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수의 마지막 말을 듣는 헌터

2화: 여덟 번째 문
태오는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오른쪽 귀를 손으로 눌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잔향이 남아 있는 동안 실제 목소리와 기억은 구분되지 않았다. 진목은 그의 귀에 보호대를 씌우며 더 듣지 말라고 했다.
“그 소리가 구조 신호라면?”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네 몸부터 지켜.”
세라는 던전 지도 원본을 요청했다. 재민은 문서가 보안 자료라며 거절했다. 대신 협회 단말기를 압수하겠다고 했다. 세라는 감찰 권한을 보여 줬지만, 재민은 현장 지휘권이 길드에 있다고 주장했다. 둘이 대치하는 동안 진목은 새끼 괴수의 목줄에서 금속 태그를 발견했다. 태그에는 헌터 등록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실종자 최건우의 장비와 같은 번호 체계였다.
“괴수가 사람 장비를 갖고 있어요.” 진목이 말했다.
재민은 표본을 확인하기 전에 모두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태오는 벽면의 균열을 촬영하고, 푸른 가루를 별도 봉투에 담았다. 세라는 증거 보존을 위해 현장 기록을 복사했다. 재민은 봉투를 낚아채려 했지만, 세라가 몸을 틀어 피해냈다. 작은 알갱이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진목은 가루를 손전등에 비추었다. 빛이 닿자 입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반짝였다. “이건 괴수의 체액이 아니야. 이동 게이트에서 쓰는 추적 분말이야. 사람 장비에도 묻힐 수 있어.”
“사람을 쫓았다는 뜻이야?” 태오가 물었다.
“누군가 괴수의 이동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어.”
재민은 조사 허가 없이 던전 생태를 해석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새끼를 포획 트렁크에 넣으려 했다. 태오는 다시 막아섰다. 이번에는 세라가 재민의 손을 붙잡았다. “감찰 중인 증거를 옮기려면 협회 승인이 필요합니다.”
“내가 계약 책임자야.”
“그래서 계약서 수정본을 확인하겠습니다.”
재민은 잠시 멈칫했다. 그사이 새끼가 진목의 보호대 안에서 몸부림쳤다. 태오는 문득 괴수의 마지막 말을 들은 뒤 자신의 왼쪽 귀도 울린다는 걸 알았다. 말이 들릴 때마다 청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특정 주파수가 겹칠 때 잔향이 통증으로 남았다. 그는 진목에게 그 변화를 숨기지 않았다.
“그걸 알고도 계속 들으려는 거야?”
“한 문장만 더 듣고 확인할게.”
“그 한 문장이 네 청력을 영영 망칠 수 있어.”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라는 실종 헌터 목록을 열어 최건우의 마지막 위치를 확인했다. 기록은 던전 바깥 출구에서 끝났다. 하지만 그날의 공략 영상에는 건우가 입구 안쪽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었다. 영상의 마지막 11초가 삭제됐다. 재민은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세라는 삭제된 영상 복구를 요청했다. 재민은 작전을 중단하고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던전의 출구가 봉쇄돼 있어 철수로는 갈 수 없었다. 재민은 비상 귀환석을 꺼냈다. 그 장치는 협회가 승인한 단 한 번의 긴급 이동용이었다. 태오는 재민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빠져나가려는 것이라 의심했다.
진목은 지도를 벽에 대고 균열을 추적했다. 공식 도면에는 없던 길이 나타났다. 벽을 따라 푸른 가루가 이어졌고, 마지막에 금속 경첩 자국이 드러났다. 문이 있었다. 여덟 번째 문이었다.
문 앞에는 실종된 헌터의 칼이 꽂혀 있었다. 칼날은 부러졌지만 손잡이에 건우의 혈흔이 말라붙어 있었다. 태오는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그는 문 앞에 앉아 귀 보호대를 벗었다. 진목이 말리려 했지만, 태오는 한 문장만 듣고 곧바로 중단하겠다고 했다.
세라는 재민의 손을 묶지 않았다. 대신 그의 귀환석을 보관함에 넣고, 문 앞에서 모두가 함께 기다리게 했다. 문 안쪽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태오는 세 번 두드렸다. 안쪽에서 한 번 답했다.
“최건우 씨?”
대답은 없었다. 문틈으로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던전 내부는 차가워야 했다. 진목은 공기 샘플을 채취했고,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사람의 호흡과 비슷한 비율로 측정됐다. 누군가 살아 있었다.
재민은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칼을 뽑아 문을 열려 했다. 태오가 팔을 잡았다. 재민은 태오를 밀쳤고, 태오는 균열 바닥에 쓰러졌다. 귀가 땅에 닿으며 맥박 같은 진동을 들었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재민을 믿지 마.”
태오는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이 괴수의 마지막 말인지,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세라는 그 문장을 기록했다. 재민은 그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칼을 쥔 손에서 힘을 빼고 한 걸음 물러났다.
문은 안쪽에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의 공기는 따뜻했다. 태오는 손등으로 온도를 확인했고, 문 앞의 먼지는 바깥으로 쓸려 나와 있었다. 안쪽에서 누군가 문을 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목은 휴대 산소통을 연결하고, 세라는 재민에게 후퇴 경로를 열어 달라고 했다. 그는 대답 대신 귀환석을 더 가까이 옮겼다.
태오는 그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재민이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안에 남을 수 있었다. 그는 세라에게 그 의심을 말했다. 세라는 재민을 붙잡지 않고, 귀환석의 사용 기록을 현장 단말기에 연결했다. 장치가 켜지면 협회에 자동으로 로그가 전송될 것이다. 재민은 그것을 보고 귀환석을 내려놨다.
“네가 뭘 찾았든, 우리가 나가야 다시 조사할 수 있어.”
“그럼 같이 나가면 되죠.” 태오가 말했다.
문이 열리기 전에 진목은 바닥에서 작은 발자국을 발견했다. 크기는 새끼 괴수와 달랐다. 사람의 신발 밑창이었다. 발자국은 문 안으로 이어지지만 밖으로 나온 흔적은 없었다. 그는 더 가까이 가려다, 벽에 붙은 포획 선을 발견했다. 선은 문을 여는 사람의 발목을 걸도록 설치돼 있었다. 누군가 구조자를 안쪽에 잡아두려는 덫이었다.
세라는 장치를 분해하지 않고 고정핀을 제거했다. 덫이 풀릴 때 금속 바늘이 튀어 손목을 긁었다. 그녀는 피를 닦지 않고 핀을 증거 봉투에 넣었다. 재민은 그 장치가 길드 물건인지 모른다고 했지만, 고정핀에는 길드 장비의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태오는 문을 열기보다 안쪽에 말을 걸었다. “우리는 지금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물과 산소를 먼저 보내겠습니다.”
안쪽에서 두 번 긁는 소리가 왔다. 진목이 작은 산소 팩을 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팩은 문틈을 지나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빈 팩이 돌아왔다. 안에는 핏자국과 짧은 글씨가 묻어 있었다. ‘건우.’
세라는 이름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최건우는 동료의 이름만이 아니라, 5년간 길드가 사망 처리한 실종자였다. 태오는 자기가 들은 말이 무의미한 환청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문 안에서 누가 썼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재민이 문을 닫으려 다가오자 진목이 몸으로 막았다. 그 순간 던전의 바닥이 갈라졌다. 새끼 괴수가 보호대에서 빠져나와 문 앞을 향해 울었다. 이 울음은 두려움일까, 경고일까. 태오는 괴수의 입 모양을 살폈다.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발자국과 핏자국을 따라 지형을 확인했다.
문 주변의 벽에는 길드의 추적 분말이 넓게 발라져 있었다. 던전 생물들이 이 문을 향해 모여들도록 만든 흔적이었다. 재민은 그 사실을 알고도 부인했다. 세라는 분말 표본을 보관했고, 진목은 새끼를 안고 후퇴로를 찾았다. 그들은 문을 바로 열지 않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덫과 추적 장치를 해체하기로 했다.
그때 문 안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재민을 믿지 마.” 같은 문장이었다. 이번에는 괴수의 마지막 말이 아니었다.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재민은 덫을 해체하는 동안 바닥의 추적 분말을 밟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분말은 이미 그의 부츠 밑창에 묻어 있었다. 진목은 그의 발자국이 문 앞까지 이어지는 것을 촬영했다. “이 분말은 당신 장비에서 나온 것 같네요.”
“나는 흔적을 밟았을 뿐이야.”
“그럼 왜 출구로 가지 않았죠?” 세라가 물었다.
재민은 대답을 미뤘다. 태오는 문 아래의 핏자국을 확인했다.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던전의 습기에도 굳어 있었다. 그는 문 안쪽 사람에게 물을 더 보내겠다고 말했다. 작은 물병을 문틈으로 밀었고, 병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안쪽에서 금속 조각이 굴러 나왔다. 조각에는 길드 장비 창고의 번호가 있었다.
세라는 그것을 증거로 넣었다. 재민은 헌터들을 데리고 먼저 나가려 했다. 진목이 보호대를 들어 새끼 괴수를 보여 줬다. “이 아이가 우리를 따라 나가면, 길드가 또 표본으로 잡을 거예요.”
태오는 새끼가 스스로 던전 안에 남을 수 있도록 보호대를 열었다. 그 결정은 후퇴 속도를 늦췄다. 재민은 화를 냈지만, 세라가 조사 중 증거를 옮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잠깐의 대치 끝에 새끼는 문 앞에서 물러나 진목이 남긴 먹이를 물었다. 그들은 문을 지키는 존재가 괴수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둔 덫이라는 걸 확인했다.
태오는 자기가 들은 문장이 반복될 때마다 귀가 더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감찰 기록을 세라에게 맡기고, 문 앞에서 한 발 물러났다. 듣는 능력이 진실을 대신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선택이었다.
구조팀이 오기 전까지 12분이 걸렸다. 그동안 태오는 문에서 거리를 두고, 진목은 새끼의 상태를 살폈다. 세라는 재민에게 실종 기록이 수정된 경위를 다시 물었다. 재민은 5년 전 건우가 사라진 뒤 길드가 구조 작업을 중단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문을 닫으라고 지시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현장 로그의 시간을 보존하지 않았다. 사실과 변명을 가르는 증거는 아직 남아 있지 않았다.
세라는 그가 책임을 피할 수 없도록 발언을 기록했다. 동시에 그를 현장에서 제거하지 않고 건우를 구할 때까지 남겨 두었다. 태오는 그 선택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지만, 지금 필요한 손이 재민에게도 있다는 걸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