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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 옆집에 이사 왔습니다2화

전남편 옆집에 이사 왔습니다

전남편 옆집에 이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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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문틈으로 샌 온기]

202호 문이 닫히고 묵직한 도어록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현관에 멍하니 서 있던 윤서는 그제야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았다. 손바닥에 찬기가 얇게 배어 있었다. 얇은 철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남편과 이웃이 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감각에 와닿지 않았다.

“엄마.”

하린이 윤서의 셔츠 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빼끔 드러난 이마에 옅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복도 맞은편 문을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

“응, 하린아.”

“아빠 집에도 내 토끼 의자 있어?”

“아직 정리 안 되어서 몰라. 아빠도 오늘 이사했잖아.”

윤서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에는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 상자들이 벽면을 따라 길게 줄지어 있었다. 저녁 빛이 주황색으로 바래 가는 창가를 가로질러 윤서는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 밤은 엄마랑 이불 펴고 자야 해. 하린이 침대 프레임은 내일 기사님이 오셔야 완성되니까.”

“아빠랑 저녁 같이 안 먹어?”

하린이 노란 토끼 가방을 가슴에 안은 채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한 아이의 질문에 윤서의 손끝이 멈췄다. 냄비를 꺼내려던 찬장 문이 끼익 소리를 냈다.

윤서는 무릎을 낮춰 아이와 눈을 맞췄다. 아이의 눈동자에는 부모가 한 층에 산다는 천진한 기대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른들의 이혼이나 합의서 같은 단어는 그 눈동자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린아. 아빠가 바로 옆집에 살게 된 건 맞지만 엄마 집이랑 아빠 집은 엄연히 다른 집이야. 저녁도 따로 먹고 잠도 각자 집에서 자는 거야.”

“왜? 이사 왔는데?”

“약속을 만들어야 하거든. 엄마랑 아빠가 하린이가 안심하고 놀 수 있게 차근차근 약속을 정할 거야. 그 전에는 함부로 문을 열고 건너가지 않는 게 규칙이야.”

하린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윤서의 말을 곱씹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규칙이었지만 윤서의 목소리가 단호하면서도 다정했기에 아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빠가 사진 보내 준다는 건 진짜야?”

“응. 아빠가 오늘 저녁에 정리하고 사진 보내 준다고 했지? 내일 아침에 엄마랑 같이 보자.”

“약속했다, 엄마.”

“그래, 약속.”

윤서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며 한 말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문을 넘어서는 순간 1년 동안 쌓아 올린 삶의 경계가 힘없이 허물어질 수도 있었다. 윤서는 주방으로 들어가 라면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계란국과 반찬을 꺼냈다.


다음 날 일요일 오전 햇살이 거실 창 깊숙이 들어왔다.

윤서는 거실 한구석에서 모과 라운지 리모델링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줄자와 도면, 스케치북이 펼쳐진 식탁 위로 휴대폰 진동음이 둔탁하게 울렸다.

  • [도현] 하린이 보여주기로 했던 집 내부 사진이야. 편할 때 보여줘.

화면에 떠오른 이름 세 글자에 윤서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도현은 텍스트 메시지와 함께 사진 네 장을 첨부했다.

윤서는 잠시 주저하다가 사진을 클릭했다.

첫 번째 사진은 202호 거실이었다. 윤서의 집과 대칭을 이루는 구조였지만 가구 배치와 색감은 전혀 달랐다. 무채색 선반과 정돈된 모니터 그리고 모서리마다 투명한 안심 가드가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두 번째 사진을 본 윤서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202호의 작은방 사진이었다.

그곳에는 하린이가 좋아하는 옅은 노란색 조명과 아이용 나지막한 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책상 위에는 하린이가 유치원에서 읽던 동화책 몇 권과 함께 작은 곰 인형이 놓여 있었다. 도현이 해외 파견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이 방을 어떻게 쓸지 오래 고민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엄마! 아빠 사진 왔어?”

어느새 다가온 하린이가 윤서의 무릎에 턱을 얹었다. 화면을 본 하린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와! 내 책상이다! 노란 불빛도 있어!”

“그러네. 아빠가 하린이 방을 예쁘게 정돈해 두셨네.”

“나 오늘 아빠 집에 가도 돼?”

하린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윤서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사진의 세 번째, 네 번째 컷을 유심히 살폈다. 사진 한구석에는 아직 뜯지 않은 오래된 이삿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자 표면에 묵직하게 그어진 테이프 자국을 보며 윤서는 1년 전 이혼 서류를 작성하던 날의 도현을 떠올렸다.

그는 그때도 아무 말 없이 모든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이유를 묻는 윤서의 질문에 그저 “네가 원하는 대로 하자”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정한 선 안에서만 행동하고 타인에게 짐을 얹지 않으려는 그 무거운 침묵이 윤서를 외롭게 만들었었다.

“하린아, 오늘은 엄마랑 마트 가서 학용품 사기로 했잖아. 아빠 집은 엄마랑 아빠가 전화로 약속을 다 마치고 나서 가기로 하자.”

“응! 그럼 아빠한테 노란 조명 예쁘다고 전해 줘!”

하린이는 사진 속 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 좋게 방으로 뛰어들어 토끼 가방을 챙겼다. 윤서는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도현이 준비한 공간은 안전했고 세심했다. 그 세심함이 오히려 윤서의 경계심을 더 날카롭게 세우게 만들었다.


밤 9시 50분.

하린이는 깨끗이 씻고 하늘색 이불을 끝까지 끌어올린 채 잠이 들었다. 규칙적인 아이의 숨소리가 작은방 안을 채웠다.

윤서는 거실로 나와 방문을 살짝 닫았다. 거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서서히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9시 55분, 9시 57분.

9시 58분. 윤서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도현이었다. 약속한 밤 10시를 정확히 2분 남겨둔 시각이었다. 윤서는 깊은 숨을 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도현아.”

  • “하린이는 자?”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듣는 목소리라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응, 방금 잠들었어. 사진은 잘 봤어. 하린이가 노란 조명 보고 많이 좋아하더라.”

  • “다행이네. 하린이가 좋아할 만한 색으로 골랐어.”

잠시 정적이 흐렀다. 통화음 너머로 도현의 옅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윤서는 식탁 의자에 앉아 연필을 손에 쥐었다.

“사진으로 확인했으니까 본론을 이야기할게. 우리가 옆집에 살게 되었다고 해서 기존 면접교섭 원칙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 “알아. 나도 윤서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하린이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202호 문을 두드리게 할 순 없어. 아이에게는 부모의 이혼과 공간의 분리가 명확히 전달되어야 해. 예고 없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것도 사양할게.”

윤서의 말은 차갑고 단호했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전화 너머의 도현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거부나 변명이 아니었다.

  • “맞아. 네 말이 맞아. 옆집이라고 해서 내가 하린이 일상에 불쑥 들어가는 건 아이한테도 혼란을 줄 거야.”

“그럼 첫 번째 규칙은 사전 합의 없이 서로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거야. 하린이가 아빠 집에 가고 싶다고 할 때는 최소 하루 전에 나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허락을 받아줘.”

  •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두 번째 규칙은 내가 먼저 정할게.”

도현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 “하린이를 통해서 어른들의 말을 전달하게 하지 말자. 하린이한테 ‘엄마한테 물어봐’라거나 ‘아빠한테 전해줘’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을게. 필요한 건 지금처럼 직접 통화하거나 문자로 정해.”

윤서는 연필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도현이 윤서가 가장 우려하던 지점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아이를 중간에 두고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좋아. 그럼 첫 번째 방문은 언제로 할까? 하린이가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 이번 주 중으로 날을 잡는 게 좋겠어.”

  • “수요일 저녁은 어때? 유치원 하원하고 네가 퇴근한 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두 시간 동안만 내 집에서 저녁 먹고 놀다 돌아가는 걸로.”

“좋아. 수요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식사는 네가 준비할 수 있어?”

  • “응. 하린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랑 소고기국 끓여둘게. 너도 괜찮으면 같이 먹고 가도 돼.”

“아니, 나는 내 집에서 쉴게. 두 시간 뒤에 202호 앞으로 하린이 데리러 갈게.”

윤서의 거절에 도현은 순순히 응했다.

  • “알겠어. 8시에 문 앞으로 배웅할게.”

기본적인 방문 일정이 정리되자 통화 사이에 잠깐의 여백이 생겼다. 윤서는 창밖의 어두운 골목길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도현아.”

  • “응.”

“정말 회사 근처라서 이 집을 계약한 거야? 성수동에 너희 회사 직영 사업장이 있긴 하지만 굳이 이 건물 202호였어야 했어?”

윤서의 질문에 전화 너머에서 긴 숨이 새어 나왔다. 도현은 거짓말을 얹지 않는 대신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진심만 담아 답했다.

  • “회사랑 가까운 것도 사실이고 하린이 유치원 동선에 맞춘 것도 맞아. 그리고 혹시라도 하린이나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싶었어. 간섭하려는 게 아니라 보호자로서 내 책임을 다하고 싶었어.”

도현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변명이나 억울함도 없었다. 윤서는 그 담담함 속에서 도현 특유의 고집스러운 고독을 느꼈다.

“그 책임감 때문에 우리가 힘들었던 거 알잖아.”

윤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 “알아.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을 넘지 않을 거야. 네가 허락한 만큼만 하린이 아빠로 서 있을게.”

“고마워, 그렇게 해줘.”

윤서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수요일 6시야. 잘 자.”

  • “너도 잘 자, 윤서야.”

전화가 끊겼다.


윤서는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통화는 깔끔하게 끝났다. 감정적인 다툼도 없었고 서로의 요구 사항은 명확한 규칙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통화가 끝난 후 거실에 감도는 정적은 낯설고 아렸다.

윤서는 식탁 위에 펼쳐 둔 서류함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하린이가 이사 오기 전 ‘우리 집 규칙’을 적겠다고 고른 파란색 세 칸 노트였다.

노트 첫 장을 펼친 윤서는 정갈한 글씨로 적어 내려갔다.

[엄마 집과 아빠 집의 약속]

  1. 상대방의 집 방문은 최소 하루 전 사전 합의한다.
  2. 아이를 통해 어른들의 의사를 전달하지 않는다.
  3. 수요일 저녁 6시~8시: 202호 첫 방문 (하린-아빠 저녁 식사)

글씨를 다 적은 윤서는 노트를 덮고 거실 창가로 걸어갔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너머로 복도 맞은편 202호의 창문 불빛이 옅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전남편이자 아이의 아빠.

서로의 삶을 함부로 넘보지 않으면서도 아이를 위해 문을 열어두어야 하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윤서는 도면 통에서 라운지 평면도를 다시 꺼냈다. 연필 끝으로 공간의 경계선을 그어 내리며 윤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을 긋는 건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자신이 설계하는 공간에 적용하던 원칙이 지금 두 사람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윤서는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연필을 단단히 쥐었다. 옆집에서의 둘째 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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