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19화: 돌려준 적 없는 상자
준서의 누나가 물컵을 내려놓는 동안 화면이 조금 흔들렸다.
도윤은 어린 시절이라는 말을 적은 종이를 뒤집었다. 준서는 병실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더 물으면 그 문 너머에서 들었던 소리를 다시 설명하려 할 것 같았다.
"오늘은 연결을 마치겠습니다."
"공책은 어디서 온 건지 알아요."
준서가 말했다. 누나가 입을 열려다가 동생을 봤다.
"그 말만 할게."
도윤은 펜을 다시 들었다.
"새봄이요. 새봄아동보호시설. 어릴 때 거기 있었어요."
준서의 손가락이 담요 끝을 접었다. 누나가 그 위에 손을 얹지는 않았다.
"나올 때 짐 두 상자였는데 하나만 받았어요. 나머지는 찾아준다고 했고. 누나가 몇 번 전화했어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제가 데려올 형편이 안 돼서 따로 살았어요. 동생 데리고 나온 뒤에도 계속 물었는데 창고를 정리해야 찾는다고만 했어요."
"그 공책이 있는 상자였습니까?"
"네. 제가 글씨 쓸 때 틀리면 누나가 옆에 다시 써 줬어요. 버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윤은 이름 옆에 시설명을 적었다. 준서가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보다 그곳까지 간 이유가 먼저 선명해졌다.
"그때 못 받은 걸 준다니까……."
준서는 말끝을 삼켰다. 누나가 담요 위에서 접힌 모서리를 폈다.
"나도 가서 받으라고 했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병실이 조용해졌다. 도윤은 누가 연락했는지 바로 묻지 않았다. 침대 옆의 형사에게 다음 연락은 상태를 확인한 뒤 부탁한다고 말했다.
화면이 꺼진 뒤 해진이 종이를 당겼다.
"보관 경로부터 확인하죠. 목소리는 아직 목소리대로 두고요."
도윤은 노래라고 쓴 줄에 시설명을 이어 붙이지 않았다. 대신 연락을 보낸 사람이 못 돌려받은 짐을 어떻게 알았는지 적었다.
다음 날 오전 관할은 준서의 상태를 확인하고 휴대폰 제출 의사를 다시 물었다. 준서는 안내 메시지와 관련 통화 기록을 확인하는 데 동의했다. 누나가 보관하던 기기를 건네자 형사는 준서 앞에서 상태와 인수 시각을 적었다.
도윤이 오후에 받은 것은 인수 경위와 추출 내역이 붙은 사본이었다. 누나에게 전달한 짧은 문장보다 앞선 대화가 남아 있었다.
새봄 보관물품 정리 안내. 임준서 님 개인 물품이 확인되었습니다.
도윤은 그 아래를 읽었다. 폐기 전에 찾아가 달라는 말과 다온상가 주소가 있었다. 준서가 공책도 있느냐고 묻자 상대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준서는 곧 언제 갈 수 있느냐고 답했다.
도윤은 사진을 열었다. 꽃 모양 스티커의 한쪽 끝이 벗겨진 공책이었다. 이름이 적힌 부분은 사진에서 잘려 있었다.
"회수 안내는 먼저 보냈고 공책 얘기는 준서 씨가 꺼냈습니다."
해진이 대화 시각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물건을 가지고 답했네요. 번호 사용자는요?"
"확인 중입니다. 여기 적힌 시설 이름만으로 직원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뒷문과 작은 승강기로 내려오라는 안내도 같은 대화에 있었다. 준서가 누나에게 전달한 내용과 맞았다. 마지막 발신은 도착했다는 말이었다. 응답은 없었다.
지후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현장에서 받은 자료 봉투를 책상 위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 바짓단에 마른 흙이 붙어 있었다.
"영장 나와서 오전에 창고 수색했어. 상자하고 안에 있던 물건들 확보했고."
봉투에는 관할의 압수 목록과 현장 사진 사본이 들어 있었다. 지후가 공책의 안표지를 펼쳐 찍은 사진을 꺼냈다. 새봄아동보호시설이라는 보라색 도장 아래 임준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구석에는 작은 숫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표지에 붙인 건 애가 고른 것 같은데 이건 물품 관리번호 같아. 같은 번호가 상자에도 있어."
도윤은 휴대폰 사진과 현장 사진을 나란히 놓았다. 꽃잎 끝의 벗겨진 자리와 표지 아래 접힌 선이 맞아 보였다. 실물 대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표시만 해 두었다.
"누가 저걸 갖고 있었는지 찾아야겠네요."
지후가 공책 사진을 내려다봤다.
"애가 쓴 걸 놔뒀다가 저런 데로 부르는 데 썼다는 거잖아."
"보관한 사람과 보낸 사람이 다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알아. 둘 다 찾자고."
지후는 봉투에서 수색 진행표도 꺼냈다. 추가 인물과 음원 기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접근을 제한한 구역의 확인은 이어지고 있었다. 도윤은 노래가 없었다는 문장으로 옮기지 않았다.
해진은 관할에 세 사람의 보호 이력 조회를 요청했다. 건물 주소와 물품 회수 연락, 공책에 찍힌 시설명이 근거로 붙었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잘못 잇지 않도록 생년월일 대조도 함께 요청했다.
이틀 뒤 구청 기록 열람실에서 지후는 두꺼운 철 하나를 받았다.
담당자가 시설 이름을 적은 표지를 가리켰다.
"여기는 칠 년 전에 폐원했습니다. 이용 이력은 요청하신 세 분만 따로 확인해 뒀고요."
동행한 관할 형사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맞췄다. 임준서 아래에 송은재와 유태오가 있었다. 각각 입소와 퇴소 날짜가 적혀 있었다. 함께 지낸 기간이 있는지는 아직 계산하지 않았다.
지후는 확인된 이력과 자료 출처를 해진에게 전송했다. 자료실에서 기다리던 도윤은 세 사람 옆에 같은 시설명을 적었다. 상가에 갔다는 말만 남아 있던 세 줄이 처음으로 한곳에 닿았다.
통화가 이어진 채로 지후가 다음 문서를 넘겼다.
"개인 물품은 전부 반환했다고 돼 있는데요."
담당자가 철을 돌려 봤다.
"시설에서 폐원 정산할 때 낸 명부입니다. 구청 직원이 전달 현장을 본 기록은 아니고요."
사진이 도착했다. 개인 보관물품 처리 명부. 이름 옆의 물품 수와 관리번호 뒤로 수령 완료라는 말이 반복됐다. 임준서 줄에도 같은 말이 있었다.
도윤은 상자 사진을 가까이 당겼다. 공책 안표지와 상자에 있던 숫자가 명부에도 찍혀 있었다.
"수령한 사람의 서명이 있습니까?"
지후가 종이 아래까지 사진을 더 찍어 보냈다. 개인별 서명란은 없었다. 맨 아래 확인자 칸에만 이름이 있었다.
서명훈.
담당자가 폐원 신고서의 대표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확인했다. 당시 원장이었다.
"다른 두 사람 줄도 보여 주세요."
해진이 말했다.
송은재와 유태오의 물품도 수령 완료였다. 두 사람은 그 날짜보다 훨씬 뒤에 맡긴 물건을 찾으러 간다고 말했다. 준서는 지금 병원에 있었고 그의 공책은 지하에서 나왔다.
지후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멎었다.
"못 받은 걸 받았다고 쓴 겁니까?"
"돌려받은 뒤 다시 맡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로가 있는지 먼저 봐야 합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해진은 명부 대신 첨부 목차를 확대했다.
"그 아래 임시 보관비 정산 첨부가 있네요. 그것도 부탁합니다."
담당자는 철 뒤편을 넘겼다. 종이 두 장이 한꺼번에 들려 다시 떼었다. 빛바랜 영수증 뒤에 물품 위탁 목록이 있었다.
"이거네요. 주소가……."
지후는 말을 멈추고 관할 형사에게 종이를 보여 줬다. 다온상가였다. 준서의 상자 번호가 첫 장 아래쪽에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의 번호는 두 번째 장에서 나왔다.
도윤은 명부와 위탁 목록의 날짜를 나란히 적었다. 같은 폐원 정산에 딸린 문서였다. 반환 완료라고 적은 날보다 사흘 뒤까지 세 상자를 창고에 보관한다며 비용을 청구했다.
해진이 펜 뚜껑을 내려놓았다.
"같은 상자를 돌려줬다고 쓰고 보관비도 청구했습니다."
"정산을 한꺼번에 하면서 날짜가 밀렸을 수는 있어요."
담당자가 말했다. 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원본과 접수 이력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정정한 문서가 있는지도요. 지금은 어느 쪽도 고치지 마세요."
담당자가 확인할 항목을 메모했다. 지후는 사진에 빠진 뒷면이 없는지 확인하고 사본 교부 목록을 받았다. 칠 년 된 종이 가장자리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접힌 자국이 있었다.
병원에서 연락이 온 것은 그날 오후였다.
준서가 확보한 공책 사진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료진이 짧게는 괜찮다고 했고 관할 형사는 본인의 의사를 다시 확인한 뒤 연결했다.
도윤은 명부를 화면에 띄우지 않았다. 공책의 앞표지와 첫 장만 보여 줬다.
준서가 첫 장 오른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기 네모요. 내가 날짜 잘못 썼다고 누나가 지우개로 지우다가 찢었어요. 뒤에 종이 붙여 놓은 거예요."
누나가 가까이 보더니 입술을 눌렀다.
"그때 다시 사 준다고 했는데 네가 싫다고 했지."
"뒤에는 다 썼으니까."
준서는 아주 잠깐 웃었다. 도윤은 사진을 넘기지 않고 기다렸다. 그의 손이 화면 쪽으로 갔다가 담요 위로 돌아왔다.
"저건 언제 받을 수 있어요?"
"확인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돌려드릴 수 있는 시점은 담당 형사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찾았다는 말 다음에 기다리라는 말이 붙었다. 준서의 표정이 닫혔다. 도윤은 화면 옆 관할 형사를 봤다.
"어디에서 보관하는지와 누구에게 연락하시면 되는지도 적어 드리겠습니다."
형사가 메모지를 꺼내자 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그 종이를 자기 휴대폰으로 찍었다.
도윤은 공책을 한 번이라도 돌려받았다가 다시 맡긴 적이 있는지 물었다. 준서는 없다고 답했다. 누나도 자기에게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명부의 수령 완료 표기를 알려 주자 준서가 화면에서 눈을 뗐다.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받은 걸로 해 놓은 거예요?"
도윤은 서명훈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확인하고 썼는지 조사하겠습니다. 못 받았다고 하신 말씀도 함께 남깁니다."
통화를 마친 뒤 해진이 송은재의 옛 문자 출력물을 펼쳤다. 장갑을 저녁에 주겠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 옆에 준서의 물품 명부를 놓았다.
"처음에는 요약하면서 잘못 옮겼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이건 요약문이 아닙니다. 명부 전체를 확인했다는 이름까지 있어요."
도윤은 명부 아래 한 사람의 서명을 봤다. 세 사람의 이름 옆에는 자신이 받았다는 글씨가 없었다.
"기록을 조작했을 가능성입니다. 보관비 때문인지 물건의 행방을 감추려던 건지는 아직 모릅니다."
해진은 두 기록의 작성 경위와 원장 면담을 관할에 요청했다. 경찰의 실종 기록을 같은 사람이 손댔다고 쓰지는 않았다.
지후의 전화가 울렸다. 관할 형사였다. 전 원장 서명훈과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면담에 오겠다고 답했다.
"창고는 자기가 구한 게 아니랍니다. 후원 쪽에서 알아봐 줬다고요. 당시 사람들 명단을 가져오겠답니다."
해진이 반환 명부를 봉투에 넣었다.
"그 명단하고 이 서명을 같이 놓고 묻겠습니다."
도윤은 공책 사진을 마지막으로 봤다. 찢어진 자리를 받친 작은 종이는 아직 붙어 있었다. 사진을 보며 잠깐 웃던 준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 돌려줬다는 상자가 칠 년 뒤 한 사람을 지하로 불러들였다. 이제 그 상자를 돌려줬다고 확인한 사람을 만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