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현장의 마지막 1분을 재생합니다

12화: 세 번씩 남은 소리
오재민은 자기 서명보다 그 위의 한 줄을 오래 보았다.
탈거품 의뢰인 인계.
"제가 받아 온 건 맞습니다."
그가 종이를 밀었다. 손톱 가장자리에 검은 때가 남아 있었다. 관할에서 현재 영업 중인 재민자동차전장의 연락처와 본인 신원을 확인한 뒤 요청한 면담이었다. 그는 오전 작업을 미루고 왔다며 탁상시계를 두 번 봤다.
"교환도 직접 하셨습니까?"
"예. 같은 차종 부품 가져가서 달았어요."
"누가 부탁했습니까?"
"정태건 씨요. 출장 몇 번 갔던 집입니다. 사고 났다고 연락했어요."
도윤은 이름 밑에 선을 긋지 않았다. 지후가 빈 종이를 재민 앞에 놓았다.
"부탁받은 말 그대로 적어 주실 수 있습니까?"
"삼 년 전 말을 어떻게 그대로 씁니까."
"기억나는 데까지만요."
재민은 펜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버클 바꾸고 원래 건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보험 쪽에 보여 준다고."
"그쪽에 직접 건네셨습니까?"
"아뇨. 태건 씨한테 줬죠. 어디에 냈는지는 모르고요."
관할 형사가 건넨 장소와 날짜를 따로 물었다. 재민은 작업한 날 저녁 가게 앞이라고 답했다. 수령증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손가락이 종이 귀퉁이를 접었다.
"멀쩡한 걸 왜 바꾸겠습니까. 누르면 안 빠진다니까 바꿨지."
"직접 눌러 보셨습니까?"
재민의 손이 멎었다.
"전 뜯는 일만 했어요. 안에 벨트 쇠가 끼어 있었습니다."
지후가 사진을 꺼내려다 도윤을 봤다. 도윤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먼저 기억으로 남은 모양과 작업 순서를 받아야 했다. 관할 형사가 새 종이에 좌석 위치를 그리게 했다.
도윤은 옆에 놓인 구조 활동 기록을 펼쳤다. 전날 요청해 받은 사본에는 운전석 벨트를 절단했다는 기재가 있었다. 잠금이 고장 나 잘랐다는 말은 없었다. 접근 공간이 좁았는지 버튼을 시험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재민이 그림을 마치는 동안 지후가 사고 기록의 첨부 목록을 내려 짚었다.
"이것도 왔어. 최초 신고자가 냈던 차량 영상. 사고 기록 첨부번호로 따로 보관된 파일을 찾았대."
기존 기록에 붙은 설명은 짧았다. 충돌 이후 촬영. 사고 원인 확인 불가.
도윤은 목록을 넘기지 않고 해당 번호를 적었다.
정태건은 전화에서 오재민의 이름을 듣자 먼저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관할 형사가 참여자를 알리고 스피커로 통화를 이어 가도 되는지 확인했다. 재민은 복도 반대편 대기실에 있었다. 도윤은 문을 닫았다.
"그 사람한테 차를 맡기신 적 있습니까?"
"집으로 와서 전기 장치 봐 주던 사람이에요. 사고 나고도 연락은 했습니다."
"운전석 버클을 교환해 달라고 하셨습니까?"
짧게 옷 스치는 소리가 났다.
"아뇨. 알아서 볼 수 있는지 물었죠. 차가 그 지경인데 제가 뭘 지정하겠어요."
"떼어낸 부품을 받으신 적은요?"
"없습니다. 누가 그래요? 재민 씨가요?"
관할 형사는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분명히 했다. 태건의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
"그 사람이 만진 건 그 사람한테 물으세요. 저는 교육장에 있었습니다."
"지금 여쭙는 건 사고 이틀 뒤 작업입니다."
태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제가 갈 때는 잘 움직였어요. 그 뒤에 누가 뭘 했는지 모릅니다. 더 할 말 없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지후가 수령 여부 옆에 부인이라고 적었다. 서로 반대되는 두 진술 사이에는 실물이 없었다.
재민은 다시 들어오면서 휴대폰 화면을 뒤집어 책상에 놓았다. 진동이 나무판을 울렸다. 화면 위에 정태건 이름이 떴다가 사라졌다.
"받으셔도 됩니다."
관할 형사가 말했지만 재민은 손을 대지 않았다.
"받아서 뭘 말하라고요."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빈손으로 꺼냈다. 잠시 뒤 스스로 전화기를 돌려 보여 줬다.
‘네가 알아서 정비한 거라고 설명해. 나한테 받은 지시는 없잖아.’
조금 전 도착한 문자였다. 관할 형사가 관련 메시지 화면을 촬영해도 되는지 물었다. 재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화 화면을 열었다.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만으로 보낸 사람을 확정할 수는 없었다. 번호와 수신 시각, 앞뒤 대화도 함께 남겼다.
"다 제 일이 되는 거네요."
재민이 말했다.
도윤은 그 말에 맞장구치지 않았다.
"직접 하신 일과 부탁받은 일을 나눠서 말씀해 주세요."
"제가 말하면 저 사람도 조사합니까?"
"확인할 자료가 있으면 확인합니다. 지금도 양쪽에 묻고 있습니다."
재민은 전화기를 가져갔다. 이번에는 주머니에 넣지 않고 두 손으로 감쌌다.
"생각 좀 해도 됩니까."
관할 형사가 면담을 쉬게 했다. 도윤은 그가 말을 고르는 동안 더 가까이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
자료 검토실 스피커에서 경적이 났다.
영상은 신고자가 당시 제출한 파일의 사본이었다. 자료관리 담당자가 원본 보관 위치와 사본 교부 내역을 확인해 보냈다. 지후는 그 내역과 사고 기록의 첨부번호를 맞췄다. 신고자의 차는 하천변 굽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끝에 옹벽을 들이받은 차가 나타났다. 사고 사진과 같은 위치였다. 화면에는 찌그러진 뒷부분만 잠시 잡혔다.
빵. 빵. 빵.
타이어가 젖은 길을 지나는 소리 뒤로 다시 세 번이 들렸다. 촬영 차량은 사고 차를 지나쳤다. 앞유리 와이퍼가 한 차례 오간 뒤 경적이 세 번 더 울렸다.
"아홉 번."
지후가 적었다. 도윤은 그 옆에 짧은 선 두 개를 넣었다. 세 번씩 끊겼다.
"숫자를 알리려고 한 걸까."
지후가 물었다. 도윤은 종이 위 세 묶음을 봤다. 전화번호의 일부나 누군가와 정해 둔 암호를 끼워 넣을 근거는 없었다.
"숫자로 바꾸기 전에 차가 언제 멈추는지 보죠."
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마지막 세 번 뒤 촬영 차량의 속도가 줄었다. 화면이 흔들리고 길가에 멈췄다. 안전벨트를 푸는 소리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저 차에서 나는 거지?’
차 문이 열렸다. 녹화는 이어졌지만 경적은 더 들리지 않았다. 도윤은 배속을 바꾸거나 잡음을 지워 보자고 하지 않았다. 멈추기 전과 뒤의 빈 시간을 각각 적었다.
지후가 기존 신고 진술을 꺼냈다. 사고 차를 지나치다 거듭 울리는 경적을 듣고 정차했다는 말이 있었다. 운전석에 여성이 있었고 밖에서 불러도 답이 없었다고 적혔다. 그 뒤의 신고 접수 시각이 22시 36분이었다.
"눌린 채 붙은 소리는 아니네."
"전기 쪽 이상으로 끊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차가 지나갈 때 반복되고 멈춘 뒤에는 그쳤습니다."
"저 사람을 부른 거라면……."
도윤은 화면 속 사고 차를 봤다. 손도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어둠을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지후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 번으로 못 세우니까 다시 누른 걸 수 있습니다. 구조를 요청했을 가능성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해진이 진술서와 도윤의 메모를 번갈아 봤다.
"누른 사람이 수경 씨인지는 보이지 않네요."
"예. 경적이 끊긴 이유도 모릅니다."
"당시 신고자에게 더 기억하라고 압박하지 마세요. 원래 진술과 영상으로 확인할 부분부터 정리하고요."
도윤은 아홉이라는 숫자 아래 문장을 썼다.
사고 뒤 누군가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했을 가능성.
안전벨트가 잠겼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지 않았다. 버클 교환 기록과 경적 사이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과정이 있었다.
충돌과 신고 사이에 수경이 했을지도 모를 행동이 남았다. 누군가는 이 소리를 듣고 차를 세웠다. 수경이 혼자 발견됐다는 문장 앞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수아에게 전화한 것은 여섯 시가 지난 뒤였다.
도윤은 부품을 교체한 사람을 만나 작업했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원래 부품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먼저 덧붙였다.
"그 사람도 버렸대요?"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합니다. 양쪽 말이 달라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수아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도윤은 사고 당시 보존된 목격 차량 영상에 경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사고 뒤 소리였으며 운전자의 손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가 누른 거예요?"
"그럴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영상만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인데요?"
"들리는 건 아홉 번입니다. 세 번씩 끊겨 있습니다."
수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회사 밖인지 멀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그 소리를 영상 속 소리와 겹치지 않으려 수화기를 조금 떼었다.
"누가 가긴 갔어요?"
"예. 그 차에 타고 있던 분이 멈춰서 신고했습니다."
"그분 탓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냥 누가 가기는 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도윤은 늦지 않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수아는 살릴 수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에게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자료에서 확인되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더 확인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재민이 면담실 앞에 서 있었다. 오후 작업도 취소했는지 작업복 지퍼를 끝까지 올린 채였다.
그는 변호사와 먼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관할 형사는 연락할 시간을 주고 면담을 중단했다. 재민은 복도 끝에서 통화한 뒤 한참 있다 돌아왔다.
"내일 같이 오기로 했습니다. 그때 가져올 게 있어요."
도윤은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옛날 전화기요. 통화 녹음하던 거."
재민은 해진을 보았다.
"제가 가져오면 제 말도 들어 줍니까. 시킨 대로 했다는 것도."
"듣겠습니다. 책임이 없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재민의 턱이 굳었다. 그는 잠깐 계단 쪽을 봤다가 다시 돌아섰다.
"버클 가져다준 날 말고요. 사고 난 날 통화가 있어요. 태건 씨하고."
관할 형사가 기기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재민은 집 서랍에 있으며 충전하면 켜진다고 했다. 파일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때와 보관 경위를 따로 적었다. 담당자는 임의 제출 절차를 설명하고 지우거나 잘라서 보내지 말고 기기 그대로 가져오도록 안내했다.
지후는 의자를 한 개 더 빼 놓았다. 재민은 아직 앉지 않았다.
"오늘 질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내일 같이 오셔서 말씀하시죠."
관할 형사가 서류를 모았다. 재민이 돌아서려는 그를 불렀다.
재민은 휴대폰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낮에 온 문자를 다시 열지는 않았다.
"끝났다고 말하려고 전화했어요."
도윤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안 끝났어요. 차에서 소리가 나서."
자료 검토실의 문은 닫혀 있었다. 재민에게는 아직 경적을 들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