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교의 사기꾼 교수

3화: 불꽃을 지배하는 규칙
아르케니움 본관 1층 대강의실은 고대 원형 극장 같았다.
부채꼴로 솟은 계단식 좌석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수강생 백이십 명에 도강생들까지 벽을 등지고 빽빽하게 섰다.
강의실 안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맨 앞줄에는 감청색 귀족 제복의 엘리안 아스트가 턱을 괸 채 앉아 있었다. 소년의 엷은 미소는 광대를 관찰하는 관객의 것에 가까웠다.
맨 뒷줄 구석에는 장학생 미라 로엔이 잉크 번진 소맷자락을 쥔 채 웅크려 있었다.
교탁 바로 앞에는 붉은 로브 차림의 청년이 버티고 섰다. 베르나 교수의 수석 조교이자 보수파의 행동대장인 고든이었다.
드르륵.
육중한 흑단목 문이 열리며 검은 코트 차림의 윤도현이 들어왔다.
한 손에는 출석부, 다른 한 손에는 목제 상자가 들려 있었다. 백이십 쌍의 시선이 비수처럼 꽂혔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단상으로 걸어갔다.
속으로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표정은 입시 강사 시절의 서늘한 포커페이스 그대로였다.
먼저 동요하면 끌려다닌다. 주도권은 교수가 쥐어야 했다.
쿵!
도현은 출석부를 교탁 위에 거칠게 내리쳤다. 묵직한 파열음이 강의실을 갈랐다.
웅성거리던 잡음이 일순간에 멎었다.
도현은 안경 너머의 눈빛으로 좌중을 훑었다.
"교단 앞에서 혓바닥 놀리는 소리가 4층까지 들리더군. 마법 이론학을 배우러 온 건가 아니면 투견장에 구경 온 건가?"
첫마디부터 학생 전원을 훈계하는 오만함에 장내가 숨을 죽였다.
단상 앞을 지키던 고든 조교가 비릿하게 웃으며 나섰다.
"루카스 교수님, 오랜만에 교단에 서시니 감회가 남다르신 모양입니다."
고든이 품에서 양피지 한 장을 치켜들었다.
"어제 취임식의 '재현성' 망언 덕에 학과가 뒤집혔습니다. 전통 마법학을 미신 취급하셨더군요. 그렇다면 강의 전에 그 위대한 이론의 실체를 직접 증명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생석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증명이라."
도현이 읊조리자 고든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렇습니다. 이론학부 교수라면 최소 3서클 정식 압축 점화 마법 정도는 지팡이 없이도 펼치실 수 있겠지요. 학생들에게 재현성을 입증할 단 한 번의 불꽃 시연을 요구합니다!"
명백한 덫이었다.
마력 한 톨 없는 가짜 교수에게 무영창 3서클 주문이라니. 손가락을 튕겼다가는 사기꾼으로 체포될 판이었다.
그러나 도현의 눈동자에는 동요가 없었다. 그는 상자를 열며 낮게 웃었다.
"시연."
도현의 시선이 고든의 정수리에 닿았다.
"고든 조교. 아직도 내 말을 귓구멍 뒤로 흘려들은 모양이군."
"뭐라고요?"
"마법을 불꽃놀이처럼 펑 터뜨려 보여주면 증명되는 광대 짓으로 여기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도현은 목제 상자에서 은촛대 세 개를 꺼내 교탁에 세웠다. 그리고 평범한 부싯돌로 촛불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익, 치익.
영창도 마력 파동도 없는 평범한 불꽃이었다.
작은 주황빛 불꽃 세 개가 하늘거리자 학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부싯돌……?"
귀족 학생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졌다. 고든 역시 조소 섞인 얼굴로 쏘아보았다.
"교수님, 부싯돌 불 따위는 거지들도 만듭니다!"
"입 닥쳐라."
도현의 서늘한 일갈이 고든의 말을 가로막았다.
도현은 은촛대 뒤로 다가가 교탁에 손을 얹었다.
"너희는 불꽃을 마력의 현현이라 부르며 우쭐대지. 그렇다면 대답해 봐라."
도현은 교탁 옆의 투명한 밀폐 유리 종을 집어 들었다.
"마력을 주입하지 않은 이 평범한 불꽃을 죽이고 살리는 규칙은 무엇인가?"
고든이 코웃음을 쳤다.
"공기 중의 마력 잔재가 흩어지거나 바람이 불어 꺼지는 것이지요. 혹은 심지의 기름이 다했을 때 불꽃은 죽습니다!"
"틀렸다."
도현은 유리 종을 들어 첫 번째 은촛대 위에 덮어씌웠다.
탁.
유리 종 안에 갇힌 촛불이 가늘어지더니 불과 5초 만에 연기를 뿜으며 툭 꺼졌다.
회색 연기만이 유리관 안에 갇혔다.
강의실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도현은 지팡이에 손도 대지 않았다.
"보았나? 냉각 마법도 소멸 저주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저 불꽃은 왜 죽었는가?"
도현은 학생들을 향해 걸어 나와 난간을 짚었다.
"너희 상상식 속에서 불은 의지와 마력으로 타오르는 신비겠지만 현실의 연소는 조건이 지배한다. 물질이 소모하는 것은 마력이 아니라 공기 속의 숨결이다."
앞줄의 학생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공기 속의 숨결……?"
"밀폐된 그릇 안에서 불꽃은 공기 중의 산소를 집어삼킨다. 먹이가 바닥나는 순간 어떤 대마법사가 기도해도 불꽃은 숨이 막혀 꺼진다."
도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다.
"이것이 법칙이다. 조건이 무너지면 불은 꺼진다. 너희의 점화 마법이 실전에서 꺼지는 이유의 팔 할은 마력 부족이 아니라 너희가 불꽃이 숨 쉴 조건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침묵이 강의실을 집어삼켰다.
학생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수백 년간 아르케니움의 교수들은 실패 원인을 정신 집중 미흡이나 마력 회로 결함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유리 덮개 하나로 불꽃의 생사를 통제해 보였다.
짝, 짝, 짝.
맨 앞줄에서 박수 소리가 울렸다.
엘리안 아스트였다. 일어선 소년의 벽안이 날카롭게 빛났다.
"흥미로운 서커스였습니다, 루카스 교수님."
예의 바르지만 뼈가 박힌 어조였다.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불이 꺼진다는 이치는 요리사도 압니다. 하지만 마법의 본질은 지배와 통제입니다. 마력선으로 불꽃의 형상을 벼려내고 진행 방향을 비틀며 크기를 다루는 것. 마력 없이 불꽃의 궤적을 꺾어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장내가 다시 술렁였다.
단순한 질식은 자연 현상일 뿐 궤적 제어를 대신할 수 없다는 날카로운 반격이었다.
'걸려들었군.'
도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설프게 머리 좋은 우등생은 출제자가 파놓은 함정의 가장 깊은 곳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다.
도현은 상자에서 중앙에 얇은 유리 격벽이 가로막힌 원통형 유리관을 꺼냈다. 위쪽이 두 갈래로 나뉜 구조였다.
"엘리안 군. 너는 불꽃의 궤적을 꺾는 것이 오직 지팡이의 마력선뿐이라 믿는 모양이지."
도현은 두 번째 은촛대 위에 갈라진 유리관을 덮었다.
그리고 소금에 절여 얼려둔 얼음 조각을 집게로 집어 왼쪽 흡기구 위에 얹었다.
"잘 보아라."
도현이 물러섰다.
왼쪽 통로를 통해 얼음의 냉기가 닿은 차가운 공기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동시에 오른쪽 통로에서는 촛불의 열기로 데워진 공기가 위로 솟구쳤다.
온도 차로 인해 관 내부에서 순환 기류가 형성되었다.
화르륵!
촛불의 불꽃이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는데 오른쪽으로 90도 꺾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불꽃을 잡아당긴 것처럼 꼬리가 맹렬하게 요동쳤다.
피어오르는 연기는 하강 기류를 타고 내려왔다가 상승 기류를 타고 완벽한 타원을 그리며 빠져나갔다.
"……!"
엘리안의 벽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은빛 지팡이가 덜컥 흔들렸다.
마력이 없었다. 도현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불꽃이 명령을 받은 병사처럼 방향을 틀었다.
도현이 얼음 조각을 오른쪽으로 옮기자 불꽃은 즉시 왼쪽으로 사납게 꺾였다.
"이, 이게 무슨……."
고든 조교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강의실 전체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도현은 얼어붙은 엘리안을 응시했다.
"차가운 공기는 내려앉고 뜨거운 공기는 솟구친다. 기압과 온도의 차이가 만드는 대류의 흐름이지."
도현은 분필을 집어 칠판에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너희는 주문이 빗나갈 때마다 심상이 흐트러졌다고 자책하지.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고위 주문을 읊을수록 폐활량이 요동치고 체온이 급격히 오른다. 거친 호흡과 손바닥의 발열이 시전 궤적 주변에 지독한 열 대류 와류를 만든다. 너희 자신이 내뿜는 입김에 스스로의 불꽃을 날려 먹고 있었단 뜻이다."
엘리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수만 번 영창을 훈련해 온 천재였지만 호흡과 공기의 온도 차를 지적한 스승은 없었다.
도현의 설명은 마법의 신비를 차가운 현실의 수치로 발가벗겼다.
"지배란 신비에 취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주변 법칙을 통제하는 자만이 진짜 지배자가 된다."
도현은 분필을 교탁에 던졌다.
그리고 천천히 맨 뒷줄 구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공책을 품에 안고 떨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로엔 양."
도현의 부름에 미라가 흠칫 놀라며 일어섰다.
"네, 넷! 교수님!"
백이십 명의 시선이 초라한 장학생에게 쏠렸다. 도현은 위엄 있는 음성으로 물었다.
"새벽에 가져왔던 네 실패 일지. 세 번째 절마다 점화 불꽃이 흩어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알겠나?"
미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새벽 연구실 문틈 너머로 도현이 던져준 지적이 뇌리를 스쳤다.
미라의 떨리는 입술 사이로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가…… 긴장해서 숨을 참다가 세 번째 절에서 급격히 숨을 토해내어…… 제 입김이 만든 기류가…… 불꽃의 핵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엔 양의 실패는 불결한 혈통 때문도 마력 부족 때문도 아니다. 그저 호흡 통제의 물리적 오차였을 뿐이지."
미라의 눈가가 붉어졌다.
수년간 그녀를 짓눌러온 결핍과 열등감이 명쾌한 논리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도현은 시계를 보았다. 수업 종료 종소리가 울리기 직전이었다.
"다음 시간 과제다. 자신의 영창 시 호흡 주기와 체온 변화에 따른 기류 편차를 측정해 표로 작성해 제출하도록. '마음가짐' 따위의 감상적인 헛소리를 적어내는 자는 가차 없이 F를 줄 테니 그리 알아라."
그 순간 본관 탑에서 정오를 알리는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뎅- 뎅- 뎅-.
"강의 끝."
도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목제 상자를 챙겼다.
걸어 나가는 그의 등 뒤로 누구 하나 입을 떼지 못했다. 충격과 전율만이 백이십 명의 학생을 짓누르고 있었다.
엘리안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고 고든 조교는 넋이 나간 채 굳어 있었다.
'휴, 살았다.'
도현은 속으로 안도하며 복도로 나섰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자마자 발걸음이 굳었다. 그늘진 기둥 옆에 은회색 군복 차림의 여인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왕실 수석 감찰관 세리아 발렌이었다.
세리아의 차가운 눈동자가 도현을 정조준했다. 허리춤에 걸린 마법 봉인검의 은빛 칼집이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마법을 쓰지 않는 대마법 이론학 교수라."
세리아가 천천히 벽에서 몸을 떼며 다가왔다. 군화 굽이 바닥을 울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도현의 심장을 조여왔다.
"취임식에 이어 첫 강의까지 제법 훌륭한 연극이었습니다, 루카스 베른."
세리아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비틀렸다.
"하지만 현란한 세치 혀로 학생들을 홀리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이틀 뒤면 전교생과 감찰단 앞에서 당신의 마력을 직접 증명해야 할 테니까요."
도현의 등줄기로 차가운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사기극의 첫 장은 넘겼지만 진짜 단두대는 이틀 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