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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친과 공동 대표가 되었다7화

전 남친과 공동 대표가 되었다

전 남친과 공동 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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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독단의 무게

토요일 밤 아홉 시 성수동 팝업 스토어 안은 미지근한 수증기 냄새로 가득했다.

부스에 맺힌 물방울 아래 마일스톤 달성을 환호하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화성 패키징 박 사장의 거친 고함이 수화기를 찢고 나온 뒤 공간 전체가 얼어붙었다.

도윤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외투를 낚아챘다.

“차 키 줘. 내가 지금 화성 공장 다녀올게.”

발을 내딛는 도윤의 앞을 서진이 가로막았다.

“멈춰요, 강도윤.”

서진은 단정한 셔츠 깃 너머로 턱 끝을 들었다.

“또 혼자 가서 사정할 생각입니까? 당신의 침묵이 오늘 어떤 값을 치렀는지 보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요?”

“비켜, 서진아.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도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박 사장님은 통장에 삼천만 원도 없던 시절 유일하게 금형을 파 준 사람이야. 다른 공장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리필 용기를 만들어 준 은인이야. 그런 사람이 토요일 밤에 라인을 빼겠다고 했어. 이건 사업 논리가 아니라 내가 직접 얼굴 보고 풀어야 할 신뢰의 문제야.”

“신뢰요?”

서진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날을 세웠다.

“사십 퍼센트 인상이 무슨 뜻인지 계산은 해 봤어요? 합의한 이천 개 양산 라인에서 개당 단가가 사천이백 원에서 오천팔백팔십 원으로 뛰어요. 추가 현금만 삼백삼십육만 원이 깨지고 마진율은 마이너스가 됩니다. 가용 현금 이억도 안 남은 회사에서 그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건데요?”

“내가 원래 단가로 맞추겠다고 하잖아.”

“어떻게 맞출 건데요! 또 머리 숙이고 빚이라도 질 생각입니까?”

도윤의 턱 근육이 굳었다. 세척 노즐을 정리하던 민재가 다가왔다.

“대표님들, 일단 진정하시고요….”

“민재야, 넌 빠져.”

도윤이 말을 자르며 차 키를 찔러 넣었다.

“내가 벌인 일이고 내가 맺은 파트너십이야. 오늘 밤 안에 원래 조건으로 묶어 놓을 테니 넌 보고서나 정리하고 있어. 내 영역이야.”

도윤은 서진의 어깨를 스치며 문을 밀치고 나갔다. 도어벨 소리와 함께 거친 엔진 소리가 멀어졌다.

서진은 닫힌 문을 응시하며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삼 년 전과 똑같았다. 위기가 오면 상대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혼자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독단. 그 오만한 습관이 여전히 강도윤의 뼛속에 박혀 있었다.

“윤 대표님….”

하린이 다가왔다. 서진은 숨을 고르며 돌아섰다.

“하린 씨, 민재 씨. 짐 챙겨서 본사로 이동합니다.”

서진은 코트를 걸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보고서는 나중 일이에요. 강 대표가 헛발질하고 오기 전에 우리가 진짜 숫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공단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찬바람과 함께 쇠 냄새와 플라스틱 탄내가 코를 찔렀다. 멈춰 선 대형 사출기들이 육중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도윤은 피로회복제 상자를 들고 이층 컨테이너 사무실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담배 연기 속에서 점퍼 차림의 박 사장이 충혈된 눈으로 앉아 있었다.

“야, 강도윤.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기어이 내려왔냐?”

도윤은 상자를 내려놓고 익숙하게 믹스커피 두 봉을 뜯었다.

“사장님 좋아하시는 커피 한잔 나누려고 왔습니다.”

도윤이 종이컵을 건넸지만 박 사장은 전표 뭉치를 탁자에 내던졌다.

“서류나 봐. 재생 레진 가격이 삼십 퍼센트 뛰었어. 전기세도 이십 퍼센트 올랐고. 너희 용기가 그냥 플라스틱이냐? 고온 스팀 견뎌야 한다고 피시아르 수지에 내열 배합 섞느라 불량률이 두 배야. 금형 수정비 들어간 건 네가 준 돈으로 턱이나 차냐?”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사정 잘 압니다. 오늘 성수동에서 회수율 삼십사 퍼센트에 재구매 의향 오십이 퍼센트 넘겼습니다. 이천 개만 무사히 뽑아내면 다음 달부터 정기 발주로 물량 늘릴 수 있습니다. 딱 석 달만 기존 단가로 유지해 주십시오.”

박 사장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석 달? 강 대표, 네가 세상을 너무 몰라.”

박 사장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어제 낮에 리프랩 구매팀 이사가 다녀갔어.”

도윤의 숨이 턱 멎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대기업 리프랩이 모아 라인 빼고 전용 라인 깔아주면 일 년간 매달 십만 개씩 발주 넣어주겠대. 금형비도 선급금으로 전액 꽂아준단다.”

박 사장의 눈빛에 냉혹한 시장 논리가 번뜩였다.

“십만 개야. 너처럼 이천 개 찍으면서 기계 바꾸고 불량 난다고 징징대는 스타트업 뒤치다꺼리하느니 리프랩 라인 깔고 편하게 돈 버는 게 맞아. 삼 년 전 의리 생각해서 먼저 기회 준 거야. 사십 퍼센트 올려 계약서 다시 쓰든가 월요일 아침에 금형 다 빼서 나가든가 골라.”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금형을 빼앗기면 새로 파는 데만 두 달이 걸리고 한태우가 정한 구십 일의 기한은 그대로 끝장난다.

도윤의 손끝이 떨렸다.

“사장님. 차액분 사십 퍼센트… 제가 개인적으로 보증을 서겠습니다. 회사 법인이 아니라 제 개인 차용증이라도 써 드릴 테니 제발 이번만….”

“야, 강도윤!”

박 사장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삼 년 전에 네 아버지가 보증 서서 망했을 때 그거 막겠다고 신용불량자 턱밑까지 갔던 거 내가 다 알아! 네 개인 차용증을 어디다 써먹어? 은행에서도 돈 안 나오는 놈이 종이에 싸인해 주면 내 공장 밥줄이 지켜지냐?”

치욕스러운 상처가 날것 그대로 까발려졌다.

“헛소리 말고 월요일 오전 열 시까지 법인 인감 찍힌 계약서 들고 와. 일 초라도 늦으면 네 금형 크레인으로 들어내 마당에 던져놓을 테니까.”

박 사장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식어버린 커피 두 잔을 뒤로하고 도윤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얼어붙은 새벽바람이 뼈마디를 파고들었다.


새벽 세 시 성수동 모아 사무실.

안개가 번져가고 있었지만 천장의 형광등은 환했다.

테이블 위에는 삼 년간 거래했던 계산서 백여 장과 사출 견적서가 펼쳐져 있었다. 화이트보드에는 복잡한 수식이 빽빽했다.

서진은 안경을 쓴 채 노트북 화면과 서류를 대조하고 있었다. 눈빛은 차분하고 서늘했다.

“민재 씨, 우리 용기 하나 찍는 데 들어가는 피시아르 레진 중량이 얼마죠?”

민재가 서류를 넘기며 답했다.

“삼백이십 그램이야. 노즐 내부 부품까지 합치면 삼백팔십 그램 들어가.”

“공시 단가표 보면 지난달 수입 재생 수지 가격은 킬로그램당 이천이백 원에서 이천팔백오십 원으로 올랐어요. 상승률로 치면 이십구 점 오 퍼센트네요.”

서진이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었다.

[개당 원자재 상승분: 627원]

서진이 보드를 가볍게 두드렸다.

“박 사장님이 요구한 사십 퍼센트 인상액은 개당 일천육백팔십 원이에요. 하지만 실제 원자재 폭등으로 공장이 부담하는 순수 재료비는 육백이십칠 원, 약 십오 퍼센트에 불과해요.”

민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나머지 일천오십 원은 뭐야?”

“불안의 값이에요.”

서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고작 이천 개 찍으면서 기계 멈추고 노즐 맞추느라 로스가 발생하잖아요. 박 사장님은 우리가 사업을 접을까 봐 금형 개조비 감가상각과 라인 손실을 이번 계약에 한꺼번에 털어 넣으려는 거예요.”

민재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하린은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화면 구석에는 리프랩 인사팀의 메일이 깜빡였다.

[최종 회신 기한: 월요일 18:00까지]

내일 저녁이면 시한이 끝난다. 대기업 리프랩이 화성 공장까지 집어삼키며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서진이 다가와 따뜻한 재스민 차를 건넸다.

“하린 씨가 찾아준 데이터 덕분에 계산식을 완성했어요. 고마워요.”

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공장까지 등을 돌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서진은 하린의 손등을 토닥이며 화이트보드를 바라보았다.

“상대가 공포로 흔들 때 기댈 무기는 정밀한 숫자예요. 공장의 불안을 숫자로 덜어준다면 이 위기는 우리만의 독점 라인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흔들림 없는 서진의 눈빛에 하린의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리프랩의 제안보다 이 작은 팀의 치열한 밤이 훨씬 가치 있게 다가왔다.

그때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리며 유리문이 열렸다.


새벽 다섯 시 반.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도윤의 몰골은 처참했다.

셔츠는 구겨졌고 재킷 깃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눈은 핏발이 섰고 양손은 쇳가루를 만진 듯 거뭇했다.

도윤은 세 사람이 화이트보드 앞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멈춰 섰다.

“다들… 여기서 뭐 해.”

도윤은 피로를 숨기며 책상으로 걸어가려 했다.

“화성 건은 내가 조율 중이야. 얘기 잘하고 있으니 신경 쓸 거 없어.”

“조율 중이라고요?”

서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도윤의 걸음을 멎게 했다. 서진은 도윤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박 사장님이 월요일 오전 열 시까지 사십 퍼센트 인상안에 도장 안 찍으면 금형 들어내겠다고 통보했죠?”

도윤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

“리프랩이 화성 공장에 십만 개 들이밀며 모아 라인 빼앗으려 한 것도 듣고 오셨겠네요.”

도윤이 돌아섰다. 눈동자에 경악이 소용돌이쳤다.

“너… 그걸 어떻게….”

“그리고 그 앞에서 또 바보처럼 매달렸습니까?”

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차액을 개인적으로 물어내겠다고 했어요? 회사 몰래 개인 차용증이라도 써 주겠다고 빌었냐고요!”

도윤의 숨이 턱 막혔다.

“서진아, 그건….”

“강도윤.”

서진이 말을 단칼에 잘랐다. 눈동자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당신은 삼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라지 않았어. 파도가 오면 같이 노를 젓는 대신 문을 닫아걸고 혼자 밑바닥으로 숨어들어. 지켜주겠다는 핑계로 정보를 감추고 혼자 순교자 흉내를 내지.”

도윤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억눌렸던 절박함이 터져 나왔다.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고!”

도윤이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박 사장마저 돌아서면 다음 주에 이천 개 생산 자체가 날아가! 네가 만든 마일스톤, 하린이가 모은 설문지, 투명 세척 라인… 다 지켜주고 싶었어! 내가 다 뒤집어쓰더라도 너희 성과만큼은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고!”

도윤의 목소리가 고통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서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누가 지켜달래?”

도윤의 숨이 멎었다.

“누가 당신더러 날 보호해 달라고 했어?”

서진이 도윤의 가슴팍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내가 원한 건 날 보호해 줄 남자가 아니야. 위기가 닥쳤을 때 도망치지 않고 불리한 패까지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싸울 동등한 공동대표야. 당신이 오늘 지키려 한 건 회사가 아니야. 모든 걸 혼자 짊어지는 멋진 대표라는 오만하고 비겁한 자존심이지.”

도윤의 턱이 잘게 떨렸다.

삼 년 전 빚더미 앞에서 손을 놓고 등을 돌렸던 날도 같았다. 지켜주겠다는 명분 뒤에 숨었던 것은 초라한 자신을 보이기 싫었던 자존심이었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서진은 검은색 마커를 집어 도윤의 손바닥에 쥐여주었다.

“월요일 오전 열 시까지 스물여덟 시간 남았습니다.”

서진이 화이트보드를 가리켰다.

“박 사장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게 뭔지, 리프랩의 십만 개 제안을 깨부술 진짜 패가 뭔지 이 판 위에 전부 펼쳐요.”

서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당신이 숨겨둔 화성 공장의 모든 이면 계약과 원가표, 지금 당장 내 앞에서 한 줄도 남김없이 다 열어요.”

서진의 서늘한 눈빛이 도윤의 시선과 허공에서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두 공동대표의 진짜 담판이 새벽의 장막을 찢으며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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