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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 메뉴는 두 사람 몫2화

한정 메뉴는 두 사람 몫

한정 메뉴는 두 사람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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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녹아내린 시식회

준서는 남은 아이스크림 통을 옮길 냉동 공간을 찾느라 새벽부터 전화를 돌렸다. 가까운 카페는 저장고를 빌려 줄 수 있었지만, 유제품 취급 기록이 없어 제품을 받아 둘 수 없다고 했다. 하린은 회사 실험실을 쓰자고 제안했다가, 회사 시제품과 판매 제품의 보관 규정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실험실에 넣으면 검체로 분류돼요. 다시 판매할 수 없어요.”

“이미 팔지 못하는데요.”

“폐기 여부는 온도기록과 품질평가를 본 뒤 결정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어디에 둡니까?”

준서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리 기사 문자와 냉동고 온도 그래프를 보여 줬다. 부품이 도착하기 전까진 정상 온도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린은 축제 위원회에 연락해 공동 보관고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위원회는 입점 계약이 확정되지 않은 가게에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답했다.

준서는 전화를 끊는 그녀를 보았다.

“회사는 이런 순간에 도움이 안 되네요.”

“제안 전에 조건을 확인했어야 해요.”

“당신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책임질 부분이 있어요.”

그녀는 홍민아에게 다시 전화했다. 연구실의 검체 냉동고를 판매용으로 쓸 수는 없었다. 민아는 규정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하린은 안전 확인 전 제품을 판매하지 않되, 시식 평가용 소량 샘플을 회사 절차로 검토할 수 있는지 물었다. 민아는 축제 메뉴 확정에 늦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 늦추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준서는 가게 뒤편에 쌓인 얼음팩을 보았다. 그는 원래 포장 배송에 쓰던 것을 꺼내 얼음 상자를 만들었다. 온도 유지가 가능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린은 휴대용 온도계를 상자 안쪽과 바깥쪽에 각각 붙이고 기록표를 만들었다.

“이걸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럼 왜 하는데요?”

“안전한지 확인할 자료를 만들려고요. 안 되면 그때 폐기합니다.”

“가게 재고를 버리는 게 쉬운 일처럼 말하네요.”

“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준서는 장갑을 벗어 카운터에 내려놨다.

“이 아이스크림은 제가 지난겨울부터 만들어 온 거예요. 아버지가 남긴 레시피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바꿨는데, 단골들은 아버지 맛이 아니라고 해요. 그래도 저는 이걸 계속 팔고 싶어요. 그걸 버리면 또 가족 이름 뒤로 숨는 것 같아요.”

하린은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닫지 않았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건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검사할 방법을 찾는 거예요. 지금 팔면 안 된다는 말과 버려야 한다는 말은 달라요.”

준서는 다시 얼음팩을 정렬했다. “그 말을 먼저 했으면 좋았겠어요.”

“제가 말이 늦었네요.”

그들은 제품을 종류별로 나눠 포장했다. 각 통에는 제조 날짜와 보관 온도, 개봉 여부를 적었다. 준서가 가족 노트에서 레시피를 찾아오려 하자 하린은 멈췄다.

“레시피는 안 보여 주셔도 돼요.”

“공동 개발하는 거 아니었어요?”

“사용 허락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볼 권리가 없어요.”

“회사 초안에는 독점 사용이라고 되어 있죠.”

“그 조항은 바꿔야 합니다. 지역 축제 한정, 판매 기간, 배합에 대한 공동 소유를 제안할게요.”

“회사에서 받겠어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대로 내밀 수는 없어요.”

준서는 가족 노트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가 서랍을 잠그는 동안 하린은 가게 뒤편 냉동고의 모델 번호와 수리 비용을 적었다. 준서는 그것도 기록할 거냐고 물었다.

“회사에 청구하려는 게 아니라, 협업 예산을 계산할 거예요. 임시 보관비와 수리 비용을 레시피 대가와 섞지 않으려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괜찮네요.”

정오 무렵, 하린은 민아와 화상 회의를 열었다. 준서는 화면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하린은 가게의 냉동고 상태와 축제 일정, 필요한 공동 보관 비용을 설명했다. 민아는 회사가 보관료 일부를 대는 조건으로 원료와 공정 검사를 요구했다.

“그건 레시피를 제출하라는 뜻인가요?” 준서가 옆에서 물었다.

하린은 회의 화면에 묻기 전 준서의 허락을 구했다.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재료 표시와 알레르기 검토에 필요한 성분 정보는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가족 노트 전체는 아닙니다.”

민아는 생각보다 빨리 답했다.

“그 정도면 안전 검토는 가능해. 대신 알레르기 표기와 교차 오염 안내를 우리가 검토해야 해.”

“좋습니다. 그리고 레시피 사용권은 축제 판매에 한정해야 합니다.”

“표준 계약을 수정하려면 법무 검토가 필요해.”

“그럼 오늘은 시식회부터 취소하겠습니다.”

민아는 한숨을 쉬었다. “하린 씨, 네 평가가 걸려 있어.”

“알아요.”

회의가 끝난 뒤 준서는 그녀에게 물었다.

“평가가 떨어지면 어떻게 돼요?”

“다음 프로젝트를 맡기 어렵겠죠.”

“그런데도 왜요?”

“판매 가능한 조건과 안전한 조건을 분리하면 안 되니까요.”

“당신은 맛도 보기 전에 회사 편을 들지 않았어요.”

“맛은 봤어요.”

“아까는요?”

“첫 컵은 맛있었어요. 냉동고는 괜찮지 않았고요.”

준서는 웃었다. 처음으로 카운터 너머가 아니라 같은 작업대 앞에서 웃었다. 하린은 그 웃음이 자신을 향한 건지, 단순히 긴장이 풀린 건지 묻지 않았다.

수리 기사가 도착했을 때 냉동고의 압축기는 다시 켜졌다. 그러나 내부 온도는 바로 안정되지 않았다. 기사는 고장 원인을 설명하며 부품 교체 전에는 상업용 저장고로 쓰지 말라고 했다. 준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든 기계 옆에 손을 얹었다가, 바로 떼었다.

“오늘 판매는 계속 중단합니다.”

“네.” 하린이 말했다.

“수리비가 나와도요.”

“네.”

“제가 알아서 결정한 거예요.”

“그렇죠.”

그는 견적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하린은 회사의 공동 보관고를 축제 시식용으로 예약했다. 그곳에는 제품을 판매용으로 보관할 수 없지만, 안전 검토를 위한 작은 배치를 둘 수 있었다. 준서는 그 조건을 확인하고 자신의 새 레시피 일부만 공유하기로 했다.

새벽 두 시, 임시 보관 상자의 온도 경보가 울렸다. 준서는 가게 뒤편에서 자다 말고 뛰어 나왔다. 하린은 회사에서 온 경고 메시지를 먼저 확인했다. 공동 보관고의 전원은 정상이었지만 상자 내부 온도가 오르고 있었다. 얼음팩 한쪽이 녹아 액체가 샜다.

“뚜껑 열지 마세요.” 하린이 말했다. “열면 더 빨리 올라갑니다.”

“안에 있는 걸 확인해야죠.”

“먼저 온도부터 재요.”

준서는 상자 바깥에 표시된 온도를 읽었다. 기준보다 높았다. 안쪽 센서의 숫자는 조금 낮았지만, 계속 상승 중이었다. 남은 제품은 축제 시식용 배치였다. 하린은 냉동고가 있는 지인의 창고까지 운반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차로 옮기려면 20분, 그동안 온도 유지가 불확실했다.

준서는 뚜껑을 열려 했다. 하린이 손목을 잡는 대신 그의 눈을 마주쳤다.

“지금 열면 제품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어요. 그래도 열까요?”

그는 가만히 있었다. “어느 쪽이 안전한지 모르겠어요.”

“저도 몰라요. 온도기록만 보면 판매 승인을 받기 어렵습니다. 검사 전까진 먹지 않는 게 안전해요.”

“그럼 버려야 합니까?”

“샘플을 보존할지 폐기할지는 검사 결과와 기준으로 정해야 해요. 지금은 추가 냉각이 먼저예요.”

둘은 여분의 얼음팩을 넣고 상자 바깥을 보온재로 감쌌다. 하린은 시간을 적었고 준서는 차량을 준비했다. 이동 중에도 뚜껑을 열지 않았다. 창고에 도착해 담당자가 보관함을 열자 배치는 아직 단단했지만 가장자리 일부가 부드러워져 있었다. 식품 품질 담당자는 시험 샘플로만 보관할 수 있고 판매품으로 전환할 수 없다고 했다.

준서는 결과를 듣고 상자 앞에 앉았다. 그의 손에는 아버지의 장부가 있었다. 하린은 말없이 물을 건넸다.

“제가 그 맛을 버리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오늘 만든 배치를 판매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같은 맛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요?”

“그건 준서 씨가 아는 맛이니까요.”

“당신은?”

“저는 기록을 도울 수 있어요. 하지만 맛을 대신 기억할 수는 없어요.”

준서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럼 다음엔 제가 처음부터 제조 기록을 쓸게요. 가족 노트를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지금 제가 만든 걸요.”

하린은 그 결정을 평가표에 적지 않았다. 대신 다음 배치를 함께 만들 시간부터 잡았다.

창고를 나서며 준서는 하린에게 냉동고 견적서를 사진으로 보내도 되는지 물었다. 하린은 회사 예산에 넣을 자료가 아니라면 보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대신 수리 기사에게 직접 보낼 수 있도록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도 되냐고 물었다. 하린은 업무용 번호를 알려 주고, 개인 연락은 따로 물어봐 달라고 덧붙였다.

“제가 연락처를 물어볼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지금은 기사 일정만 공유해 주세요.”

준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럼 그 답도 기다리겠습니다.”

그날 저녁, 하린은 실험실에서 작은 배치를 만들었다. 준서는 직접 오지 않고 영상통화로 맛의 방향만 설명했다. “보리 향은 처음이 아니라 끝에 남아야 해요.” 그가 말했다.

하린은 배합을 바꾸고 다시 시식했다. 맛은 덜 진했지만, 끝에 고소함이 길게 남았다. 그녀는 맛 노트에 ‘준서 제안 반영, 추가 평가 필요’라고 적었다.

다음 날 아침, 축제 담당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안전 검토가 늦어져 메뉴 확정 심사가 오늘 오후로 당겨졌다는 내용이었다.

준서는 통화 중이었다. 하린은 알리지 않고 메일을 닫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오늘 오후까지 시식 가능한 샘플을 제출해야 해요.”

그의 표정이 굳었다. 작업대에는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은 배치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그 시간에 맞출 수 있나요?”

“확인해 볼게요.”

“이번엔 제게 묻고 같이 정해요.”

하린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바라봤다.

“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걸 나눠서 같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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