을 열기 전 한 번 휴대폰을 봤지만 새 답은 없었다.
다음 날 점심이 지나 관할의 확인서가 왔다.
담당자는 재단 법인 등기와 감독기관에서 회신받은 임원 취임 자료를 함께 보냈다. 화재 관계인 조서와 취임 자료의 성명·생년월일이 맞았고 현재 이사 재직도 확인됐다. 공개 약력의 연구소 경력은 같은 사람의 것이었다.
지후가 먼저 첨부를 읽은 뒤 도윤에게 넘겼다.
"동명이인은 아니야."
도윤은 어제 저장한 사진을 다시 열었다. 이제 그 아래에 과거 직책과 현재 직책을 나란히 적을 수 있었다.
세포라 랩 책임연구원. 백야재단 이사.
두 줄 사이에 범인이라는 단어는 넣지 않았다. 그 대신 질문지 맨 위에 처음으로 수신인을 적었다.
도윤은 진술서와 상세도를 같은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왜 이 질문은 없을까요."
"무슨 질문?"
"정류장 쪽 문으로 누가 드나들었는지요. 불이 난 날 마지막 퇴실자는 물었는데 그 길을 쓰던 사람은 없습니다."
지후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해진이 화재 날짜를 짚었다.
"그 조사가 무엇을 밝히려 했는지부터 봐야 해요. 지금 필요한 질문을 그때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고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말인데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누군가 나쁜 마음으로 빼놓았다는 답을 얻으면 열두 해의 빈자리에 이유 하나쯤은 생길 것 같았다.
"안 물었다는 결론보다 지금 물을 수 있다는 게 먼저겠네요."
그는 진술서 옆에 새 질문지를 폈다. 작은 문의 열쇠 보관자. 통로 개방 시간. 외부인이 건물 출입문 앞까지 올 수 있었는지. 당시 실종 수사와 관련해 연락받은 기억과 남아 있는 기록.
서윤 사진을 보여 줄 순서를 쓰다가 펜을 멈췄다.
"먼저 그 사람이 기억하는 통로부터 들어야겠습니다."
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 본 다음에 기억난 말하고 섞이지 않게."
해진은 질문지를 받아 관할과 면담 방식부터 협의하겠다고 했다. 도윤이 직접 연락하는 일은 맡기지 않았다. 도윤은 손에 들었던 펜을 책상 위에 똑바로 놓았다.
그때 지후가 저장해 둔 재단 페이지에서 공지 하나를 열었다.
"이 사람 일정은 공개돼 있네. 사흘 뒤야."
피해자 지원 간담회.
참석 예정자 명단에 이도겸의 이름이 있었다. 실종자 가족과 지원기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안내 아래에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사진 속 남자가 빈 의자에 앉을 가족들을 맞는 모습이 도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도 가족입니다."
목소리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해진은 그를 보았다.
"그래서 본인에게만 결정하게 둘 수 없습니다. 관할과 먼저 협의하죠. 참석 문제도 따로 정하겠습니다."
도윤은 공지의 연락처를 보다가 손을 뗐다. 가족 자격으로 신청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누구도 질문을 대신 받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후가 출력된 질문지 한 부를 가져갔다.
"네가 못 가도 질문은 가."
도윤은 종이를 놓았다. 새 질문지에는 불탄 벽 사진도 사고 종결이라는 글자도 없었다. 맨 위에 사람 이름이 있었고 그 아래에 아직 답하지 않은 질문이 있었다.
재단 공지에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고 적혀 있었다.
도윤은 작은 문의 도면을 질문지 뒤에 붙였다.
이도겸 씨. 정류장 뒤의 작은 문은 누가 열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