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헌터 재활 수영장의 코치입니다

2화: 복귀 날짜를 지우는 코치
강민호는 진료실에서 나온 뒤 한동안 복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발목뼈가 붙어 가고 있지만 인대 주변이 약해졌다고 했다. 당장 걷는 연습은 가능해도 레이드 복귀를 보장할 수 없고, 부기가 가라앉는지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길드 평가가 사흘 뒤로 당겨졌다는 말을 들은 의사는 차트를 덮었다.
“평가 일정을 바꾸는 건 길드 사정입니다. 진료 결과를 바꾸는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
민호는 차트에 손을 올렸다. “제가 나가겠다고 하면요?”
“그 선택을 막지는 못하죠. 다만 지금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세나는 의사의 말을 대신하지 않았다. 민호는 본인에게 설명된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말해야 했다. 그는 “뼈는 붙었는데 발목이 버티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손이 무릎 위에서 꽉 쥐어져 있었다.
센터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민호는 창밖만 보았다. 세나는 바로 훈련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신호 대기 중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길드 담당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민호는 스피커로 받았다. 상대는 “검사 결과 괜찮으면 이틀 뒤 테스트에 나와. 그날 못 오면 복귀 의사가 없는 걸로 정리할게”라고 말했다.
“의사는 레이드 복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길드 계약을 몰라. 네가 훈련한 기록만 보내면 돼.”
민호의 시선이 세나에게 왔다.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통화를 끊은 그는 “기록을 안 보내면 내가 훈련을 안 한 것처럼 보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기록을 보내는 이유와 범위를 같이 적을 수 있어요. 의료진 소견도 넣고, 오늘은 테스트가 아니라 재활 평가라고 명확히 하죠.”
“그걸 길드가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당신에게 어떤 기록이 전달됐는지는 남습니다.”
센터 수영장 문 앞에서 민호는 발목을 살짝 굽혔다. 얼굴이 굳었다. 세나는 그 동작을 훈련으로 세지 않고 통증 점수만 물었다. 민호는 “4”라고 답했다. 어제보다 낮았지만, 물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그는 숫자를 적는 걸 보고 “이것도 길드에 보내나요?” 하고 물었다.
“동의 범위에 따라요. 지금은 개인 재활 기록입니다.”
“내가 보여 달라고 하면 다 보여 주는 거죠?”
“당신 기록이니까요. 다만 의료진 소견은 의사에게 원본을 확인받는 게 정확해요.”
민호는 서류를 읽고 ‘훈련 관련 기록에 한해 길드와 공유’에 체크했다. ‘의료 진단 내용 포함’ 칸은 비워 두었다. 서명하기 전 그는 펜을 멈췄다. “이렇게 하면 길드에서 복귀 불가라고 적을 수 있겠죠.”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도 보내요?”
“당신이 원하면요. 그 결과를 숨기면 다음 사람이 더 크게 다칠 수 있어요.”
그는 마지막 칸에 이름을 썼다. 세나는 사본을 그에게 건넸다. 종이를 받는 순간 민호의 입가가 떨렸다. 그는 사본을 구겨 넣으려다 곧 펴서 파일에 끼웠다.
훈련은 물 밖에서 시작했다. 문가을이 진료 후 권한 범위 안에서 관절 운동을 확인하고, 세나는 난간 옆에서 체중 이동을 기록했다. 민호는 오른발에 체중을 싣자마자 몸을 빼려 했다. 세나는 숫자를 세며 버티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편한 만큼만 옮기고 멈춰요”라고 말했다. 그는 세 번 시도했고, 두 번째에 통증이 5로 올랐다. 세나는 세 번째 시도를 취소했다.
“한 번 더 하면 나아질 것 같은데요.”
“지금은 통증이 올라갔어요.”
“이 속도면 사흘 안에 아무것도 못 해요.”
“사흘 안에 완벽해지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오늘 나빠지지 않는 게 목표예요.”
민호는 난간을 놓았다. “그 말은 길드에서 안 좋아할 텐데.”
“그래서 기록에 그대로 쓸 겁니다.”
그날 오후, 길드 장비 담당자가 센터로 찾아왔다. 이름은 권석준, 민호가 다친 레이드의 현장 기록을 관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복귀일까지 남은 시간이 짧다며 훈련 영상을 요청했다. 세나는 민호의 동의가 없는 영상은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석준은 “본인이 복귀하고 싶어 하잖습니까”라며 민호에게 직접 고개를 돌렸다.
민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동의로 읽히기 전에 세나가 서류를 책상 위에 놓았다. “동의 범위에는 영상 촬영이 없습니다.”
석준은 표정을 굳혔다. “그럼 복귀 평가는 현장에서 하죠. 이틀 뒤 장비 테스트에 나올 수 있습니까?”
민호가 입을 열었다. “의사가 레이드 복귀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테스트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석준은 그에게 “팀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호는 “기다리는 게 싫으면 제 계약을 정리하세요. 대신 오늘 기록은 정확히 보내 주세요”라고 답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끝까지 말을 마쳤다.
석준은 별다른 답 없이 돌아갔다. 문이 닫히자 민호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제가 방금 잘한 건지 모르겠네요.”
그때 수영장 끝 레인에서 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초급 재활을 받던 F급 헌터 두 명이 연습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한 명은 팔에 보조대를 찼고, 다른 한 명은 지팡이를 의자에 기대 둔 채 물속에서 걷는 중이었다. 그들은 석준이 나간 뒤에야 다시 움직였다.
“저 사람 때문에 우리까지 평가가 밀리는 건 아니겠죠?” 지팡이를 쓰는 헌터가 물었다.
세나는 “각자 동의와 상태를 따로 봅니다”라고 답했다. 민호는 시선을 피했다. 그는 자신의 복귀가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늦출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제가 빨리 통과하면 센터도 편하잖아요.”
“센터는 빨리 끝나는 것보다 다치지 않는 게 우선이에요.”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제 얘기했습니까?”
“아니요. 이름도 상태도 공유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제가 여기 있는 게 괜히 눈에 띄네요.”
세나는 재활 참가자들이 쓰는 가림막을 펼쳤다. “혼자 쓰는 시간이 필요하면 예약을 바꿀 수 있어요. 다만 수영장을 비워 두는 것과 당신을 숨기는 건 다른 일이에요.”
민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 젖은 양말을 갈아 신었다. 그는 타인의 시선이 싫었고 동시에 혼자 남겨지는 것도 두려워했다. 세나는 그 모순을 서둘러 풀어 주려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시설 기사 도윤이 굴러온 부표를 발로 멈춰 세웠다. “복귀일이 당겨졌다고? 그럼 예약 시간도 앞으로 바꿔야겠네.”
“복귀일은 없애기로 했어요.” 세나가 말했다.
도윤이 놀란 얼굴로 민호를 봤다. “그럼 뭐가 목표야?”
민호는 수건을 정리하며 한참 생각했다. “오늘은 계단을 내려올 때 난간에 매달리지 않는 거요. 손을 한 번만 놓아 볼 겁니다.”
세나는 그 목표를 기록지에 적었다. 수영장 훈련과 무관해 보이는 작은 일도 그에게는 필요한 균형 연습이었다. 도윤은 계단에 미끄럼 방지 테이프를 새로 붙이며 “그럼 내가 밑에서 지켜볼게”라고 했다. 민호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세나는 그에게 따뜻한 물을 건넸다. “잘한 걸로 만들려면 다음 행동도 있어요. 통증이 더 오르면 쉬고, 기록을 읽고,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예요.”
문가을은 의료진 소견을 따로 봉투에 넣고 민호에게 건넸다. 세 사람은 어떤 정보가 길드에 가는지 다시 확인했다. 세나는 훈련 날짜와 체중 이동 3회, 통증 최고 5, 이후 운동 중단을 적었다. 부력 스킬은 언급하지 않았다. 아직 수중 검사도 하지 않았다.
퇴근 무렵, 민호는 수영장 난간까지 걸어와 멈췄다. 물에 들어가지 않은 채 발끝을 보았다. “어제는 물속에서 발이 가벼워졌어요. 오늘은 바닥에서 무거워요.”
“오늘은 몸이 다른 말을 하고 있네요.”
“그럼 내일도 달라질까요?”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날짜 대신 상태를 봐요.”
민호는 대답 대신 난간을 잡고 체중을 왼쪽으로 옮겼다가 돌아왔다. 한 번뿐이었다. 세나는 그걸 훈련 성취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록지에 ‘자발적 체중 이동 1회, 통증 보고 없음’이라고만 적었다.
저녁에 길드에서 메일이 왔다. 제목은 ‘재활 협조 요청’이었지만 첨부 문서에는 세나의 서명란과 ‘3일 후 복귀 가능’이라는 문구가 미리 입력돼 있었다. 세나는 그 문서를 민호에게 전달했다. “이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당신도 읽어 보세요.”
민호는 첨부를 열어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제가 서명하면 길드가 치료비 일부를 준다고 합니다.”
“진료비 지원 조건과 복귀 판정을 묶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돈이 필요해요.”
“그 점도 상담사와 함께 이야기합시다.”
민호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가 서명하지 않은 자리에 빈 칸이 남았다. 세나는 그 빈칸이 당장의 답이 아니라, 선택을 조금 미룰 시간을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다음 날 수영장에 도착한 문가을은 검사 결과를 들고 있었다. 발목 회복은 예상보다 느렸지만 신경 반응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가 물에서 나타난 발끝 움직임과 같은 원인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민호가 기록을 읽는 동안 세나는 레인에 부표를 띄웠다.
그는 서류를 접고 물을 바라봤다. “오늘은 들어가도 됩니까?”
“검사 뒤에 의료진에게 다시 확인하죠. 먼저 발목이 어떤 상태인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민호는 어제 썼던 통증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오늘은 3입니다. 하지만 물속에서 꼭 확인하고 싶어요.”
세나는 훈련 계획표의 ‘복귀 목표일’ 칸에 선을 그었다. 그 아래에 ‘다음 확인: 의료진 재평가 후 얕은 물에서 5분’이라고 적었다. 민호가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복귀 날짜는 지워졌지만 다음 걸음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