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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인 줄 알았는데 NPC였습니다5화

S급 헌터인 줄 알았는데 NPC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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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외부 신호

제단의 첨탑 끝에서 현우는 백색 균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균열 너머의 케이블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푸른빛이 서버 안쪽으로 스며들다가도 잠시 뒤에는 가느다란 백색 파동이 반대편에서 밀려왔다. 무수한 빛줄기가 서로 얽혀 있었지만 신호끼리는 부딪치지 않았다.

설아가 현우의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빛줄기가 정말 바깥으로 이어져 있습니까?"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신호는 아니다."

현우는 장검을 뽑았다.

마신의 독혈과 아비터의 광선이 남긴 상처 때문에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검끝을 하늘의 균열 가장자리에 갖다 댔다.

치지직.

검끝이 백색 공간에 닿자 시야가 뒤집혔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케이블이 아니었다. 수천 겹으로 포개진 신호의 흐름이었다. 푸른 선은 서버 안쪽으로 들어오는 환경 데이터였고 붉은 선은 폐기와 압축을 지시하는 명령이었다. 그 사이로 아주 짧은 은색 파동이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유지보수 패킷 전송 중]

[수신 슬롯 응답 대기]

[외부 장치 연결 상태: 불안정]

현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외부 장치.

그 단어는 플레이어의 로그아웃 명령보다 선명했다. 이 세계의 밖에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를 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현우는 신호 사이에 끼어든 작은 응답을 붙잡았다. 마력을 밀어 넣지 않고 전류의 주기를 따라 자신의 연산을 맞췄다. 그러자 먼 곳에서 낮고 둔탁한 진동이 되돌아왔다.

쿵.

한 번.

잠시 뒤 다시 한 번.

쿵.

살아 있는 심장처럼 느린 진동이었다. 그 안에는 생명보다 무거운 금속의 울림이 섞여 있었다.

"수신 장치가 있습니다."

설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우는 케이블의 흐름을 따라가며 대답했다.

"비어 있는 슬롯도 하나 있다."

케이블 가장자리에 은색 점 하나가 떠올랐다. 다른 신호들은 그 주변을 피해 흘러가고 있었다. 점검 중인 장치가 아직 어떤 데이터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그 슬롯으로 들어갈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의 계정 정보도 캐릭터의 행동 스크립트도 아니었다. 서버를 고치기 위한 임시 패킷만 통과할 수 있었다. 현우가 가진 것은 피와 기억과 스킬로 이루어진 인격이었다. 정상적인 전송 목록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였다.

현우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형식을 바꾼다."

"무엇을 바꾸시려는 겁니까?"

"나를."

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결계 안의 설아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기화의 잔흔이 남아 있었다. 머리 위의 숫자는 [00:42]에서 멈춘 채 희미하게 깜빡였다.

"강현우라는 이름과 기억을 유지보수 패킷으로 바꾸면 저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러면 길드장님은 어떻게 됩니까?"

"확인할 수 없다."

현우는 숨기지 않고 답했다.

그 순간 첨탑 아래에서 돌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전장 외곽을 가득 채웠던 평원이 검은 격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제단의 기둥 하나가 회색 큐브로 변하더니 바람도 없이 부서졌다.

[맵 리소스 회수율 73%]

[잔여 개체를 비활성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현우는 설아의 결계 앞에 무릎을 굽혔다.

"먼저 네 상태를 확인하겠다."

"저도 함께 갈 수 있습니까?"

짧은 질문 안에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결계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검은 막이 얇게 흔들렸다. 설아의 데이터 구조와 현우가 만든 봉인 구조가 겹쳐 있었다. 그 아래에는 도시와 길드와 사람들의 좌표가 거대한 뿌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설아를 떼어 내는 순간 이 세계의 여러 경로가 동시에 끊길 터였다.

현우는 가장 가느다란 신호 하나를 골라 백색 균열 쪽으로 이었다.

치지지직!

설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아……."

멈춰 있던 숫자가 움직였다.

[잔여 기억 정리까지 00:41]

현우는 즉시 신호를 끊었다.

설아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현우가 그녀를 받아 안았다. 결계 안쪽의 검은 빛이 몇 차례 요동친 뒤 다시 안정되었다.

"설아 아가씨."

"괜찮습니다."

설아는 억지로 눈을 떴다. 눈동자 안쪽에 낯선 잡음이 번지고 있었다.

"방금 누군가 제 이름을 지우고 있었어요."

현우의 턱이 굳었다.

설아를 그대로 데리고 나가려면 그녀의 기억을 고정하는 닻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녀를 지탱하는 것은 설아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살아온 도시와 길드와 관계의 좌표가 모두 서버 안에 묶여 있었다.

그 사슬을 억지로 끊으면 설아의 기억이 먼저 찢어진다.

"지금은 함께 갈 수 없다."

현우가 말했다.

설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실망이 얼굴을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그럼 길드장님만 가시는 겁니까?"

"내가 먼저 건너간다. 바깥에 수신 경로를 만들고 돌아오겠다."

"돌아오실 수 있습니까?"

현우는 확답하지 못했다. 그가 건너갈 곳에는 몸도 없고 돌아올 주소도 없었다. 그래도 설아에게 거짓된 약속을 건넬 생각은 없었다.

"돌아올 방법을 찾는다. 네 기억을 지킬 방법도 함께 찾겠다."

설아는 한참 동안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믿지 않아도 된다. 다만 기억해 둬라.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네가 나를 찾으러 오는 것이다."

설아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스크립트에는 없는 망설임이었다. 설아는 결계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현우의 손등을 조심스럽게 덮었다.

"그렇다면 이름을 잊지 않겠습니다."

봉인 결계의 표면이 미세하게 떨렸다. 결계는 외부 명령만 막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부의 손상되지 않은 기억 조각을 별도의 신호로 보존하고 있었다. 설아의 목소리와 방금 전 문장은 그 보존 영역에서 추출된 작은 서명이었다.

[개인 기억 서명 추출]

[식별 기준: 강현우]

현우는 그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설아가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남긴 데이터였다. 그리고 유지보수 패킷으로 위장한 코어가 분해되지 않도록 붙잡을 수 있는 기준점이었다.

그때 하늘이 붉게 번쩍였다.

[비정상 외부 신호 감지]

[회수 대상의 전송 시도를 차단합니다.]

[아비터 복구 백본 연결 준비 중]

백색 균열의 케이블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은색 수신 슬롯을 향하던 길이 닫히고 붉은 명령선들이 그 위를 덮었다. 제단 아래에서는 회수되지 않은 바위와 기둥이 동시에 솟구쳐 올라 현우의 발목을 묶으려 했다.

현우가 칼을 휘둘렀다.

서걱.

붉은 선이 끊어지고 바위가 허공에서 멈췄다. 하지만 잘린 명령선은 곧 두 갈래로 갈라져 다시 달려들었다.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아비터의 복구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의 데이터를 압축해야 한다. 설아의 결계까지 지키면서 외부 슬롯을 열려면 남은 연산력으로 한 번밖에 시도할 수 없었다.

그는 장검을 바닥에 세웠다.

"설아. 결계를 풀지 마라."

"길드장님은요?"

"내가 사라지는 순간에도 이 안에 있어라."

현우는 칼자루 위에 양손을 포갰다.

마력이 몸 안쪽으로 가라앉았다. 팔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멈추고 심장 주변의 검은 불꽃이 한 점으로 수축했다. 스킬의 이름과 기억의 문장이 그 중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데이터 구조 변환을 시작합니다.]

[개체 식별자 AETHER_NPC_HERO_KANG_01을 유지보수 패킷으로 위장합니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현우의 얼굴과 손과 발이 먼지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감각이 하나씩 끊겼다. 먼저 바람이 사라졌고 다음으로 피의 냄새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설아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현우 님!"

그는 눈을 떴다.

아직 눈이 있다는 감각이 남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설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결계 안에서 그녀가 손을 뻗고 있었다.

"이름을 기억해라."

현우의 목소리는 이미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겹의 잡음이 겹친 신호에 가까웠다.

"강현우입니다."

설아가 그의 말을 따라 했다.

"강현우……."

그 이름의 음성 서명이 코어 표면에 달라붙었다. 흩어지던 데이터가 한순간 멈췄다.

현우는 자신의 기억을 한 점에 묶었다. 어머니의 얼굴과 첫 검의 감촉과 전장에서 흘린 피가 차례로 압축되었다. 마신의 심장을 꿰뚫던 순간도 설아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던 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모든 데이터가 하나의 작은 핵으로 수렴했다.

그 핵의 표면에 푸른빛의 글자가 떠올랐다.

[KANG_HYUNWOO_CORE]

붉은 회수선이 핵을 향해 날아들었다.

현우는 남은 의지로 검을 휘둘렀다. 검은 참격이 케이블과 회수선을 동시에 가르며 백색 균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콰아앙!

은색 수신 슬롯이 열렸다.

[임시 유지보수 패킷 수신을 승인합니다.]

현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코어가 검은 궤적을 남기며 균열 너머로 쏘아졌다.

뒤에서 설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현우는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가상 세계의 육체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첨탑도 제단도 설아의 모습도 거대한 파동 뒤로 밀려났다.

백색 통로가 그를 집어삼켰다.

수많은 신호가 몸을 스쳐 지나갔다. 일부 기억이 끊어져 케이블 사이로 흩어졌다. 현우는 떨어지는 조각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이 없었다. 대신 이름을 반복했다.

강현우.

윤설아.

돌아간다.

세 문장이 어둠 속에서 서로를 묶었다.

통로의 끝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금속이었다.

차갑고 거대한 표면이 코어를 향해 닫혀 왔다. 외부 신호의 진동이 갑자기 커졌다. 낮은 경고음이 먼 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비인가 코어 입력 감지]

[수신 장치 전원 불안정]

현우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고정했다.

쿵!

코어가 금속 표면에 부딪혔다.

어둠 속에서 아주 미약한 전류가 흘렀다. 마력과는 달랐다. 차갑고 느렸지만 분명히 자신의 안쪽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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