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를 무한 합성하는 밀덕 생존자

2화 [붉은 선의 궤적]
끊어진 잠금쇠
철문이 안쪽으로 꺾였다.
끊어진 잠금쇠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문틈 사이로 핏빛 밴 손가락들이 불쑥 튀어나와 문틀을 비틀었다.
“뒤로 물러서십시오.”
태준은 낮게 경고했다. 작업대 뒤에 웅크린 중년 남자가 아이를 감쌌고 젊은 여자는 아이의 귀를 틀어막았다.
철문이 걷어차이며 열렸다.
복도의 냉기와 함께 썩은 피비린내가 들이닥쳤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셋이었다. 안내복 차림의 사내와 운동복 차림의 여자 그리고 얼굴이 짓이겨진 청년이었다. 셋 모두 눈동자가 풀린 채 덤벼들었다.
태준은 양손으로 H-9 1단계를 받쳐 들었다.
손잡이를 쥐자 총열 밑에서 뻗어 나온 붉은 광선이 어둠을 갈랐다. 가느다란 붉은 선은 흔들림 없이 맨 앞 사내의 미간에 닿았다. 조준선을 눈높이에 맞출 필요조차 없었다. 붉은 점이 찍힌 자리가 곧 탄착군이었다.
탕!
짧고 둔탁한 파열음이 보관실을 울렸다.
표준형 H-9 특유의 날카로운 반동 대신 손목을 묵직하게 감싸는 압력이 전해졌다. 총구가 치솟는 현상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사내의 이마에 구멍이 뚫리며 몸이 뒤로 꺾였다.
곧바로 두 번째 사격이 이어졌다.
탕! 탕!
운동복 차림의 여자가 허리를 숙이며 덤벼들었으나 붉은 점은 가슴 정중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두 발의 탄환이 찰나의 간격으로 박혀 들었다. 몸통 관통상을 입은 여자가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청년이 둘을 딛고 도약했다. 거리는 불과 두 걸음이었다. 태준은 한 뼘 물러서며 턱 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두개골을 뚫은 탄환에 청년의 상체가 허공에서 굳더니 바닥으로 무너졌다. 약협 세 개가 콘크리트 바닥을 굴렀다. 단 네 발로 좁은 방 안의 위협이 끝났다.
오대식이 벽을 짚고 일어서려다 헛바람을 들이켰다.
“반동이… 거의 없었습니다.”
태준은 대답 대신 시야 구석의 반투명한 글자를 보았다.
[H-9 1단계 가동 중]
[특성: 레이저 조준]
[배터리 잔량: 92%]
[신경 열 축적률: 14%]
손목 안쪽이 은근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약의 열이 아닌 뼈마디로 스며드는 신경 자극이었다. 합성 무기를 쓸 때마다 이 피로가 누적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배터리 잔량도 줄어 있었다. 방아쇠울 앞쪽의 슬라이드 스위치를 내리자 붉은 광선이 꺼졌다. 시야의 배터리 알림도 멈추었다. 필요할 때만 켜서 쓰는 편이 안전했다.
“오 대리님. 탄약 상자 챙기십시오.”
태준은 작업대 위의 9밀리 탄약 두 상자를 쓸어 담아 한 상자를 오대식의 가방에 넣었다.
“대부분 지하 출구 쪽으로 몰렸지만 총성을 들은 놈들이 올 수 있습니다. 직원용 비상계단으로 올라갑니다. 1층 지상 주차장으로 통합니다.”
태준이 앞장서며 손짓했다.
“뛰지 말고 제 발소리에 맞추십시오.”
보안실과 단계의 벽
대열은 조심스럽게 복도를 따라 전진했다.
태준이 선두에 서고 중년 남자와 아이가 뒤를 따랐다. 오대식은 벽을 짚으며 절뚝거렸고 젊은 여자가 그의 팔을 부축했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오대식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종아리에 감긴 수건이 피로 젖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을 디딜 때마다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 갔다.
이대로 계단을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태준은 복도 중간에 위치한 직원 보안실 문을 밀었다.
“안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멈춥니다.”
일행이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고 걸쇠를 걸었다. 벽면의 구급함을 뜯어내자 젊은 여자가 붕대와 가위를 낚아챘다.
“제가 하겠습니다. 응급처치 교육 이수했습니다. 총은 못 쏴도 이건 당신보다 빠를 겁니다.”
여자는 오대식의 바짓단을 찢고 상처를 소독약으로 씻어낸 뒤 압박 패드를 단단하게 감았다.
“근육이 찢겨서 출혈이 심한 거라 압박만 제대로 하면 걸을 수는 있어요.”
오대식이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태준은 철제 캐비닛을 살폈다. 선반 위에 사격장 경비용 기본형 H-9 권총이 놓여 있었다. 탄창에는 일곱 발이 장전되어 있었다.
태준은 자신의 H-9 1단계를 꺼내 철제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렸다. 기본형과 1단계를 합치면 2단계가 되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두 총기를 맞대자 시야 한가운데에 붉은 경고문이 떴다.
[동종 합성 불가: 단계 불일치]
[H-9 1단계 + H-9 기본형]
[동일 단계의 장비만 결합할 수 있습니다.]
합성은 무조건 같은 모델을 겹친다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본형은 기본형끼리 1단계는 1단계끼리만 결합이 가능했다. 2단계를 만들려면 1단계가 한 자루 더 있어야 했다.
“그 총… 남는 거면 저한테 주시면 안 됩니까?”
중년 남자가 다급하게 손을 뻗으려 했다. 태준은 권총을 거두고 오대식을 바라보았다.
“오 대리님. 군필입니까?”
“육군 병장 만기 전역했습니다.”
태준은 기본형 H-9 권총을 오대식의 품으로 건넸다.
“이걸 받으십시오. 다룰 줄 모르는 사람에게 쥐여 주면 공포 때문에 아군을 쏩니다. 규칙을 정합니다. 첫째 제 명령 없이 먼저 쏘지 마십시오. 둘째 3미터 안으로 붙었을 때만 쏘십시오. 셋째 연사하지 마십시오.”
오대식은 총자루를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키겠습니다.”
그 순간 천장 환풍구 너머에서 고음의 전자음이 사격장을 흔들었다.
삐- 삐이익-!
뒤이어 복도 저편에서 수백 개의 발소리가 방향을 바꾸어 이쪽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하 출구가 막혔습니다. 놈들이 돌아옵니다. 지금 뛰어야 합니다.”
비상계단의 병목
보안실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왔을 때 모퉁이 너머로 감염자들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계단으로!”
태준이 소리쳤다. 일행은 비상구 방화문으로 달려갔다. 문을 밀어젖히자 위아래로 뻗은 계단실이 드러났다.
“올라가십시오! 뒤는 제가 봅니다!”
오대식이 난간을 잡고 앞장섰다. 여자와 아이 그리고 중년 남자가 계단을 밟았다. 태준은 방화문을 닫으려 했으나 깨진 타일이 끼어 틈이 벌어졌다. 그 틈으로 피투성이 손들이 들이닥쳤다.
쿠쾅!
거대한 질량이 문을 때렸다. 태준은 문을 어깨로 밀어붙이며 권총의 스위치를 올렸다.
치직.
총열 아래에서 붉은 광선이 어둠을 갈랐다. 문틈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놈의 목덜미에 붉은 점이 찍혔다.
탕! 탕! 탕!
어둠 속에서도 붉은 점은 빗나가지 않았다. 급소에 탄환이 박히며 쓰러진 시체들이 문틈을 틀어막았다. 태준은 문을 발로 차서 닫은 뒤 계단을 뛰어올랐다.
상층 계단참에 도착한 중년 남자가 소리쳤다.
“문이 안 열려요! 쇠사슬이 감겨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통하는 철문 손잡이에 쇠사슬과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태준은 벽면의 소화전함을 부수고 비상도끼를 꺼내 오대식에게 넘겼다.
“사슬 연결부를 내리치십시오!”
오대식이 도끼를 내리쳤다. 쾅! 쾅! 금속이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그사이 아래쪽 방화문이 뜯겨 나가며 감염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성인 둘이 겨우 서는 완벽한 병목 지점이었다. 천장의 전자음이 꺾일 때마다 놈들은 일제히 몸을 숙이고 간격을 좁혀 왔다. 신호에 따라 통제받는 움직임이었다.
[배터리 잔량: 79%]
[신경 열 축적률: 28%]
자원이 무한하지 않았다. 태준은 레이저를 켜고 선두에서 기어오르던 놈의 미간을 노렸다.
탕!
머리가 깨진 놈의 시체가 뒤따르던 놈들의 발을 걸며 굴러떨어졌다. 시체가 훌륭한 장애물이 되었다. 태준은 서두르지 않고 급소에 붉은 점이 닿는 순간만 끊어 쐈다. 반동 제어가 뛰어난 1단계 권총 덕분에 다음 표적으로 조준을 옮기는 속도가 빨랐다.
콰앙!
등 뒤에서 마침내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터졌다.
“열렸습니다!”
철문이 젖혀지며 바깥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가십시오! 뒤돌아보지 마세요!”
태준은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오던 놈의 가슴에 두 발을 꽂아 넣은 뒤 레이저 스위치를 내렸다. 붉은 광선이 꺼지자 손목의 열감이 가라앉았다.
태준은 문밖으로 몸을 날려 철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쾅! 쾅! 쾅!
철문은 단단했고 놈들은 나오지 못했다.
황혼의 주차장
일행은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붉은 노을이 주차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도로는 불타는 차량으로 뒤엉켜 있었고 도심에서는 검은 연기 기둥이 치솟았다. 도시는 무너져 있었다.
중년 남자가 얼굴을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아이는 여자의 품에 안겨 떨었다. 태준은 숨을 고르며 권총의 탄창을 뺐다. 잔탄 세 발. 주머니에는 미개봉 탄약 한 상자가 남아 있었다.
[배터리 잔량: 68%]
[신경 열 축적률: 31%]
무기는 강력했으나 배터리는 삼십 퍼센트 넘게 소모되었고 손목에는 뻐근한 피로가 남았다. 대가가 따르는 전술 장비였다.
그때 버려진 순찰차의 깨진 창문 틈에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치익… 아군 생존자… 북부 임시 대피소 집결… 주파수 104.7… 감염 차단선 구축 중… 치익….
잡음 섞인 군 방송이었다. 북쪽에 방어선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도로변의 감염자 수십 명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그들은 허리를 기괴하게 꺾은 채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모두 도심의 거대한 송신탑을 향하고 있었다. 전자음의 진동이 공기를 울렸다.
부르릉!
세차장 차광막 뒤에서 거친 엔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시동이 꺼졌다.
“사람 소리였습니다!”
오대식이 권총을 움켜쥐었다. 태준은 탄창을 결합하며 약실을 장전했다.
“움직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탈것을 확보해야 합니다.”
태준의 발걸음이 차광막을 향해 낮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