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를 무한 합성하는 밀덕 생존자

1화 [첫 탄창은 비어 있었다]
통제실의 탄창
통제실 모니터 속 도시는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정전된 상가 사이로 자동차들이 서로 부딪힌 채 멈춰 있었다. 도로 한가운데 선 사람들은 걷는 대신 몸을 꺾으며 움직였다.
한태준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바닥에 놓인 탄창을 셌다.
네 개. 9밀리 탄약은 서른두 발.
통제실 문 너머에서 손톱이 철판을 긁었다. 일정한 간격이었다. 우연히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오 대리님. 다리 어떻습니까?”
“뼈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피가 계속 납니다.”
사격장 직원 오대식이 책상 밑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종아리에 감긴 수건이 검붉게 젖어 있었다.
태준은 상처를 다시 보지 않았다. 피의 양보다 중요한 건 이동 속도였다. 오대식은 혼자 걸을 수 있지만 계단을 내려갈 때는 부축이 필요하다.
“여기서 기다리면 구조대가 옵니까?”
“통신이 끊겼습니다. 기다릴 근거가 없습니다.”
그는 벽에 붙은 사격장 도면을 펼쳤다. 통제실에서 지상 출구까지 이어지는 복도는 감염자들이 막고 있었다. 지하 보관실을 통과하면 직원용 계단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보관실 문이 전자식이라는 점이었다.
태준은 책상 위 무전기를 켰다. 잡음 사이로 낮은 전자음이 흘렀다.
삐. 삐이익.
모니터 속 감염자 몇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모두 같은 방향을 보았다. 사격장 천장에 달린 방송 스피커였다.
태준은 무전기를 껐다. 감염자들은 소리에 반응한다. 하지만 단순한 큰 소음과는 달랐다. 방금 전자음에 반응한 움직임은 너무 정확했다.
그는 탄창 두 개를 허리 주머니에 꽂았다. 남은 두 개는 오대식의 가방에 넣었다.
“총 쓸 줄 압니까?”
“저는 직원입니다.”
“그건 질문의 답이 아닙니다.”
“조금 쏴 봤습니다.”
“그럼 세 발만 쏘십시오. 많이 쏘면 우리가 죽습니다.”
통제실 문이 안쪽으로 부풀었다. 태준은 문고리를 잡지 않고 옆 벽에 등을 붙였다. 충격이 오면 문 정면에 선 사람부터 쓰러진다.
두 번째 충격에 경첩이 울었다. 세 번째 충격이 오기 전에 태준은 비상 차단 레버를 내렸다. 통제실 옆 복도의 셔터가 내려오며 감염자들의 진입로를 잘랐다.
동시에 다른 쪽 문이 열렸다.
“지금입니다.”
표적지 사이의 돌파
태준이 먼저 나갔다. 복도 끝에서 감염자 한 명이 달려들었다. 달리는 속도는 느렸지만 팔이 이상하게 꺾여 있었다. 태준은 머리를 노리지 않고 무릎을 쐈다. 쓰러진 몸이 길을 막았다.
“넘어간 뒤에는 밟지 마세요. 미끄럽습니다.”
오대식이 절뚝이며 따라왔다. 사격장 안쪽 대기실에는 사람들이 더 있었다. 유리문 너머에 젊은 여자와 중년 남자 그리고 열 살쯤 된 아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여자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여기 사람 있어요!”
태준은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복도 맞은편 스피커에서 다시 전자음이 울렸다.
삐. 삐이익.
감염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태준은 대기실 문을 열었다.
“뛰지 마세요. 발을 끌지 말고 제 발을 따라오십시오.”
“당신 누구예요?”
“지금은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벽에 걸린 소화기를 뽑아 스피커 쪽으로 던졌다. 금속음이 복도 끝에서 터졌다. 감염자 무리가 그쪽으로 몰렸다. 태준은 그 틈에 차단문을 열었다.
젊은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갔다. 중년 남자는 발을 헛디뎠다. 태준이 그의 등허리를 잡아 세웠다. 뒤쪽에서 감염자가 차단문 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태준은 한 발만 쐈다. 손가락이 끊겨 바닥에 떨어졌다. 감염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차단문을 더 열고 중년 남자를 밀어 넣었다.
“문을 잡고 계세요.”
“제가요?”
“다른 사람이 잡으면 손이 다칩니다.”
오대식이 문을 붙잡았다. 태준은 마지막으로 안쪽을 확인한 뒤 보관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감염자들의 몸이 철판에 부딪혔다.
젊은 여자는 아이를 품에 안고 태준을 노려봤다. 손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들려 있었다. 구해 줬다는 사실만으로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태준은 문 아래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피를 확인했다. 감염자의 피인지 오대식의 피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는 오대식에게 가방을 내려놓으라고 한 뒤 수건을 풀었다.
“상처를 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것과 계속 걸을 수 있는 건 다릅니다.”
태준은 상처 위를 눌러 출혈을 줄였다. 오대식이 이를 악물었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젊은 여자의 손에서 유리 조각이 조금 내려갔다.
“아이 이름은?”
“도하예요.”
“도하 씨는 저 벽에 기대세요. 중년 남자분은 손전등을 들고 계단 위치를 기억하십시오.”
“왜 우리가 당신 말을 들어야 하죠?”
“안 들으면 문이 열릴 때 서로 부딪힙니다. 그러면 감염자보다 사람이 먼저 넘어집니다.”
태준은 사람들의 눈을 차례로 확인했다. 명령에 익숙한 눈은 없었다. 그래도 각자 할 일을 받은 뒤에는 숨이 조금씩 고르게 돌아왔다. 혼자 빠져나갈 때보다 느려진 대신 대열이 생겼다. 대열은 한 발의 총성보다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저 사람 총을 뺏으면 안 돼요?”
“뺏을 수 있으면 해 보십시오.”
태준은 차갑게 대답했지만 총구를 그녀에게 돌리지는 않았다. 오대식에게는 문을 지키라고 하고 중년 남자에게는 아이를 안쪽 벽으로 붙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할 일을 나누자 공포에 흔들리던 손들이 조금씩 움직였다.
두 개의 같은 권총
보관실 안에는 탄약 상자와 정비 작업대가 있었다. 태준은 먼저 전등 스위치를 내렸다. 어둠 속에서 비상등 하나만 붉게 켜졌다.
“여기서 나갈 수 있습니까?” 중년 남자가 물었다.
“문 잠금 장치가 살아 있으면 가능합니다.”
“살아 있지 않으면요?”
“고쳐야 합니다.”
태준은 탄약 상자를 열었다. 9밀리 탄약 세 상자와 권총 한 자루가 나왔다. 그는 권총을 들어 약실과 탄창 삽입구를 확인했다. 한빛정밀의 H-9. 사격장 대여용으로 흔한 모델이었다.
작업대 아래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태준이 서랍을 당기자 같은 H-9 한 자루가 더 나왔다. 다만 슬라이드가 긁혔고 손잡이에는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두 권총의 외형이 겹쳐 보였다.
그 순간 시야 한가운데에 글자가 떠올랐다.
[동종 합성 조건 확인]
[동일 모델 H-9 2정]
[동일 규격 9밀리 탄약 1상자]
[작업대 필요]
태준의 손이 멈췄다. 글자는 모니터에도 반사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젊은 여자가 그를 보고 물었다.
“뭐가 보이는데요?”
“아닙니다.”
그는 권총을 작업대 위에 올렸다. 문 밖의 충격이 점점 커졌다. 오대식은 잠금 장치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원이 불안정합니다. 열리면 끝입니다.”
태준은 두 권총과 탄약 상자를 내려다봤다. 두 자루를 합치면 한 자루가 사라진다. 합성 결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실패하면 탄약만 잃고 문이 열릴 수 있다.
“하지 마세요.” 젊은 여자가 말했다. “그냥 한 자루씩 나눠 들면 되잖아요.”
“탄약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모르는 걸 건드리면 안 되죠.”
태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맞는 말이었다. 모르는 장치를 만지는 건 작전이 아니라 도박이다. 그러나 문 밖의 소리는 이미 도박판을 뒤집고 있었다. 철판이 안쪽으로 휘었다. 기다리는 선택은 실패에 가까웠다.
그는 두 권총의 손잡이를 겹쳤다.
따뜻한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쇳소리와 함께 두 무기가 하나로 끌려갔다. 총열이 짧아지고 슬라이드의 흠집이 닫혔다. 손목 안쪽이 바늘로 찌른 듯 아팠다.
[동종 합성 완료]
[H-9 1단계]
[특성 슬롯 1개]
[레이저 조준 특성 선택 가능]
태준은 선택 문구를 읽었다. 다른 선택지는 흐릿하게 잠겨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레이저 조준 특성 적용]
총 옆면에서 가느다란 붉은 선이 뻗었다. 붉은 점이 보관실 문 중앙에 찍혔다.
동시에 천장 안쪽에서 전자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사격장 전체가 떨릴 만큼 컸다.
삐이익. 삐이익.
감염자들이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멎었다. 잠깐의 정적 뒤에 발소리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지하 출구 쪽이었다.
오대식이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저 소리… 누가 내는 겁니까?”
태준은 붉은 점을 출구 도면 위에 맞췄다. 지하 계단 아래에서 수십 개의 발소리가 겹쳤다. 단순한 무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길을 열고 있었다.
그는 합성된 권총을 들고 민간인들을 돌아봤다. 새 권총을 본 젊은 여자의 눈에 공포가 다시 떠올랐다.
태준은 권총의 탄창을 뺐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합성 전과 같은 탄약이 들어 있었지만 손에 느껴지는 균형은 전혀 달랐다. 붉은 조준점은 흔들리지 않았다. 손목 안쪽의 열은 그 대가처럼 박동했다.
“문이 열리면 뛰지 마십시오. 제가 쏘는 방향만 보세요.”
“당신은요?”
태준은 손목을 눌렀다. 진동은 사라졌지만 신경 안쪽에 열이 남아 있었다.
“저는 길을 만듭니다.”
철문 너머에서 첫 번째 잠금쇠가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