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전용 건물은 공인중개사가 고릅니다

2화: 계약서에 없는 야간 진동
밤 열한 시가 되자, 반지하 바닥에서 낮은 울림이 올라왔다.
서이담은 건물 앞 인도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을 콘크리트에 댔다. 진동은 규칙적이지 않았다. 두 번 짧게, 한 번 길게 이어진 뒤 멎었다. 공실인 반지하 안에서는 펌프가 꺼져 있었고, 전기 계량기 수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훈련 때문은 아니네요.” 달개비 정찰자 이다현이 말했다.
“아직 원인을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우리 길드는 오늘 여기서 훈련 안 했어요. 사무실 열쇠도 없는데요.”
다현은 휴대전화로 시간을 기록했다. 그녀는 첫 방문 때부터 밤에 이곳이 울릴 거라고 말했다. 준서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길드원이 밤마다 드나들며 장비를 옮기면 이웃이 민원을 넣을 수 있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다.
준서는 부동산 중개인 서이담에게 불만을 보였다. “이 진동이 계속되면 계약을 못 하는 겁니까?”
“정해지지 않은 상태예요. 임대인도 옆 건물 관리인도 원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은 마나를 읽을 수 있잖아요. 어디서 오는지 보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담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마나는 흐름을 보여 줘요. 배관이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누가 어떤 설비를 썼는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정숙은 건물 입구에서 남편의 접이식 의자를 들고 나왔다. 그녀는 며칠 전보다 얼굴이 더 지쳐 보였다. 수리 견적이 예상보다 컸고, 옆 건물 관리인은 불법 연결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숙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배관을 전부 보여 줬다며 억울해했다.
“제가 모르는 관이 또 있으면 어떡하죠?”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기사님이 확인해야 합니다. 모르는 걸 일부러 숨겼다고 적지는 않을게요.”
정숙은 의자를 내려놓고 벽에 기대었다. “세입자들이 나간 뒤로 남편이 매일 여기 와서 직접 고쳤어요. 오래된 건물이라 손볼 데가 많았죠. 나는 그가 괜찮다고 하면 믿었고요.”
이담은 정숙이 지금까지 건물주 남편을 대신해 병원과 임대 문의를 모두 챙기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에게는 법률 용어보다, 집을 고친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일이 힘들어 보였다.
건축 마나 기사 백진호는 밤 진동을 재기 위해 지하실과 옆 건물 설비실에 센서를 설치했다. 그는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이건 벽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바닥 아래에서 들어오고 있어요.”
“지하 배관을 따라오나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시간대가 매일 일정한지도 봐야 합니다.”
다현은 지난 일주일의 생활 소리를 적어 둔 메모를 꺼냈다. 진동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 10시 55분에서 11시 10분 사이에 반복됐다. 주말에는 없었다. 준서는 훈련 일정을 확인했다. 달개비는 세 번 모두 다른 체육관에 있었다.
“옆 건물은 그 시간에 뭘 하죠?” 이담이 물었다.
정숙은 기억을 더듬었다. “작은 마도구 공방이 있어요. 낮에는 영업하고 밤에는 작업을 한다고 들었어요.”
“허가된 야간 작업인가요?”
“그건 모르겠어요.”
옆 건물 관리인 김원철은 처음에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길드가 입주하기도 전에 민원을 넣는 거냐고 언성을 높였다. 준서는 계약 보류 상태라며 상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원철은 세입자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측량을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담은 중개사 자격증과 점검 동의서를 보여 주었다. “공용 배수관과 건물 경계 쪽 설비만 보겠습니다. 공방 안쪽을 조사하진 않아요.”
“우리 설비는 문제없습니다.”
“그럼 확인하면 더 빨리 끝나겠네요.”
원철은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 그때 공방 안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세 번, 그리고 짧은 공명음. 진호의 센서에 파형이 찍혔다. 진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소리가 들렸습니다.” 준서가 말했다.
“작업 소리는 잘못이 아니에요.” 이담이 그를 막았다. “허가 여부와 마나 배출을 확인하는 겁니다.”
원철은 문을 닫으려 했다. 다현이 한 발 앞으로 갔다. 그녀는 공방 안을 보지 않고 계량기 옆의 환기구를 가리켰다. 그 틈에서 푸른 가루가 바람과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게 왜 밖으로 나와요?”
원철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마침내 문을 열었다. 안에는 작은 마나 발전기와 금속 프레스가 있었다. 발전기는 바닥에 임시 받침을 놓고 설치돼 있었고, 배기 덕트는 공동벽의 배수 환기구에 연결되어 있었다. 야간 작업 때마다 부산물과 저주파 진동이 이담이 본 건물로 넘어갔다.
원철은 공방 주인 부부와 함께 설비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내가 낮에 병원 치료를 받아 밤에만 일을 할 수 있었다. 발전기를 끄면 주문을 납기 안에 맞추기 어려웠다. 그는 옆 건물에 미리 알리면 임대인이 사용을 막을까 봐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기계를 돌린 겁니다. 저 건물 벽에 이렇게 영향을 줄 줄은 몰랐어요.”
진호는 무단 배기 연결을 보여 주었다. “사장님이 몰랐다고 해도, 지금부터는 계속 돌릴 수 없습니다. 덕트가 공용 환기구를 쓰고 있어요.”
원철은 눈을 감았다. “이 공방이 우리 부부 마지막 수입원이에요.”
준서는 그 말을 듣고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반지하 매물을 얻지 못하면 임시 체육관 비용을 계속 내야 했지만, 원철의 사정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다현은 손바닥에 묻은 푸른 가루를 닦아 냈다.
“가족이 일하는 건 이해해요. 그래도 그 진동 때문에 누군가는 밤새 깨어 있어요.”
원철의 아내가 공방 안쪽에서 나왔다. “우리가 피해를 줬다면 고치겠습니다. 다만 당장 문을 닫으라고만 하면 갈 곳이 없어요.”
이담은 양쪽의 요구를 적었다. 달개비는 밤 진동과 마나 배출을 막아야 했고, 공방은 주문을 납기 안에 처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건물주는 불법 연결을 안전하게 바꾸되 비용을 한쪽에 전부 떠넘기지 않아야 했다.
진호는 발전기 받침에 진동 차단 고무를 붙이고, 배기 덕트를 외벽으로 뽑는 임시 설계를 내놓았다. 허가를 받는 동안 밤 10시 이후에는 발전기를 저출력으로 운영하고, 부산물은 밀폐 용기에 보관하는 조건이었다. 정숙은 공동벽 수리비 일부를 부담하고, 공방은 배기 공사비를 내기로 했다. 달개비는 입주 뒤 한 달 동안 야간 훈련을 하지 않고 진동 기록을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협의는 쉬이 끝나지 않았다. 원철은 공사비를 한꺼번에 낼 수 없다고 했다. 준서는 길드도 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여유가 없다고 맞섰다. 정숙은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맡는 계약에는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담은 분담 비율을 다시 계산했다. 공방이 설비를 소유하고, 정숙이 건물 외벽을 수선하며, 달개비는 입주자 몫의 방음재 비용을 부담하는 식으로 나누었다.
“계약 기간을 줄이면 어때요?” 다현이 제안했다. “한 달 시험 운영을 하고, 진동이 기준을 넘으면 우리도 나가고 공방도 야간 작업을 조정하는 거예요.”
준서는 곧바로 반대하려다 멈췄다. 그에게는 장기 계약이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문제를 확인하기 전에 오래 묶이는 것도 위험했다. 그는 이담에게 시험 기간 동안 보증금을 보관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담은 중개 보관 계정과 반환 조건을 계약서에 적었다. 다현은 첫 회의에서 말하지 못했던 야간 귀가의 불편을 설명했다. 길드 건물이 역에서 멀면 그녀가 혼자 걸어야 했고, 훈련 뒤 늦게 끝나는 날마다 불안했다. 준서는 입지 조항에 막차와 도보 조명을 추가했다.
그날 밤, 진호는 발전기를 저출력으로 돌리고 다시 측정했다. 진동은 이전보다 줄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푸른 흐름은 여전히 벽 아래를 따라 반지하로 갔다. 원철은 작업대의 공구를 치우고 밤 작업을 멈췄다. 손끝에는 푸른 먼지가 남아 있었다.
“이 흐름은 발전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이담이 말했다.
진호는 지하 배관 도면을 펼쳤다. 반지하 바닥 아래, 폐쇄된 승강기실로 이어지는 선이 그려져 있었다. 도면에는 그 공간이 공실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전력 계량기는 아직 살아 있었다.
정숙은 그곳 열쇠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준서는 계약서를 덮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더 아래를 보려면 건물주와 안전 기사 모두 같이 있어야 합니다.”
이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값싼 매물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어느 쪽도 서로의 사정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시험 기간을 두고 계약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이담은 승강기실 앞에 붙은 오래된 공실 안내표를 떼어 냈다. 뒤쪽에는 한 글자도 없는 새 도어락과 작은 전력 표시등이 있었다. 불은 밤새 켜져 있었다.
정숙은 열쇠를 찾겠다며 집에 다녀왔지만, 남편은 승강기실 이야기를 듣자 얼굴을 굳혔다. 그는 예전 건물 관리인이 그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져갔다고 했다. 정숙은 그 말을 처음 들었다. 준서는 계약을 미루자고 했고, 이번에는 정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쓰고 있는지 모르는 공간을 임대에 포함할 수는 없어요.”
이담은 점검 동의서에 ‘승강기실과 연결 전원 확인 전까지 계약 효력 보류’라고 적었다. 누구에게도 불리한 추측을 넣지 않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조건만 남겼다. 다현은 표시등을 사진으로 찍었다. 빛은 낮에도 꺼지지 않았다. 정숙은 열쇠를 꼭 쥐었다. “이번엔 모르는 채 계약하지 않을게요.” 준서는 계약서를 덮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현은 사진을 저장했다.
이담은 계약서의 보류 조항을 정숙에게 다시 읽어 주었다. 정숙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서야 어깨를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