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

8화: 집돌이의 강제 퇴거
미궁의 정원 14층 통로는 팽팽한 마력의 파열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벽면에 박힌 은색 공간 고정 말뚝 네 개가 푸른빛을 뿜어내며 바닥의 석판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말뚝들이 내뿜는 구속력이 현우의 14층 분기 격벽을 억지로 벌리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벌려라! 고순도 열성 마력의 진원지가 바로 저 너머다!"
황대호의 호령에 명성 길드의 정예 헌터들이 마력을 쏟아부었다. 사설 병력 서른여섯 명은 이미 통로 양옆으로 포위 진형을 갖춘 상태였다.
부길드장이 마력 측정기를 살피며 외쳤다.
"격벽 너머의 마력 밀도가 S급 보스룸 수준입니다!"
"겁먹을 것 없다. 3년 동안 방치된 던전이다. 우리가 먼저 깃발을 꽂으면 이 던전의 모든 자원은 명성 길드의 소유가 된다."
황대호가 대검 손잡이를 틀어쥐며 오만하게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단단하게 닫혀 있던 공간 격벽 한가운데가 커튼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헌터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벌어진 틈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마수의 포효가 아니었다.
훅.
따뜻한 수증기가 차가운 지하 통로의 냉기를 밀어냈다. 그 수증기에는 은은한 편백나무 향과 향긋한 라벤더 향이 듬뿍 배어 있었다.
딸깍, 질질.
규칙적인 고무 슬리퍼 소리와 함께 한 청년이 걸어 나왔다.
헐렁한 회색 트레이닝팬츠에 오버핏 후드티를 걸친 청년은 삼디다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하암……."
길게 하품을 내뱉은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의 집 문앞에서 아침부터 쇠꼬챙이나 박아 대고 뭐 하는 짓들이야, 진짜."
선발대 선두에 서 있던 부길드장의 턱이 덜덜 떨렸다.
"가, 강현우……?!"
서른여섯 명의 사설 병력 사이로 거대한 동요가 번졌다.
3년 전 실종되어 사망 처리 직전이던 대한민국 유일의 S급 공간계 헌터 강현우. 그가 방금 목욕이라도 하고 나온 듯 뽀송뽀송한 얼굴로 서 있었다.
황대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강현우 헌터. 살아 있었나. 3년 동안 공략을 방치한 탓에 던전 관리권은 이미 국가 심사 대상이다. 내부 시설을 명성 길드에 인계하고 지상으로 복귀해라."
황대호는 상대를 살폈다. 상대는 무기도 갑옷도 없이 슬리퍼를 신은 무방비 상태였다.
하지만 현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혀 달랐다.
"인계는 개뿔."
현우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온천물 온도가 0.6도나 올라갔잖아."
"……뭐?"
"아침에 바나나우유 마시면서 느긋하게 반신욕 하려던 참인데 바닥을 쑤셔 놔서 보일러 수온이 튀었잖아. 물 온도 맞추는 게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데 그걸 망쳐?"
현우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분노와 짜증이 차올라 있었다.
황대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자신들은 길드의 사활을 걸고 돌입했는데 상대는 고작 온천물 온도를 들먹이며 자신들을 모욕하고 있었다.
"미쳐도 곱게 미쳤군. 던전에 너무 오래 갇혀서 헛소리를 하는 모양이다."
황대호가 손짓하자 선발대 헌터들이 바닥으로 달려들었다.
탕! 탕!
휴대용 공간 고정 말뚝 네 개가 현우의 발치 주변에 박혔다. 은빛 사슬이 허공을 가르며 현우가 선 반경 3미터의 공간을 결속했다.
"움직이지 마라! 특수 제작된 차원 구속 말뚝이다! 물리적으로 고정된 좌표에서는 스킬을 쓸 수 없다!"
부길드장이 승리를 확신하며 외쳤다.
황대호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검을 쥐었다.
"강현우. 얌전히 지시를 따라라. 조용히 걸어 나가면 길드의 특별 고문 자리는 마련해 주지."
현우는 발밑에서 번쩍이는 은빛 사슬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저 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바라보는 듯한 한심함만이 가득했다.
"조잡해."
현우가 혀를 찼다.
"이런 쇠꼬챙이 몇 개로 공간을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남의 집 마루에 못질이나 해 대고 말이야."
현우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검지와 엄지를 맞부딪쳐 튕겼다.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작은 소리와 함께 현우의 발밑에서 보이지 않는 파문이 일어났다. 공간 자체가 숨을 가볍게 내뱉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었다.
[스킬: 무한 공간 재편]
콰드득!
바닥에 박혀 있던 은색 말뚝들이 비명을 질렀다.
은빛 사슬이 바스러지더니 네 개의 굵은 말뚝이 용수철처럼 뿅 하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뭐, 뭐야?!"
현우가 손가락을 살짝 오므리자 공중에 뜬 말뚝 주변의 공간이 사방에서 짓눌렸다.
우지직! 콰직!
특수 합금 말뚝들이 허공에서 알루미늄 캔처럼 찌그러졌다. 쇳덩어리들이 바닥으로 맥없이 툭 떨어졌다.
[외부 고정력 제거 완료]
[공간 재편 출력 100퍼센트 복원]
15층 주택을 억누르던 간섭이 완전히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수억 원을 호가하는 차원 고정 장비가 손가락 튕김 한 번에 고철이 되었다. 헌터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황대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이 자식이……! 전원 공격 대형!"
"시끄러워."
현우의 목소리가 통로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그는 피를 보거나 시체를 치우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옷에 피를 묻히는 것도 귀찮았고 통로의 핏자국을 청소 골렘에게 닦으라고 시키는 것도 번거로웠다.
집돌이에게 가장 완벽한 청소는 쓰레기를 집 밖으로 분리수거하는 것이었다.
"골렘. 귀환 통로 출력 최대로 올려."
청소 골렘의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귀환 통로 대기 완료. 공간 압축률 99.8퍼센트. 관성 상쇄 충격 완충장막 활성화.]
"좋아. 문 활짝 열어."
현우가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쥐었다. 그러고는 빨래를 비틀어 짜듯 손목을 반 바퀴 돌렸다.
쿠구구구궁!
14층 통로의 바닥이 아코디언 주름처럼 수십 겹으로 겹쳐졌다. 14층에서 1층 개찰구까지의 통로가 단 3미터 두께로 압축되며 지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차원 미끄럼틀이 열렸다.
"공간이 접힌다?!"
"으아아악!"
중력의 축이 꺾이며 서른여섯 명의 사설 헌터들이 바닥의 경사로 빨려 들어갔다.
슈우우웅! 콰아아앙!
사람들이 차례로 허공을 날아 공간 주름 속으로 사라졌다. 부길드장 역시 바닥을 붙잡으려 했으나 낙엽처럼 허무하게 쓸려 나갔다. 완충 장막이 뼈를 보호했지만 급격한 가속도가 영혼을 뒤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황대호뿐이었다.
그는 대검을 바닥에 박아 넣은 채 온몸의 마력으로 버텼다.
"크으윽! 내가 명성 길드의 수장 황대호다! 네놈 따위 집돌이에게……!"
딸깍, 질질.
황대호가 턱을 치켜들자 코앞까지 다가온 현우의 무심한 눈동자가 보였다.
현우는 슬리퍼 앞코로 황대호의 대검 손잡이를 툭 찼다.
깡!
검날이 튕겨져 나오며 황대호의 몸이 붕 떠올랐다.
"잘 가세요. 다음엔 택배 시킬 때 빼고는 오지 마시고."
현우가 손바닥을 가볍게 밀어냈다.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황대호의 몸이 시속 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사출되었다. 그의 비명이 차원 통로 너머로 사라졌다.
쿠구궁.
소용돌이가 잦아들며 통로 바닥이 평평한 암반으로 복구되었다. 널브러졌던 말뚝 파편과 가방들조차 남은 흡입력에 빨려 들어가 말끔히 사라졌다.
먼지 하나 남지 않은 완벽한 청소였다.
"후우. 속이 다 시원하네."
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15층 공간문 너머에서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풍겨오고 있었다.
같은 시각 미궁의 정원 던전 지상 입구.
차단벽 앞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국장님! 명성 길드가 불법 진입한 지 한 시간입니다. 특수대를 진입시켜야 합니다!"
지휘관의 보고에 박철진 국장은 마른세수를 했다.
"명성 길드가 법무팀과 언론을 등에 업고 있어. 섣불리 들어갔다가 충돌이 나면 여론이 뒤집힌다."
현우의 생존 여부조차 모르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가 입술을 깨물던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지하 개찰구 게이트에서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방어 태세!"
특수대원들이 방패를 세웠고 취재진의 카메라가 일제히 게이트를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펑!
철제 셔터를 뚫을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외투를 입은 무리들이 지상 아스팔트 위로 쏟아져 내렸다.
퍼버벅! 쿵! 콰당탕!
"커헉!"
"우웨에엑!"
서른여섯 명의 사설 병력과 부길드장이 도로 위에 줄줄이 널브러졌다. 외상은 없었지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아스팔트를 짚고 노란 위액을 쏟아냈다. 14개 층을 단 3초 만에 역주행하며 극심한 공간 멀미를 겪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포탄 하나가 허공을 갈랐다.
쿠웅!
명성 길드장 황대호가 바닥에 거꾸로 처박히며 구둣발을 파닥거렸다. 고급 코트는 흙먼지로 뒤덮였고 잘 넘긴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어, 어버버……."
황대호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다가 그대로 기절했다.
현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대한민국 3대 길드의 정예 병력이 한 시간 만에 지상으로 내던져진 광경이었다.
그때 던전 입구 구석의 무인 택배함 모니터가 번쩍였다.
관리국 메인 서버와 연동된 보안 신호가 공인 인증 마크를 띄웠다.
삐빅.
선명한 초록색 글씨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무단 투기 쓰레기 38인분 반환 완료.]
[차후 무단 침입 시 청소 용역비 및 바닥 수리비 청구 예정.]
[- 15층 입주자 강현우]
그 문구를 확인한 박철진의 턱이 덜덜 떨렸다.
"강…… 강현우라고?! 저 녀석이 정말로……!"
박철진의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도심은 3년 만에 존재를 드러낸 S급 헌터의 소식으로 발칵 뒤집혔다.
그 시각 미궁의 정원 15층 단독주택.
바깥의 소란과 달리 현우의 집 안은 아늑하고 고요했다.
탁.
현우는 현관문을 닫고 슬리퍼를 벗어 던졌다.
온천 별실로 들어서자 41.5도로 맞춰진 온천수가 잔잔한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외부 간섭이 사라지자 화염 슬라임 보일러도 본래의 완벽한 리듬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골렘. 수온 안정화됐지?"
"네. 편백나무 성분과 라벤더 오일 농도 역시 98퍼센트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완벽하네."
현우는 옷을 벗어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냉장 창고에서 꺼내 온 노란 단지형 바나나우유를 들고 탕으로 향했다.
첨벙.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깊숙이 담그자 나른한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으아아…… 좋다."
지하 암반수가 품은 고순도 마력이 피부를 타고 스며들며 아침의 피로를 눈 녹듯 씻어냈다. 수온은 완벽했고 편백나무 바가지가 물 위에 둥실 떠다녔다.
현우는 빨대로 바나나우유를 콕 찔러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달콤하고 차가운 우유가 넘어가자 극상의 행복감이 온몸에 퍼졌다.
"역시 집이 최고야."
현우는 탕 가장자리의 매끄러운 바위에 턱을 괴며 눈을 감았다.
던전 밖에서 무슨 난리가 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이곳은 세상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완벽한 낙원이었다.
만렙 집돌이의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