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7화

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

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

AD
스폰서 광고

7화: 무단 입주자는 사절

이른 아침 서울 도심의 차단벽 앞에 검은 차량 열두 대가 멈춰 섰다.

차량 옆면에는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명성 길드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뒤이어 내려온 사내들은 정식 레이드 장비 대신 방탄 외투와 공간 고정 말뚝을 챙기고 있었다.

그들의 선두에 선 황대호가 미궁의 정원을 올려다봤다. 지하로 이어지는 던전 입구 위쪽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가 가느다란 빛을 내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탐지 수치는?"

부길드장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어제보다 높습니다. 고순도 열성 마력 반응이 던전 상부 환기구를 통해 계속 유출되고 있습니다. 내부에 대규모 설비가 있는 게 확실합니다."

"설비가 아니라 자원이지. 저 안에 있는 걸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가 중요해."

황대호의 뒤에는 사설 병력 서른여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던전 점거와 경호를 전문으로 하는 외부 용병들이었다.

부길드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관리국의 현장 통제선은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다. 박철진 국장이 직접 통신을 연결해 왔습니다."

"연결해."

황대호가 귀에 꽂은 통신기를 눌렀다.

[명성 길드 황대호 길드장. 즉시 병력을 철수시키십시오. 미궁의 정원은 관리국의 관리권 심사 중이며 민간 길드의 임의 진입은 불법입니다.]

박철진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마지막 음절이 조금 떨렸다.

황대호는 코웃음을 쳤다.

"관리권 심사? 3년 동안 안에서 살아남은 헌터도 없고 제대로 된 탐사 기록도 없지 않습니까. 주인이 없어진 던전은 국가가 회수해야 합니다."

[강현우 헌터의 생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던전의 핵심 보스가 처리되지 않은 상태라 소유권 이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가 확인해 주면 되겠군요. 안에 들어가서 보스를 처치하고 점거하겠습니다."

[황대호 길드장. 그건 허가가 아니라 통보입니까?]

"국민의 안전을 위한 긴급 조치입니다. 관리국은 3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의 시선이 차단벽 아래에 그어진 푸른 선으로 향했다.

명성 길드는 이미 법무팀과 언론 대응팀을 움직여 두었다. 현장에서 강제 해산을 당해도 구조 활동을 방해받았다는 여론을 만들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부길드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긴급 안전 점검 명령서와 임시 운영 대행 신청서입니다. 지금 차단벽을 열지 않으면 관리국이 구조 활동을 방해한 것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좋아. 기록은 전부 남겨."

황대호가 손을 들었다.

사설 병력 두 명이 앞으로 나와 공간 고정 말뚝을 차단선 양옆에 박았다. 푸른 선이 흔들렸다. 던전 입구를 감싸던 관리국의 봉인진이 금속성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현장 병력은 즉시 중지하십시오. 관리국 특수대가 이동 중입니다.]

"도착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황대호가 손을 내리쳤다.

차단벽의 한쪽이 안으로 접혔다.


명성 길드 선발대가 미궁의 정원 1층 개찰구를 통과했다.

던전 입구 안쪽은 오래된 지하역처럼 넓었다. 깨진 안내판과 굳어 버린 마력 이끼가 어둑한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통로 벽면에는 관리국이 설치한 방향 표식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었다.

"탐지기는?"

"열성 마력의 주 흐름은 아래쪽입니다. 다만 중간부터 공간 밀도가 이상합니다. 통로 길이가 도면과 맞지 않습니다."

"던전이 흔들리는 것뿐이다. 고정 말뚝을 더 박아."

선발대는 통로 바닥에 은색 말뚝 네 개를 박았다. 말뚝 사이로 가느다란 선이 이어지며 주변 공간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처음 열 걸음은 순조로웠다.

열한 번째 걸음에서 선두의 헌터가 멈췄다.

그가 바라본 통로 끝에는 분명 붉은 비상등이 있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자신들이 들어온 개찰구가 열두 걸음 뒤가 아니라 서른 걸음 뒤에 놓여 있었다.

"길이가 늘어났습니다."

"고정 말뚝은?"

말뚝 하나가 바닥에서 반쯤 떠 있었다. 박힌 자리를 중심으로 바닥의 돌이 접힌 종이처럼 겹쳐져 있었다.

부길드장이 손을 뻗어 말뚝을 뽑았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말뚝이 차갑게 식었다.

"누군가 공간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보스의 방어 현상인가요?"

"아니면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부길드장이 말한 순간 황대호가 뒤에서 걸어왔다.

"생존자라면 더 쉽지. 지쳐 있을 테니까."

그는 들고 있던 마력 측정기를 통로 벽에 갖다 댔다. 기계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고순도 마력 반응. 열성 및 수맥 계열 혼합]

"이쪽이다. 설비가 있는 층까지 밀고 간다. 택배함도 회수해."

"개찰구 택배함을 말입니까?"

"저런 물류 시설을 누군가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면 그자가 던전의 자원을 빼돌린 거야. 물건과 기록을 전부 압수한다."

선발대가 1층 구석의 자동 수화물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표면에는 차폐 마력진이 얇게 빛나고 있었다. 내부에는 아직 회수되지 않은 빈 포장재와 거래 표식이 남아 있었다.

헌터 한 명이 검을 뽑아 상자 틈에 넣었다.

쩌정.

검날이 부러졌다.

"차폐 장치가 살아 있습니다."

"부숴."

두 번째 말뚝이 택배함 앞에 박혔다. 이번에는 공간이 고정되지 않았다. 말뚝 끝이 바닥에 닿기 전에 바닥 자체가 한 칸 옆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개찰구의 푸른 표시등이 한 번 깜빡였다.

[무단 접근 감지]

[관리자 인증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표시등은 던전 내부 전용 신호였다. 선발대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돌아갈까요?"

부길드장이 낮게 물었지만 황대호는 선발대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물러나면 저 말뚝 하나에도 겁먹은 길드가 됩니다. 언론에는 던전 내부의 이상 현상을 확인하기 위한 불가피한 진입이라고 알릴 거야. 계속 간다."

다만 15층의 거실에 놓인 수정 패널은 달랐다.


강현우는 온천탕 가장자리에 앉아 편백나무 바가지의 포장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연희가 보낸 물품은 새벽에 개찰구 택배함에 도착했다. 바나나우유는 냉장 창고에 넣었고 라벤더 입욕제는 온천 별실의 선반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마지막으로 최고급 편백나무 바가지를 물에 띄우자 나무 향이 김 사이로 은은하게 퍼졌다.

"이제 완벽하네."

현우는 바가지로 온천물을 한 번 떠서 가장자리 돌에 흘려보냈다. 물줄기가 매끄럽게 떨어졌다.

그 순간 거실 쪽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삐.

청소 골렘이 온천 별실 입구로 달려왔다.

"관리자님. 1층 개찰구에서 무단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택배가 또 온 건 아니고?"

"물품 표식이 없습니다. 무장 인원 서른여섯 명이 차폐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현우의 손에 들린 바가지가 멈췄다.

그는 거실로 나왔다. 85인치 TV 옆의 수정 패널에는 던전 내부 지도가 떠 있었다. 1층의 푸른 점들이 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일부는 개찰구 주변에 몰려 있었고 나머지는 이미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누군데?"

"관리권 보안 표식이 침입자 장비의 길드 문양과 전파 패턴을 대조했습니다. 명성 길드와 일치합니다."

현우는 화면을 확대했다. 선발대가 박아 둔 공간 고정 말뚝이 지도 위에서 붉은 점으로 표시됐다. 하나는 2층 통로의 벽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남의 집에 말뚝을 박았네."

"제거하시겠습니까?"

"아직은 됐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청소 골렘이 잠시 멈췄다.

"침입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대응합니까?"

"응. 내 물건만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


현우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15층 주택의 배관과 열원실이 붉은 선으로 표시됐다. 선발대의 이동 경로가 온천으로 이어지는 수직 통로와 겹치고 있었다.

"온천 급수관 근처까지 오면 물이 흔들릴 거야."

그는 편백나무 바가지를 한쪽에 내려놓았다. 입욕제 향이 좋아서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집 안으로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골렘. 현관 앞에 귀환 통로부터 만들어."

"침입자를 원래 위치로 돌려보내는 통로입니까?"

"던전 밖 개찰구까지 한 번에 이어지게. 다만 사람을 압축하지는 마."

"공간 압축률을 낮추면 통과 시간이 길어집니다."

"시간은 많아. 오늘 배송도 끝났으니까."

현우가 손을 내밀자 거실 바닥에 투명한 격자선이 퍼졌다. 집 현관에서 1층 개찰구까지 이어지는 길이 여러 번 접혔다. 일반 통로라면 수십 킬로미터가 될 거리가 얇은 주름처럼 겹쳐졌다.

그는 이어 14층과 15층 사이에 분기 격벽을 만들었다. 격벽은 사람을 막는 벽이 아니었다. 들어온 방향을 잊게 하고 되돌아가는 길만 선명하게 만드는 공간 구조였다.

청소 골렘이 벽의 끝을 살폈다.

"온천 순환계와 18센티미터 간격입니다. 외부 공간 고정 말뚝이 가까워지면 간섭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더 벌려. 온천은 건드리면 안 돼."

벽이 한 번 더 접혔다. 온천 별실의 습기는 여전히 배기 덕트로 빠져나갔지만 바닥 아래의 마력 흐름은 조금 느려졌다.

수정 패널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관리권 영역 일부에 외부 고정력 침투]

[공간 재편 출력 78퍼센트로 제한]

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내 집 안에서 출력 제한이라고?"

그는 고정 말뚝이 박힌 위치를 살폈다. 명성 길드는 단순히 길을 찾는 게 아니었다. 던전의 공간을 자신들 손으로 묶어 관리권을 빼앗을 발판을 만들고 있었다.

현우는 온천 별실을 돌아봤다. 물은 여전히 41.5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염 슬라임 보일러도 정상 작동 중이었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 낮은 진동이 한 번 올라왔다.

쿵.

탕 표면에 잔물결이 번졌다.

"보일러 공명 반응입니다."

"사람들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지?"

"14층 진입 경로에서 외부 마력이 감지되었습니다."

현우는 온천물을 바라보다가 욕실 벽에 걸린 가운을 집었다. 트레이닝복 상의와 바지는 침실 의자에 놓여 있었다. 발밑에는 아까 벗어 둔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직접 이동하시겠습니까?"

"내가 나갈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현우는 슬리퍼를 신었다. 푹신한 바닥이 발에 달라붙었다.

그때 14층 지도에 붉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점은 분기 격벽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공간 고정 말뚝이 격벽의 주름을 억지로 벌리고 있었다.

멀리서 금속이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콰직.

온천수의 표면이 크게 흔들렸다. 41.5도였던 수온이 42.1도로 올라갔다. 열원실에서 화염 슬라임 열두 마리가 동시에 몸을 부풀렸다.

"온천까지 건드렸네."

현우는 현관 옆 공간문을 바라봤다. 문 너머에는 14층의 어두운 통로가 있었다. 붉은 경고등 아래에서 낯선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편백나무 바가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물이 반쯤 담긴 바가지를 현관 선반에 올려놓고 출입문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골렘. 귀환 통로 대기시켜."

"침입자 전원을 던전 밖으로 이동시킬까요?"

현우가 잠깐 생각했다.

"그래. 그런데 먼저 얼굴은 보고 내보내야지."

공간문이 열렸다.

따뜻한 온천의 김이 차가운 14층 통로로 흘러나갔다. 현우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며 문밖으로 나섰다.

그의 뒤에서 주택 전체의 공간 격자가 조용히 맞물렸다.

무단 입주자를 위한 퇴거 절차가 시작됐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