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마지막 패치의 주장2화

마지막 패치의 주장

마지막 패치의 주장

AD
스폰서 광고

2화: 보이지 않는 와드

상대 정글러가 민서의 첫 캠프를 비우는 순간, 도윤은 스크림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난 판의 복기가 끝났다는 걸 알았다.

파도선은 공개 스크림에서 강한 팀 ‘적운’과 3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첫 판 밴픽은 민서의 시그니처 챔피언을 먼저 잘랐다. 적운 코치는 웃으며 “새 패치에서 정글이 꽤 달라졌더라”고 말했다. 민서는 탑 쪽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는 동선을 선택했다. 상대 정글러가 캠프 두 개를 먹는 사이, 민서는 강을 건너 적의 푸른 버프에 들어갔다. 와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캠프를 빼앗고 빠져나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적 미드가 첫 웨이브를 포기하고 강을 따라왔다. 정글러는 이미 부쉬 안에 숨어 있었다. 민서는 벽을 넘지 못하고 점멸을 썼지만, 상대의 속박에 걸려 첫 킬을 내줬다. 3분 50초. 팀 보이스가 한 박자 늦게 조용해졌다.

“왜 알았지?” 민규가 말했다.

세진은 화면을 멈췄다. “리플레이에선 정보가 없어. 처음부터 이 동선을 예상하고 미드가 움직였어.”

“내가 채팅에 말한 걸 보긴 했죠.” 민서가 답했다. “하지만 이건 아침에 말한 변형 루트예요.”

도윤은 초반 손실을 계산했다. 정글 캠프가 비었고 미드 웨이브가 포탑으로 들어왔다. 이대로 용을 포기하면 적운은 봇 라인에서 먼저 압박할 것이다. 그는 민서에게 “지금은 바텀 오브젝트로 바꾸자”고 말했다. 민서는 숨을 짧게 뱉었다. “용은 아직 4분 뒤고, 아래 강 입구에 와드가 있어요. 지금 들어가면 또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도윤은 미드 라인을 밀어 상대를 묶었다. 지환은 탑 웨이브를 포기하지 않고 한 칸 더 밀었다. 민규와 서포터는 바텀에서 체력을 교환하며 상대 원딜을 집에 보내지 않았다. 그 사이 민서는 정글 캠프에 다시 들어가는 척하다가 강을 빠져나와 바텀 삼거리로 돌아갔다. 적운의 정글러는 미드 쪽으로 내려왔다. 도윤은 마지막 순간에 상대 미드의 점멸을 빼고, 그들의 위치가 공개된 틈에 민서와 바텀 듀오를 전령 쪽으로 보냈다.

전령을 치는 동안 적운이 세 명을 몰고 왔다. 도윤은 중앙에서 궁극기를 쓰지 않았다. 민규의 사거리가 닿을 때까지 적 미드의 퇴로를 막았다. 상대가 스킬을 먼저 쓰고 빠지자 민서가 전령 둥지로 돌아와 마지막 공격을 넣었다.
전령이 둥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적운의 서포터가 강가 벽 너머에서 도약해 민규를 묶었다. 민규는 정화 주문을 쓰지 않고 체력을 버텼다. 도윤은 미드 포탑 쪽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상대 미드가 궁극기를 쓸 각을 열었다. 적운의 미드가 그 틈을 타 진입하자, 도윤은 뒤로 빠지는 대신 미니언 뒤에 숨어 스킬을 피했다. 민서는 둥지에서 나와 상대 정글의 이동기를 끊었다. 상대 둘은 도윤에게 다가갔고, 지환은 탑 웨이브를 한 번 더 밀었다. 도윤은 궁을 아끼려다 결국 민규가 쓰러지는 걸 봤다. 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를 먼저 빼려고 했다면 전령이 적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민규야, 미안.” 도윤이 말했다.

“괜찮아. 네가 나 살리러 왔으면 저쪽이 다 먹었어.” 민규는 관전 모드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다음엔 내가 한 발 뒤에 설게. 나도 욕심냈어.”

민서는 전령 버프가 남은 시간과 귀환 타이밍을 계산했다. “미드 1차까지는 밀 수 있어요. 용은 내주더라도 시야 먼저 잡고.”

도윤은 그 말을 따라 웨이브를 정리했다. 상대가 킬 하나를 얻고도 전령을 놓친 이유가 화면에 남았다. 파도선은 죽은 민규가 돌아오기 전까지 교전을 피했고, 적운은 다른 쪽을 막느라 전령을 쓸 시간을 놓쳤다. 한 번의 패배한 싸움이 바로 다음 선택까지 망치지 않게 만드는 것. 세진이 늘 복기에서 요구하던 일이었다.
파도선은 전령을 가져갔지만 민규가 쓰러졌다. 2대 1 교환, 골드 차는 여전히 적운이 앞섰다.

“내가 먼저 궁 썼으면 둘 잡았을 텐데.” 도윤이 말했다.

세진이 바로 답했다. “그랬으면 전령도 내줬어. 네 선택은 맞았어.”

“위로하려고 맞다고 하지 마요.” 민서가 끼어들었다. “제가 첫 캠프부터 읽혔어요. 그 뒤에 이긴 장면이랑은 별개예요.”

도윤은 자신이 그 말을 막고 싶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민서가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문제를 단순한 실수로 접을 수 있다. 하지만 도윤은 화면에 찍힌 이상한 접근 시간과 오늘의 동선을 나란히 떠올렸다. “네 실수면 리플레이로 찾아야 하고, 누가 정보를 봤다면 그쪽도 확인해야 해. 지금은 아무도 결론 내리지 말자.”

적운이 첫 판을 이겼다. 두 번째 판에서 파도선은 민서의 익숙한 챔피언을 다시 골랐다. 상대가 캠프에 들어올 것을 예상해, 도윤은 라인 우선권을 일부러 포기했다. 적 미드가 강으로 내려오는 순간, 지환이 탑에서 순간이동으로 합류했다. 민서는 캠프를 내주고 살아 나왔다. 그 대신 지환이 탑에서 1대1을 이기고 포탑 방패 두 장을 가져갔다. 파도선은 용을 잃었지만 전령을 얻고, 16분에 바텀 1차 포탑을 무너뜨렸다.

경기는 32분까지 이어졌다. 적운은 두 번째 대형 오브젝트를 앞두고 미드 시야를 지웠다. 파도선은 시야 싸움에서 밀려 강 입구에 들어갈 수 없었다. 도윤은 정면 교전을 포기하고 탑 웨이브를 밀었다. 상대 둘이 도윤을 잡으러 올라오자, 민서는 남은 셋과 함께 용을 건드렸다. 적운은 다시 내려왔지만 이미 체력이 절반이었다. 민규는 화살을 아끼고, 적 미드가 들어오는 순간에만 사거리 끝으로 공격했다. 민서는 마지막 강타를 넣었다. 파도선이 두 번째 판을 가져왔다. 마지막 넥서스를 부수기 직전 도윤은 민서에게 처치 횟수를 묻지 않았다. 그는 미드 2차를 깨고 나서도 정글 입구에 남아 상대가 돌아오는 길을 막았다. 민서는 한 번도 죽지 않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지 않고 팀이 먼저 골라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스크림 점수는 1대 1이었다. 승패보다 중요한 질문은 남았다. 적운이 왜 민서의 동선을 알았을까. 세진은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코치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민서는 연습 서버 계정에서 로그를 다시 확인했다. 화면에 표시된 시간은 계속 어긋나지 않았다. 외부 분석 도구가 켜진 계정은 게임 내에서 취한 행동을 거의 실시간으로 반영했다. 다만 누가 데이터를 봤는지는 화면만으로 알 수 없었다.

“운영사에 질문을 보냈는데 답이 왔어.” 세진이 연습실로 돌아와 말했다. “테스트 분석 기능은 계약에 따라 리플레이 입력을 수집하지만, 다른 팀에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않는다는 답이야.”

“문서에 데이터가 언제 삭제되는지는 없었어요.” 민서가 말했다.

“내가 외주로 본 건 정식 경기 결과 집계뿐이야. 테스트 계정 권한과 전송 경로는 몰랐어.” 세진은 휴대전화를 탁자에 놓았다. “적운은 운영사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다고 했어.”

“그 말도 상대가 한 말이라 확인 전엔 결론이 아니죠.” 도윤이 말했다.

세진의 눈썹이 굳었다. “내가 너희를 팔아넘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도윤은 대답하기 전에 지환을 봤다. 지환은 팔짱을 끼고 있지만 스크림 결과 화면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민규는 장비를 정리하면서 둘의 말을 듣고 있었다. 팀은 이미 그 의심의 안에 있었다. “지금은 코치님이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어. 누가 잘못했다고 정한 건 아니야.”

세진은 잠깐 말이 없었다. “제로라인 코치 제안은 운영사와 별개인 구단이 보냈어. 외주사에서 일한 건 맞아. 내가 권한을 가진 건 확인해 볼게. 그리고 제안서를 너희에게 보여 줄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제로라인 구단 이름이 화면에 떴다. 세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윤은 전화가 울리는 동안 자기 휴대전화로 리플레이를 다시 돌렸다. 상대 미드가 민서의 위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은 게임 클라이언트가 로그를 보낸 직후였다. 세진의 설명이 맞는지 틀리는지 증명할 수는 없었다.

민서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저는 내일 다른 계정으로 시험해 볼게요. 제 동선이 없어도 입력이 전송되는지 확인하고, 화면을 기록해도 될까요?”

도윤은 처음에 ‘내가 할게’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민서는 자신의 계정과 자기 경기 기록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네 계정만 써. 결과도 팀원한테 먼저 보여 줘.”

“그럼 스크림은요?” 세진이 물었다.

“다음 판은 도윤 선배가 미드에서 일부러 시야를 내주면 안 돼요. 상대가 제 동선을 읽을 수 있는지 한 번 더 보겠습니다.”

“그건 우리 전략을 걸어야 해.” 도윤이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동의부터 구하는 거예요.”

민규는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나는 괜찮아. 오늘처럼 용 한 번 주고 탑 포탑 먹을 수 있으면.” 지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만 대답을 망설였다. 그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제안서가 도착했다. 신작 팀에서 제안한 선수 이름은 지환과 민서였다. 세진이 말한 두 자리 중 하나를 민서가 차지하고 있었다.

민서는 문서를 천천히 읽었다. “저한테는 아직 연락도 안 했는데, 제 이름이 먼저 들어갔네요.”

세진이 손을 내저었다. “확정 명단이 아니야. 내가 후보로 추천한 것뿐이야.”

“제가 원한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민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 내일은 제 동선을 확인할게요. 코치님한테 보여 줄지는 그다음에 결정하겠습니다.”

도윤은 그녀가 나가는 걸 붙잡지 않았다. 세진의 전화는 또 울렸고, 스크림 화면에는 1대 1이 남았다. 다음 판에서 민서가 자신의 루트를 미끼로 쓸지, 팀을 떠날지, 누군가 대신 정해 줄 수 없는 선택들이 연습실에 남았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