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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과수원의 겨울 계약1화

유리 과수원의 겨울 계약

유리 과수원의 겨울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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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겨울 장부

에린은 흠집 난 사과를 버리지 않았다. 껍질에 생긴 얇은 금은 얼음이 맺히기 전에 열매를 따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상처를 따라가다 과육이 단단한지 확인했다. 향은 아직 살아 있었다. 과수원 바닥에는 서리처럼 흰 빛이 번지고, 천장 유리 바깥에는 눈발이 매달렸다.

“북쪽 구역 온도가 또 떨어졌어요.” 나야가 온도계를 들고 왔다.

“열벽돌은요?”

“어제보다 차가워요. 난방관이 계속 돌았는데도 온기가 모이지 않습니다.”

에린은 유리창에 손등을 댔다. 안쪽은 차가웠다. 온실 유리는 낮의 햇빛을 열저장 벽돌로 보내야 했지만, 오늘은 해가 뜬 뒤에도 축열 표시가 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온도계를 다시 확인했다. 북쪽 구역은 6도. 겨울 사과나무의 안전선은 4도였고, 어린 묘목은 7도 아래에서 뿌리 성장이 멈췄다.

“마을에서 가져온 묘목부터 옮겨야겠어요.”

“그럼 남쪽 품종 두 그루가 더 추워질 거예요.”

“거기도 이미 열이 부족해요.”

“어느 쪽이든 전부 살릴 수는 없겠네요.”

에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과수원 수확은 궁정과 마을이 함께 나누기로 했지만, 난방이 부족하면 어느 나무를 먼저 살릴지 정해야 했다. 나야는 줄기 옆에 손을 얹고 수피의 습기를 살폈다. 그녀는 오래된 과수원을 살리려다가 묘목을 잃고 싶지 않았고, 에린은 마을에 돌려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온실 문이 열렸다. 회계감사관 루시안이 장부 가방을 든 채 들어왔다. 그는 바닥의 젖은 흙을 피해 걷다가, 유리창 안쪽의 서리를 보았다.

“저쪽이 더 따뜻할 줄 알았습니다.”

“궁정 온실이라고 온도가 저절로 오르는 건 아니에요.” 에린이 말했다.

“난방비는 지난달보다 18퍼센트 올랐습니다. 유지 계약도 갱신이 안 됐고요.”

“비용이 올랐다면 열이 더 들어와야죠. 그런데 나무는 얼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확인하러 온 이유입니다.”

루시안은 장부를 펼쳤다. 열순환관의 사용량과 연료 구매가 같은 날짜에 두 번씩 청구되어 있었다. 하지만 북쪽 구역의 열량 계기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청구서의 합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난방이 이만큼 쓰였다면, 온실 전체가 데워졌어야 합니다.”

“어느 구역을 기준으로 한 숫자죠?” 에린이 물었다.

“청구서는 구역별로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이 숫자가 실제 온실 상태를 말해 주지는 않네요.”

“맞습니다.”

루시안은 자기 오류를 빠르게 인정했다. 에린은 그가 현장보다 장부를 믿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장부를 닫았다.

“정확한 사용량을 다시 측정해야겠어요.”

“측정하는 동안 나무가 얼 수 있어요.”

“그럼 우선 온실을 살리고, 청구 내역은 병행 조사하겠습니다.”

“살리려면 난방관이 필요해요. 부품은 지난번 예산에서 빠졌습니다.”

루시안은 청구서를 다시 펼쳤다. “부품 예산은 없는데 연료 예산은 두 번 나갔군요.”

“그 돈을 돌려 쓸 수 있나요?”

“감사 중이라 제가 임의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긴급 수리 예외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서를 쓰는 동안 열이 더 떨어지면요?”

“그땐 제가 승인 책임을 지겠습니다.”

에린은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책임진다는 게 어떤 뜻인지 장부에 써 주세요.”

“부품 구매 승인과 지출 근거를 제 이름으로 남기겠습니다.”

“그건 감사관의 직무예요. 나무가 죽으면 당신 이름으로 살아나는 건 아닙니다.”

“그렇죠. 그래서 당신의 판단도 함께 기록하겠습니다.”

나야는 열순환관이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자고 했다. 세 사람은 좁은 계단을 따라 축열실에 들어갔다. 열벽돌은 겉면이 미지근했지만, 안쪽은 차가웠다. 순환 밸브의 표시 바늘은 ‘열 공급’에 놓여 있었다. 소리는 나지만 실제 열이 흐르지 않는 상태였다.

“밸브가 고착된 건가요?” 루시안이 물었다.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열이 어디로 새는지는 직접 봐야 합니다.” 나야가 말했다.

그녀는 장갑을 끼고 밸브를 만지려 했다. 에린이 막았다. “압력이 걸려 있을 수 있어요. 먼저 공급을 차단해야 합니다.”

“차단하면 묘목이 더 식어.”

“고장 난 관에 더 밀어 넣으면 열을 잃을 수도 있어요.”

루시안은 계기판에 표시된 압력값을 읽었다. “이 숫자도 청구서와 맞지 않습니다. 기록에는 정상 압력인데 지금은 두 배예요.”

“밸브를 당기지 말아요.” 에린이 말했다. “압력 해제 장치를 먼저 열어야 합니다.”

나야는 벽에 걸린 안전 도구를 찾았다. 해제 밸브는 오래된 배관 뒤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낡은 스패너를 들고 손을 넣었다. 좁은 공간에서 스패너가 미끄러져 금속을 쳤다. 열이 찬 수증기가 얇게 새어 나왔다.

“뒤로 물러나세요.” 루시안이 말했다.

“나야 씨가 빠져나올 공간이 없어요.” 에린은 반대편 배관을 잡고 몸을 낮췄다. “나야 씨, 제가 받칠 테니 천천히 빼요.”

나야는 스패너를 내려놓고 팔을 돌려 틈을 빠져나왔다. 루시안은 손수건을 건넸다. 그녀의 손등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곧장 치료실을 부르지 않고 먼저 물었다. “지금 진료를 받으시겠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래도 찬물로 식힐게요.”

“그럼 안전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부끄러운 일처럼 적지 마세요. 밸브가 숨겨져 있었다고 쓰세요.”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은 그가 나야의 말을 그대로 기록하는 모습을 보았다. 숫자를 정리할 때처럼, 사람의 말도 자신이 편한 방식으로 요약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공급 밸브를 닫고 압력을 낮췄다. 수증기가 멈추자 배관 안쪽에서 물이 역류했다. 열은 북쪽 구역으로 가지 않고 지하 배수로로 빠지고 있었다. 바닥에 물이 번지면서 오래된 나무 뿌리 자루가 젖었다.

“이 물은 언제부터 빠졌죠?” 루시안이 물었다.

“계기판은 매일 봤어요. 유량계가 멈춘 걸 몰랐습니다.” 나야가 답했다.

“당신 책임이라고 쓰지 마세요.” 에린이 말했다. “계기판이 멈췄다는 사실과 점검 주기를 기록하면 됩니다.”

루시안은 적었다. “부품 비용 청구는 지난주 처리됐는데, 부품이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돈을 받았는지는요?”

“청구서에는 온실관리부 도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령 서명은 없어요.”

에린은 장부를 봤다. “우리 부서가 받은 적 없습니다.”

“그럼 돈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야겠네요.”

계단을 올라오자 유리벽에 서리선이 더 높이 번져 있었다. 어린 묘목의 잎이 안으로 말렸다. 에린은 장갑을 벗고 뿌리 쪽 흙을 만졌다. 흙은 차갑고 축축했다. 그녀는 묘목 화분 여섯 개를 남쪽 벽으로 옮겼다. 남쪽 나무는 이미 꽃눈이 맺히기 시작해 자리를 바꾸면 꽃이 떨어질 수 있었다.

“묘목을 옮기면 남쪽 나무 열매가 줄어들어요.” 루시안이 말했다.

“알아요.”

“그래도 옮기겠습니까?”

“오늘은 묘목을 살려야 해요. 남쪽 나무는 내일 오전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을 누가 승인하죠?”

“제가 합니다. 과수원지기니까요.”

루시안은 장부를 닫았다. “그럼 제 기록에는 현장 책임자의 판단으로 남기겠습니다. 예산은 제가 신청하죠.”

에린과 나야는 화분을 하나씩 옮겼다. 루시안도 장갑을 받아 들고 가장 무거운 묘목을 들었다. 뿌리 자루가 생각보다 무거워 그의 팔이 떨렸다. 그는 내려놓지 않았다. 에린은 그가 들고 있는 높이를 확인하고, 받침판을 미리 밀어 넣었다. 둘의 손이 판 양쪽을 잡았다.

“하나, 둘, 셋.”

묘목이 새 위치에 놓였다. 루시안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장부보다 무겁네요.”

“장부는 뿌리가 없으니까요.”

“그건 감사 항목에 추가하겠습니다.”

그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에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야가 그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그녀는 둘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정리해 주지 않았다.

그날 오후, 루시안은 긴급 수리 신청서를 가져왔다. 난방 부품을 사려면 온실의 한 철 수확 비용을 담보로 잡아야 했다. 감사 규정에 따르면 신청자는 해당 작물의 손실도 공동으로 책임져야 했다.

“제가 서명하면 수확물이 궁정 장부에 묶여요.” 에린이 말했다.

“맞습니다. 대안은 폐쇄 예산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럼 마을에 보낼 묘목도 사라져요.”

“저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신청서만으로는 수확물 배분을 보호하지 못해요.”

에린은 종이를 돌려 밀었다. “다른 계약을 만들죠. 난방비는 실제 사용량으로 정산하고, 수확 손실은 궁정과 마을이 같이 기록해야 합니다.”

“그 계약은 법무관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럼 오늘 신청서에 조건을 붙여요.”

루시안은 펜을 들었다. “부결되면 수리는 늦어집니다.”

“조건 없이 승인되면 마을 수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는 신청서 아래에 ‘공동 수확표 작성 및 주민 확인 전 수확물 양도 불가’라고 적었다. 에린은 그 문구를 읽고 서명했다. 두 사람은 계약상 한 철의 수확 비용과 손실을 함께 책임지게 됐다.

저녁이 되어 온실 조명이 켜졌다. 열벽돌은 여전히 차가웠고, 새 부품은 내일 와야 했다. 에린은 묘목마다 물을 조금씩 나눠 주었다. 루시안은 옆에서 실제 난방 사용량을 손으로 계산했다. 숫자는 청구서보다 낮았다.

“누군가 온실이 받지 않은 열에 돈을 청구했어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나무는 그 열을 기다리다 얼고 있죠.”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쇄를 막으려면 내일 아침까지 임시 순환을 만들어야 합니다.”

“온실을 끄지 않고요?”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도요.”

둘은 북쪽 유리창에 더 높이 번지는 서리선을 바라봤다. 온실 안에 남은 열을 옮기지 않으면 묘목이 얼고, 난방을 끄면 오래된 나무도 버티기 어려웠다. 루시안은 장부를 접어 에린에게 건넸다. 그의 이름과 그녀의 이름이 같은 계약란에 나란히 있었다.

“한 철 동안은 제가 지출을 책임지겠습니다.”

“저는 나무와 수확을 책임질게요.”

“둘 다 감당할 수 있을까요?”

“모르죠. 그래서 같이 기록해야 해요.”

밤이 깊자 온실 벽돌 안쪽에서 작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북쪽 서리선이 더 아래로 번졌고, 한 그루의 겨울 사과나무가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에린은 마지막 묘목 화분을 두 손으로 감쌌다. 수확을 지키는 계약은 끝났지만, 온실의 열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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