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침공 24시간 전으로 무한 루프

2화: 노이즈 뒤의 그림자
국가우주감시센터 서울 관제동 3층 심층분석실.
두꺼운 방음문이 닫히자 복도의 기계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서늘한 냉각 공기가 피부에 닿자 팔뚝의 솜털이 곤두섰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수십 대의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이 파란색과 녹색의 인디케이터 불빛을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야간 당직 시간에는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공간이었다.
도윤은 가장 안쪽 구석에 자리한 7번 단말기 앞에 섰다.
전산망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물리적으로 분리된 폐쇄형 서브넷 단말기였다.
‘여기서 원시 로그를 뽑아내야 한다.’
도윤은 의자에 앉아 손바닥의 땀을 바지에 닦아냈다.
콘솔 전원을 켜자 망막을 찌르는 백색 로딩 화면과 함께 생체 인식 패드가 붉은빛을 뿜었다.
[사용자 신원 확인: 국가우주감시센터 운용2팀 주임 한도윤]
[접근 권한: 3등급 - 궤도 데이터 조회 및 신호 교정]
삐빅 소리와 함께 시스템이 열렸다.
도윤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탁!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자판 소리는 기관총 연사음처럼 빠르고 단호했다.
일반적인 궤도 관제 화면은 천체망원경과 저궤도 감시 레이더가 보내오는 방대한 데이터 중에서 '유의미한 궤도체'만을 선별해 보여 준다.
우주 먼지나 태양풍에 의한 미세 굴절은 시스템이 알아서 '배경 잡음'으로 분류해 영구 삭제해 버린다.
하지만 아르카 함대의 정찰체들은 바로 그 삭제되는 노이즈 대역 속에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
‘주파수 42.8기가헤르츠. 위상 편차 0.003도.’
수천 번의 루프 동안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진 수치들이 도윤의 손끝을 통해 입력창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화면 중앙에 달 L2 라그랑주 포인트 외곽의 원시 전파 스펙트럼이 거대한 파도처럼 펼쳐졌다.
도윤은 자동 보정 필터를 강제로 해제하고 수동 편광 중첩 알고리즘을 걸었다.
지직거리며 흩어지던 노이즈 파형들이 서서히 하나의 일정한 패턴으로 정렬되기 시작했다.
[스펙트럼 분석 진행률: 68%…… 79%……]
단순한 무작위 잡음이 아니었다.
정확히 3.8초 간격으로 반복되는 극저주파 펄스. 그리고 빛을 인위적으로 꺾어 시공간의 굴절률을 왜곡시키는 기하학적 파형.
달 뒤편의 암흑 속에서 거대한 강습함들이 지구를 향해 광학 은폐장을 펼치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 증거였다.
‘됐다. 이 로그 원본만 확보하면…….’
도윤은 데이터를 외부로 추출하기 위해 전송 명령어를 입력하려 했다.
그때 화면 하단에 붉은색 경고 창이 날카롭게 점멸했다.
[보안 프로토콜 경보: 3등급 권한자의 원시 스펙트럼 외부 전송 차단]
[데이터 무단 반출 시도 시 보안관제실 자동 통보]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과거 수많은 루프에서 겪었던 뼈아픈 실패가 떠올랐다.
무작정 USB를 꽂았다가 보안 경보가 울려 헌병대에 끌려갔던 적도 있었고 외부 메일로 전송하려다 전산망이 잠겨 새벽 내내 취조를 당했던 적도 있었다.
시스템은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평시의 규정을 지키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다.
23시간 뒤에 닥칠 인류의 종말 따위는 이 철통같은 관료적 방화벽에 아무런 예외 사유가 되지 못했다.
‘외부 전송이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가져간다.’
도윤은 재빨리 신호 교정 보고서 양식을 열었다.
데이터 원본을 그대로 빼내는 대신 합법적으로 결재가 가능한 일상 점검 리포트의 텍스트 주석란에 신호의 파라미터 값과 변조 주파수 코드를 잘게 쪼개어 숨겨 넣었다.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치익― 쿵.
도윤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딱 굳었다.
“이 야심한 새벽에 3층 분석실에서 자판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친구가 누군가 했더니.”
느릿하고 굵직한 목소리.
도윤은 화면을 가리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보온병을 손에 든 40대 중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구겨진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도윤을 내려다보는 날카로운 눈매.
심층분석실 야간 당직 책임자 송태원 선임분석관이었다.
“한도윤 주임 맞지? 2팀 야간 감시 콘솔은 정 주임한테 맡겨 두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송태원의 시선이 도윤의 어깨 너머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화면 가득 떠 있는 달 궤도 L2 포인트의 복잡한 스펙트럼 그래프와 수동 필터 설정창.
송태원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
“자네 지금 통상 궤도 감시 범위를 한참 벗어난 군사 보안 대역을 건드리고 있군. 자동 필터까지 강제로 풀고.”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도윤은 주머니 속 가죽 수첩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말을 더듬으면 즉시 보안 위반으로 단말기가 잠기고 야간 근무에서 배제된다.
그렇게 되면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또다시 실패로 끝난다.
“L2 포인트 방면의 센서 노이즈가 비정상적이라 교정 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도윤은 지극히 건조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난달 발사된 통신위성 6호의 중계기에서 간헐적 위상 간섭이 보고되었습니다. 자동 필터로는 태양풍 노이즈로 뭉개져 원인 규명이 불가능해 수동으로 주파수 대역을 분리해 보고 있었습니다.”
송태원은 보온병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들이켰다.
차 향기가 서늘한 방 안에 희미하게 퍼졌다.
“태양풍 간섭이라…….”
송태원은 도윤의 옆으로 다가와 콘솔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화면 상단에 기록된 명령어 입력 로그를 훑었다.
“이상하군.”
송태원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 복잡한 극저주파 수동 오버레이 파라미터를 단 5분 만에 오타 하나 없이 입력했다고? 자네 궤도 관제 들어온 지 이제 2년 차 아닌가? 이건 센터에서 10년 굴러먹은 나도 매뉴얼을 뒤져가며 쳐야 하는 변조식인데.”
송태원의 눈빛에 짙은 의구심이 번졌다.
그는 도윤의 얼굴을 뜯어보듯 응시했다.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는 마치 이미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 같단 말이지.”
도윤의 등줄기로 차가운 식은땀이 흘렀다.
수천 번의 루프 동안 몸에 배어버린 감각.
기계처럼 완벽하게 최적화된 손놀림이 오히려 평범한 감시관으로서는 불가능한 이상 징후로 드러난 것이다.
“매뉴얼을 평소에 숙지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보지.”
송태원이 마우스를 쥐고 도윤이 정렬해 둔 스펙트럼 파형을 확대했다.
화면 가득 3.8초 주기의 펄스와 비정상적인 공간 굴절 곡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송태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커피를 마시려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이게…… 뭐지?”
송태원의 목소리에서 방금 전까지의 의심이 사라지고 당혹감이 차올랐다.
“단순한 우주 잡음이 아니잖아. 위상 변조가 걸려 있어. 그것도 인공적인 펄스가 완벽하게 동기화된 상태로…….”
송태원은 마우스를 빠르게 클릭하며 신호의 공명 주파수를 역추적했다.
그리고 특정 수치에 도달한 순간 송태원의 숨이 턱 멎었다.
“말도 안 돼. 42.8기가헤르츠? 이 파형 구조는…….”
송태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선임님, 뭘 보신 겁니까?”
도윤이 낮게 물었다.
송태원은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도윤을 돌아보았다.
“자네는 몰라. 3년 전…… 국방연구소와 합동으로 진행하다가 전면 폐기된 프로젝트가 있었어. 노을 프로젝트라고.”
도윤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누나 한서윤이 실종 직전까지 참여했던 그 비인가 연구의 이름이 뜻밖에도 센터 선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때 발생했던 양자 통신 간섭 파형이 정확히 이 형태였어. 당시에는 장비 결함으로 인한 가상 신호라고 결론짓고 모든 데이터를 영구 봉인했는데…… 왜 이게 지금 달 뒤편에서 잡히는 거지?”
송태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마우스를 낚아채더니 시스템 잠금 단축키를 눌렀다.
딸깍!
화면이 순식간에 검게 꺼지며 잠금 암호 입력창이 떴다.
“선임님!”
“여기서 그만둬, 한 주임.”
송태원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가라앉았다.
“이건 자네나 내가 밤중에 호기심으로 건드릴 수준의 데이터가 아니야. 과거 노을 프로젝트에 손댔던 연구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줄줄이 보안 조사받고 연구소에서 쫓겨났어. 누군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송태원은 도윤의 어깨를 꽉 쥐었다.
“이 로그는 내가 잠금 처리하겠네. 내일 아침 9시 주간 브리핑 때 센터장님께 정식 안건으로 올리고 보안 승인을 받아. 그때까지는 누구에게도 이 신호에 대해 발설하지 마. 알겠어?”
‘내일 아침 9시라고?’
도윤의 입술 안쪽이 바짝 말라붙었다.
내일 아침 9시면 D-day까지 고작 15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보고서를 올리고 결재 라인을 타고 군 지휘부로 넘어가는 관료적 절차를 거치다 보면 아무런 방어도 준비하지 못한 채 또다시 자정의 화염을 맞이하게 될 뿐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겉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알겠습니다. 규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피곤해 보이는데 관제실로 돌아가서 커피나 한잔 더 마셔.”
송태원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 눈빛으로 도윤의 등을 떠밀었다.
분석실 문을 빠져나온 도윤은 곧장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무거운 철문을 밀고 계단참으로 들어서자 적막한 어둠이 그를 감싸 안았다.
도윤은 주머니에서 가죽 수첩을 꺼냈다.
단말기가 잠기기 직전 머릿속에 사진처럼 새겨 넣었던 핵심 수치들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갔다.
[달 L2 외곽 신호 변조 코드: 42.8GHz-Phase-003]
[펄스 간격: 3.82초]
[노을 프로젝트 양자 공명 일치 확인]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외계 함대 아르카의 은폐 파형과 3년 전 누나가 참여했던 노을 프로젝트는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신호였다.
그리고 이 신호의 본질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국방과학연구원의 서진아뿐이었다.
도윤은 개인 스마트 단말기를 꺼냈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D-23:00:00]
침공까지 남은 시간 23시간.
도윤은 수첩에 적힌 비공개 직통 내선 번호를 눌렀다.
국방과학연구원 제3전자전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서진아.
뚜르르르― 뚜르르르―
차가운 신호음이 적막한 계단실에 울려 퍼졌다.
새벽 1시. 국가 핵심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일개 감시관의 전화를 받을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도윤은 끊지 않았다.
과거의 루프에서 그녀가 언제나 이 시간까지 연구실에서 철야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딸깍.
네 번째 신호음이 끊기며 서늘하고 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방과학연구원 서진아입니다. 이 시간에 비인가 회선으로 전화하신 분은 누구시죠?
차가운 적대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도윤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인사치레나 신원 설명 따위로 낭비할 시간은 1초도 없었다.
그런 식으로는 3초 만에 통화가 끊어질 것이 뻔했다.
도윤은 침착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수화기에 속삭였다.
“서진아 연구원님. 3년 전 노을 프로젝트의 잔존 백업 키코드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네? 무슨 장난을…….
“파이-세븐-나인-줄루-에코-포-투-에이트.”
도윤의 입에서 흘러나온 16자리의 영숫자 암호.
수화기 너머에서 서류를 넘기던 바스락거림이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침묵.
지독할 정도로 서늘하고 무거운 침묵이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이윽고 잘게 떨리는 서진아의 숨소리가 도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당신 누구야? 그 코드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도윤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맴돌았다.
“지금 당장 달 뒤편에서 잡히는 42.8기가헤르츠 신호를 분석해야 합니다. 23시간 뒤에 서울이 사라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카운트다운의 초침이 다시 한 번 가파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