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13화: 남겨 둔 통화
오재민은 전화기를 책상에 놓고도 손을 떼지 않았다.
화면 모서리가 깨진 옛 기기였다. 옆에 앉은 변호인이 낮게 말을 건네자 그제야 손가락이 펴졌다. 관할 형사는 제출 범위와 보관 경위를 확인했다. 재민은 일을 하며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했고 기기를 바꾼 뒤에도 이 전화기만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왜 남겼습니까?"
"나중에 딴말할까 봐요."
"누가요?"
"정태건 씨가요."
재민은 형사를 보지 않았다. 어제 받은 문자 화면을 변호인 앞으로 밀었다. 시킨 사람은 없고 정비한 사람만 남는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다시 나왔다.
관할 형사는 살인 관여 혐의를 조사한다는 점과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알렸다. 재민은 변호인과 상의한 뒤 관련 통화 자료 제출과 조사에 응하겠다고 했다. 담당자가 기기 상태와 인수 내역을 남겼다.
오후에 관련 파일의 분석용 사본이 준비됐다. 추출과 복사 내역을 확인한 뒤 관할 형사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재민이 가리킨 대목부터 틀지 않고 통화의 처음부터 들었다.
‘저예요. 옹벽에 박았어요.’
잡음 사이로 재민의 목소리가 나왔다.
‘수경이는?’
‘고개 숙이고 있어요. 끝난 것 같습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남자가 숨을 내쉬었다. 재민은 자기 무릎만 내려다봤다.
‘것 같습니다가 뭐야. 확인하랬잖아.’
빵. 빵. 빵.
도윤의 펜 끝이 멈췄다. 스피커 안에서 옷 스치는 소리가 커졌다.
‘잠깐만요. 소리가 나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은데.’
‘돌아가지 마. 누가 보면 네가 같이 탄 게 드러나.’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살아서 나오면 우리 둘 다 끝이야. 돈 받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
또 경적이 울렸다. 젖은 길을 지나는 차 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통화 속 재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숨소리와 발소리가 이어지다가 통화가 끊겼다.
관할 형사가 종료 시각을 적었다.
"상대방이 누구입니까?"
"태건 씨요. 제가 걸었습니다."
"본인 목소리와 대화 내용도 맞습니까?"
재민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변호인을 보고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도윤은 그 대답 옆에 진술이라고 적었다. 목소리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통화 상대 확인을 끝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혼자였던 사고 차량 옆에 한 사람의 발소리가 생겼다.
"어디서 내렸습니까?"
관할 형사가 빈 도로 약도를 놓았다. 사고 사진은 아직 재민에게 보이지 않았다.
재민은 굽은 길 바깥쪽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앞에 차를 그리다가 지우고 앞부분을 옹벽 쪽으로 돌렸다.
"조수석으로요. 제 쪽은 열렸어요. 수경 씨는 벨트가 안 풀려서……."
"풀어 달라고 했습니까?"
"손을 그쪽으로 뻗었습니다."
그는 펜으로 자기 허리 옆을 가리켰다. 도윤은 수경의 말을 대신 만들어 넣지 않았다. 손이 갔다는 방향만 그림에 표시하게 했다.
"두 분이 어떻게 같은 차에 탔습니까?"
"동림에서 기다렸습니다. 태건 씨가 전기 장치 좀 봐 달라고 했다고 했어요. 달릴 때 나는 소리 확인한다고 같이 탔고요."
"실제로 부탁받은 일은요?"
재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돌아오지 못하게 해 달라고요. 사고로 보이게. 돈 준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이 물컵을 당겨 줬지만 재민은 마시지 않았다. 관할 형사는 의뢰 시점과 장소를 나누어 물었다. 재민은 사고 며칠 전 가게에서 들었다고 했고 금액과 지급 약속도 진술했다. 받은 돈은 따로 확인해야 했다.
재민은 수경이 오기 전 운전석 버클을 손댔다고 했다. 차가 굽은 길에 들어섰을 때 조수석에서 운전을 방해한 일도 인정했다. 도윤은 어떻게 충돌했는지와 충돌 뒤 무엇을 했는지를 다른 종이에 적었다.
"부딪히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뒤에는요?"
"벨트 쪽으로 손을 움직였어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살아 있는 걸 보고 나왔다는 겁니까?"
재민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예."
도윤은 스피커를 보았다. 재민은 수경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끝났다고 보고했다. 경적을 들은 뒤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재민이 갑자기 말을 이었다.
"다른 차가 오고 있었어요. 저 말고도 신고할 사람은……."
"그래서 그 차를 세웠습니까?"
관할 형사가 물었다. 재민은 아니라고 했다.
"수경 씨에게 돌아갔습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같았다.
도윤은 언제 구조했으면 살았을 거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재민이 떠난 방향과 전화한 위치를 그리게 했다. 나중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선택 뒤에 남은 흔적이었다.
사고 이틀 뒤 버클을 바꾼 이유를 묻자 재민은 태건이 손댄 부품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고 답했다. 보험에 보여 준다는 설명은 전날 자기 책임을 줄이려고 붙인 거짓말이었다.
"태건 씨에게 준 건 맞아요. 가게 앞에서요."
그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관할 형사는 앞선 진술 가운데 바꾸는 부분과 유지하는 부분을 각각 읽어 확인했다.
도윤은 마지막으로 대시보드를 물었다.
"제가 탈 때 집게는 붙어 있었어요. 만진 적 없습니다."
집게가 무엇을 비췄는지 재민은 알지 못했다. 도윤은 반사광으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문장을 쓰지 않았다.
이틀 뒤 분석 담당자가 두 음성을 나란히 틀었다.
한쪽은 옛 전화기에서 추출한 통화였다. 다른 쪽은 사고 기록에 남아 있던 신고자 차량 영상이었다. 경적 사이의 간격과 차가 지나갈 때 커졌다 작아지는 소리가 대응했다. 재민의 기기 시각만으로 같은 순간이라고 정한 것이 아니었다.
"편집 흔적은요?"
해진이 물었다.
"현재 확인한 구간에서는 뚜렷한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파일 전체 검토는 계속합니다."
담당자는 추출본과 분석 사본의 해시값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보존된 사본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확인이었다. 재민이 통화 전에 무엇을 했는지까지 증명하는 숫자는 아니었다.
통화 상대 번호는 기존 사건 기록에 남은 태건의 당시 번호와 맞았다. 기기 기록 시각을 기준으로 교육장 영상의 해당 구간도 확인했다. 참가자들이 장비를 옮기는 동안 태건이 뒤로 돌아 전화기를 귀에 댔다. 화면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두 기록의 시계 차이는 더 확인해야 했고 영상에는 그의 통화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도윤은 행사장과 도로 사이의 거리를 적었던 종이를 옆으로 밀었다.
"직접 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태건의 알리바이는 틀리지 않았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시켰는지는 그 영상이 지워 주지 못했다.
관할 형사는 재민의 진술과 녹음, 버클 교환 기록을 영장 신청 자료에 붙였다. 살인 혐의로 수사를 전환했고 태건의 주거지와 관련 기기에서 확인할 대상을 정리했다. 원래 버클과 돈의 흐름이 앞쪽에 적혔다.
"부품은 조작했다는 진술까집니다. 실제 기능과 사망에 미친 영향은 따로 남겨 주세요."
해진이 말했다. 관할 형사가 기존 검안 자료에 대한 재검토 요청을 함께 묶었다. 녹음 속 돈 약속만으로 보험금 지급까지 범행 계획대로였다고 쓸 수는 없었다.
지후는 다른 봉투를 책상에 놓았다. 그날 오전 별도로 발부된 영장을 집행해 확보한 문기석의 서랍 자료였다. 관할팀이 현장에서 매긴 번호가 사본에도 붙어 있었다.
"수아 씨가 보낸 입고표 원본이야. 뒤쪽도 있어."
도윤은 사진과 원본 사본의 앞면을 먼저 맞췄다. 같은 접힘과 글자가 있었다. 뒷면에는 반출 시각 대신 짧은 메모가 남아 있었다.
차내 별도 수거. 검은 유리 조각 1점. 봉투 보관.
그 아래는 사고 다음 날 날짜와 문기석이라는 이름이었다.
"봉투는요?"
"서랍에는 없었어. 문기석 차에서 수거한 물건 목록에도 없고."
지후가 현장 사진을 넘겼다. 종이철을 빼낸 서랍 안쪽까지 보였다. 도윤은 사진에 없는 물건의 모양을 그려 넣지 않았다.
"언제까지 가지고 있었는지는요?"
"모릅니다. 반출이나 인계 기록은 아직 못 찾았어요."
현장 담당자의 답이 스피커에서 나왔다. 메모를 문기석이 직접 썼는지와 실제 수거 경위도 확인해야 했다. 삼 년 동안 그 서랍에 계속 있었다는 기록은 아니었다.
지후가 김성철 사건의 사진을 가져왔다. 검은 조각 옆에는 누런 포장지 모서리가 있었다. 도윤은 두 자료를 겹치지 않고 나란히 놓았다.
같은 물건이라고 하기에는 한쪽이 글씨뿐이었다.
"찾아야 할 게 하나 더 늘었네."
지후가 빈 서랍 사진을 내려다봤다. 도윤은 문기석이 수아에게 보냈던 약속 시간을 떠올렸다. 원장과 맞춰 보자던 사람은 이 메모의 다음 줄을 말해 주지 못했다.
여섯 시 십 분에 수아가 전화를 받았다.
도윤은 관할 담당자와 정리한 범위부터 전했다. 사고에 관여했다고 진술한 사람이 나왔고 남편과 나눈 통화 파일을 확보했다. 기존 자료와 대조해 살인 혐의 수사로 전환했다. 판결이 난 것은 아니며 수경의 정확한 사망 과정도 다시 검토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언니 옆에 있었대요?"
"충돌 당시 함께 탔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럼 혼자 아니었네요."
수아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를 뜯는 소리가 났다. 메모할 종이를 찾는다고 했다.
도윤은 기다렸다. 수아가 펜을 찾았다고 하자 같은 문장을 다시 천천히 말했다.
"나중에 제가 잘못 들었다고 할까 봐요."
"담당 수사관에게도 같은 범위로 안내받으실 수 있습니다."
수아는 적은 말을 읽어 확인했다. 그동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도윤은 묻지 않았다. 그녀가 종이를 접어 넣을 때까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언니가 누른 건지 모른다고 하셨잖아요. 경적이요."
"그 사람이 차에서 나온 뒤 소리가 났다고 진술했습니다. 통화에도 남아 있습니다."
수아가 숨을 들이마셨다.
"끝까지 누가 오라고 했던 거네요."
도윤은 수경의 마지막 마음을 대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그 소리를 고장 난 차의 소리로만 남겨 둘 수는 없었다.
입고표 뒷면도 찾았다고 알렸다. 유리 조각을 따로 보관했다는 글은 있지만 물건은 없었다. 열쇠를 누가 건넸는지 적힌 표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없다는 건 먼저 알려 주셨네요."
수아는 이번에는 더 묻지 않았다.
통화를 마치자 해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영장 자료가 아닌 도윤의 경위 보고가 들려 있었다.
"수경 씨 사건은 관할에서 이어 갈 겁니다. 강 분석관은 내일 저하고 먼저 이야기하죠."
도윤은 보고서의 마지막 장을 보았다. 접촉한 위치와 시간이 있고 이유가 빠져 있었다.
"현장에 다시 가겠다는 요청은 안 드렸습니다."
"그 요청을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해진이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왜 손을 댔는지 듣고 싶은 겁니다."
도윤은 펜을 들었다. 접촉 이유를 써야 할 줄 위에서 펜촉이 멎었다. 해진은 보고서를 가져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