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관의 마지막 호위

1화: 문밖에 선 사람들
노진은 눈보라가 오기 전에 관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마지막 호위 수레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수레에는 적국 사신단의 서기관이 타고 있었고, 그들이 가진 문서가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명령서가 진짜인지 확인할 때까지는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설령관 경비대장 막수가 말했다.
“문을 닫으면 그들이 눈 속에 갇힙니다.”
“관문을 열어도 피난민이 들어오면 우리 식량이 모자랍니다.”
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무릎이 추위에 굳었다. 그는 겨울마다 호위 임무를 맡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과거의 인질을 두고 상인을 택한 일을 만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관문 아래에서 종이 울렸다. 먼저 피난민들이 도착했다. 열두 명의 가족이 있었고, 아이 셋이 어른의 등에 업혀 있었다.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가려 했지만 눈보라가 길을 막았다. 연비라는 소녀가 동생을 업고 문 앞에 섰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동생이 열이 있어요.”
막수는 관문에 남은 곡식이 사흘치뿐이라고 했다. 피난민을 들이면 사신단의 말을 먹일 여물이 부족해진다. 사신단은 뒤이어 도착할 예정이었다. 노진은 피난민을 들이자고 했지만, 막수는 그의 호위 계약이 사신단에만 있다고 지적했다.
“계약은 대상만 지키라는 뜻이지, 다른 사람을 쫓아내라는 뜻은 아닙니다.”
노진은 자신의 말이 과거에도 맞았는지 생각했다. 그때는 계약을 지킨다며 인질을 두고 상인을 호위했다. 상인은 살았지만 인질의 가족은 지금까지 그를 원망했다. 이번에는 같은 선택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피난민들에게 남은 곡식과 방을 공개하고, 관문에 머물지 떠날지 결정하게 하자고 했다. 막수는 반대했지만, 연비가 동생의 체온이 계속 떨어진다고 말하자 문을 조금 열었다. 피난민은 안으로 들어왔고, 각자 식량을 얼마나 나눌지 정했다. 여물을 줄이기 위해 말을 관문 마당이 아니라 지붕 아래 둔 창고에 들이기로 했다.
수레가 도착했을 때 눈은 이미 무릎까지 쌓였다. 사신단은 네 명뿐이었다. 앞장선 설하는 수레를 관문 안에 들이기 전에 잠금 장치가 훼손됐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막수는 적국의 사신이 무기를 숨겼을 수 있다며 수레를 열라고 명령했다.
설하는 검문을 거부했다. “이 수레는 제 나라의 물건이지만, 내용물을 공개할 권리는 제게 있습니다.”
“당신이 숨기는 게 군령이라면, 이 문을 열지 않으면 관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노진은 양쪽 사이에 섰다. 그는 수레를 부수지 않고, 설하에게 잠금 장치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게 했다. 수레 옆판에는 새 못이 박혀 있었다. 눈길을 달려오는 동안 충격을 받아 수리한 흔적이었다. 설하는 누군가 원본 군령이 든 상자를 빼내려 했다고 의심했다.
“그럼 수색을 허락합니까?” 막수가 물었다.
“증인과 함께라면요.”
그들은 수레를 열고, 짐을 하나씩 꺼냈다. 안에는 옷가지와 건량, 문서 상자가 있었다. 봉인된 상자를 열 때 설하는 손을 떨었다. 그녀는 안에 든 문서가 전쟁을 시작한 명령의 원본이라고 말했다. 양국의 장군이 같은 날짜에 서로를 선제공격하라는 문서를 받았고, 서명은 위조되었다.
막수는 문서가 적국이 만든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설하는 그 군령에 자기 가족의 서명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공개하면 가족이 반역자로 몰릴 수 있지만, 원본을 숨기면 전쟁의 책임이 계속 병사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노진은 문서를 만지지 않고, 봉인의 상태만 확인했다. 봉인은 한 번 열렸다가 다시 붙은 자국이 있었다. 수레를 수리한 사람이 문서 상자를 열었을 수 있었다. 설하는 길에서 만난 호위 하나가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문서를 가져가려 했을지도 몰랐다.
문밖에서 말 한 필이 쓰러졌다. 사신단의 짐꾼이 담요를 덮으려 했지만, 말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눈보라 속에서 피난민 아이 하나가 말을 향해 달려갔다. 노진은 아이를 멈추고, 먼저 동물의 다리를 살폈다. 말은 추위와 긴 이동으로 지쳐 있었다.
사신단의 두 번째 호위는 말을 버리고 문서 상자부터 지켜야 한다고 했다. 설하는 상자를 지키되 말도 살릴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노진은 말의 안장을 풀고, 피난민이 가져온 건초를 나눴다. 건초는 그들의 식량 일부와 맞바꾸기로 했다. 연비가 동생에게 줄 죽을 아끼며 먼저 건초를 내놓았다.
“동생이 먹을 건 남겨 둘게요.” 그녀가 말했다. “말도 이 길을 지나야 하니까요.”
막수는 창고의 여물을 줄이고, 말과 피난민이 함께 머물 공간을 마련했다. 모두가 같은 몫을 받을 수는 없었다. 아이와 노약자에게 먼저 담요를 주고, 나머지는 교대로 불가에 앉기로 했다. 사신단의 호위는 처음에 반발했지만, 눈이 더 쌓이면 말이 죽고 수레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데 동의했다.
노진은 수레의 바퀴를 살피다 아래쪽에 묶인 작은 가죽 주머니를 발견했다. 주머니 안에는 두 번째 봉인 조각과 짧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원본은 관문 안으로 들이지 마라.’
그 글씨는 설하의 것이 아니었다. 막수의 경비대 서기도 그 글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군가 사신단보다 먼저 관문에 와서 문서 운반을 막으려 했다. 노진은 쪽지를 태우지 않고 설하에게 보여 줬다.
설하는 그 문장을 읽고 얼굴이 굳었다. “내가 아는 글씨예요. 이 명령을 처음 받은 사람은 국경 수비대장이었습니다.”
막수는 자신의 지휘관이 이미 관문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의 부재는 더 큰 의심을 만들었다. 눈보라 속에서 문을 닫지 않으면 누군가 들어오고, 닫으면 사신단과 피난민이 갇힌다.
연비는 동생을 불가에 눕히고, 관문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낡은 통로를 안다고 했다. 그 길로 피난민 일부를 먼저 보낼 수 있지만, 눈이 쌓이면 돌아올 수 없었다. 노진은 그녀가 말한 통로를 확인하기 위해 나가려 했다. 무릎은 이미 붓기 시작했다.
“당신까지 나가면 호위가 사라져요.” 설하가 말했다.
“안 나가면 피난민도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는 문밖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바람이 관문을 흔들고, 멀리서 횃불 두 개가 다가왔다. 적군의 정찰대인지, 구조를 요청하는 길손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노진은 문을 닫지 않은 채 모두에게 다음 선택을 물었다.
횃불 두 개는 정찰대가 아니라 눈 속에서 길을 잃은 가족이었다. 앞선 남자는 발가락이 얼어 검은 기운이 돌았고, 뒤의 여인은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들은 관문에 군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산길을 돌아왔다. 여인은 막수의 얼굴을 보자 그를 알아봤다. 십 년 전 관문에서 남편을 잃은 사람이었다.
“당신이 그날 문을 닫았어요.”
막수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의 수비대가 문을 닫은 뒤, 눈길에 남은 사람들은 적군에게 잡혔다. 그는 당시 군령을 따랐다고 설명했지만, 여인은 남편이 군인이 아니라 약초꾼이었다고 말했다.
노진은 그 둘 사이에 서서 누구 편을 들지 않았다. 그 가족을 안으로 들이면 식량이 줄고, 문을 열어 두면 정찰대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는 관문에 남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새로 온 가족을 받아들일지 물었다. 피난민들은 한 표씩 손을 들었다. 대다수가 받아들이자고 했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식량 배분을 다시 계산하는 데 참여했다.
연비는 자기 몫의 건량을 그 가족에게 나눠 주겠다고 했다. 노진은 그녀에게 동생의 몫을 먼저 확인했다. 연비는 남은 죽을 동생과 나눠 먹을 수 있다고 했지만, 자신이 하루를 더 버틸 만큼은 남겨 두었다. 그녀는 희생을 강요받지 않은 채 자발적으로 한 몫을 보탰다.
설하는 새로 온 가족이 들고 온 천 조각을 알아봤다. 그 천은 수레를 끌던 실종 호위의 팔에 감겨 있었다. 가족은 그 호위를 눈보라 속에서 보았지만, 그가 관문을 피하라고 했다. 그는 사신단이 가진 문서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길목에 있다고 경고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죠?”
“우리가 돌아선 뒤 혼자 북쪽으로 갔어요. 수레를 따라오는 자들을 유인하겠다고 했습니다.”
노진은 그가 문서를 훔친 게 아니라 지키려 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쪽지는 원본을 관문에 들이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 문서가 공개되는 순간을 두려워했다. 설하는 실종 호위가 자신과 오래 일했지만, 원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건 관문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고 털어놨다.
막수는 경비대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의심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는 모든 경비원을 한곳에 모아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 했다. 노진은 그 방식이 의심받는 사람을 먼저 자극할 수 있다고 말렸다. 대신 수레와 문서 상자를 다룬 사람만 순서대로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경비대 서기는 자신의 손에 묻은 붉은 밀랍을 감추려 했다. 설하는 문서 봉인과 같은 색이라고 알아봤다. 서기는 상자를 열지 않았지만, 봉인을 다시 붙이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을 고백했다. 지시를 내린 사람은 막수의 부관이었다.
막수는 부관의 이름을 듣고 관문 마당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부관의 방은 비어 있었다. 창문 밖으로 눈 위에 남은 발자국이 북쪽으로 이어졌다. 노진은 막수에게 바로 추격하지 말라고 했다. 무릎이 다친 그가 혼자 나가면 다시 사람을 잃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명령을 기다리면 늦습니다.” 막수가 말했다.
“그럼 함께 움직입시다. 누가 문서를 지키고, 누가 발자국을 따라갈지 정하고.”
막수는 자신이 남아 관문을 지키기로 했다. 경비대 안의 누구도 혼자 움직이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노진은 설하와 함께 발자국을 따라 나갔다. 설하는 문서 원본이 자기 가문의 서명 때문에 조작됐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가족이 자신을 버릴 수 있다고 걱정했다.
“당신이 그 문서를 공개하면 가족이 위험해질 겁니다.” 노진이 말했다.
“숨기면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이 계속 죽어요.”
“어느 쪽이 옳은지는 제가 정할 수 없습니다.”
설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서를 공개하는 시점을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전쟁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정하고 싶다고 했다. 노진은 그녀의 대답을 호위 기록에 남겼다. 계약 대상의 선택도 기록의 일부였다.
눈보라가 더 거세지자 둘은 바위 아래에서 잠시 멈췄다. 노진은 오른쪽 무릎에 붕대를 감았다. 설하는 자신의 장갑을 벗어 그에게 건넸다. 그는 받지 않으려 했지만 손이 떨렸다. 설하는 자신도 손가락을 다쳤다며 한 짝만 바꾸자고 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확인한 뒤 장갑을 나눠 꼈다.
발자국은 절벽 아래에서 끊겼다. 눈 위에는 피 한 방울과 부러진 호위의 칼집이 남아 있었다. 칼집 안에는 문서 상자의 열쇠가 들어 있었다. 실종 호위가 열쇠를 두고 간 건 수레로 돌아가려는 뜻일까, 누군가 문서를 열게 하려는 뜻일까.
관문 쪽에서 종이 길게 울렸다. 두 번은 문을 닫으라는 비상 신호였다. 눈 아래에서 셋째 발자국이 나타났다. 누군가 그들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