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25화: 말끝에 남은 사람
도윤은 다시 듣던 영상의 재생 막대가 끝에 닿기 전에 멈췄다.
스피커에서 나던 낮은 기계음이 사라졌다. 손가락을 뗐는데도 마지막 어절은 귀 안에 남았다. 말을 끝내기 직전 잠깐 비우는 자리. 그다음 낮게 내려놓는 목소리.
"어디서 들었는데."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지후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 목소리?"
도윤은 책상 위 빵 조각을 봤다. 뜯긴 부분이 말라 있었다. 열두 해 전에도 누군가 먹으라고 건넨 것을 손에 쥐고만 있었다. 접수대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밤이었다.
그는 그 기억과 지금 들리는 소리를 갈라놓으려 눈을 감았다가 바로 떴다.
"서윤이 실종됐을 때 목격 신고가 있었습니다. 남자 목소리였어요."
해진이 의자를 돌렸다.
"직접 받은 전화입니까?"
"아닙니다. 나중에 가족에게 확인할 내용이 있다고 해서 담당자 앞에서 녹음을 들었습니다. 그때 한 번."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혼자 갔다고 했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왔다. 도윤은 펜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그렇게 기억합니다. 정확한 문장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지후가 화면에 멈춘 모자챙을 봤다.
"이 사람이랑 같게 들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얼굴도 모르던 목소리에 지금 얼굴을 붙이고 싶었다. 모자와 마스크만 있는 얼굴이라도.
"말끝이 걸립니다. 같은 사람이라고는 아직 못 하겠습니다."
해진은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자료가 남아 있는지부터 확인하죠. 기억에 맞는 부분만 찾아 듣지 말고요."
도윤은 개인 사진의 원촬영본을 문의한 접수번호를 휴대폰에서 찾았다. 그때 전화했던 부서였다. 답을 기다리고 있는 문의를 제쳐 두고 새 용건만 밀어 넣고 싶어졌다.
그는 화면을 해진 쪽으로 돌렸다.
"가족 자격으로 사진을 문의한 게 있습니다. 원촬영본이 남아 있는지 문의한 곳입니다. 녹음은 따로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확인은 제가 협조 요청을 넣겠습니다."
해진이 번호를 받아 적었다. 도윤은 전화기를 놓았다. 혼자 먼저 들어 보고 나서 말할 기회가 없어졌다. 자신이 먼저 내놓은 번호였는데 손바닥이 서늘했다.
현 담당자의 첫 답은 녹음이 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접수 목록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오래된 통화가 지금도 서버에 남아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해진은 현재 검토 중인 영상과 대조하려는 이유를 요청서에 적었다. 목격 신고의 접수와 보존 경위, 당시 확인 자료가 대상이었다. 도윤의 이름 옆에는 실종자의 가족이라는 관계도 함께 들어갔다.
도윤은 그 줄을 한참 봤다.
"제가 기억하는 목격 장소도 적을까요?"
"따로 적어 주세요. 자료에 있는 것과 구별되게."
도윤은 빈 종이에 혼자 갔습니다라고 썼다. 말끝이 낮아졌다는 기억을 덧붙이고 종이를 뒤집었다. 그 문장 위에 새로 들을 말을 덮어쓰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다리는 동안 지후가 새봄 관련 확인 목록을 가져왔다. 옛 전화기와 집 컴퓨터의 소재 확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보고였다. 도윤은 영상 촬영일 칸을 그대로 비워 뒀다. 서윤 사건 쪽에서 날짜가 나온다고 여기에 붙일 수는 없었다.
이틀 뒤 담당자가 연락했다.
"당시 사건 첨부로 따로 받아 둔 녹음이 있습니다. 매체 이관 목록하고 대조했습니다."
사건철의 첨부 목록에는 목격 신고 음성 한 건이 적혀 있었다. 당시 옮겨 보관한 매체에서 읽은 파일이었다. 담당자는 현재 사본을 만든 경위와 남아 있는 이관 기록을 함께 보냈다. 처음 녹음을 옮긴 과정까지 모두 확인됐다는 답은 아니었다.
해진은 회신에 적힌 자료 이용 범위와 열람자를 확인한 뒤 자료실에서 파일을 열었다. 도윤은 옆자리에 앉았다.
"최초 실종 접수 전화는 아니네요."
지후가 접수일을 짚었다. 가족이 실종을 신고한 뒤 들어온 목격 제보였다. 신고자 확인 결과를 찾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첨부된 가족 확인 기록에 도윤의 이름이 있었다. 옷차림 설명만으로는 동생이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답변. 당시 담당자가 적은 문장이었다.
도윤은 종이 아래를 엄지로 눌렀다. 자기는 그때도 모른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소리를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지후가 이어폰을 책상에 놓았다.
"혼자 들을래?"
"같이 들어 주십시오."
도윤은 자기 쪽으로 온 이어폰을 밀어 놓았다. 해진이 스피커 음량을 낮췄다.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처음부터 소리가 흘렀다.
처음에는 접수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디에서 봤느냐는 질문에 남자가 장소를 말했다. 도윤이 기억하던 버스 정류장 근처였다. 날짜와 옷차림을 묻는 말이 이어졌다. 남자는 밝은 겉옷을 입은 여학생이라고 답했다. 이름을 부르거나 얼굴을 가까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옆에 누가 있었습니까?"
"제가 봤을 때는 혼자 남았습니다."
도윤의 엄지가 종이를 밀었다.
갔습니다가 아니었다.
남았습니다.
혼자라는 말 뒤 짧은 공백이 있었다. 마지막 어절이 가라앉는 동안 스피커의 가느다란 잡음만 남았다. 도윤은 그 틈을 안다고 생각했다. 바로 앞에서 들은 목소리가 열두 해 전의 소리 위에 포개졌다.
"그 뒤에는 어느 쪽으로 갔습니까?"
접수자가 물었다.
"혼자 간 겁니다. 데려간 사람은 없어요."
"가는 걸 보셨다는 말씀이세요?"
"아니요. 저는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도윤은 화면 아래의 멈춤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이 버튼 위에서 멎었다. 아직 남은 대화가 있었다.
연락할 이름과 번호를 묻는 말이 나왔다. 남자는 신원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통화가 끊기기 전에 접수자가 다시 말을 붙였다. 응답은 없었다.
파일의 끝에 닿자 해진이 마우스를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여기까지입니다."
도윤은 뒤집었던 종이를 폈다. 혼자 갔습니다. 자기가 먼저 써 놓은 문장을 한 줄로 그었다. 옆에 실제 발화를 새로 적었다. 손에 힘을 주지 않았는데 마지막 글자가 눌렸다.
지후가 종이를 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혼자 남아 있던 걸 봤다는 사람이 가는 건 못 봤네."
"그런데 데려간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도윤이 답했다.
"짐작이었을 수도 있지."
"네. 왜 그렇게 말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혼자 간 것이 아니라 누가 데려갔다고 고쳐 쓸 수는 없었다. 도윤은 서윤의 이름이 없는 녹음 속에서 동생의 모습을 찾으려던 것을 멈췄다. 밝은 겉옷만으로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영상의 음성 구간을 열어 달라고 했다.
기록은 남는다.
다음은 전화였다.
혼자 남았습니다.
두 문장은 겹쳐 틀지 않았다. 하나가 끝난 뒤 다른 하나를 원래 속도로 들었다. 문장과 녹음 환경이 달랐다. 전화 쪽 목소리는 얇고 끝이 조금 뭉개졌다. 그래도 끝내기 전 비워 두는 자리에서 도윤의 어깨가 굳었다.
해진이 물었다.
"어느 부분입니까?"
도윤은 각각의 시간 위치를 적었다.
"여기서 한 번 멎고 마지막 말을 낮춥니다. 제 귀에는 비슷합니다."
지후도 두 구간을 다시 들었다. 그러고는 볼펜을 책상에 놓았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들으니까 더 그렇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해. 난 같다고 못 하겠어."
도윤의 입술이 굳었다. 지후는 그 말을 주워 담지 않았다.
"목소리가 다른 사람 것으로 나오면 이 전화는 덮을 거야?"
"아니요."
도윤은 통화의 뒤쪽을 짚었다.
"이 답변을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남습니다."
해진은 비교할 구간과 전체 파일을 함께 보내 음성 비교가 가능한지 검토를 의뢰하겠다고 했다. 짧은 발화와 통신 음질, 경과한 세월 때문에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도윤은 한 번 더 듣자는 말을 삼켰다. 세 번째에는 같다고 들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들릴 때까지 들으면 자기 기억을 고쳐 쓴 의미가 없었다.
해진이 관할과 통화하는 동안 지후는 옛 접수 요약을 펼쳤다.
‘실종자 추정 여학생 단독 이동 목격.’
그 아래에는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요약에 남은 이동과 녹음 속 남아 있던 모습 사이를 도윤은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문장만 읽었으면 출발하는 걸 봤다고 생각했겠네."
지후가 말했다.
"당시 담당자가 따로 확인했을 수 있습니다. 그 기록부터 봐야 합니다."
도윤은 요약 위에 선을 긋지 않았다. 현재 검토지에 원음과 차이가 있다고 적었다. 접수자가 이동을 봤느냐고 다시 물은 시간도 붙였다. 질문은 했었다. 그 뒤 어떤 확인이 이루어졌는지가 지금 받은 묶음에는 없었다.
해진이 돌아오자 도윤은 새 문서를 열었다.
서윤의 이름을 치다가 손이 멎었다. 이름을 넣으면 이 일이 다른 사건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화면 옆에는 준서의 공책 반환 가능 시점 문의가 그대로 떠 있었다.
지후가 그 항목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이건 내가 담당자한테 확인할게."
도윤은 지후를 봤다. 대신 써 준 것은 결론이 아니라 오늘 할 일 하나였다. 그는 다시 자판에 손을 올렸다.
신고자 신원 확인 결과. 실제 목격 장소와 시각의 검증. 단독 이동으로 요약한 근거. 새봄 영상 음성과 비교할 수 있는 범위.
끝에는 자신의 과거 기억과 실제 녹음이 달랐다는 사실을 적었다. 열두 해 동안 붙잡았다는 말은 넣지 않았다. 오래 기억한 것이 정확하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재수사를 검토해 주십시오."
도윤이 출력물을 내밀었다.
해진은 첫 장만 보지 않고 마지막의 기억 오류까지 읽었다.
"관할과 남은 기록을 확인하겠습니다. 정식으로 다시 열 범위는 그 자료까지 보고 결정하죠."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인받았다는 말을 지후에게 하지 않았다. 해진이 가져간 종이 아래에 사본 한 부가 남았다.
지후는 퇴근할 때 같이 가자며 외투를 의자에 걸었다. 도윤은 스피커를 껐다. 방금 들은 목소리를 집까지 가져가 혼자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질문지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썼다.
먼저 자리를 떴다는 사람이 왜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까.
도윤은 그 아래 신고자의 이름을 적을 칸을 만들었다. 빈칸 옆에는 더 이상 목격자라고 써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