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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과수원의 겨울 계약3화

유리 과수원의 겨울 계약

유리 과수원의 겨울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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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씨앗의 온기

주민 협의회는 궁정 온실의 남쪽 문 앞에 모였다. 바깥에는 눈이 얇게 쌓였고, 유리벽 안쪽에는 열이 고르지 않게 남아 있었다. 에린은 열지도와 공동 수확표를 펼쳤다. 루시안은 감사 기록을 들고 섰다. 나야는 손등에 붕대를 감은 채 온실 문을 열어 두었다.

“저희는 폐쇄를 막으려고 손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에린이 말했다. “묘목 열 개가 살아남고, 두 개가 손상됐어요. 성목 세 그루의 꽃눈이 얼었습니다. 난방 장치는 아직 임시 상태입니다.”

마을 대표 다리아가 수확표를 훑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보낼 묘목은 열 개뿐입니까?”

“지금 살아 있는 건 열 개예요. 봄까지 버틸 수 있을지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궁정이 폐쇄하면 우리가 키운 나무까지 빼앗기는 건가요?”

루시안이 답했다. “그런 조항은 계약서에 없습니다. 하지만 소유권과 열관리 책임이 분리되어 있어 분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걸 왜 처음 계약에 넣지 않았죠?”

“제가 이전 감사에서 공동 사용에 필요한 항목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온실의 운영비는 궁정 소유로 계산했고, 마을이 제공한 씨앗과 노동은 기부로 처리했습니다.”

“그럼 우리 몫은 장부에 없었네요.”

“네. 그건 제가 고쳐야 할 문제입니다.”

다리아는 손에 든 겨울 사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럼 지금 고친 계약에 사인해도 궁정에서 무시할 수 있겠네요.”

루시안은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궁정 승인만으로 끝내지 않고, 주민대표의 공동 서명과 수확 기록의 공개 열람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감사관이 주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계약 초안을 보여 주었다. 온실 난방비는 실측 사용량에 따라 정산하고, 수확·손실·묘목 분배는 마을 대표와 과수원지기가 함께 서명한다. 난방 구역을 바꾸는 결정에는 에린의 현장 확인이 필요하고, 비용 지급은 루시안의 감사 기록과 별도 승인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이 계약으로 올해 겨울을 버틸 수 있어요?” 나야가 물었다.

“완전히는 아닙니다.” 에린이 말했다. “순환 장치가 덥힐 수 있는 건 한 구역뿐이에요. 모종방을 살리면 성목 일부는 쉬어야 합니다.”

“그럼 모종방을 먼저 지키죠.” 다리아가 말했다.

회의장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 주민은 겨울 과일을 궁정에 납품해야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온실 열을 마을 묘목에 더 쓰면 다음해 시장 공급이 줄어든다고 걱정했다. 에린은 과일이 몇 상자 줄어들지 계산하지 않았다. 대신 수확표에 남은 나무와 꽃눈 상태를 보여 주었다.

“지금 선택하면 어떤 열매를 잃을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온실을 닫으면 새 묘목은 모두 밖으로 나가고, 이 나무의 상태도 기록되지 않아요.”

“기록한다고 나무가 사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요. 그래도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남으면 다음 겨울에는 같은 선택을 혼자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야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가 밸브를 고친다고 했어요. 열을 빼서 묘목에 보내면 오래된 사과나무가 더 추워질 걸 알고도요. 꽃눈을 잃은 건 내 일과도 연결돼요. 이름을 장부에 넣어 주세요.”

그녀는 수확표에 직접 서명했다. 다리아도 마을 몫 아래에 이름을 적었다. 주민 한 명은 끝까지 서명하지 않고, 겨울 납품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협의회는 그 선택도 기록했다.

궁정 관리인 페르가 온실에 들어왔다. 그는 재무실의 폐쇄 명령을 들고 있었다. “오늘부터 열순환 장치를 중단합니다. 승인되지 않은 운영은 계약 위반입니다.”

“긴급 수리 신청은 접수됐습니다.” 루시안이 말했다.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승인 지연 동안 온실을 닫으면 수확 손실이 커집니다.”

“그 손실은 감사 결과에 반영하면 됩니다.”

에린은 관리인의 손에 든 서류를 보았다. “손실이 누구 몫으로 반영되나요?”

“소유주에게 귀속됩니다.”

“그럼 마을이 낸 씨앗과 노동은 또 기부로 처리되겠네요.”

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시안이 감사 의견을 펼쳤다. “지난달 난방비는 실제 사용량보다 두 배 높게 청구됐습니다. 부품 대금은 지급됐지만 납품서가 없습니다. 이 내역을 확인할 때까지 운영비 동결은 재검토해야 합니다.”

“감사관은 폐쇄 명령을 취소할 권한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추가 조사를 요청했고, 원본 청구서와 실측 기록을 같이 제출했습니다.”

페르는 서류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때 다리아가 나섰다. “주민 대표도 수확표에 서명했습니다. 이 기록을 접수하지 않으면 이 온실에서 난 과실도, 우리 씨앗도 궁정에 넘기지 않겠습니다.”

“공급 계약을 끊겠다는 겁니까?”

“계약에 적히지 않은 기부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페르는 루시안에게 서류를 내밀라고 했다. 루시안은 종이를 넘기기 전에 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감사 기록과 주민 서명표를 분리해 두 부로 접수했다. 에린은 현장 증거로 열지도와 살아남은 묘목 수를 첨부했다.

그동안 나야는 순환 장치의 축열실로 내려갔다. 루시안이 따라가려 하자 에린이 막았다. “이번 조정은 제가 할게요. 당신은 기록과 계약 확인을 맡으세요.”

“저도 밸브를 도울 수 있습니다.”

“가능해요. 하지만 나야 씨가 작업 책임을 맡았고, 저는 과수원지기로 수확 상태를 봐야 합니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면 책임이 흐려져요.”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위에 남았다. “어떤 수치를 기록하면 되죠?”

“벽돌 열량, 북쪽 흙 온도, 성목 구역 온도. 10분 간격으로요.”

“알겠습니다.”

에린과 나야는 축열실로 내려가 새 우회관을 연결했다. 이번에는 밸브를 열기 전에 압력 해제 장치를 확인했다. 금속이 수축해 연결부가 맞지 않았고, 나야는 오래된 마을 수로에서 쓰던 가죽 패킹을 꺼냈다. 그 부품은 궁정 장부에 없었다.

“이걸 쓰면 열이 새지 않을까요?” 에린이 물었다.

“전에 수로에서 같은 규격을 썼어요. 하지만 새것은 아니에요.”

“그럼 사용 기록에 임시 부품으로 남기죠.”

나야는 패킹을 넣기 전에 마을 대표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다리아는 사용을 허락했지만, 봄에 교체 예산을 공동으로 다시 정하기로 했다. 에린은 가죽 패킹을 끼우고 밸브를 천천히 열었다. 낮에 모인 햇빛이 열벽돌에서 물로 옮겨 갔다. 파이프가 따뜻해지며 묘목방에 작은 온기가 번졌다.

“온도 변화가 보입니다.” 루시안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얼마나 올라갔어요?”

“2도. 서리선은 유리 위쪽으로 밀렸습니다.”

“성목 쪽은요?”

“1도 떨어졌지만 기준 이상입니다.”

에린은 가지를 만져 보았다. 차갑지만 탄력이 남아 있었다. 과수원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나, 온실은 문을 닫지 않고 밤을 넘길 수 있게 됐다. 열은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옮겨갔고, 손실도 함께 기록에 남았다.

관리인은 임시 운영을 허용하는 대신 24시간 안에 안전 검토를 받으라고 했다. 정식 승인이 아니라, 수리 기간의 제한적 운영이었다. 주민협의회는 공동 수확표에 매일 서명하고 열 지도를 열람하기로 했다. 작은 묘목 구역은 살아남았지만, 올해 겨울 사과 수확은 줄어들 전망이었다.

회의가 끝난 뒤 루시안은 장부를 에린에게 건넸다. “오늘 확인한 부품과 사용량을 전부 반영했습니다.”

“나야 씨 손 치료 비용도 넣었어요?”

“본인 동의를 받고 기록했습니다. 의료 정보는 별도 보관하고, 지출 항목만 공개됩니다.”

“좋아요.”

“감사관으로서 당신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그건 하지 말아요. 제가 한 일을 계약서에 적었을 뿐이에요.”

“그럼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하면요?”

에린은 대답 대신 장부를 덮었다. “그 말은 여기서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일과 사적인 말을 나눌 자리를 따로 정하고 싶어요.”

“언제든 당신이 괜찮을 때요.”

“겨울이 조금 지나고요.”

그는 그 답을 기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온실 안을 걸었다. 나무마다 서리 흔적이 달랐다. 에린은 흠집 난 과실을 따서 작은 상자에 넣었다. 판매할 수 없는 과실은 잼으로 만들 수 있었고, 씨앗은 봄 파종용으로 보관할 수 있었다.

나야는 상자 안의 씨앗을 살폈다. “이건 살릴 수 있어요.”

“그럼 공동 종자표에 넣죠.” 에린이 말했다.

루시안은 새 장부의 첫 줄을 열었다. “이름을 누구까지 올립니까?”

“씨앗을 고른 사람과 그 씨앗을 받을 마을을 함께요.”

그는 작성 칸을 넓혔다. 첫 줄에는 에린과 나야, 다리아의 이름이 나란히 적혔다. 루시안은 감사 서명을 그 아래에 남겼다. 겨울 온실은 아직 아슬아슬했고, 폐쇄 명령도 완전히 취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온기를 나누는 순환 장치와 함께 책임을 나누는 기록이 시작됐다.

새벽이 되자 온실 유리에 작은 물방울들이 맺혔다. 에린은 손끝으로 유리 표면을 닦았다. 바깥은 여전히 눈이 내렸지만, 안쪽의 씨앗 상자에는 서리가 내려앉지 않았다. 그녀는 뚜껑을 닫고 루시안과 나야에게 돌아섰다.

“오늘 밤도 교대를 나눕시다.”

“제가 먼저 맡겠습니다.” 루시안이 말했다.

“좋아요. 대신 새벽 교대 뒤에는 쉬세요.”

“그 지시도 장부에 적습니까?”

“근무 조건에요.”

그는 웃고 장부를 접었다. “그럼 계약대로 쉬겠습니다.”

에린은 웃으며 다음 구역의 온도계를 확인했다. 온실은 완벽하지 않았고, 수확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씨앗은 다음 봄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유리벽 밖에서 겨울이 계속되는 동안, 그들은 온기를 누구에게 보낼지 함께 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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