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매의 마지막 영업일

3화: 엄마가 먹고 싶던 밥
녹음기에서 어머니가 웃었다.
도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의자를 뒤로 밀었다. 가게 밖으로 나가려는 줄 알았는데 돌아서서 주방 밸브를 확인했다. 다 잠겨 있었다. 냉장고 문도 닫혀 있었다. 동생은 돌아와 다시 앉지 못했다.
“엄마 목소리 나면 뭐가 끓고 있는 줄 알아.”
그가 말했다. 미래는 녹음기를 멈췄다. 어머니의 마지막 음절이 홀 가운데 걸린 채 사라졌다.
“처음부터 들을래?”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주방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 막내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 녹음은 병원이나 식당에서 한 것이 아니었다. 바람에 종이가 흔들리고 먼 곳에서 열차 안내 방송이 들렸다.
“엄마, 그럼 가게는?”
녹음 속 미래가 물었다.
“가게야 누가 하면 좋지. 안 하면 닫는 거고.”
“오빠가 계속할 것 같은데.”
“도윤이도 제 일 해야지.”
도윤은 주방 문턱에서 홀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하진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렇게 느렸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기억 속 어머니는 국이 끓는 동안 할 말을 모두 끝내야 했다. 그러나 녹음 속 사람은 대답하기 전에 바람을 들었다.
“나 가을엔 문 닫을까 해.”
하진은 녹음기를 잡으려다 손을 거두었다.
“엄마, 언니한테 얘기했어?”
“하진이는 말하면 또 계산부터 할 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생각해 보려고.”
어머니가 웃었다. 하진은 그 말을 웃으면서 받지 못했다. 자기가 남의 걱정을 덜어 준다고 믿었던 방법이, 어머니에게는 생각을 빼앗길 걱정이기도 했다.
“닫으면 뭐 하게?”
“바다.”
“집으로 와서 보면 되잖아. 영상 틀어 줄게.”
“네 화면 말고. 내 눈으로.”
녹음 끝에서 미래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때의 웃음과 지금 막내의 얼굴은 달랐다. 파일이 멎자 아무도 먼저 질문하지 않았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만 크게 들렸다.
도윤이 의자에 앉았다.
“언제야?”
“작년 가을. 같이 역에 갔을 때.”
“엄마가 그때부터 문 닫으려고 했어?”
미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가게를 지키면 어머니의 뜻을 지키는 것이라고 혼자 정한 시간이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무너졌다.
하진은 다르게 아팠다. 마지막 전화를 받았더라면 어머니가 여행 이야기를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못 받은 전화에는 어떤 말도 붙여 넣을 수 있었다. 그 빈자리에 제일 무서운 말을 넣어 온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걸 왜 지금 말해?”
도윤이 물었다. 미래는 녹음기의 건전지 덮개를 눌렀다.
“오빠가 문 여는 걸 막으면 엄마까지 같이 없애는 사람 될 것 같았어.”
“나는 몰라도 되는 사람이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뭘 말해도 숨긴 거잖아.”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진이 팔을 붙잡으려 하자 동생이 비켰다. 미래는 녹음기를 가방에 넣지 않았다. 세 사람 사이에 그대로 두었다.
“끝까지 들을 사람이 있으면 여기 있을게.”
도윤은 밖으로 나갔다. 하진은 따라가지 않고 주방으로 갔다. 어머니의 조리법 세 장을 냉장고 문에 붙였다. 그 옆에 오늘 메뉴를 썼다. 맑은국. 반찬은 있는 것으로. 식사권 손님이 오는 날이었다.
미래가 홀에서 물었다.
“언니는 화 안 나?”
“나. 엄마한테도.”
하진은 달걀을 그릇에 깼다. 껍질 조각 하나가 떨어졌다. 손으로 건져 내면서 말을 이었다.
“엄마가 가게를 닫고 싶다는 걸 나한테 말했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말하면 내가 뭘 먼저 했을지 알아.”
미래는 문에 붙은 달력을 봤다. 어제 언니가 몇 번이나 고쳐 쓴 숫자들이 있었다.
“그럼 지금은 안 계산해?”
“해야지. 엄마 대신 결정하려고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정하려고.”
하진은 달걀 그릇을 막내에게 건넸다. 미래가 젓가락을 들고 풀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노란 물결이 생겼다. 홀과 주방을 나누던 선은 꼭 혼자 지켜야 하는 벽은 아니었다.
도윤은 열한 시 반에 돌아왔다. 배달 가방이 아니라 쌀 한 포대를 들고 있었다. 하진은 어떤 돈으로 샀는지 물으려다 영수증부터 받았다. 봉투에는 가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으려고 했어.”
동생이 말했다.
“그러다가 또 혼자 하려는 거 같아서 그냥 왔어.”
미래가 쌀 포대의 반대쪽을 잡았다. 두 사람이 주방까지 옮겼다. 도윤은 내려놓은 뒤 벽의 메뉴판을 봤다.
“오늘 배달은 두 시까지야. 저녁은 내 일 해야 해.”
하진은 알겠다고 했다. 미래도 알겠다고 했다. 그 말이 동생에게 허락을 주는 말이 아니도록 하진은 일을 더 붙이지 않았다.
손님은 평소보다 적었다. 폐업 안내를 보고 들어왔다가 파란 식사권을 사지는 못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미래는 새로 팔지 않는다고 답했다. 닫는 가게를 믿고 미리 돈을 주겠다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남매가 갚을 밥을 더 만들 수는 없었다.
오래된 단골 한 명이 어머니 자리 앞에 서서 난처하게 웃었다.
“여기 앉아도 되나?”
도윤은 대답을 늦췄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의자 다리를 고쳐 앉던 자리였다. 의자를 치우지 않은 것은 고장 나서가 아니었다.
하진은 동생이 대답할 시간을 기다렸다. 미래는 컵을 든 채 멈췄다. 잠깐 뒤 도윤이 의자를 빼 주었다.
“네. 문 보이는 자리예요.”
손님이 앉자 홀은 아무 일도 없는 식당이 됐다. 도윤은 그게 서운하면서도 조금 숨이 쉬어졌다. 어머니가 빠진 자리를 사람 없는 자리로만 남겨 두지 않을 수 있었다.
맑은국을 내온 하진이 반찬 접시도 함께 놓았다. 손님은 국을 맛본 뒤 어머니가 그랬듯 파 줄기를 썼냐고 물었다. 하진은 오늘은 동생이 썰었다고 답했다.
“누가 했는지 맛이 조금 다른 건 당연하지.”
손님은 국을 한 숟갈 더 먹었다. 하진은 그 말이 어제보다 늦게 온 허락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손님의 허락만 기다리면 자기 음식은 또 남의 것이 된다. 그녀는 주방으로 돌아가 자기 몫의 국을 따로 떠 두었다.
점심이 끝난 뒤 세 남매는 남은 식사권을 한 장씩 펼쳤다. 파란 종이 사이에 흰 쪽지가 섞여 있었다. 몇 장은 이미 사용한 횟수가 많았고, 몇 장은 발행한 날짜만 있었다. 도윤은 어머니가 각 손님에게 어떤 시간에 오라고 말했는지 기억했다.
하진은 번호를 매기다 펜을 내려놓았다.
“그 기억까지 네가 혼자 맡을 필요 없어.”
도윤은 말하려던 주소를 멈췄다. 미래가 종이 아래에 지도 한 장을 놓았다. 셋이 아는 것을 따로 표시했다. 한 사람이 모든 손님을 기억해야 문을 여는 가게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도윤이 접힌 흰 쪽지를 찾았다. 병원에서 쓴 듯 얇은 종이였다. 자기 이름 옆에 숫자가 있었고, 그 위로 어머니가 선을 그어 놓았다. 그는 쪽지를 주머니에 넣으려다가 테이블 위에 남겼다.
“이건 내가 엄마한테 준 돈이야. 식사권이 아니라.”
하진이 숫자를 봤다. 미래도 봤다. 두 사람은 이유를 묻기 전에 동생의 얼굴부터 보았다.
“엄마가 누구한테 말하지 말랬어?”
“아니. 내가.”
도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누나는 돈을 주고도 일하잖아. 나는 이걸 주면 다른 건 좀 못 해도 될 것 같아서. 그러다가 엄마가 없어지니까 못 한 게 더 많아졌어.”
하진은 오래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도 돈을 보내며 마음을 전했다고 믿은 날들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못 돌아오는 자신에게 허락을 보낸 것 같은 날들.
“그 돈을 여기서 돌려받을 수 있을지부터 보자.”
그녀가 말했다.
“네가 더 사랑했다거나 덜 사랑했다는 계산은 안 하고.”
도윤은 쪽지를 펴서 맨 위에 놓았다. 숨긴 돈을 공개했다고 모든 셈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종이가 남매 사이를 가르는 벽은 아니게 됐다.
미래는 녹음기를 다시 꺼냈다. 도윤은 아까 서 있던 주방 문턱이 아니라 의자에 앉았다. 하진도 밥그릇을 앞에 두었다. 이번에는 끊지 않고 듣기로 했다.
녹음 속 열차가 지나갔다. 어머니는 미래가 사진을 찍는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 종이컵을 놓는 소리와 새 목소리가 들렸다.
“정희 씨, 바다 가면 뭐부터 먹을 거예요?”
남매는 서로를 보았다. 미래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니는 한참 뒤 대답했다.
“남이 차려 준 밥.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는 데서.”
하진은 냉장고에 붙은 세 가지 조리법을 돌아봤다. 모두 남매의 이름이었다. 어머니 이름으로 만든 메뉴는 없었다.
녹음 속 남자가 다시 말했다.
“그럼 제가 물어볼게요.”
어머니가 대답을 시작하려는 순간 파일이 끝났다. 미래는 다른 파일을 찾아 버튼을 몇 번 눌렀지만 녹음은 더 없었다. 당시에는 공연 원고에 쓸 소리를 모으다가 그 부분에서 기기를 껐다고 했다.
도윤은 녹음기를 탓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가 앉던 자리를 보았다. 오늘 그곳에서 손님이 국을 먹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거기 앉아서도 누군가의 반찬을 보충하러 일어났었다.
“엄마는 어떤 국을 좋아했지?”
미래가 물었다. 세 남매는 답하지 못했다.
하진은 빈 접시를 가져왔다. 세 사람이 기억하는 맛을 한 번씩만 올려 보자고 했다. 매운 무 한 조각, 된장국의 두부, 맑은국의 달걀. 누구도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남은 밥을 다 먹고 나서 하진은 달력의 마지막 영업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어머니가 지키고 싶었던 것을 찾는 한 달이 아니라, 어머니도 내려놓으려던 것을 함께 정리하는 한 달일 수 있었다.
문 닫는 시간에 우체부가 등기 봉투를 가져왔다.
받는 사람은 윤정희. 발신인은 소안역 앞 작은 여행사였다. 도윤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우체부는 잠깐 모자를 벗었다. 미래가 봉투를 받고 하진 앞에 놓았다.
안에는 취소된 기차표 두 장과 안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여행은 다음 달 말일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식당 임대가 끝나는 바로 다음 날이었다.
동행자의 이름은 세 사람 중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하진은 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오늘은 묻기 전에 먼저 끝까지 읽기로 했다. 편지의 첫 줄에는 어머니가 남긴 요청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아이들 이름으로 여행을 바꾸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