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침공 24시간 전으로 무한 루프

3화: 기각된 경보
비상계단의 공기는 차가웠다.
시멘트 벽면을 타고 번지는 서늘한 한기가 도윤의 목덜미를 스쳤다. 단말기 너머에서는 날카로운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파이-세븐-나인-줄루-에코-포-투-에이트.’
국방과학연구원 제3전자전연구센터가 3년 전 극비리에 다루다 폐기했던 ‘노을 프로젝트’의 비인가 암호화 키였다. 그 프로젝트의 주 연구원이었던 서진아가 연구소 전산망 몰래 감춰둔 개인 백업 드라이브의 접근 코드이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오직 서진아 본인과 당시 연구 책임자였던 한서윤만이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이었다.
―……당신 누구야.
흘러나온 서진아의 음성은 낮고 차가웠다. 의자를 뒤로 밀어내는 소리와 함께 긴장으로 굳은 숨소리가 섞여 들었다.
―내부 보안감사실인가? 아니면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서 보낸 사람이야?
“보안감사실도 아니고 군 수사관도 아닙니다.”
―그럼 그 코드를 어떻게 알았지? 3년 전 프로젝트가 강제 종료되면서 문서와 함께 전량 소각 처리된 식별자야. 연구소 메인프레임에도 남아 있지 않아.
“국가우주감시센터 운용2팀 야간 감시관 한도윤입니다.”
도윤은 건조하게 신원을 밝혔다.
수화기 너머에서 헛숨을 들이켜는 기척이 전해졌다.
―우주감시센터? 일개 야간 감시관이 내 개인 백업 키를 해킹해서 이 야밤에 장난 전화를 걸었다고?
“장난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키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윤은 말을 자르고 본론으로 파고들었다.
시간은 1초씩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사소한 신원 공방으로 낭비할 틈 따위는 없었다.
“달 뒤편 L2 라그랑주 포인트 외곽에서 방금 42.8기가헤르츠 변조 신호가 잡혔습니다. 3.82초 간격으로 반복되는 극저주파 위상 펄스입니다. 서진아 연구원님, 당신이 3년 전 논문 초안에만 남겨두고 실측에는 실패했던 양자 공명 파형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뭐라고?
서진아의 어조가 거세게 흔들렸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하게 이어졌다. 그녀는 이미 개인 단말기를 열어 노을 프로젝트의 봉인된 파라미터를 대조하고 있었다.
―42.8기가헤르츠에 3.82초 펄스라고? 말도 안 돼. 그 파형은 이론상 공간 곡률을 비틀어 전자기파를 차폐할 때 발생하는 가상 간섭값이야. 지구 궤도 주변에서 그런 파형이 자연 발생할 확률은 없어.
“자연 현상이 아니니까요.”
도윤은 품 안의 수첩을 꺼냈다.
“정확히 22시간 50분 뒤 자정이 되면 그 신호의 발신원들이 달 뒤편에서 쏟아져 나와 서울을 비롯한 전 지구 핵심 방공망을 타격합니다. 서울 전체가 몇 초 만에 잿더미가 됩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서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곧바로 돌아온 반응은 맹목적인 공포가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이성의 반발이었다.
―한도윤 감시관,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서진아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극비 코드를 안다기에 대단한 보안 사고라도 터진 줄 알았더니 결론이 외계 침공이라고? 전파 변조 수치 하나로 멸망을 들먹이는 건 과학이 아니라 망상이야.
“망상이 아닙니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냉정해져. 단순한 전파 변조는 지상 통신망의 이상 난반사나 수신 안테나 회로 결함으로도 얼마든지 나타나. 고작 전파 노이즈 하나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구소를 움직이라는 건가?
도윤은 오히려 안도했다.
서진아는 소문이나 공포에 휘둘리지 않는다. 반박할 수 없는 물리적 법칙과 측정 데이터 앞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이다. 수천 번의 루프 속에서도 그녀의 차가운 엄밀함이 유일하게 외계 기술을 해독해내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어떤 데이터가 필요합니까.”
도윤의 물음에 서진아가 지체 없이 답했다.
―물리적 실체를 가져와.
단호한 요구였다.
―전파 신호는 허상일 수 있어. 하지만 그 발신원이 진짜 질량을 가진 비행체 군집이라면 광학 센서나 레이더에 반드시 굴절 단면적이 잡혀야 해. 달 남극이나 크레이터 그림자 뒤편을 관측하는 저궤도 감시 위성의 광학 반사 좌표를 가져와.
“누리-4호의 광학 데이터면 됩니까.”
―그래. 누리-4호 가시광선과 적외선 센서 로그에서 동일한 3.82초 주기로 빛이 왜곡되는 반사점 좌표를 추출해. 그 반사점과 42.8기가헤르츠 신호가 완벽히 동기화된다는 교차 검증 로그가 없다면 난 당신 전화를 허위 협박으로 간주하고 합참에 넘길 거야.
“10분 드리겠습니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말을 이었다.
“10분 안에 주관제실에서 교차 좌표를 뽑아내겠습니다. 연구실에서 수신 대기하십시오.”
―……기다리지.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마.
통화가 끊겼다.
도윤은 단말기를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서진아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 명백한 증거였다.
2층 주관제실 문이 열리자 기계음이 귓전을 울렸다.
수십 대의 콘솔 모니터가 창백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 한 주임! 어디 갔다 이제 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던 정민우가 고개를 들었다.
“십 분이면 온다더니 삼십 분이 넘었잖아.”
“미안해. 백업 정리가 좀 길어졌어.”
도윤은 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짚고 자신의 2번 콘솔에 앉았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지만 손가락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타타타탁!
도윤의 손끝이 매끄럽게 명령어를 입력했다.
대한민국 저궤도 감시망의 핵심 자산인 ‘누리-4호’의 실시간 관측 패널이 떠올랐다. 고해상도 다목적 광학 센서와 합성개구레이더를 탑재한 정밀 위성이었다.
‘각도 보정값, 마이너스 14.2도.’
도윤은 송태원의 단말기에서 외워두었던 수치를 입력창에 넣었다.
일반적인 관제 프로그램은 달의 영구 음영 지역을 관측할 때 완전한 암흑으로 처리해 버린다. 아무것도 반사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센서 감도를 올리면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자동 리미터를 해제했다. 42.8기가헤르츠 편광 필터를 누리-4호의 적외선 채널에 중첩시켰다.
서버 랙의 냉각 팬이 급격히 회전 속도를 높였다.
모니터 중앙에 달 남극-에이트켄 분지 외곽의 암흑 공간이 초고해상도로 펼쳐졌다.
검은 우주 공간 위로 배경 항성들의 희미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그 빛의 줄기들이 특정 구역을 지나며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빛이 직진하지 못하고 둥글게 굴절되고 있었다. 공간 자체가 인위적으로 뒤틀려 있는 흔적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3.82초가 지난 순간.
미약한 플라스마 입자가 보이지 않는 표면에 부딪히며 푸른빛의 반사점들이 일제히 맺혔다.
기하학적인 쐐기형 편대.
완벽한 군사적 진형을 갖춘 채 달 그림자 뒤편에 숨죽인 거대한 비행체 군집이었다.
“……세상에.”
등 뒤에서 젓가락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민우가 넋을 잃은 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주임…… 저거 뭐야? 모니터에 저 점들 대체 뭐야?”
“달 L2 포인트 외곽의 광학 반사점이야. 자연 천체가 아니야.”
“자연 천체가 아니라니? 저 구역에 저런 대규모 편대가 왜 있어?”
민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윤은 관측 로그 전체를 긴급 패키지로 묶었다.
[광학 반사 단면적: 식별 번호 UNK-Orbit-01~88]
[위상 변조 주기: 3.82초 동기화 확인]
[추정 질량: 수만 톤급 군집 편대]
광학 센서와 레이더가 일치하는 침공의 그림자였다.
도윤은 출력된 시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실로 간다.”
야간 관제팀장실.
50대 초반의 배상현 팀장이 안경을 벗어두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평시 규정 준수와 무사안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관리자였다.
도윤은 문을 열고 들어가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긴급 보고: 달 궤도 외곽 미확인 군집 편대 포착 및 비상 경보 발령 건]
배상현은 안경을 고쳐 쓰며 서류를 훑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한도윤 주임. 이게 무슨 짓인가?”
“모니터를 확인해 주십시오. 누리-4호 센서로 달 뒷면을 스캔했습니다. 미확인 인공 물체 수백 척이 군사 편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3.82초 주기 차폐 파형과 광학 반사 단면적이 일치합니다.”
배상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외계 편대? 비상 경보?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실시간 관측 데이터입니다! 합참과 국방부에 핫라인을 열어야 합니다. 수도권 방공망을 상공으로 재정렬하고 분산 방어 태세를 내려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배상현이 책상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입 다물지 못해!”
고함에 관제실 전체가 얼어붙었다.
“합참? 방공망 재정렬? 자네가 국방부 장관이라도 되나?”
배상현은 모니터를 돌려 일주일 전 점검 기록을 띄웠다.
“지난주 누리-4호 2번 냉각 펌프에 압력 저하 경고가 떴어. 극저온 냉매가 새어 나가 센서 소자가 과열되고 있었다고! 센서가 과열되면 배경 우주를 스캔할 때 열 잔상이 남아 고스트 이미지가 찍혀. 전형적인 기기 결함이야!”
“단순한 고스트 이미지가 아닙니다! 42.8기가헤르츠 위상 변조가 함께 잡혔습니다. 3층 심층분석실에서도 확인했습니다!”
배상현은 인상을 쓰며 3층 심층분석실로 내선 전화를 걸었다.
“송 선임, 한 주임이 말하는 신호가 사실인가?”
스피커폰 너머로 송태원의 곤혹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거 폐기된 연구의 가상 간섭 파형과 유사할 뿐입니다. 당시에도 장비 오작동으로 인한 허위 신호로 결론 났던 사안입니다. 검증되지 않아 내일 아침 회의에서 다루기로 하고 단말기를 잠금 조치했습니다.
배상현이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서류를 반으로 접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들었나? 선임분석관도 장비 결함이라고 하잖아!”
“그건 과거 은폐된 연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입 다물어! 미 우주사령부나 범태평양 연합 통보도 없는데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1급 경보를 발령하나? 허위 경보를 올렸다가 센서 결함으로 밝혀지면 자네가 책임질 텐가?”
도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들이 말하는 책임이란 다가올 멸망을 막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매뉴얼 뒤에 숨는 것만이 조직의 생존 규칙이었다.
수천 번의 루프에서도 언제나 이 벽에 부딪혔다.
“한도윤 주임. 당장 자리로 돌아가. 이 일을 외부에 한마디라도 누설하면 허위 사실 유포로 즉각 직위 해제할 거야.”
배상현은 관리자 권한으로 누리-4호의 노이즈 필터를 최대치로 올렸다.
딸깍.
메인 스크린에 떠 있던 88개의 반사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니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암흑만을 비추었다.
시스템은 스스로 눈을 감아버렸다.
새벽 2시 20분.
도윤은 자리로 돌아왔다.
민우가 눈치를 보며 캔커피를 건넸다.
“한 주임…… 팀장님 말씀대로 냉각기 결함 때문이었잖아.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이제 쉬어.”
“고마워.”
도윤은 커피를 내려놓고 서랍에서 낡은 가죽 수첩을 꺼냈다.
화면에서는 지워졌지만 도윤의 망막에는 88개의 좌표와 편차값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도윤은 펜을 쥐고 수첩 여백에 숫자를 눌러썼다.
[누리-4호 광학 교차 좌표: RA 18h 42m / Dec -28° 14']
[반사 단면적 편대군: 88개체 식별]
[공식 처리: 센서 과열 고스트 노이즈로 기각]
도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분노는 수천 번의 죽음 속에서 차갑게 식었다.
공식 지휘 체계는 침공이 지상을 태우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공식망 바깥에서 데이터의 무게를 이해하는 자들을 엮는 것.
도윤은 수첩의 타임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D-18:30:00 - 서해안 조기경보레이더 2번 사이트, 미확인 전파 간섭으로 3분간 먹통]
시계는 0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D-day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21시간 30분.
서해안 조기경보레이더가 첫 번째 전자전 간섭을 받아 마비되기까지는 앞으로 4시간.
그 사건이 터지는 순간 서진아는 도윤의 좌표가 진짜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수도권 방공망을 점검하러 나온 합동위기대응실 박태준 소령이 있다.
도윤은 단말기를 꺼내 서진아의 비공개 메일로 암호화된 좌표 텍스트를 전송했다.
카운트다운의 초침이 가차 없이 깎여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