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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의 사기꾼 교수2화

마법학교의 사기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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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도망칠 수 없는 교단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장작 소리만이 고요한 방 안을 메우고 있었다.

윤도현은 책상에 두 팔을 괸 채 마른세수를 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차원 전이에 도플갱어 교수에 들키면 사형이라니……."

손바닥에 배어 나온 식은땀이 차가웠다.

도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책상 위를 살폈다. 왕실 감찰단의 소환장 옆에는 가죽으로 덧댄 두꺼운 연구 일지가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금박으로 루카스 베른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일지장을 넘겼다. 깃펜으로 갈겨쓴 정갈하면서도 신경질적인 필체가 빼곡했다.

[제14차 백색문 전개 실패. 마법학계는 마력을 신의 은총이라 부르짖지만 마력은 파동이다. 주파수와 위상에 종속되는 물리적 에너지에 불과하다.]
[무마력자 금령은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날조다. 마력이 0인 개체야말로 마력장에 간섭받지 않는 절대 영점(Zero-Point)의 순수 관측자가 될 수 있다.]

도현의 눈썹이 치솟았다.

"절대 영점? 순수 관측자?"

이것은 마법 주문서가 아니었다. 현대 물리학의 개념을 마법에 끼워 맞추려 한 연구 노트였다.

루카스 베른은 마법사가 아니라 이 세계의 이단아 과학자였다. 책장을 더 넘기자 글씨체가 거칠어졌다.

[세리아 발렌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동생의 실종을 빌미로 연구실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학장은 나를 방패로 삼아 왕실 지원금을 타낼 생각뿐이다.]
[시간이 없다. 다음 반전 주기 전에 반대편 세계의 위상체를 끌어와 고정해야 한다. 나와 완전히 일치하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일지는 거기서 끊겨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거친 잉크 자국과 알 수 없는 혈흔만이 묻어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황학동에서 주웠던 가죽 노트. 그 수식을 읽는 순간 일어났던 전이.

모든 것이 루카스 베른이 벌인 차원 소환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그 남자는 도플갱어를 이쪽으로 끌어당겨 놓고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를 대타로 던져놓고 튀었다고?"

도현은 헛웃음을 삼켰다. 책임을 대신 지고 단두대로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도망치자.'

판단은 빨랐다. 목숨이 걸린 판국에 교수 체면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도현은 서랍에서 푸른 마법석 세 개와 금화 주머니를 챙겼다. 품속에 쑤셔 넣고 코트 깃을 올린 채 연구실 발코니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때렸다.

본관 4층 높이에서 내려다본 아르케니움의 전경은 거대했다. 하지만 도현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학교 외곽을 둘러싼 거대한 반구형 장막이었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은은한 벽청색으로 박동하는 결계. 학칙에 적혀 있던 아이기스 대결계였다.

그때 정문 쪽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도현은 반사적으로 난간 뒤로 몸을 숙였다. 정문에 은빛 견장을 두른 왕실 감찰단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선두에 선 은회색 머리의 여인, 세리아 발렌이 차갑게 명령했다.

"결계 출력을 30퍼센트 상향하라. 외곽 통과 인원의 마력 등록부를 일일이 대조한다. 쥐새끼 한 마리도 학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해."

"예, 감찰관님!"

기사들의 지팡이에서 뻗어 나온 마력선이 대결계로 빨려 들어갔다. 장막의 푸른빛이 짙어지며 공기 중에 타는 듯한 냄새가 번졌다.

도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체내 마력이 0인 도현이 저 장막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타죽을 게 뻔했다.

도망칠 퇴로는 없었다.

도현은 발코니 문을 닫고 연구실로 들어왔다. 은색 빗장을 걸어 잠그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정면 돌파뿐인가."

가짜 교수라는 사실을 숨기고 버티는 것 외에 길은 없었다.

치명적인 위기는 두 가지였다. 3일 뒤 대강당에서 치러질 왕실 감찰단의 마력감응검. 그리고 몇 시간 뒤 오전 10시에 열릴 첫 전공 수업.

도현은 책상에 놓인 '마력감응기 구조 개요' 양피지를 펼쳤다.

"원리를 알아야 공략법이 나온다."

감응기의 핵심 부품은 중앙에 박힌 아케이나이트 원석이었다. 손을 올리면 체내 마력이 수정 내부로 유입되어 고유 주파수로 진동하고 그 진폭에 따라 바늘이 회전하는 구조였다.

전형적인 공명식 계측기였다.

도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내 몸에 마력이 없다면 외부의 마력을 끌어다 바늘을 흔들면 어떨까?"

스스로 전류를 생산하지 못하는 도체라도 강한 외부 자기장 속에 들어가면 유도 기전력이 발생한다.

감응 수정 역시 공명체라면 주변의 마력 파동을 흡수해 간섭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감응기 주변의 마력 밀도를 교란하거나 다른 사람의 고출력 마력에 편승해 오차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설이었다.

문제는 당장 닥쳐온 아침 첫 강의였다.

도현은 서랍에서 '대마법 이론학 입문 강의계획서'를 꺼냈다. 수강생 명단을 확인한 도현의 입에서 헛숨이 터져 나왔다.

수강 인원 120명.

명단 맨 윗줄에는 오만한 눈빛의 엘리안 아스트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는 베르나 교수 연구실의 직속 조교들과 장학생 미라 로엔의 이름까지 빼곡했다.

'재현성'이라는 한마디가 학원 전체에 폭탄을 떨어뜨린 셈이었다.

학생들은 시연을 기대하고 있었고 보수파 교수들은 밑천을 털어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주문 한 자락 외우지 못하는 교수가 마법 천재 120명을 상대로 사기를 쳐야 했다.

"주도권을 뺏기면 끝장이야."

상대가 원하는 판에 끌려가면 패배한다. 그들이 상상조차 못한 판을 먼저 깔아야 했다.

'마법을 쓰지 않고 마법처럼 보이는 현상을 만든다.'

도현은 양피지를 끌어당겨 수업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밀폐된 대강의실, 촛불, 온도 변화, 기압 차, 산소 농도에 따른 연소의 불완전성.

현대 과학의 초보적인 대류 현상과 산화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력과 영감에만 매달려 온 이 세계 마법사들에게는 충격이 될 터였다.

깃펜이 양피지를 긁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렸다.

창밖의 어둠이 희끄무레하게 바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똑, 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왔다.

도현의 깃펜이 멈췄다.

새벽 4시에 연구실을 찾아올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도현은 작성하던 강의안을 책더미 아래로 숨기고 코트 깃을 여몄다. 거울을 보며 순식간에 차갑고 오만한 표정을 장착했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낮게 말했다.

"누구지."

문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교수님……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도현은 문가로 다가가 은색 빗장을 반쯤 풀고 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 사이로 낡은 교복 소매에 잉크 얼룩이 묻은 소녀가 서 있었다. 갈색 머리의 장학생 미라 로엔이었다.

소녀는 낡은 양피지 뭉치를 품에 안은 채 떨고 있었다.

"미라 로엔 양인가."

도현이 냉정한 어조로 이름을 부르자 소녀의 어깨가 튀어 올랐다.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내 수업을 신청한 학생의 이름 정도는 안다. 이 시각에 찾아온 용건이 뭐지?"

도현은 문을 활짝 열지 않고 차가운 시선만을 던졌다.

미라는 입술을 깨물더니 울먹이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제발…… 제 노트를 한 번만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녀가 내민 양피지에는 수백 번을 고쳐 쓴 점화 마법의 상상식이 적혀 있었다. 종이가 땀으로 너덜너덜했다.

"저는 이번 학기에도 낙제하면 장학금이 취소되어 퇴학당합니다. 어머니의 약값도 더 이상 댈 수 없게 되고요."

소녀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떨렸다.

"취임식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재현성'이라는 단어를 듣고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 마법은 언제나 폭주하거나 꺼져버립니다. 선배들은 제 혈통이 미천해서 마력이 불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제 믿음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건가요? 저 같은 평민은 마법사가 될 자격이 없는 겁니까?"

도현은 노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수식들 사이로 미라가 실패할 때마다 적어 둔 메모들이 눈에 들어왔다.

[술식을 전개할 때 주변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공기 중의 마력 냄새가 비릿하게 코를 찌른다.]
[빛이 너무 눈부셔 마력 경로의 세 번째 매듭을 놓쳤다.]

루카스의 연구 일지가 스쳐 지나갔다.

'감각 과부하…….'

미라 로엔은 마력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었다.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마법을 쓸 때 쏟아지는 환경 자극을 뇌가 버텨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현대로 치면 시험장 소음에 집중력이 깨지는 감각 과민 수험생과 완벽히 일치했다.

'원인을 알면 처방도 나온다.'

하지만 도현은 당장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교수의 권위를 유지해야 했다.

도현은 노트를 덮어 미라의 품으로 되돌려주었다. 미라의 얼굴이 절망으로 하얗게 질려갔다.

도현은 팔짱을 끼며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

"로엔 양."

"네, 넷……."

"점화 마법을 시전할 때 왜 매번 숨을 멈추지?"

"예……?"

미라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실패 기록을 보면 주문의 마지막 절을 읊을 때마다 심박수가 치솟고 호흡이 끊겨 있다. 감각이 날카로운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정밀한 제어를 바라는 것은 웅덩이에 돌을 던지고 수면이 잔잔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지."

미라의 입이 벌어졌다.

그 어떤 교수도 호흡이나 신체 반응 따위를 지적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정신 집중'과 '혈통의 품격'만을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가서 호흡법부터 다시 정돈해라. 의문에 대한 답은 내일 강의실에서 증명할 테니."

도현은 차갑게 말을 맺었다.

"그리고 늦었으니 기숙사로 돌아가도록. 내 강의실에 지각하는 자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교, 교수님……!"

미라는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안은 채 허리를 깊이 숙였다. 눈동자에 경외와 벅찬 희망이 일렁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루카스 교수님!"

소녀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복도 저편으로 달려갔다.

도현은 문을 닫고 은색 빗장을 걸었다. 문에 기댄 채 숨을 내쉬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휴…… 입시 컨설팅 짬밥 어디 안 가는군."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지평선 너머로 붉은 여명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아르케니움 중앙 탑에서 웅장한 아침 종소리가 울렸다.

뎅- 뎅- 뎅-.

새벽이 끝나고 운명의 첫날이 밝았다.

도현은 강의안과 출석부를 챙겨 들었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 어디 한번 털어보실까."

물러설 곳은 없다. 마력 0의 가짜 교수가 올라설 첫 교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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