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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의 마지막 말을 듣는 헌터1화

괴수의 마지막 말을 듣는 헌터

괴수의 마지막 말을 듣는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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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죽은 괴수가 부른 이름

강태오는 괴수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칼을 늦게 내리쳤다.

던전 입구는 서울 지하철 7호선 공사 구간에 열린 균열이었다. 안전선 너머로 붉은 안개가 새어 나왔다. 태오는 왼쪽 귀를 막고, 오른손에 든 장검을 낮췄다. 귀는 오래전 던전 폭발로 망가졌다. 괴수의 마지막 말이 들릴 때마다 통증이 남았고, 한 문장을 들은 뒤엔 며칠 동안 현실의 소리를 뒤틀어 들었다. 그래도 그는 칼을 쥐었다. 오늘 토벌 보수가 밀린 병원비를 갚아 줄 것이었다.

“뒤쪽으로 붙어.” 윤세라가 무전했다. “대상은 균열 늑대 둘, 새끼 하나. 생포가 우선이야.”

태오는 길드 계약서에 생포 조건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는 세라의 얼굴을 돌아봤다. 협회 감찰관인 그녀는 현장 기록을 들고 있었다. 길드가 살아 있는 괴수를 실험용으로 빼돌린다는 제보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태오의 옛 길드장 박재민은 이번 토벌을 “위험 개체 정리”라고 설명했다.

진목이 무릎을 꿇고 모래의 발자국을 살폈다. “성체 둘이 아니야. 하나는 다친 개체고, 새끼가 끌고 왔어.”

“그게 무슨 차이지?” 태오가 물었다.

“우리가 길을 막으면 새끼는 도망치지 않고 성체를 지키려고 덤빌 거야.”

재민은 생태 분석을 무시하고 작전 개시를 명령했다. 헌터 네 명이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태오는 첫 괴수의 돌진을 옆으로 피하며 칼등으로 앞다리를 쳤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괴수는 바닥에 쓰러졌지만 즉사하지 않았다. 새끼가 목을 긁으며 울었다. 소리는 사람의 울음과 비슷했다.

태오는 검을 내리지 못했다. 괴수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마지막 한 문장이 귀 안에서 울렸다.

“여덟 번째 문을 열지 마.”

통증이 관자놀이를 파고들었다. 태오는 오른쪽 귀에서 피가 흐르는 걸 느꼈다. 그는 숨을 고르며 메모지에 말을 적었다. 재민이 종이를 뺏으려 했다. “또 그 소리야? 괴수가 죽으면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했다고 하지.”

“들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 증명해.”

태오는 괴수의 털에서 희미한 푸른 가루를 발견했다. 던전 생물에게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표식이었다. 진목은 채취를 요청했지만 재민은 전리품에 손대지 말라며 막았다. 세라는 감찰 기록을 위해 봉투를 내밀었다. 재민은 헌터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손을 밀쳤다. 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틈에 새끼가 뛰었다. 태오는 칼을 들었지만, 세라가 그 앞을 막았다. “죽이지 마요.”

새끼는 태오의 장화에 몸을 부딪치고, 고개를 돌려 던전 안쪽을 향해 울었다. 태오는 그 소리가 공격 신호인지 구조 요청인지 알 수 없었다. 재민은 포획 장치를 발사했다. 전류가 새끼의 몸을 감쌌다. 진목이 달려들어 장치를 끊었지만, 그의 손에 화상이 번졌다.

“이건 위험한 개체가 아니야.” 진목이 말했다.

“우리 목표는 토벌이야.” 재민이 답했다.

세라는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생포 조건은 재민이 수정한 뒤 협회에 제출한 것이었다. 원래 공략 의뢰에는 괴수 표본 확보 조항이 있었다. 세라는 계약 수정 기록을 보존하려 했지만, 현장 단말기는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았다. 재민은 종이 문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태오는 괴수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여덟 번째 문. 던전 지도에는 일곱 개의 문만 표시돼 있었다. 그는 지도에서 출구 쪽의 보강벽을 살폈다. 벽면에 푸른 가루가 흩어져 있었고, 균열이 안쪽에서 바깥으로 난 모양이었다. 누군가 출구를 막아 놓은 것 같았다.

재민은 태오에게 물러서라고 했다. “너는 후각도 청각도 반쪽이야. 여긴 내가 지휘해.”

태오는 자신이 퇴물이라는 말을 들은 뒤 칼을 낮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새끼 괴수가 전류에 떨며 앞다리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자 발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포획 장치를 칼끝으로 끊었다. 재민이 태오를 밀쳐냈고, 태오는 벽에 어깨를 부딪쳤다. 충격으로 오른쪽 귀가 먹먹해졌다.

세라는 재민의 폭행을 기록했다. 그는 감찰관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출구를 봉쇄하고 던전 전체를 재수색하라고 명령했다. 헌터들은 각자 장비를 점검했다. 진목은 새끼를 보호대 안에 넣었고, 세라는 협회에 긴급 감찰을 요청했다. 태오는 귀에서 피를 닦았다. 들리는 소리는 모두 멀어졌다.

그때 던전 벽 너머에서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일곱 번. 한 번 쉬고, 다시 한 번. 태오는 손바닥을 벽에 대었다. 벽 안쪽에서 누군가 같은 리듬으로 답했다. 마지막 문장은 죽은 괴수의 말이 아니라, 실종된 헌터의 구조 신호일지도 몰랐다.

태오는 메모지 아래에 적었다. ‘문을 찾는다.’

재민이 그의 뒤에서 말했다. “그 문은 없어.”

세라는 지도와 벽면을 번갈아 보았다. 공식 기록에는 5년 전 실종 처리된 헌터 최건우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태오는 분명 들었다. 안쪽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태오는 귓속에 남은 울림을 참으며 바닥에 떨어진 푸른 가루를 모았다. 가루는 장갑에 묻으면 따뜻해졌고, 손바닥에 닿으면 금세 식었다. 진목이 샘플 봉투를 잡아당겼다. “네가 직접 들은 건 조사 기록에 넣지 마. 귀가 다쳤다는 걸 재민이 이용할 거야.”

“내가 듣지 않았다고 하면 문을 찾을 이유가 없어져.”

“들은 말은 단서야. 증거는 따로 찾아야 해.”

진목은 괴수의 발자국을 따라 봉쇄벽까지 갔다. 태오는 벽면을 살피다가 옛 헌터 장비의 자국을 발견했다. 누군가 손잡이를 반대편에서 잡아당긴 흔적이었다. 세라는 현장 촬영을 위해 자신의 바디캠을 벽 가까이 가져갔다. 재민은 촬영 각도를 가로막고 카메라를 손으로 눌렀다.

“감찰관은 공략에 간섭할 권한이 없어.”

“실종자 기록을 덮을 권한도 길드에는 없어요.”

재민은 세라를 밀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렌즈가 깨졌다. 세라는 바로 예비 장치를 켰다. 길드 헌터 몇 명이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재민의 편을 들지도, 세라를 도울지도 못한 얼굴이었다. 태오는 깨진 카메라를 주워 세라에게 건넸다. 파편에 손가락이 베였다.

“지금 퇴각하면 보고서를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계속 수색하면 실종자를 찾을 수 있지만, 재민의 지휘 아래 있다는 사실도 기록됩니다.”

태오는 자신이 떠나면 아무도 마지막 말을 확인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는 퇴각을 미루고 문을 찾기로 선택했다. 대신 새끼 괴수는 진목에게 맡겼다. 진목은 포획 장치를 끄고 새끼의 앞발에 붕대를 감았다. 장치는 억제 전류로 괴수의 근육을 수축시켜 발톱이 부러져 있었다. 진목은 일부러 손을 가까이 대지 않고, 먹이를 바닥에 놓아 새끼가 스스로 다가오게 했다.

태오는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소리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죽은 괴수의 입에서 나온 문장을 자기 말로 바꾸지 않으려 했다. 메모에는 들은 그대로 적었다. ‘여덟 번째 문을 열지 마.’ 그 아래에는 ‘화자의 의도 불명’이라고 썼다. 세라는 그 문장을 녹음하지 않겠다고 확인했다. 그 말이 사실처럼 퍼지면 작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재민은 태오가 다친 귀를 감싸는 모습을 보며 그를 최전선에서 빼겠다고 했다. 태오는 칼을 놓지 않았다. “내가 빠지면 문을 찾을 사람이 없어요.”

“네가 들은 말 하나로 팀을 위험에 몰아넣을 셈이야?”

“아니요. 내가 찾은 벽의 경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진목이 지도를 비추자 벽 안쪽에서 희미한 점이 나타났다. 지도에 없는 공간이었다. 재민은 그곳이 없다고 했지만, 벽은 안에서 세 번 두드려졌다.

태오는 문 앞에 걸린 오래된 볼트를 돌렸다.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진목은 괴수의 발톱 자국이 아니라 사람의 공구 자국이라고 했다. 누군가 바깥에서 문을 잠근 뒤, 안쪽 손잡이를 제거했다. 재민은 그 사실을 보자 태오에게 물러나라고 했다. 태오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공구를 집었다.

세라가 재민의 팔을 막았다. “문을 열어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어요.”

“열지 않으면 안에 있는 사람은 못 나옵니다.”

태오는 볼트를 반 바퀴만 돌렸다. 문틈에서 바람이 밀려 나왔다. 그 바람에는 녹슨 쇠와 젖은 흙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문을 열지 않고 멈췄다. 진목은 산소 수치가 안정됐다고 확인했다. 문 너머의 누군가가 살아 있을 수도 있었다. 재민은 처음으로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태오는 귀 보호대를 다시 썼다. 더 듣는 대신, 문 밖에 물과 비상등을 놓았다. 선택할 시간은 안쪽 사람에게도 있어야 했다.

세라는 문 앞에 임시 표식을 붙였다. 누구도 허가 없이 열지 말라는 표시였다. 태오는 그 글씨가 문 안쪽을 향해 있지 않고, 바깥으로 향해 있다는 걸 알아챘다. 경고를 봐야 하는 사람은 이미 안에 갇힌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는 표식 옆에 작은 비상등을 놓았다. 던전의 어둠 속에서 적어도 출구의 방향만은 보이게 하려는 행동이었다.

벽이 세 번째로 두드려지자 던전의 먼지가 떨어졌다. 진목은 모두 후퇴해야 한다고 외쳤다. 태오는 바로 물러나려 했지만, 뒤쪽 통로에 괴수의 발자국이 겹쳐 있었다. 새끼는 보호대 안에서 몸을 떨었다. 태오는 칼을 들어 벽의 얇은 판을 받쳤고, 세라는 헌터들에게 비상 고정 장치를 가져오라고 했다. 고정 장치가 박히자 진동은 잦아들었다. 누구도 문을 열지 않았지만, 안쪽에서 답하는 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태오는 그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만 손바닥으로 벽의 떨림을 세었다. 세 번, 쉼, 한 번. 문은 두드리는 사람의 간격을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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