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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 암호가락2화

기생의 암호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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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빈 악공 자리의 주인

빈 의자의 주인은 자국으로 먼저 돌아왔다. 홍매는 가야금 둘 사이에 놓인 낮은 의자를 뒤집고 햇빛으로 기울였다. 옻칠이 벗겨진 팔걸이에 손톱 세 개의 흔적이 나란히 있었다. 그녀의 동생은 북을 치기 전에 오른손 셋째 손가락을 의자에 비볐다. 여기에는 첫째와 둘째, 넷째 손가락이 닿아 있었다.

월정이 의자 다리를 잡아 주며 말했다.

“네 동생이 아니라는 건 알겠네.”

“셋째 손가락을 못 쓰는 사람이야.”

“누구 손을 다 들여다볼 건데?”

홍매는 의자를 바로 세웠다. 추측만으로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사람은 심문실로 끌려갈 터였다. 그녀는 손톱 자국을 가는 종이에 본뜨고 의자를 원래 자리에 두었다. 월정은 의자 밑에 끼어 있던 붉은 실을 꺼냈다. 연회 악공의 옷에는 쓰지 않는 실이었다.

“무용수 옷고름이야. 내 치마도 여기서 수선했어.”

그들은 악공방으로 곧장 가지 않고 옷을 고치는 방에 들렀다. 전날 무용수 옷을 돌려받은 사람이 여섯이었다. 월정은 수선한 여인에게 자기 줄주머니의 찢어진 곳을 꿰매 달라 부탁했다. 홍매는 바늘이 오가는 동안 붉은 실을 조용히 내보였다.

“이 실로 악공 옷도 고쳤나요?”

수선 여인은 바늘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무용수용 여섯 벌 외에는 딱 한 벌, 남자 아이의 작은 겉옷을 고쳤다고 했다. 악공방에서 재주를 배우는 견습생의 옷이었다. 홍매가 이름을 물으려 하자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인이 실을 쥔 손을 소매 안으로 감췄다.

윤상목이 들어왔다. 그는 새 공연 옷을 찾는다고 말하면서 홍매를 봤다.

“어젯밤 일을 묻는 사람이 많더구나.”

“노래를 잘못 불렀다고들 합니다.”

“잘못 부르지 않았으니 더 부를 필요도 없다. 오늘은 관청으로 돌아가라.”

월정이 다 꿰매지 않은 주머니를 챙겼다. 홍매는 흰 종이를 품에서 조금 보이게 해 유근의 명을 드러냈다. 연회 준비를 계속하라는 명이었다. 윤상목은 종이를 읽지 않았다. 도장을 확인하고 입술을 오므렸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만 생각해야지.”

“그래서 제 장단을 누가 고쳤는지 묻고 있습니다.”

홍매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윤상목이 더 말하지 않고 떠난 뒤 수선 여인은 줄주머니에 실을 두 번 더 통과시켰다. 그리고 안감 쪽에 짧은 글자를 꿰맸다. 이수. 홍매는 소리 내 읽지 않았다. 수선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악공방 뒤편에는 북의 가죽을 말리는 작은 뜰이 있었다. 견습생들은 그곳에서 물을 나르고 줄을 꼬았다. 월정은 줄을 고르러 왔다며 견습생들에게 손을 내밀게 했다. 잘 꼰 줄은 손가락을 어떻게 쓰는지 보면 안다고 말했다. 아이 넷 중 하나가 셋째 손가락을 굽히지 못했다.

홍매는 바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자신의 북을 내려놓고 가죽 가장자리가 젖었다고 말했다. 그 아이가 북을 받아 뒤집었다. 어제 의자에 남은 세 손톱이 북테에도 닿았다.

“이름이 무엇이니?”

“이수입니다.”

“어제 연회에 들어갔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북을 들고 있던 팔이 조금 내려갔다. 월정은 다른 아이들에게 긴 줄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셋이 창고로 뛰어가자 홍매는 이수에게 손가락을 보여 달라 했다. 아이는 손을 뒤로 숨겼다.

“연회에서 북을 잘못 친 사람을 찾는 게 아니야.”

“전 잘못 안 쳤습니다.”

말이 먼저 나갔다. 아이가 입을 다물었다. 홍매는 그 말을 붙잡아 몰아세우지 않았다. 북을 돌려받고 그가 앉을 만한 돌을 가리켰다. 이수는 서 있었다.

“어른이 시켰니?”

“명부에 적힌 사람이 못 오면 대신 앉으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곡만 들어가면 된다고요.”

“누가?”

그가 눈을 문 쪽으로 돌렸다. 발소리는 없었다. 그래도 이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홍매는 어제의 마지막 네 박을 손바닥으로 쳤다. 이수는 반사적으로 한 박을 더 얹었다. 홍매의 노래에는 없었지만 북문 지시에 있는 그 박이었다.

“그 박을 어디서 배웠어?”

“홍연 악공이요.”

홍매의 손이 멎었다. 월정이 북테를 손끝으로 두드려 그녀를 돌려세웠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동생을 따라가려는 얼굴을 했던 것이다. 홍매는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홍연 악공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니?”

“보름 전입니다. 저한테 마지막 박을 가르쳐 줬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그걸 같은 곡에 붙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네가 명을 받은 건 어제 따로였구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매는 홍연이 가르친 장단과 어제의 지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같은 소리라도 쓰이는 자리가 다르면 의미가 바뀌었다. 연회장의 노래에 북문 지시를 합친 사람은 아이에게 마지막 한 박만 시켰다. 전체가 무엇을 여는지 말하지 않았다.

유근의 심부름 내관이 나타났다. 그는 악공 명부를 가져왔다. 홍매는 이수를 물러나게 하지 않고 함께 종이를 펼쳤다. 공연 명부에는 홍연이 있었고, 그 아래 작게 ‘대좌’라는 글자가 적혔다. 대좌를 맡은 사람의 이름은 따로 붙인 좁은 종이에 적혀 있었다. 그 좁은 종이가 깨끗하게 뜯겨 나가 있었다.

월정은 뜯긴 가장자리의 먹을 봤다. 얇은 세로획 하나가 본지에도 남았다. ‘이’의 마지막 획이었다. 명부를 고친 사람은 종이를 떼면 이름이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저렇게 이름을 떼도 됩니까?”

심부름 내관은 자신은 가져오기만 했다고 말했다. 홍매는 명부를 다시 접어 돌려주지 않았다. 이수에게 그 자리에 서명했는지 물었다. 아이는 이름을 쓸 줄 몰라 손도장을 찍었다고 했다. 셋째 손가락을 쓸 수 없어 둘째 손가락으로 찍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명부에 남은 도장을 봐야겠군요.”

내관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홍매는 유근에게 그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가 떠나자 이수는 북을 내려놓고 홍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가 홍연 악공을 잡히게 한 겁니까?”

“네가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지금은 몰라.”

“그럼 집으로 가면 안 됩니까?”

홍매는 아이의 집이 궁 밖임을 뒤늦게 생각했다. 누군가 아이를 조용히 내보내 버리면 빈 의자의 주인은 영영 사라졌다. 그러나 증거를 지킨다며 붙잡아 두는 것도 아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문을 나가면 다시 불려올 수 있어. 오늘 밤만 우리가 있는 수선방에 머물래? 네 가족에게는 사람을 보내고.”

이수는 오래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월정이 수선방으로 그를 데려갔다. 홍매는 가야금 대신 혼자 북을 들고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윤상목이 기다리고 있었다.

“견습생을 찾는다더군.”

“북 가죽이 터져서 봐 달라고 했습니다.”

윤상목이 북을 봤다. 가죽은 멀쩡했다. 홍매는 거짓말이 들켰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북을 돌려 밑면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아래의 끈 하나가 느슨했다. 악기를 고치는 일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견습생은 제 일을 해야 한다. 쓸데없이 말을 붙이지 마라.”

“대좌명부도 견습생 일이었습니까?”

윤상목의 손이 소매 안에서 움직였다. 홍매는 한 발 뒤로 섰다. 연회장 문밖에 군사가 있었지만 유근의 명을 확인하러 간 사이였다. 이곳에는 북 하나와 두 사람뿐이었다.

“누가 그 명부를 보여 줬지?”

“제가 어젯밤 누군가의 이름으로 곡을 불렀다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래를 부른 것은 네 이름으로 적혔다.”

그의 말에 홍매는 그동안 품에 든 나무패를 누르던 손을 놓았다. 윤상목은 홍매의 이름을 지켜 준 것이 아니라 죄가 생길 자리를 정해 둔 것이었다. 빈 의자에는 홍연의 이름, 노래한 자리에는 홍매의 이름. 진짜 지시자는 공연 밖에 있었다.

월정이 연회장 뒤편으로 들어왔다. 가야금 줄을 새로 걸어야 한다며 큰 소리로 홍매를 불렀다. 윤상목은 더 말하지 못하고 나갔다. 홍매는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끈 조각을 주웠다. 명부의 좁은 종이를 묶던 끈과 같은 색이었다.

수선방에서 이수가 울고 있었다. 가족에게 보낼 소식을 적으려 하자 아이가 자신에게 가족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궁 밖으로 가고 싶다는 말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일단 이 문을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었다. 홍매는 아이 옆에 앉았다.

“오늘 내가 너무 많이 물었어.”

“돈을 받았습니다. 대신 앉아 준다고.”

“그 돈은 네가 연주한 값이야.”

“그럼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까?”

그녀는 아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제야 알았다. 악공이 되는 길은 한 번 틀리면 모두 닫힐 수 있었다. 이수는 지시를 따르고 돈을 받은 것 때문에 자신의 입을 열 자격도 잃었다고 생각했다. 홍매는 유근에게 낼 진술을 아이에게 먼저 읽어 줬다. 모르는 지시를 받아 연주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적어도 되겠니?”

아이는 마지막 줄을 고쳐 달라 했다. 홍연 악공이 마지막 박을 가르칠 때는 북을 세게 치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었다. 누군가 들으면 안 되는 연습이어서가 아니라, 금 간 손가락을 아끼라고 했다고 했다.

“셋째 손가락은 쓸 수 없으면 쓰지 말랬습니다.”

홍매는 동생도 누군가의 아픈 손을 보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녀가 기다리는 동안 홍연은 자신의 이름을 다른 아이에게 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직 그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이의 말을 지워서는 안 됐다.

해 질 무렵 유근에게서 종이가 왔다. 명부 원본의 붙인 종이를 찾았고 이수의 손도장이 남아 있었다. 윤상목이 대좌를 승인한 기록도 있었다. 그러나 유근은 오늘 밤 이수를 북문으로 보내라 했다. 악공방의 조사를 피할 안전한 이송이라는 설명이었다.

홍매는 종이를 월정에게 내밀었다. 월정이 창문을 닫았다. 북문은 어제 가짜 신호로 열린 문이었다. 안전하다는 말은 적혀 있었지만 문을 지키는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그때 이수가 옷 안에서 작은 천주머니를 꺼냈다. 동생이 맡긴 것을 이제 주겠다고 했다. 홍연이 누나를 만나면 들려주라고 남긴 장단이 있었다. 아이는 북 대신 바닥을 손끝으로 쳤다.

둥, 둥. 한 박이 늦고 마지막이 끊겼다.

홍매는 입술을 깨물었다. 홍연이 늘 고쳐 주던 틀린 박자였다. 이수는 정확히 배웠다고 했지만, 그 정확한 틀림이야말로 동생이 그녀에게 남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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