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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학교의 사기꾼 교수4화

마법학교의 사기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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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소음을 지우는 공식

복도 기둥 뒤에 드리운 긴 그림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왕실 수석 감찰관 세리아 발렌. 차가운 은회색 머리칼을 단정히 올린 여인의 시선이 대강의실에서 걸어 나오는 윤도현의 미간에 닿았다. 허리춤에 찬 은빛 마법 봉인검이 정오의 햇살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이틀 뒤면 전교생과 감찰단 앞에서 마력을 직접 증명해야 할 테니까요."

조용하지만 뼈마디를 파고드는 음성이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감찰관의 서슬에 질려 걸음을 재촉했다.

도현은 1타 강사 시절 수없이 겪었던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을 떠올렸다. 칼날에 휘둘려 변명을 늘어놓는 순간 주도권은 넘어간다. 질문의 방향을 틀어야 했다.

도현은 실험 상자를 고쳐 쥐며 피식 실소를 흘렸다.

"수석 감찰관이라는 자리가 고작 이틀을 참지 못해 복도 구석에 숨어드는 조급한 자리였습니까?"

세리아의 눈썹이 꿈틀했다.

"조급함이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절차일 뿐이지."

"껍데기만 좇는 자의 눈에는 언제나 연극만 보이는 법이지요. 이틀 뒤 대강당 단상 위에서 확인하십시오. 당신이 찾는 진실이 그곳에 있을 테니."

도현은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세리아를 지나쳤다. 군화 굽 소리가 등 뒤에서 멈췄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본관 4층 대마법 이론학부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이었다.

철컥.

은색 빗장을 걸어 잠그자마자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도현은 오크 문에 등을 기댄 채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하…… 제기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식은땀이 셔츠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마흔여덟 시간.

대강당에 설치될 마력감응기는 시전자의 체내 마력과 공명하는 정밀 계측기였다. 마력 0인 도현이 손을 올리는 순간 바늘은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그 즉시 무마력자 금령 위반으로 단두대에 끌려간다.

도현은 책상으로 다가가 루카스의 노트를 펼쳤다.

'아케이나이트 원석은 마력 파동을 흡수해 진동하는 공명체다. 내 마력이 없다면 외부 마력을 끌어와 대신 진동을 유도해야 해.'

손에 쥔 깃펜이 수식 위를 바쁘게 오갔다. 감응기 주파수를 왜곡할 간섭 장치를 만들려면 고순도 아케이나이트 파편과 마력 유도선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쿵, 쿵, 쿵!

거친 노크가 적막을 깼다.

"교, 교수님! 안에 계십니까?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미라 로엔의 목소리였다.

도현은 노트를 밀어 넣고 문을 열었다.

"로엔 양? 무슨 일이지?"

문이 열리자마자 낡은 교복의 미라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두 눈은 붉게 짓물러 있었고 손에는 붉은 압인이 찍힌 소환장이 쥐여 있었다.

"교수님…… 저 이제 끝났어요."

미라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품에 안고 있던 양피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도현은 소환장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전통 마법학부장 베르나 크라우의 이름으로 날아온 장학생 적격 심의회 소환장이었다.

[일시: 내일 오후 2시 본관 제3 심의실]
[사유: 기초 마법 실기 장기 미달에 따른 장학금 환수 및 제적 심의]

"내일 오후 2시?"

"방금 고든 조교님이 찾아와 던져주고 갔습니다……."

미라가 흐느꼈다.

"내일 1서클 점화 마법을 시연하지 못하면 즉시 퇴학이라고 했어요. 장학금이 끊기면 지난 학비까지 전부 물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저희 어머니는 길거리로 쫓겨나 약도 못 드시고 돌아가실 거예요."

도현은 차가운 분노를 느꼈다.

베르나 크라우. 첫 강의에서 도현을 망신주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가장 약한 학생을 인질로 잡은 것이다. 미라를 본보기로 퇴학시켜 재현성 이론을 사기극으로 몰아가려는 수작이었다.

도현은 무릎을 꿇고 미라와 시선을 맞췄다.

"울지 마라. 눈물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하지만 교수님, 가르쳐주신 대로 호흡을 세어 봐도 주문만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미라가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다.

"온 세상이 저를 짓누르는 것 같아요. 공기 중의 냄새가 코를 찌르고 복도의 발소리까지 귓바닥을 때려요. 머릿속이 하얘져서 상상식의 마력 선이 찢겨 나간단 말이에요!"

소녀는 소맷자락을 쥐어뜯었다.

"선배들 말이 맞았어요. 저는 천한 평민이라 피가 더러워서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쓰레기예요……."

"로엔 양."

도현이 미라의 손목을 잡았다. 서늘한 악력이 소녀의 자해를 멈추었다.

"내 눈을 똑바로 봐라."

미라가 눈물 어린 눈을 들었다.

도현은 바닥에 흩어진 실패 기록을 주워 들었다.

'바람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 집중이 깨졌다.'
'옆자리 옷자락 소리가 쇠를 긁는 것처럼 들렸다.'
'불꽃이 맺히는 순간 열기가 너무 밝아 상상식을 놓쳤다.'

도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결함이 아니었다. 시험장 샤프심 소리에도 공황을 겪던 감각 과민 수험생들과 똑같았다.

"네 피는 더럽지 않다."

도현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울렸다.

"너는 마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오히려 보통 마법사보다 열 배는 예민한 안테나를 달고 태어난 거다."

미라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주변의 소음, 미세한 빛과 온도의 변화까지 네 뇌는 남김없이 수신하고 있다. 신호 대 잡음비. 본래 잡아야 할 주문 신호보다 주변 잡음이 너무 거대해서 상상식이 튕겨 나간 거다. 너무 정밀해서 탈이 난 거란 뜻이다."

평생토록 결함과 열등감으로 치부되던 고통이 정밀함으로 재정의되는 순간이었다. 미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교수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처방은 간단하다."

도현은 서랍을 뒤져 암막 벨벳 천과 양초 밀랍 두 덩어리, 탁상시계를 꺼냈다.

"앉아라."

도현은 미라를 의자에 앉히고 벨벳 천으로 눈을 가렸다. 시야가 완벽한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어 부드러운 밀랍 덩어리를 양쪽 귓구멍에 밀어 넣었다.

바람 소리도 종소리도 일순간에 차단되었다. 미라의 귓가에는 오직 자신의 거친 심장 박동만이 울렸다.

공포로 굳어가는 미라의 어깨 위로 도현의 묵직한 손길이 닿았다.

도현은 시계의 태엽을 감았다.

째깍, 째깍, 째깍.

규칙적인 금속성 박자가 울렸다. 도현은 책상을 손가락 끝으로 톡, 톡 두드리며 귓가에 낮은 목소리를 전달했다.

"세상의 소리를 지워라. 지금 네 세상에는 오직 이 박자와 호흡, 내 목소리뿐이다."

"박자에 맞춰 숨을 들이마셔라. 하나, 둘, 셋."

미라는 손가락 박자에 맞춰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어라. 하나, 둘, 셋."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가라앉았다.

"잡음은 버리고 손끝에 맺힐 불꽃의 핵만 그려라. 지름 1센티미터의 작은 구체다."

외부 자극이 차단되자 뇌세포의 과부하가 씻은 듯 사라졌다.

"영창해라. 너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오차 없는 공식을 완성하는 거다."

미라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점화(Ignis)……."

완벽한 고요 속에서 마력의 선이 손끝으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팟!

맑은 파열음과 함께 연구실 공기가 데워졌다.

미라의 검지 끝에서 지름 1센티미터 크기의 새파란 불꽃이 고요하게 타올랐다. 흔들림도 와류도 없는 순수한 청백색 화염이었다.

도현이 안대와 밀랍을 풀어주자 미라는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 조용히 숨 쉬는 푸른 불꽃이 있었다.

"아……."

폭주도 소멸도 없었다. 완벽한 형상의 화염이었다.

"내가…… 불을 피웠어……."

소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건만 맞추면 결과는 도출된다. 그것이 재현성이다."

"교수님……!"

미라가 무릎을 꿇고 도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오열했다.

그때였다.

쾅-!

연구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붉은 로브 차림의 베르나 크라우가 들이닥쳤다. 수석 조교 고든과 경비 마법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베르나가 비릿하게 웃으며 서류를 교탁에 던졌다.

"낙제생 하나 붙들고 방 안에서 주술이라도 걸고 계셨습니까? 내일 오후 2시 심의회에서 학칙에 따라 제적을 의결할 예정입니다."

고든이 얄밉게 거들었다.

"어제 강의의 궤변으로도 낙제생을 고치지는 못하셨나 봅니다?"

도현은 천천히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방금 미라가 피워낸 푸른 불꽃의 그을음이 선명한 재떨이를 들어 올렸다.

"베르나 교수."

서늘한 음성에 베르나의 눈썹이 움찔했다.

"학생의 잠재력을 측정할 줄 모르는 무능한 교수진이 낡은 잣대로 학생을 단죄하려는 꼴이 참으로 우습군요."

"뭐라고요?"

"내일 심의회에 미라 로엔을 세우겠습니다. 로엔 양이 점화 마법을 완벽히 재현하지 못하면 내 스스로 교수직을 내려놓지요."

장내가 얼어붙었다. 고든의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교수직을 걸겠다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로엔 양이 성공해 낸다면 베르나 교수 당신은 무엇을 내놓겠습니까?"

베르나는 이를 악물었다. 허세로 넘기기에는 도현의 눈빛이 지나치게 단단했다.

"내일 오후 2시 제3 심의실입니다. 그 오만한 주둥이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지켜보지요."

베르나 일행이 썰물처럼 물러났다.

도현은 미라를 달래어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홀로 남은 도현의 시선은 책상 한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 베르나가 돌아설 때 그녀의 목걸이에 걸려 있던 붉은 보석 펜던트. 그 펜던트가 책상 위 루카스의 아케이나이트 파편과 미세하게 공명하며 붉은빛을 깜빡였던 것이다.

'원석의 공명 파동……!'

도현의 심장이 요동쳤다.

내일 오후 2시 낙제생 구제 심의회.
그리고 모레 오전 10시 마력감응검.

살아남기 위한 거대한 두 개의 퍼즐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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