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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9화

던전에서 안 나갑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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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악덕 길드 분리수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대한민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명성 길드의 긴급 기자회견장.

단상에 오른 황대호 길드장은 목에 두꺼운 깁스를 두르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몇 시간 전 미궁의 정원 앞 아스팔트에 처박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허우적거리던 꼴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창백하게 분장한 얼굴로 떨리는 손을 들어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명성 길드는 3년 전 미궁의 정원에 고립된 강현우 헌터를 구출하고자 막대한 사비를 들여 수색대를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던전 14층에서 마주한 강현우 헌터는…… 이미 인간의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수십 명의 취재진 사이에서 거대한 술렁임이 일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장내를 하얗게 밝혔다.

황대호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 누르며 울먹이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는 던전 내부의 마력 생태계를 불법 점거한 채 외부인의 접근을 극도로 적대시했습니다. 저희 대원들이 대화로 설득하려 하자 무자비한 공간 왜곡 공격을 퍼부어 전원을 던전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뒤이어 명성 길드 법무팀장이 마이크를 넘겨받아 엄숙하게 선언했다.

"명성 길드는 정부와 헌터 관리국에 공식 요청합니다. 미궁의 정원에 대한 긴급 몰수 명령을 즉각 발동해 주십시오. 아울러 국가 정예 헌터 전력을 총동원하여 괴물로 전락한 강현우를 강제 구인해야 합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이 붉은색 속보로 뒤덮였다.

[속보] 명성 길드 수색대, 던전 속 강현우에게 피습…… 전원 중상
[단독] 3년 만에 나타난 S급 공간계 헌터, 마수화 의혹 일파만파
[사설] 통제를 벗어난 위험 헌터, 국가 차원의 강제 진압 불가피

명성 길드가 미리 풀어둔 여론 조작팀이 커뮤니티마다 악의적인 선동 글을 도배했다. 불안에 휩싸인 여론의 화살이 던전 15층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미궁의 정원 15층 단독주택.

거실 안은 은은한 편백나무 향과 상쾌한 마력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강현우는 푹신한 리클라이너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따뜻한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참이라 온몸이 노곤하고 가뿐했다.

탁자 위에는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콜라 잔이 놓여 있었다.

지잉.

85인치 OLED 화면에서는 황대호의 처절한 피해자 코스프레 기자회견이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괴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화면 속에서 오열하는 황대호를 보며 현우는 얼음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저 아저씨는 사기꾼으로 전직했나. 목소리에 바이브레이션까지 넣네."

청소 골렘이 다가와 소파 옆에 마른 수건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화면 속 대상의 생체 신호를 분석했습니다. 경추 손상률은 0퍼센트입니다. 급격한 가속도로 인한 가벼운 소화기 장애 외에는 완벽히 정상입니다."

"그렇겠지. 다치지 말라고 완충 장막까지 씌워서 던져줬는데."

현우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피 한 방울 보지 않고 곱게 지상으로 돌려보내 줬더니 돌아온 것은 뻔뻔한 언론 플레이였다.

남의 집 온천물 온도를 망쳐놓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집 자체를 강제로 빼앗겠다고 날뛰고 있었다.

현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평화로운 집돌이의 삶에서 가장 큰 금기는 휴식을 방해받는 것이었다. 그다음 금기는 내 집을 넘보는 것이었다.

그때 거실 테이블 위 통신 수정구가 푸른빛을 번쩍이며 울렸다.

파앗!

서연희 매니저의 홀로그램이 허공에 떠올랐다.

[강현우 헌터님! 뉴스 보셨습니까?!]

평소 단정하던 서연희의 목소리가 몹시 격앙되어 있었다.

[명성 길드가 방송사와 신문사를 매수하고 협회 고위 간부들까지 포섭해서 여론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관리국 박철진 국장님도 지금 국회 청문회로 소환될 위기예요!]

"봤어요. 방금 TV로 생중계해 주더라고요."

현우는 리모컨을 눌러 TV 볼륨을 살짝 낮췄다.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계실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명분을 얻어 국회 특별법이라도 통과시키면 지상 정예 레이드 부대가 던전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고요!]

"우리 집에 부대가 와요?"

현우가 무심하게 되물었다.

"그 사람들 신발 흙 묻히고 들어오면 거실 바닥 닦기만 귀찮은데."

[……네?]

서연희가 말문이 막힌 듯 멍하니 굳었다.

현우는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지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서 매니저님. 혹시 무편집 영상이랑 원본 장부도 뉴스에 틀어줄 수 있습니까?"

[영상과 장부요?]

"우리 집 현관이랑 14층 통로에 설치된 던전 보안 마력진이요. 침입자들 얼굴이랑 목소리를 초고화질로 싹 다 녹화해 뒀거든요."

현우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투명한 마력 스크린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황대호가 관리국의 푸른 차단선을 부수며 낄낄거리는 장면부터 14층에서 공간 고정 말뚝을 박으며 외치던 육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가 먼저 깃발을 꽂으면 이 던전의 모든 자원은 명성 길드의 소유가 된다.'
'3년 동안 방치된 던전이다. 강현우? 그 폐인은 진작에 죽었거나 미쳐버렸겠지.'
'택배함도 부숴서 안에 든 것 전부 압수해!'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우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자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치던 황대호의 비겁한 표정까지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서연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건…… 완벽한 현장 증거잖아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현우가 거실 서랍에서 손바닥만 한 검은색 금속 큐브를 꺼냈다.

"3년 전 레이드 뛸 때 명성 길드가 나한테 들이밀었던 이면계약서 원본 파일이에요. S급 마수 부산물 강탈 내역이랑 세무 비리 장부 그리고 하청 길드 헌터들 목숨값 후려친 내역서까지 전부 들어 있습니다."

과거 현우를 던전 속으로 숨어들게 만들었던 인간관계의 환멸. 그 중심에 있던 명성 길드의 추악한 과거가 봉인된 결정적 기록이었다.

"언젠가 내 평화를 건드리면 분리수거하려고 백업해 뒀던 건데 오늘이 그날인 것 같네요."

현우가 큐브를 들어 보였다.

"개찰구 무인 택배함에 넣어둘 테니까 박 국장님이랑 상의해서 가장 큰 화면으로 시원하게 틀어버리세요."

서연희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알겠습니다 강현우 헌터님. 이번엔 제가 아주 확실하게 분리수거해 드리겠습니다.]


1시간 뒤 서울 광화문 헌터 관리국 프레스룸.

황대호의 기자회견 이후 관리국을 성토하는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박철진 국장은 당장 나와서 해명하라!"
"강현우의 마수화를 언제부터 숨겨왔는가!"

마이크를 든 기자들이 고성을 지르던 바로 그때 단상의 대형 메인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치지직.

무대 위로 박철진 국장과 서연희 매니저가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박철진의 얼굴에는 피로 대신 서슬 퍼런 분노가 서려 있었다.

"모두 조용히 하십시오."

박철진이 마이크를 잡았다.

"명성 길드가 발표한 내용은 단 하나의 진실도 없는 파렴치한 자작극입니다. 지금부터 미궁의 정원 관리자 강현우 헌터가 직접 제공한 무편집 보안 기록을 공개합니다."

웅성거리던 장내가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지잉.

화면에 4K 화질의 입체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첫 장면은 지상 던전 입구였다.

황대호가 관리국의 경고를 비웃으며 특수 말뚝으로 차단선을 강제로 찢어발기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도착하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계속 밀고 가!"

기자들의 숨이 멎었다. 인도적 구조가 아니라 명백한 공무집행 방해이자 불법 무단 침입이었다.

영상은 14층 통로로 이어졌다.

황대호의 오만한 목소리가 프레스룸 스피커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이 던전은 서울 한복판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우리가 먼저 깃발을 꽂으면 던전의 모든 자원은 명성 길드의 소유가 된다!"

기자들의 펜이 멈췄다.

그리고 화면에 나타난 것은 헐렁한 후드티 차림에 삼디다스 슬리퍼를 끌고 나온 강현우였다.

'남의 집 문앞에서 아침부터 쇠꼬챙이나 박아 대고 뭐 하는 짓들이야.'
'내 온천물 온도가 0.6도나 올라갔잖아.'

마수에 오염된 괴물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천욕을 방해받아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대한민국 최강의 집돌이가 서 있을 뿐이었다.

이어서 펼쳐진 장면은 일방적인 퇴거 조치였다.

수억 원짜리 특수 말뚝이 손가락 튕김 한 번에 찌그러지고 황대호가 쏜살같이 허공으로 사출되는 광경이 슬로 모션으로 재생되었다.

"푸하하!"

프레스룸 한구석에서 참지 못한 기자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화면이 전환되며 명성 길드의 비밀 비리 장부와 탈세 내역 그리고 조작된 계약서들이 줄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서연희가 차가운 어조로 마이크를 잡았다.

"명성 길드는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 던전을 불법 강탈하려 했으며 과거 수많은 헌터들의 피땀을 착취해 왔습니다. 이 모든 자료는 국세청과 검찰 그리고 헌터 협회 윤리위원회에 동시 제출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초대형 폭탄이 터진 순간이었다.

"황대호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던전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구조 쇼를 벌인 거였어?!"
"사기꾼 길드장 즉각 구속하라!"

플래시가 빗발치며 기자들이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여론은 단 10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인터넷 방송과 포털 사이트는 명성 길드에 대한 분노와 비난으로 뒤덮였다.

[명성 길드 주가 개장 즉시 하한가 직행]
[검찰, 명성 길드 본사 전격 압수수색 돌입]
[황대호 길드장, 입원실에서 특수대에 긴급 체포]
[헌터 협회, 명성 길드 공인 라이선스 영구 박탈 처분]

한때 대한민국 3대 길드로 군림하던 거대 세력이 집돌이의 온천을 건드린 대가로 단 반나절 만에 완벽하게 몰락했다.


그날 저녁 던전 15층 단독주택.

거실의 85인치 TV에서는 황대호가 수갑을 찬 채 호송차로 끌려가는 뉴스 속보가 방영되고 있었다.

목에 둘렀던 깁스를 내던진 황대호는 취재진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현우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역시 쓰레기는 분리수거가 제맛이지."

그때 거실 바닥을 굴러온 청소 골렘이 큼직한 보온 가방을 건넸다.

"개찰구 무인 택배함에서 특급 배송 물품을 수령했습니다. 서연희 매니저의 특별 감사 답례품입니다."

가방을 열자마자 고소하고 짭조름한 기름 냄새가 거실 가득 퍼졌다.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황금빛 후라이드 치킨 두 마리와 매콤달콤한 양념치킨 그리고 갓 구운 치즈볼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시원한 캔맥주 여섯 캔도 얼음팩 사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크으. 서 매니저님이 뭘 좀 아네."

현우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바삭한 닭다리 하나를 집어 크게 베어 물었다. 바삭거리는 껍질 속에서 뜨겁고 부드러운 육즙이 터져 나왔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자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쾌감이 밀려왔다.

편안한 소파에 기대어 TV로 악덕 길드의 멸망을 보며 뜯는 치킨의 맛은 지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훌륭했다.

치킨 상자 밑에는 작은 원목 상자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서연희의 손편지가 붙어 있었다.

[강현우 헌터님 덕분에 협회의 오랜 고름이었던 명성 길드를 완벽히 도려냈습니다. 이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준비한 특별 보상입니다. 던전 온실 재배용 최고급 마력 배양토 50포대와 심층부 희귀 마력 과일 종자 세트입니다. 맛있는 과일이 열리면 저도 꼭 하나 맛보여 주세요.]

원목 상자를 열어보니 은은한 무지갯빛을 뿜어내는 마력 씨앗들이 비단 주머니에 담겨 있었다.

사과처럼 달콤하면서도 망고처럼 상큼한 향기가 솔솔 풍겨 나왔다.

"마력 과일이라……."

현우는 씨앗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굴려보았다.

매번 서연희에게 과일을 주문해 먹는 것도 은근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집 안에 작은 과수원을 만들어 두면 먹고 싶을 때마다 바로바로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5층 안쪽 빈 공동에 흙을 깔고 온실을 만들면 딱이겠는데."

새로운 하우징 계획에 현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던 바로 그때였다.

사각사각. 슥슥.

거실 구석 화강암 벽체 너머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단단한 흙을 앞발로 파헤치는 듯한 경쾌하고 빠른 마찰음이었다.

"응?"

현우가 고개를 돌렸다.

바닥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 거실 통로 모서리의 흙더미가 불쑥 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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