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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패치의 주장1화

마지막 패치의 주장

마지막 패치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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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종료 카운트다운

팀 파도선의 연습실에서 마지막 패치가 내려받히던 날, 정글러 최민서는 자기 동선이 상대 팀의 화면에 떠 있는 걸 봤다.

스크림 2세트 11분 42초. 민서는 바위게를 치는 척하다가 강가 풀숲을 지나 적의 붉은 캠프로 돌아 들어갔다. 상대 정글은 시야도 없었고, 탑 라인은 아군 쪽으로 밀려 있었다. 그런데 상대 미드가 갑자기 강으로 내려오더니 정확히 민서가 숨어든 풀숲에 스킬을 던졌다. 화면이 회색으로 바뀌고, 팀 음성에 세진 코치의 말이 떨어졌다.

“정글이 죽었어. 용까지 넘기자. 무리하지 마.”

민서는 죽은 화면을 보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미드는 바텀 쪽 웨이브를 놓치고 내려온 참이었다. 상대가 민서의 위치를 확실히 알아야만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도윤은 미드 포탑 앞에서 상대 원거리 딜러의 귀환을 끊으려다 말고 “리플레이 저장해”라고 했다.

“시야에 걸렸을 수도 있어.” 세진이 말했다.

“방금 와드 기록 봤어요. 풀숲은 비어 있었어요.” 민서가 답했다.

연습 상대는 파도선보다 한 단계 높은 팀이었다. 스크림은 패치 첫날이라 서로 새로운 챔피언과 동선을 시험했다. 게임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 정글러가 채팅으로 “민서님, 그 새 루트 아직도 써요?”라고 물었다. 민서의 손끝이 굳었다. 그 루트는 공개 방송에서도, 지난 리그에서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상대가 그냥 떠본 걸 수도 있어.” 도윤이 말했다.

“그 사람은 방금 내 동선을 맞혔어요.”

민서는 리플레이를 되감았다. 4분 18초, 상대 정글이 강을 가로질러 자기 블루 캠프에 들어온 시점. 민서는 아직 반대편 칼날부리 근처에 있었다. 상대는 맞은편 시야를 지우지 않고도 그곳으로 왔다. 한 번이면 우연일 수 있었다. 같은 판에서 두 번, 같은 패치에서 두 번이면 설명이 필요했다.

연습실 천장 스크린에 운영사 공지가 떴다. 아스트라 폴은 6주 뒤 서비스를 종료하고, 예정된 리그는 마지막 컵으로 대체한다는 발표였다. 대회는 세 주 뒤 시작하며, 각 팀은 기존 선수 계약을 유지해야 출전할 수 있었다. 종료까지 남은 날짜가 화면 한쪽에 작게 표시됐다. 42일.

원거리 딜러 민규가 헤드셋을 벗었다. “그럼 우리 계약도 다 끝나는 거예요?”

“리그 계약은 컵까지 유효해. 이후는 구단과 따로 얘기해야 해.” 세진은 프린트한 일정을 접었다. “신작 제로라인 오픈 예선이 다음 주야. 여기서 남은 걸 다 걸어야 하는 건 아니야.”

도윤은 그 말에 화면에서 눈을 뗐다. “우린 마지막 컵 나가기로 했잖아.”

“네가 나가기로 한 거지. 민규는 학교 복학할지 고민 중이고, 서포터는 계약 종료 뒤에 군 문제도 있어. 지금 팀 전체를 묶어 두면 그 사람들한테 다음 기회가 사라져.”

세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도윤은 그게 더 싫었다. 그는 이 팀이 여기까지 버틴 이유를 알고 있었다. 민규가 연습실 월세를 못 내던 때 팀원들이 식대를 나눴고, 세진은 구단이 선수 정산을 미룬 일을 리그 사무국에 따졌다. 마지막 컵은 성적뿐 아니라 팀 이름을 남길 기회였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게 같은 의미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경기는 해 보고 결정해.” 도윤이 말했다.

“다른 게임 계약은 오늘 답을 달라고 왔어.” 세진이 눈을 피했다. “내가 코치 자리를 받으면 선수 둘은 같이 데려갈 수 있어.”

그 말에 민규가 의자에서 몸을 세웠다. “누구 둘인데요?”

“제안서에 이름이 있어. 아직 확정은 안 했어.”

민서는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원래라면 그 질문에 세진이 먼저 대답했을 것이다. 오늘은 화면에 뜬 종료 공지와 자신의 리플레이 기록이 한꺼번에 겹쳐 보였다. “코치님, 마지막 패치 테스트 계정에서 제 입력 로그가 밖으로 나가는 것도 봤어요.”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로그?”

“게임 내 분석 도구가 켜진 계정은 스킬 입력 시각하고 이동 좌표를 외부 테스트 화면에 보내요. 저는 설정에서 분석을 껐는데, 테스트 서버에서만 다시 켜져 있었습니다.”

세진이 바로 되물었다. “네 계정으로 확인한 거야? 다른 사람 계정에 들어간 건 아니고?”

“제 계정만요. 서버 로그는 열 수 없어서, 화면에 나타난 시간과 경기 리플레이를 대조했어요. 방금 상대가 맞힌 시간하고 거의 같아요.”

“그럼 운영사에 먼저 문의하자.” 세진이 말했다. “게임사가 합법적으로 수집하는 테스트 자료일 수도 있어. 경기에서 상대가 쓴 건 별개로 확인해야 하고.”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혼자 캡처만 모았어요. 공개하거나 누굴 지목한 적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계정 화면을 공유했다. 테스트 도구의 검은 창에는 경기 코드와 이동 좌표가 줄줄이 흘렀다. 그중 하나는 민서의 닉네임이 아니라 내부 테스트 계정 번호로 표시돼 있었다. 도윤은 숫자보다 시간표에 눈길을 주었다. 11분 42초, 상대 미드가 강으로 움직인 시각과 로그 전송 시각이 0.3초 차이였다.

“이걸로 상대가 봤다고 단정하면 안 돼.” 세진이 말했다. “그리고 이 화면에는 우리 팀 전략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넘기면 선수들도 같이 노출돼.”

민서가 답하기 전에 도윤이 먼저 말했다. “좋아. 오늘 리플레이랑 계정 기록만 보관해. 내일 운영사에 질문하고, 상대가 알았다는 증거가 더 있는지 확인하자.”

“그 사이 마지막 컵 준비는?” 세진이 물었다.

도윤은 화면 구석의 숫자를 보았다. 42일. “계속해. 대신 다음 스크림에서 내 미드 라인 움직임은 공개하지 않을 거야. 민서 동선도 한 판 쉬고 바꾸자.”

민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 동선 때문에 다 바뀌면 제가 빠지는 게 낫지 않아요?”

“그건 네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야.” 도윤은 말을 내뱉고 잠깐 멈췄다. 민서의 표정이 굳었다. “미안. 네가 어떻게 할지 묻고 같이 정하자는 뜻이야.”

민서는 캡처 창을 닫지 않은 채 말했다. “오늘은 한 판 더 하고 싶어요. 상대가 제 루트를 읽은 게 패치 때문인지 제 실수인지 직접 보고 싶어요.”

세진은 두 손을 책상에 얹었다. “한 판만. 상대 팀에 다른 동선을 흘리지 않는 조건으로.”

휴식 시간에 탑 라이너 박지환은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을 뜯다가 세진에게 물었다. “코치님이 말한 두 자리에 제 이름도 있어요?” 세진은 대답을 미루지 않았다. “있어. 다만 아직 계약서가 온 건 아니야.”

지환은 포장지를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저는 아스트라 폴이 싫어서 가는 게 아니에요. 집에서 다음 달부터 생활비를 보내 달래요. 여기서 우승해도 상금이 나눠지면 월세 석 달분이고, 신작 팀은 기본급을 제시했어요.” 민규는 고개를 숙였다. 지환은 그를 향해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도윤은 자신이 붙잡고 싶은 게 팀인지, 팀이 함께 남아야 한다는 자기 생각인지 구분하려 했다. “네가 결정하면 보내 줄게. 다만 우리한테 마지막 컵을 같이 뛸지 말지는 네가 말해 줘.” 지환이 삼각김밥을 내려놓았다. “그건 뛰고 싶어요. 끝난 뒤에 어디로 갈지는 제가 정할게요.”

세진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게 내가 원한 답이야. 다 같이 남으라는 말은 안 했어.”

“그런데 선수 둘을 데려가겠다고는 했죠.” 도윤이 바로 받았다.

“내가 먼저 제안받았으니 조건을 물어본 거야. 너희에게 숨긴 건 맞아.” 세진은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하지만 이번 패치 로그와는 상관없어. 내가 그 분석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운영사 외주 코치를 했기 때문이야. 테스트 동선을 훔쳐보지는 않았어.”

민서는 눈을 들었다. 코치가 설명을 시작했지만, 그녀는 말을 끊었다. “그럼 접근 기록을 먼저 확인해 주세요. 제가 무조건 의심하는 게 아니라, 저 화면의 계정이 코치님 계정이랑 이어져 있으니까요.” 세진은 입을 닫았다. 도윤은 민서를 막지 않았다.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림용 물병을 채우러 갔다. 아무도 팀이 갈라질 거라고 단정하지 않았지만, 방 안의 의자는 조금씩 벌어져 있었다.
다음 스크림의 밴픽에서 민서는 평소 쓰던 정글 챔피언을 밴했다. 상대가 예상한 첫 캠프 동선도 버렸다. 민서는 미드 웨이브가 먼저 밀리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도윤이 상대의 점멸을 빼자마자 반대쪽 정글로 돌았다. 탑에서 상대가 먼저 공격적으로 들어왔지만, 도윤은 미드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의 킬을 포기하고 웨이브를 밀어 포탑 방패를 가져갔다. 그 사이 민서는 용 앞 시야를 잡았다.

“상대 정글 내려온다.” 민서가 말했다.

“기다려. 아직 용 안 쳐.” 도윤은 적 미드가 강을 건너는 걸 보고 아군 탑에 신호를 찍었다. 민서는 부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상대가 용 쪽에 두 명을 더 보내자 파도선은 빈 탑 포탑을 먼저 무너뜨렸다. 킬은 없었지만 골드가 앞섰다. 스크림은 28분에 끝났고 파도선이 이겼다.

경기 뒤 민규는 “방금 그 선택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도윤은 웃지 않았다. “상대가 우리 동선을 본 건지 아직 몰라.”

민서는 분석 창의 마지막 줄을 다시 열었다. 패치 테스트를 요청한 계정 목록 중 하나가 운영사 이름이 아닌 세진의 개인 외주 계정과 연결돼 있었다. 세진은 아직 화면을 보지 못했다. 민서는 그 사실을 말할지 망설이다가 도윤을 불렀다.

“주장님. 이 번호, 코치님 제안서에 적힌 외주사 코드랑 같아요.”

세진이 의자를 밀었다. 도윤은 화면에서 번호를 확인한 뒤 그를 보았다. 종료까지 41일. 마지막 패치의 첫 스크림은 끝났지만, 팀 안에서 누구를 믿고 다음 게임을 할지는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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